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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ressor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 만들기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expressor
작품등록일 :
2018.04.09 19:06
최근연재일 :
2018.05.17 21:07
연재수 :
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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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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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7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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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30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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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10화. 2차 각성 - 3

DUMMY

밀 수확의 날.

대부분의 집들이 밀을 재배하던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는 제국의 가장 큰 기념일인 건국기념일 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낮에는 모두 밭으로 나가 땀을 흘리며 밀을 수확하고, 밤에는 모두 마을 공터로 술과 음식들을 들고 나와 축제를 즐겼다.

이때는 우리 마을 출신이면서 성 안에서 제법 큰 여관을 운영하는 윌 아저씨가 여관에서 일하는 무희와 음악대까지 대동해 마치 진짜 성 안에서 펼쳐지는 큰 축제라도 하는 듯한 분위기가 되곤 했다.


밀 수확의 날을 기다렸던 건 작긴 했지만 하나의 밀 농장을 운영했던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

낯에 수확을 모두 끝내고,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쯤이면 어머니께서 전날 성에 가서 사 오신 돼지고기 따위를 온 가족이 모여 배불리 먹곤 했다.

그리고 식탁위의 빈 그릇들이 한 두 개씩 치워질 무렵이면, 창밖에서는 흥겨운 류트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고.

나와 동생은 잔뜩 신이 나서는.......


“.......”


두 번째. 아니, 세 번째인가. 그것도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다.

유난히 동생 생각이 많이 났던 하루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인간계 체험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만....... 지옥에 오기 전의 꿈은 그 내용과 상관없이 썩 유쾌하지 못하다.

아니, 오히려 불쾌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겠지.


“일어 나신건가요?”


“으응.”


말은 그렇게 의욕 넘치게 했지만 어제는 결국 몸이 너무 피곤해 로제니악에 돌아오기가 무섭게 쓰러지듯 누워 그대로 잠들었다.


“어제는 많이 힘드셨나 봐요?”


라고 말은 더할 나위 없이 상냥하게 하고 있지만 표정은 굳어있고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해 있다. 그렇게 어색하고 하기 싫으면 그런 예의는 그만둬도 된다 몇 번을 말했건만.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니었지만 말이야.”


그러고 보니 또 걱정이다.

물론 잠도 잤겠다. 피로도 풀렸고 할 마음이야 끓어 넘치고 있다만.

벌써 도움이 될 만한 수계자들은 한번 씩 다 만난 것 같은데.......


우선 머리에 떠오르는 건 테르에스테, 그리고 루즈에스테.

몇 번이나 부탁하기엔 조금 염치가 없지만 테르에스테라면 예뻐지는 약 같은 걸 만들어낼 수도 있을테고, 루즈에스테는....... 왠지 모르지만 그냥 믿음직 하니까 랄까.

좋아, 그럼 오늘은 우선적으로 이 둘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는 걸로 하자.


“주인님!”


“우, 우왁!”


고막을 찢어놓을 기세로 귀를 찔러 들어온 고음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가, 갑자기 왜.......”


“갑자기요? 갑자기라뇨! 설마 제 말을 하나도 안 들으신 건가요?”


잔느의 한쪽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호, 혹시 화가 난 거려나?


“미, 미안.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느라. 무슨 말을 했었지?”


하고선 고개를 조아려 사과.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아침부터....... 여자들과의 아니 여자 악마들과의 관계에 액이라도 낀 건지.


“정말, 무슨 일이 있으셨냐구요. 벌써 열 번은 여쭤본 것 같네요.”


흥, 하고 팔짱을 끼고선 인상을 써 보이는 모습이 조금 기분이 상했을 뿐이지 화까지는 나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아아, 그게 말이지.......”


미안한 마음에 웃으며 가능한 차분하게 어제 있었던 일들을 잔느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그러던 중 또 문득 스쳐가는 한 가지 생각.


“.......한 일이 있었어.”


“고생하셨네요.”


문제는 어제의 경험을 비추어 보면 이 ‘스쳐간 생각’치고 제대로 된 게 없었다는 건데.......

아아, 모르겠다. 말도 안 꺼내 보는 것 보다는 낫겠지.


“그래서 말인데, 잔느. 혹시.......”


내 입으로 말하려니까 또 괜스레 부끄러워지는 것이.......


“네? 말씀 하세요.”


“예뻐지거나....... 귀여워지는 법에 대해 아는 게 있어?”


라고 말이 끝나자마자 얼굴을 가리고 돌아서 버렸다.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이야.


“예뻐지거나 귀여워지는 법이요?”


으악, 또 말하지마. 부끄럽다고!


“화장법같은 거라면 조금 알고 있어요.”


“화장법?”


“네, 화장법이요.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왕궁에서나 귀족들이 주최하는 파티에 가려면 그 정도 몸단장은 필수니까요.”


화장이라. 괜찮은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거 하려면 뭐 약 같은 게 필요하지 않아?”


“약이요? 약이라기보다는 화장도구가 조금.......”


.

.

.


“나스미스테!”


한 번 이름을 부르고 노크를 두 번.


“무슨.......일이야?”


부스스한 눈을 하고선 문을 여는 나스미스테.

나 혼자 신이 나서는 너무 이른 아침부터 찾아온 건 아닌가 싶어 미안해지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나스미스테님.”


“아, 그러니까 로제에스테의 하인인....... 잔느. 라고 했었나?”


“네.”


막상 가자고 할 때는 싫다고 그렇게 탁자를 붙들고 움직이지를 않던 잔느는 막상 오고 나서는 계속 침착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괜히 긴장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건 나고 말이다.


“하인까지 데리고, 무슨 일이야?”


“아, 그러니까. 오늘 잔느랑 얘기하다가 괜찮은 걸 알게 돼서.”


내 말을 들은 나스미스테는 조금 당황한 듯 한 기색을 보이며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왜?


“아, 아냐. 괜찮아. 어제 말했잖아. 신경 안 써줘도 된다고. 정말 괜찮다니까.”


그렇게 말한다고 물러설 거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어, 어쨌든! 안으로 들어가자. 응?”


라면서 나스미스테의 등을 떠밀며 방안으로 입성.


“잠깐만 기다려봐.”


탁자 옆에 있는 의자 두 개를 들고 와 나스미스테의 옆에 내려 두었다.


“나스미스테, 여기 앉아 봐.”


얼떨떨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는 나스미스테를 뒤로하고 돌아서 잔느에게 미리 정해둔 신호를 보냈다.


“잔느, 부탁해.”


하고 같이 가져온 보따리를 탁자로 가져가 그 위에 풀어놓았다. 와르르 쏟아져 내리는 화장도구들.

잔느의 말에 맞춰 구현화 시킨 것들인데 잔느를 여기까지 데려오는 데 들어간 건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힘을 들여 만든 것들이다.

뭐 그렇게 요구하는 게 많던지.

본 적도 없는 것들을 그 설명에 따라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아니, 애초에 화장을 하는데 왜 달팽이가 필요한건지도 모르겠고.

어쨌든 지금은 중요한 게 그게 아니니 그대로 탁자를 들고 나스미스테의 앞, 잔느의 옆에 안착했다.


“그럼 나스미스테님. 레자르 왕가 고유의 화장법을.......“


오오? 일말의 망설임 없이 테이블 위에서 작은 붓 모양의 화장도구를 집어드는 잔느.

게다가 ‘레자르 왕가 고유의 화장법’ 이라니. 나한테는 그런 말 한마디도 없어놓고 말이지.

어쨌든 이거면 해결이 될 거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근데 왠지 붓을 든 손이 떨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느낌 탓.......이겠지?


.

.

.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잔느의 손은 아직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쉴 새 없이 만들어놓았던 화장도구들을 바꿔가며 나스미스테의 얼굴에 화장을 계속.

원래 여자의 화장이란 게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건가 싶은 마음에 존경심까지도 들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옆쪽에서 보고 있는지라 잘은 보이질 않지만 나스미스테의 얼굴도 뭔가 더 하얗게 변한 것이....... 뭐 예뻐진 거겠지. 하하.


“후우.”


말 한마디 없이 화장을 계속하던 잔느의 입에서 새어나온 한숨.

그러고 보니 이게 꽤나 힘든 일인지 잔느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잔느, 조금 쉬었다 하는 게 어때?”


하고 일어서서 잔느의 어깨를 붙들어 멈춰 세웠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돌려본 나스미스테는 화장이 오래 걸려서였을까? 눈을 꼭 감고 새근새근 잠에 들어 있.......


“자, 잔느?”


하고 물으며 돌아본 잔느의 눈은 동공이 풀려 있었다.

그제서야 잔느의 이마에 맺힌 땀이 힘들어 맺힌 땀이 아니라 식은땀이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여, 역시 보는 것과 직접 하는 건 좀 차이가 있네요.”


자꾸만 내 시선을 피하며 몸을 뒤로 빼는 잔느.


“그, 그런 건 처음부터 말해줬어야 할 거 아냐!”


내가 나스미스테의 얼굴이 하얘졌다 느낀 건 착각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하얗게 변한 얼굴. 그 위로 낙서라도 한 듯 붉게 칠한 입술. 그리고 동그랗게 눈 주변을 따라 그려진 검은 선.


“그, 그래서 안 가겠다고 한 거잖아요!”


아아, 망했다. 나스미스테의 하얀 얼굴과는 반대로 내 눈앞은 깜깜해져 버렸다.

이를 어쩐다. 이 상황을 어쩐다.


“으음....... 로제에스테? 다 끝난 거야?”


“우, 우와아아악!! 잠깐!! 잠깐만!!”


.

.

.


나스니악의 앞. 어떻게 둘러대 빠져나온 건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아파요.......”


“아, 미안.”


계속 붙들고 있던 잔느의 손을 놓아주었다.

아아, 진짜 큰일 나는 줄 알았다.


“하아.”


나스미스테의 방에 거울이 없던 것이 천만 중에 다행이었다.

웃음이 나오지 않도록 입 안으로 양 볼을 깨물고는 억지로 침착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엄청 예뻐졌어. 굉장해. 라고 연기를, 그리고 한 편으로는 눈이 핑핑 돌아서는 정신을 못 차리는 잔느를 내 뒤로 세웠다.


정말이냐 묻는 나스미스테의 물음에 맞다는 의미로 고개를 수십 번 끄덕였다.

다만 인간들이 쓰는 화장법이라 악마의 피부에는 안 좋을 거라며 빨리 씻는 게 좋겠다. 라고 말하고 나스미스테가 씻기 위해 방을 나간 틈을 타 그대로 잔느를 데리고 달려 도망.


나중에 다시 나스미스테를 만날 때에 대한 걱정보다도 혹여나 씻으러 가던 나스미스테가 나스에스테나 스레나스님을 만나지 않았기를 하는 걱정이 더 클 뿐이다.


“그래도 꽤 괜찮지 않았나요?”


그런 말을 하려면 나랑 눈부터 마주치고 얘기하는 게 어떨까 잔느.


“.......돌아가자.”


그래, 뭐 원래 잔느의 일은 계획에도 없던 거니까.

잔느를 로제니악에 데려다주고 원래 계획대로 테르에스테나 루즈에스테를 찾아가야겠.......


“이런데서 놀고 있는 걸 보니 꽤나 여유가 넘치는 것 같네. 로제에스테.”


잘 모르는 목소리다만....... 이제 이런 전개는 그리 놀랍지도 않다.

그래, 이번엔 또 누구냐.


“경고 했을 텐데?”


주머니엔 양 손을 쑤셔 넣고 검은 로브를 머리끝까지 눌러쓰고 있는 악마.


그래, 에스테 회의에서 봤던....... 분명 크로에스테.


“인간계 체험은 네가 생각하는 것 만큼 만만치 않다고.”


.

.

.


“칫, 재수 없는 녀석.”


잔느를 로제니악에 대려다 놓고 돌아오던 중, 생각이 드니 또 열이 뻗쳐 바닥에 대고 발길질을 한 번.

나 참,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래, 까놓고 내가 까먹고 있던 건 인정하겠는데, 좋게좋게 얘기할 수 있는 걸 그렇게 사람 성질을 박박 긁으면서 얘기할 필요가 있냐 이거지.

그러고 보면 전에 에스테 회의 때 나스에스테에게 시비를 걸었던 것도 그렇고.

수계주가 분노의 악마, 하네크로님이라고 했었나?

그렇게 따지면 녀석도 분노의 악마인 게 분명하다. 남을 분노케 하는.


.

.

.


“딱 보아하니 이곳에 있을 때처럼 주변의 악마들이 모두 어린애들 장난치는 것 마냥 널 감싸줄거라 생각하나 본데.”


앞에 말 까지는 반 장난일거라고 들었지만 이 말을 듣고 나니 나도 모르게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뭐, 약한 녀석들끼리 뭉쳐 다니는 건 일종의 본능이라고 한다만 그것도 평화로울 때의 얘기지.”


“.......”


“과연 자기들의 소멸이 눈앞에 있는데도 널 신경써줄 악마가 한 명이라도 있을까?”


그만 하라고 하려다 그 물음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내가 너라면 이러고 있을 시간에 그 오른 팔이라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도록 연습 할 텐데 말이야. 하필이면 네게 가다니. 란세르님의 영혼석이 참 불쌍하네.”


저 녀석, 말이라고.......


“뭐, 그래봤자 결과는 달라지지 않겠지만. 이거 루나에스테와의 결투는 취소해야겠어. 조만간 서열 2위 자리가 공석이 될 테니까 말이야. 크하하하하!!”


.

.

.


“젠장.”


그 때 멋들어지게 반박해 녀석의 입을 틀어막았어야 했는데.

괜스레 또 열이 뻗쳐 바닥에 대고 발길질을 날렸다.

아아, 분이 풀리지를 않는다. 하지만........


“........”


인간계 체험이 걱정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내게 주어진 5일이란 시간도 말도 안 되게 짧은 데 벌써 하루를 허망하게 날려버렸다.

맘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베스파로제님께 달려 가 도와달라고 매달려야 할 것 같지만........ 역시나 나스미스테를 그냥 저렇게 내버려 두는 건 너무 미안할뿐더러 내 마음도 편치 않을 것 같으니.


“후우.”


크게 숨을 한 번 들이쉬고 양 뺨을 두 손으로 찰싹 찰싹 때리고선 등을 꽂꽂히 세워 폈다.

그래, 아직 오늘은 반도 끝나지 않았다.

빨리 나스에스테의 일을 해결해 주고 베스파로제님께 인간계 체험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달라 하면 되는 거다.

이렇게까지 마음을 먹으니 왠지 이제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 듯하다.

그래, 일단 움직이자.

여기서 가만히 있을 시간은 없으니까.


하고 걸음을 시작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어디를 가야할지 정하지를 못해 결국 론니악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또 제자리에 서있다.

테르에스테와 루즈에스테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계획까지는 분명 좋았으나, 테르에스테야 뭐 항상 연구실에 있으니 언제라도 찾아가면 된다 쳐도, 루즈에스테는 대체 어딜 가야 만날 수 있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이제까지의 행보를 생각해보면 항상 공간이동으로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만 해서 주로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나마 공통점이라고는 어떻게 내가 있는 곳을 잘도 알고 찾아온다는 건데.

아, 그렇다면 혹시.


“루즈에스테!”


하고 허공에 소리를 한번 질러보았다.


“........”


부른다고 올 리가 없지.

괜스레 내가 한 일이 부끄러워져 주위에 다른 악마가 있나 두리번두리........


“부르셨나요?”


당연하다는 듯 뒤돌아선 곳에 서 있는 루즈에스테.

놀라기 이전에 내가 먼저 찾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나도 이제 정상은 아닌 듯싶다.


“어, 어떻게 알고.......”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전 부르셔서 온 것뿐인데 말이죠.”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별안가는 그 진지한 얼굴에 오히려 물어 본 내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버리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로제에스테님께서 절 먼저 찾으신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군요. 조금 기쁘네요.”


후후, 하고 웃어 보이는 루즈에스테. 하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다.

저건 분명 왜 불렀냐고 짜증을 내는 거다. 그런 게 틀림없다.


“그래서 무슨 일이시죠?”


“아, 그게 말이야.......”


벌써 몇 번째 설명하는 건지.

생각할 것도 없이 몇 번이고 얘기해 책을 읽듯 머릿속에 들어있는 그대로를 뱉어내 설명을 전했다.


“.......그렇게 됐다는 거지.”


음, 스스로 만족스러울 만큼 깔끔한 설명이었다.


“그래서 저는 뭐 아는 게 없냐, 라는 말씀이시군요?”


음! 더할 나위 없는 깔끔한 이해다.


“흠, 글쎄요. 떠오르는 게 하나 있긴 합니다만.”


아, 아니 루즈에스테. 조금만 더 생각해주면 안될까?

이제까지 그렇게 금방 생각해낸 생각들 치고 쓸모 있던 게 없었단 말이지.


“뭔.......데?”


그래, 그래도 일단은 들어보기나 하자. 라는 마음으로 반신반의하며 되물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이기 중 가장 위대한 것이 두 가지가 있다면 하나는 마법,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음악이라는 말이 있지요.”


처음 듣는 말이다만. 뭐, 어쨌든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


“음악. 그 중에서도 아름다운 노래는 듣는 이의 마음을 감동시켜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호오?


“그러니까........ 나스미스테에게 노래를 불러주라 이거지?”


“네, 맞습니다.”


하고 빙긋 웃어 보이는 루즈에스테.

그래, 노래라면 나도 별 부담 없이 불러줄 수 있고 효과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역시 루즈에스테. 믿음 직 하다니까!


“고마워! 이 은혜는 꼭 갚을게!”


이거면 틀림없이 한 번에 성공이다.

빨리 끝내버리고 로제니악으로 돌아가 인간계 체험을 대비하는 거다!


“로, 로제에스테님? 잠깐만요!”


한참 달려가려 준비 중인데 나를 부럴 세우는 루즈에스테의 목소리.

뭐 또 생각난 거라도 있는 건가?


“아무래도 불안해서 그런데, 로제에스테님. 혹시 노래는 부르실 줄 아시나요?”


“뭐? 당연한 소리를! 실례야!”


으음! 이래봬도 일을 할 때마다 선두에 서 흥겨운 노래를 불렀던 나다.

밀 수확의 날 때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노래를 불렀던 것도 나였다.

물론 농담일거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루즈에스테의 눈 속에는 의심이 한가득 이다.


“좋아, 그렇게 못 믿겠다면 내 한 곡 불러주지.”


“아, 네.......”


뭐, 뭐야 저 껄끄럽다는 표정은.

젠장, 내 노래로 그 눈을 놀라움으로 바꿔주지.


“음, 아아. 노래 제목은 제국의 향수.”


가볍게 목을 좀 풀어주고.......


“바람을 타고 날아온- 정겨운 그 소리-”


이런 너무 오랜만에 불러서 그런 건가?

첫 음을 너무 높게 잡았다. 이런 실수를........


“크, 크흠. 귓가에 와 울리는 구나- 손 흔들며 떠나올 때 스쳐간 그 미소-”


좋아, 이제 안정됐다.

지금부터가 본 실력이다.


“눈가에 맺혀 흐르는-구나!”


여기에서 콧소리로 뿌뿜 뿜 뿌뿜 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좌우로 흔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


“제국기 그려 넣은 편지 속에-”


.

.

.


“.......내 사랑을 부디 전해-다오!”


끝. 그리고 남아 흐르는 깊은 여운. 아아,

내 입으로 말하기엔 뭐하지만....... 지옥에만 오지 않았어도 윌 아저씨의 여관에서 가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 어떠냐 루즈에스테!


“끝........난 건가요?”


맞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답하자,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온다.

훗, 그렇게 감동적이었나?

내가 노래를 이렇게 잘 부를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거지.


“그러니까....... 방금 하신 게 노래....... 였다는 거죠?”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

루즈에스테도 참, 낯 부끄럽게 알면서 뭘 또 물어보는 건지.


“.......노래는 안 하시는 게 낫겠네요.”


응? 지금 뭐라고?


“이건 노래를 잘 못 부르신다기 보다는....... 불쾌하네요.”


혼이 빠져나간 듯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바래버렸다.

자, 잘못 들은 거겠지?


“그럼 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화가 날 것 같아서요.”


말을 마치자마자 공간 너머로 사라져 버린 루즈에스테.

그리고 론니악 공터에 망연자실해 말을 잃고 홀로 멍하니 남겨져있는 나.


“........거짓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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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7화. 서열전쟁 - 3 18.04.22 36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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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7화. 서열전쟁 - 1 18.04.21 37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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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5화. 로제니악 - 2 18.04.18 38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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