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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ressor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 만들기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expressor
작품등록일 :
2018.04.09 19:06
최근연재일 :
2018.05.17 21:07
연재수 :
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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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52
추천수 :
65
글자수 :
47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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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2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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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10화. 2차 각성 - 2

DUMMY

“하아.”


어김없이 새어나오는 땅이 꺼져 내려갈 듯한 한숨.

나스미스테에게는 일단 맡겨 둬! 라고하고 라니악을 뛰쳐나왔지만....... 리아세스테는 벌써 어디까지 간 건지 보이질 않았다.

어떻게든 사과는 해야 할 텐데. 그렇다고 라니악까지 따라가 사과를 하려했다간 오히려 더 큰 화만 부를 것 같고....... 아아, 모르겠다. 포기다.


그렇게 결국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발이 향한 곳은 세르니악.

이유는 뻔하다. ‘일단 맡겨 둬!’ 라고 큰소리까지 치고 나왔으니 뭐라도 알아가야 할 테고, 내가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는 곳은 결국 란세르님의 서재뿐이니까.......


“세르에스테, 나 왔어.”


라고 말하며 세르니악의 문을 열었다. 그대로 2층으로 이동.

보통 이때쯤이면 와서 눈도장이라도 찍고 가건만 세르에스테는 잠시 자리라도 비운 모양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복도를 주욱 둘러보았지만 역시나. 바로 서재로 들어갔다.


“하아, 예뻐지거나 귀여워지는 방법이라.”


사실 저번 잔느의 일 때문에 서재 전체를 주욱 둘러본 적이 있기에 대충이나마 책들의 종류를 기억하고 있으나, 그런 거에 관련 있어 보이는 책은 전혀 없었다.

뭐, 그래도 내가 지나친 책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하는 마음으로 다시 맨 왼쪽 책장부터 위에서 아래로 주욱 훑어보기 시작.


“.......”


한 번 본적이 있어 설까?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모든 책장을 훑어보는 것을 끝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아, 이걸 어쩐다.”


또 다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자갰다.

물론 가능성이 낮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무슨 얼굴로 나스미스테에게 돌아가야 할지 걱정이다. 뭐 좋은 방법이.......응?


“우, 우와아아악!!!”


세, 세르에스테?

놀랐다. 아니, 진짜 놀랐다.

서재의 문이 열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어, 언제부터.......”


라는 내 물음에 내 옆에 앉아있던 세르에스테는 침묵으로 대답.


“노, 놀랐다고! 다신 이렇게 몰래 다가오지 마!”


못할 짓이란 걸 알면서도 짜증을 내고 말았다.

하지만....... 진짜 놀랐단 말이다. 잘은 몰라도 수명이 한 10년은 줄었을 거다.


“전 로제에스테님께서 오시기 전부터.......”


라고 언제나와 같은 무표정으로 따져온 세르에스테.

어조가 평소과 조금 달랐기 때문일까? 왠지 세르에스테가 굉장히 억울해하고 있다는 게 느낌으로 전해졌다.


“아, 미안.”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서재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바로 책장으로 갔으니까.

오른쪽 책장 끝에 앉아있는 세르에스테를 못 볼 만 하다.

서재에서 뭘 하고 있었냐 물어 분위기를 전환시켜보려 했으나 세르에스테의 손에 들린 책을 보니 아무래도 책을 일고 있었던 모양.

알면서 물어보는 것도 웃긴 일이니, 뭐 다른 게.......


“아, 세르에스테! 그보다 말야.”


세르에스테도 나 못지않게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어쩌면 세르에스테라면.


“.......한 일이 있어서 말이지. 도움이 될 만한 책 같은 것 없을까?”


게다가 세르에스테도 일단은 여자 악마니까.

리아세스테때처럼 동감을 일으켜 큰 도움이 될 책을 골라줄 수도 있고 말이다.

뭐 지금까지 한 내 말을 무시하지만 않는다면 말이지만....... 아, 움직였다.


“이거요.”


세르에스테가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에서 빼낸 것은 얇고 작은 책.

일단 받아들고 제목을 확인해보니 용사 세이렌의 모험 이라는 제목과 함께 귀여운 삽화가 그려진 책이다.

몇 장 넘겨 내용을 보니 동화책....... 인 듯하다. 왜 동화책 같은 게 란세르님의 서재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보다 궁금한 건.


“이 책은 왜?”


“남이 읽어주는 동화책은....... 감수성을 자극해 몸을 편안하게 해준다고.......”


아아, 알겠다. 나도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 읽어주신 동화책 내용에 녹아내리듯 잠에 들었던 기억이 있다.

감수성을 자극한다는 게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모르겠다만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준다는 건 미용적으로 효과가 있기는 할 테지.


“고마워, 세르에스테!”


.

.

.


해서 쏜살같이 달려 도착한 나스미스테의 방문 앞.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나스미스테, 나야. 들어갈게.”


나스미스테는 내가 나가기 전과 같은 자세 그대로 이불을 덮고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뭐라도 알아 온 거야?”


“음.”


하고 나스미스테에게 내가 가져온 책을 들어 보여줬다.


“책?”


“그냥 책이 아니야. 동화책이라고. 동화책.”


“동화?”


이런, 동화책을 모를 줄이야.

아니다, 악마니까. 어쩌면 모르는 게 당연하지.

새삼스레 여기가 지옥이고 눈앞에 있는 건 악마라는 사실을 재인식하고 말았다.

아아, 그보다.......


“일단 좀 누워 봐.”


라고 말하며 나스미스테의 침대 옆에 걸터앉았다.

조금 부끄럽기는 하지만....... 동화책 읽기의 정석은 원래 눈을 마주보고 읽는 데에 있는 것 아니겠는가.


“크, 크흠. 제목은 용사 세이렌의 모험.”


가능한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보려 노력했지만 괜스레 내 얼굴만 더 빨개질 뿐이다.


“뭐야, 뭐야. 읽어주는 거야?”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호기심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나스미스테.


“아니, 이건 그러니까....... 아니다. 일단 들어봐.”


설명을 해주려다가 괜히 기껏 만든 분위기만 깨지는 게 아닌가 싶어 그만 뒀다.


“응, 알았어.”


“음,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처음은 대부분의 동화들과 같은 무난한 시작.


“인자하고 자비로운 왕이 다스리던 왕국이 있었답니다. 그 왕국의 이름은 하란.”


뭐, 용사 누구의 모험. 이라는 동화들의 전형적인 형태다.

사실 나도 용사 세이렌의 모험이라는 동화는 처음 보는 내용이라 그 내용이 궁금한 것도 사실.


“신의 축복을 받은 하란은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요. 하지만.......”


.......응? 잠깐만.


“응? 왜?”


당했다.

세르에스테....... 안 그런 척 해놓고서는 분명 내가 화를 냈던 것에 꿍해있던 것이 분명하다.

그게 아니고서야 절대 이런.......


“아아, 아무래도 책을 잘못 들고 온 것 같네. 하하.......”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 땀 한 방울.


“뭐야, 뭐야. 뭔데!”


이렇게까지 분위기를 잡아놓고 도망쳐 나오는 것도 모양이 말이 아니라 눈 딱 감고 그냥 읽어줄까도 했지만.......


“다, 다른 걸 가져올게!”


아아, 무리다.


.

.

.


“세르에스테!”


그렇게 난폭하게 열어젖힌 서재의 문 뒤로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올라오면서 세르에스테가 있나 없나 확인했으니 이번에야 말로 진짜 어디 나간 모양이다.

아니면 도망간 거거나.


“하아,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


물론 사람이 아니라 악마긴 하지만.

왠지 온 몸에 힘이 빠져 그대로 책장에 기대 무너지듯 주저앉고 말았다.

책은 대충 서재의 빈자리에 가져다 꽂아 넣었다.


“하아.”


동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랬다.

평화로운 왕국 하란.

하지만 그 평화는 지옥에서 침공해온 마신과 그의 부하 악마들 때문에 엉망을 짓밟히고 말았다.

순식간에 폐허가 되어버린 하란.

하지만 모두가 이제 다 죽은 목숨이라 포기하고 있을 때에, 용사 세이렌이 나타났다.


세이렌은 백성들을 도모해 군대를 꾸려 마신을 무찌르기 위한 모험을 시작했다.

그리고 수많은 역경을 지나 마침내 마왕의 군세와 조우하게 된 용사 세이렌.

용사는 자신의 죽음도 불사하고 마신에게 달려들어 마신을 죽이고 자신도 결국 목숨을 잃었다는....... 아이들이 보기에는 조금 슬픈 내용인 그런 동화였다.


뭐, 이렇게 보면 별 문제없어 보인다만....... 문제는 동화의 표현 방식이었다.

원수 같은 악마의 등뼈를 뽑아내며 세이렌은 웃고 있었습니다. 라던가

세이렌은 그렇게 내장을 쏟아내며 마왕을 향해 몸을 던졌답니다. 라던가

감수성을 자극할 수 있는 동화는 절대 아니다.

아니, 사실상 그냥 잔혹한 공포 소설 아닌가. 무슨 악마가 쓴 동화도 아니고.......


“아.”


혹시라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꽂아놓았던 책을 다시 꺼냈다.

표지나 책 안을 살펴봐도 저자의 이름은 적혀있지 않았다.

아닌 거겠지. 생각해보면 아이를 낳지 않는 악마가 동화 같은 걸 쓸 이유도 없고.

아, 물론 이상한 성격을 가진 악마들도 많으니까 동화를 쓰는 악마가 있다 해도 이상할 건.......


“하아.”


그만두자.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만 아플 뿐이다.

악마가 쓴 동화였으면 그냥 읽어줘도 되는 거 아니었나하는 생각 때문이었지만 부질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다시 같은 책을 들고 가기도 그러니까 말이지.

잔뜩 따지기라도 하려 온 세르니악이지만....... 세르에스테도 없으니 여기엔 더 있어도 의미가 없다.

다시 한 번 크게 한숨을 내쉬고 몸을 일으켰다.


.

.

.


그렇게 나온 세르니악의 앞.

이제 어떡한다? 나스미스테에겐 다른 책을 가져온다 했으나 또 다른 동화책이 있을 리 만무고.

뭐라도 다른 걸 찾아가야 할 텐데.......


“아! 로제에스테님!”


응? 이 목소리는.......


“아까부터 멍하니. 뭐 하고 계시는 거예요?”


루나에스테? 그리고 그 옆에 서있는 어린 소녀는....... 어라? 어디서 본 듯 낯이 익은데.


“아, 직접 뵙는 건 처음이시죠? 소개드릴게요. 제 수계주이신 서열 7위. 고통의 악마, 제니루나님이세요.”


아아, 기억났다. 칸니악에서 본 기억이 있다.

그 때는 누군지도 모르고 귀엽게 생긴 꼬마 악마가 있어 잠깐 눈이 갔던 정도지만.


“제니루나님. 이쪽이 로제에.......”


“알아.”


루나에스테의 말을 중간에 끊어먹고서는 내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제니루나님.

머리 양 끝 두 갈래로 나눠 묶은 긴 금발머리에 새빨간 눈동자가 토끼를 닮은 것 같다고 무의식 적으로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겉모습으로 보기엔 테르에스테랑 비슷, 아니 좀 더 어려 보이는데....... 서열 7위의 악마라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악마는 역시 외형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거겠지.

그보다 어느새 내 바로 앞까지 와 서서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제니루나님.

뭐, 뭐 문제라도 있.......


“!!”


제니루나님의 오른 발이 뒤를 향한다 싶더니 그 궤적을 눈이 따라가기도 전에 찌릿 하고 발목 위에서부터 타고 올라오는 통증.

말도 안 나오게 고통스러워 이를 악물고 내 발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내려다보니 제니루나님의 검은 단화 끝이 내 발목 위에 와 박혀있었다.


“소개를 받아놓고도 인사를 하지 않다니. 예의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녀석이로구나.”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발목에 와 닿은 제니루나님의 발끝에 힘이 실리는 게 느껴진.......


“우웁. 죄, 죄송합니.......드아.......”


아프다. 진짜 아프다.

아니, 진짜 어떻게 말로 표현을 못 할 정도로 아프다.

나도 모르게 눈가엔 눈물이 고여 한 번 더 이렇게 아팠다가는 기절해 버릴 듯 해 안 나오는 목소리를 쥐어짜내 사과했다.


“뭐? 잘 안 들리는데?”


“죄, 죄송합니다아아!”


부끄럽게도 결국 흐르고 말았다. 눈물 한 방울이.

하지만 그런 입장을 따질 때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프다.

아아, 그 덴에있을 때 악마에게 오른팔을 잘렸을 때도 이렇게까지 아프지는 않았던 것 같.......


“흥, 하찮기는.”


라는 말과 함께 제니루나님의 발이 내 발목 위에서 떨어져 나가자마자 고꾸라지듯 몸을 숙여 발목의 상처를 확인했다.

분명 살이 다 파여 뼈라도 보일 지경일 테지.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


막상 두 눈으로 직접 본 발로 차인 그 자리는 그렇게 아팠는데도 피가 나기는커녕 상처하나 보이지 않았다.


“에스티, 난 먼저 갈 거니까.”


“네, 제니루나님!”


당황스러워 고개를 들자 제니루나님은 이미 공간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 후.

론니악 공터 위 남은 건 발목을 끌어 잡고 앉아있는 나와 그런 나를 미소지으며 바라보고 있는 루나에스테 뿐이다.


“축하드려요, 로제에스테님! 제니루나님의 마음에 드신 모양이에요!”


“.......뭐?”


그렇게 발로 차놓고서는 마음에든 거라고?

순간 화가 참을 수 없이 차올라 고개를 들고는 루나에스테를 노려보았다.


“노, 놀리는 게 아니라요! 제니루나님은 아무나 그렇게 발로차거나 하지 않으시거든요. 정말이에요!”


믿을 말이 있지. 아직도 발목에 남은 고통이 뼛속까지 스며든 듯 아리다.

아아, 일어설 수도 없다.


“그보다 여기서 뭐 하고 계셨던 거예요?”


그건 또 왜 라고 한마디 퉁명스럽게 뱉어주려다 머릿속을 스쳐간 한 가지 생각에 그만 두었다.

그래, 밑져야 본전이니까.


“으으, 그게 그러니까.......”


.

.

.


“헤에, 그런 일이 있었군요.”


리아세스테와 같은 반응이다.

나는 죽어도 이해 못할 그런 류의.......


“으응, 어쨌든. 그래서 좀 도움이 될 만한 게 없을까?”


“있어요!”


고민도 없이 바로 나오는 대답에 놀라고 말았다.


“뭐, 뭔데?”


그 고민이 없었다는 부분이 굉장히 불안하다만.......


“채찍으로 맞는 거예요!”


“아, 그래?”


하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래도 루나에스테에게 말하는 동안 고통이 많이 가셨으니, 루나에스테와 얘기한 것은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다.

그렇게라도 생각안하면 스스로에게 화가 날 것 같은 상황이라는 거다.


“그래, 난 이만 가볼게. 다음에 또 봐.”


“어, 얼레? 로제에스테님! 로제에스테님!”


하고 빙글 돌아 발을 움직이는데 내 팔을 붙들고 매달리는 루나에스테.


“지, 진짜라니까요! 로제에스테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아프게 때리는 게 아니라, 살살 쳐서 피부에 탄력을 주는 거 라구요!”


피부에 탄력? 그 얘기라면 조금 흥미가 동한다.

걸음을 멈추고 루나에스테를 향해 몸을 돌렸다.


“일단 들어보기는 할게.”


“감사드려요!”


뭔가 감사를 하고 받아야할 입장이 뒤바뀐 것 같다만.......


“제가 말한 채찍은 다른 게 아니라 이거예요. 이거.”


하고 루나에스테가 가슴사이에 손을 집어넣어 꺼내든 것은 짧고 얇은 술이 여러 개 달린 먼지 털이같이 생긴 모양의 채찍.

아니, 잠깐. 저런 걸 저기에 넣고 다녔던 거야?


“보세요. 이 정도로. 이렇게.”


가벼운 손짓으로 그 채찍을 들어 내 등위로 몇 번 휘두르는 루나에스테.

찰싹찰싹 하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진다.


“어때요, 안 아프죠?”


음, 확실히 아프다기보다는 그냥 간지러운 듯한 느낌이다만.


“하지만 그냥 이렇게 아무데나 치기만해선 안되구요. 위치가 있어요.”


“위치?”


“네, 알려 드릴게요. 일단 한 번 받아보세요!”


얼떨결에 루나에스테가 건네준 채찍을 받아 들었다.


“음, 역시 처음은 여기죠, 여기.”


하고 루나에스테가 손으로 가리켜 보인 곳은.......


“.......진짜야?”


“네, 한 번 때려보세요.”


“아, 아니.......”


“빨리요, 직접 해본 것하고 보기만하는 것하고는 다르다니까요. 정말이에요.”


라고까지 말하니 내키지는 않지만.......


“그럼....... 간다.”


살짝 손을 들어 올렸다가 가볍게 찰싹하고 루나에스테의 .......에 채찍을 내려쳤다.

찰싹. 하고 조금은 기분 좋은 소리가 났....... 아니, 나는 무슨 생각을.


“.......어때?”


“흐음, 너무 약한 것 같은데요?”


“그, 그래?”


그럼 이번엔 조금 더 세게.


“에이, 너무 약해요. 더 세게요.”


“아, 알았어.”


이번엔 아까보다 조금 더 힘을 실어서.


“로제에스테님, 힘이 그거 밖에 안 되세요?”


방금. 분명 루나에스테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있었다.

어이가 없어 말을 잃고 말았다.

아니, 세게 때리는 게 아니라고 한 게 누군데.......


“실망이에요, 로제에스테님.”


.......그래, 어디 한 번 제대로 맞아봐라.

있는 대로 손을 뒤로 돌려 온 힘을 다해 채찍을 휘둘렀다.

쫘악 하고 귀를 찢는 경쾌한 소리.

그리고.......


“아흐응....... 조, 좋아요오!!”


엄청 아파하며 그만하라고 할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당황해버리고 말았다.


“하, 한 번 더요!”


반쯤 풀린 눈으로 얼굴을 붉히며 루나에스테는 내 바짓춤을 붙들고....... 에, 에라 모르겠다. 그래, 한 번 더!


“최고오오오!!!”


.

.

.


나스니악의 앞. 몸의 진이 다 빠진 듯 문을 열 힘도 없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론니악 공터에서 루나에스테에게 채찍질을 계속 하다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어갈 때쯤, 리아세스테와 눈이 마주쳤었다.

꽤나 놀란 듯 리아세스테는 손에 들고 있던 유리병을 떨어트려 깨트렸고

나는....... 어찌해야할 줄 몰라 하다가 달려 도망쳐 나오고 말았다.


“하아.”


바로 사과를 했어도 모자랄 판에 그런 모습을 보여준 대다가 도망쳐 버리기까지 하다니.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간 현기증이 나버릴 것 같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그대로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결국 발이 멈춘 곳이 나스니악의 앞.

나스미스테는 아마 날 계속 기다리고 있을테니....... 뭐라도 말을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아아, 아직 해도 지지 않았건만 당장이라도 누워 자버리고 싶은 기분이다.


“하아.”


오늘만 벌써 몇 번짼지 모를 한숨과 함께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내 손이 문에 닿기도 전에 저절로 열리는 문.


“아.”


나스미스테다.


“오래 걸리길래, 무슨 일이 있나 하고.......”


하는 걱정이 전해지는 목소리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고 말았다.


“책은?”


“책? 아아, 그 내가 생각했던 책이 없어서 말이야.”


어떻게든 둘러댔지만 왠지 가슴 속이 무언가 날카로운 것으로 콕콕 찔리는 듯 아프다.


“그래?”


금세 실망 가득한 표정으로 바뀌는 나스미스테.


“아, 하지만.......”


뭔가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루나에스테에게 배운 거라도 말해볼까 하고 얼떨결에 들고 왔던 채찍을 꺼내 보이려다가....... 그만뒀다.

이건 아무 말 안하는 것 만 못하다.


“미안. 별 다른 수확이 없었어.”


그리고 또 이어지는 침묵.

그 침묵이 지금 내게는 지옥의 후끈한 열기보다도 더 무겁게 머리위에 내려앉는다.

나한테만 맡겨달라고 그렇게까지 말하고 갔던 거니까.

분명 화낼 테지. 분명 화를 낼 거다. 이를 어쩐다.......


“고마워.”


그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어려운 일을 부탁해서 미안해. 나 때문에 고생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


그랬기에 당황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신경 써줘서 정말 고마워.”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나스미스테는 뒤로 돌아섰다.


“나, 나스미스테!”


하고 불렀을 때는 이미 문이 닫힌 후.

다시 열리지 않는다는 건....... 더 할 말이 없다는 뜻이겠지.


“.......”


그렇게 한 참을 말을 잃고 나스니악의 문 앞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고개를 좌우로 젓고는 몸을 돌렸다.

그래, 난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까.


“젠장.”


어쩔 수 없는 거다.

내 능력 밖의 일인걸.


“.......라고 포기할 수 있겠냐아아!!!”


저렇게 말하고 돌아서는데 어떻게 그냥 포기해!


젠장, 젠장할.

그래, 나도 사나이다.

오기로라도 찾아 보이겠다.

두고 봐. 두고 보라고 나스미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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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6화. 에스테 회의 - 2 18.04.19 389 0 23쪽
22 6화. 에스테 회의 - 1 18.04.19 395 0 12쪽
21 5화. 로제니악 - 3, After 18.04.18 390 1 23쪽
20 5화. 로제니악 - 2 18.04.18 38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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