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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ressor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 만들기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expressor
작품등록일 :
2018.04.09 19:06
최근연재일 :
2018.05.17 21:07
연재수 :
77 회
조회수 :
33,474
추천수 :
65
글자수 :
471,948

작성
18.04.26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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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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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8화. 악마의 눈물 - 5, After

DUMMY

“테르에스테에!!!!!”


테르에스테의 실험실 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무, 무슨 일이야. 갑자기!”


꽤나 화가 난 듯한 표정을 하고 달려온 테르에스테.

하지만 더 열 받는 건 나다!


“무슨 약을 준거야!”


“무슨 약이라니, 난 네가 만들어 달란 약을 만든 것 뿐인.......”


“로제에스테니임.......”


위에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감싸줬지만 자꾸만 내버리고 내 몸에 달라붙는 루나에스테.

덕분에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봐, 이거....... 어, 어떻게 된 거야!”


“헤에, 이건. 안 그래도 강했던 루나에스테님의 고통에 대한 집착에 인간의 성욕이 작용한 결과인가? 흥미로운데?”


“아, 아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고.......”


“으응....... 로제에스테님.”


루나에스테! 거기는 안 돼! 거기는!


“어, 어떻게 해줄 거야! 이거!”


“흐음, 그건 걱정 마.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돌아올 테니까. 그보다 역시 약이 조금 진했던 것 같네. 잠깐만 기다려봐. 금방 다시 만들어 줄 테니까.”


“자, 잠깐! 이것부터 어떻게 해주고.......”


.

.

.


지친다........ 온 몸에 힘이 다 빠져나간 느낌이다.

다행이도 오래지않아 루나에스테는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밖에 내버려두고 온 루나에스테의 옷을 가지로 혼자 몰래 내려갔다 온 건 비밀.


“이상하네요. 제가 왜 그랬을까요.”


다행이도. 정말 다행이도.

루나에스테는 내가 준 약이 원인이라고는 의심하지 않는 것 같다.


“아아, 그보다 저, 제니루나님의 수업에 가던 길이라. 다음에 또 봬요. 로제에스테님.”


자기 때문에 내가 고생한 건 아는지 상큼한 미소를 남기고 그렇게 테르에스테의 실험실을 나간 루나에스테의 뒷모습에 한숨이 다 나온다.

물론 원인을 제공한 건 나였지만.


“자자, 다시 완성!”


.......조금 쉴 수 있나 싶더니 벌써?


“이번엔 아까의 반으로 농도를 줄였으니 안전할 거야. 하지만 또 어떨지 모르니까 일단은 다른 악마에게 시험해보고 돌아와!”


라며 테르에스테는 또 다시 다짜고짜 내 손에 약을 쥐어주고 등을 떠밀어 연구실에서 몰아냈다.

이젠 뭔가 화도 안 나고 머리만 지끈지끈 아파올 뿐이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터벅터벅 내려와 로제니악을 빠져나왔다.


“하아.”


뭐, 농도를 줄였다니 루나에스테의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겠지.

그럼 원래 계획대로 리아세스테에게 실험을 부탁하러.......


“로제에스테?”


뭐, 뭐야 또.......


“나, 나스미스테?”


.

.

.


“오, 오랜만이네.......”


라고 할 정도로 오랜만에 만나는 건 아니지만.

뭔가 란세르님의 일이 있은 후부터 아무래도 나스미스테와는 조금 소원해진 듯해서 말이지.


“아, 으응.”


서로 어색해져 버렸달 까.

잘은 모르겠지만 이렇게 된 것도 왠지 전부 내가 잘못해서인 것 같아 나스미스테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 뿐이다.


“어디 가던 길이야?”


“오늘은 수업이 없는 날이라.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니.

나스미스테의 성격 상 그렇게 무의미하게 돌아다닐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딜 가려 했는지는 모르겠다만 거짓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보다 너야말로 요즘 계속 론니악에는 발길이 뜸하더니....... 무슨 일이야?”


딴 생각을 하다 갑작스런 기습질문에 당황하고 말았다.


“아, 아니 나도 그냥 라니악에 볼일이 있어서.......”


“라니악? 거긴 왜?”


“그 리아세스테에게 볼일이.......”


왠지 갑자기 나스미스테의 분위기가 바뀐 듯한 느낌이 들었다.


“흐~음. 내가 수업 받느라 바쁜 동안 둘 사이에 재밌는 일들이 많았나 보네.”


역시 느낌 탓이려나? 라고도 생각했지만 어조까지 확연히 달라진 걸 보면.......


“뭐,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무슨 일인데?”


“이, 이 약의 실험을 좀 부탁하려고.”


라며 손에 든 약병을 나스미스테에게 보여주었다.

아깐 나도 보지 못했는데 농도를 반으로 줄였다는 게 맞는지 안에 든 액체가 확실히 아까보다는 투명해졌다.


“무슨 약인데?”


라는 물음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 조금 갈등.

사실대로 말하는 건 당연히 안 될 말이고....... 으으, 모르겠다.


“그, 그냥 별거 아니고. 나도 테르에스테에게 약의 실험을 부탁받은 거 뿐이라서 말이지.......”


“그래? 그럼 누가해도 상관없다라는 거네?”


“응? 응, 그, 그런 거겠.....지?”


대화의 방향이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감도 잡히지를 않는다.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고.


“그러면........ 자.”


라며 내게 손을 내미는 나스미스테.

그 행동의 의미가 뭔지 잠시 고민.......


“내가 대신 해줄게. 그러면 라니악까지 안가도 되잖아?”


왜 또 일이 이런식으로.......


“괘, 괜찮겠어?”


“왜, 별거 아닌 약이라며.”


“그, 그래도.......”


라고 망설이는 와중에 나스미스테는 루나에스테 때와 같이 가볍게 낚아채가 단 숨에 쭈욱 들이켜 마셨다.


“으으, 맛이 뭐 이래........”


아, 더는 못보겠다. 하고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응? 뭐하는 거야, 로제에스테?”


.......응?

슬쩍 눈을 떠보니 나스미스테는 약을 마시기 전과 똑같은 그대로다.


“괘, 괜찮아? 뭐 이상한 거 못 느끼겠어?”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그, 그러니까. 갑자기 몸이 막 뜨겁다던지.......”


“너....... 대체 나한테 무슨 약을 먹인 거야.”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는 눈빛이 견딜 수가 없어 고개를 돌려 버렸다.

다짜고짜 뺐어가 먹은 건 너지 내가 먹인 건 절대 아니다만!


“아, 아니야. 아무 문제없다면 다행이고.”


“.......그래? 확실한 거야?”


더 의심받을 게 두려워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세차게 수번 구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뭐, 그러면 됐고. 그보다....... 로제니악에는 언제쯤 돌아갈 생각이야?”


갑자기 그건 또 왜 묻느냐 되물을까 하다가....... 일이 더 귀찮아질 것만 같아 그만뒀다.

음, 아무래도 너무 묽어 효과도 나지 않는 이 약을 다시 바꾸고 가야 할 테니까.......


“조금 걸릴 것 같은데?”


“그래? 그럼 밤에는 있는 거지?”


역시나 그 물어보는 의중은 모르겠다만. 일단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오랜만에 한 번 놀러갈게.”


“응, 언제든지.”


“그럼 난 갑자기 생각난 일이 있어서.......”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나스미스테는 뭐가 급한지 빠르게 뒤돌아선 종종걸음으로 론니악을 향해 뛰어갔다.


.

.

.


“테르에스테에-!!”


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뭐, 뭐야. 또 문제가 생긴 거야?”


“이번엔 너무 옅어서 아무 효과도 없었다고!”


“흐음,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럴 리가 없기는. 내 눈으로 똑똑히 봤구만.


“이거 생각보다 어려운데? 처음에는 너무 진했고 이번엔 너무 묽었다 이거지? 잠깐만 기다려봐.”


봐라, 그렇게 큰 소리를 치더니 결국은 몇 번을 다시 만드는 건지.


“자자, 이번에는 딱 처음 것과 두 번째 것의 중간! 이번엔 틀림없어! 완벽해!”


흥, 속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이제는 믿기지도 않는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조금 불안해서.......”


음? 의외로 순순히 인정을.......


“한번만. 한번만 더 실험을 부탁할게.”


역시....... 그럼 그렇지.

예상하고 있던 바라 화가 나지도, 당황스럽지도 않다.


.

.

.


몇 번을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건지.

이제는 로제니악을 나서는 것부터가 두렵다.

이번엔 또 누구를 만날련지.......

슬쩍 문 사이로 고개를 내밀어 주위에 게르틴님이나 다른 악마가 있는 지 확인.

이번엔 진짜 아무도 없다.


“.......”


조심스레 문을 열고 발을 내딛었다. 바로 또 ‘어? 로제에스테!’ 해 올 것만 같아 긴장이 되었으나....... 다행이도 조용하다.

분명 다행임에도 왠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더 불안한 이상한 기분이 든다.

뭐,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사실 일이 이렇게까지 되어버린 이상 아무나 붙들고 부탁해버려도 상관없을 것 같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만.

자꾸만 일이 꼬이는 게 내 악운이 대체 어디까지 갈지 오기같은 게 생겨버려 이번엔 어떻게라도 꼭 라니악까지 가서 리아세스테에게 부탁할거라 마음먹었다.

그래, 또 다른 일에 말려들기 전에 어서 움직이는 게.......


“아! 로제에스테님!”


젠장. 어쩐지 잘 나간다 싶더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그래, 이번엔 누구냐. 얼굴이나 한번 보자.


“세르에스테도 없이 무슨 일로 혼자.......”


리, 리아세스테?


.

.

.


“헤에,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그래도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건 역시 리아세스테 밖에 없다.


“그럼 저게 잠시 동안 인간의 감정을 갖게 만들어 준다는 그 약인가요?”


그리고 내가 인간이기에 생기는 속앓이를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있는 것도 리아세스테 뿐이고 말이다.


“눈물이라느니, 마음이 가벼워진다느니 하는 건 저도 잘 이해가 가지는 않습니다만........ 요는 제가 저 약을 마시는 게 로제에스테님께 도움이 된다는 말씀이시죠?”


아아, 그 일목요연한 설명에 내가 다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맞다는 의미로 두 번 고개를 끄덕끄덕.


“이리 주세요.”


라는 말에 약병을 리아세스테에게 넘겼다.

조금 망설이는 듯 하다가 다른 악마들이 그랬던 것과 같이 단숨에 들이키는 리아세스테.


“맛이 좀....... 오묘하네요.”


다 같은 악마들이라 그런 걸 까? 약을 마시자마자 하는 말들이 다 맛에 대한 평가부터라니.

아,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어때? 뭐 달라진 게 느껴지지 않아?”


“네? 아직은요.”


이상하다. 루나에스테 때는 바로 왔었는데....... 테르에스테 이 녀석 또 조정을 잘못한 거 아냐?


“잠깐만 기다려봐. 아무래도 테르에스테가 실수를.......”


“꺄, 꺄악!”


.......꺄악?


“보, 보지 마세요!”


라는 비명 소리에 놀라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만.......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 살짝 손가락 사이를 벌려보니 얼굴이 새빨개진 리아세스테가 바닥에 주저앉아 어쩔 줄 몰라 하며 이리저리 팔을 움직여 몸을 가리려 애를 쓰고 있었다.


“리, 리아세스테?”


“어, 어딜 보는 거예요!”


그런 옷을 원래 입고 있던 게 누군데!

라고 따져들고 싶었지만....... 빽! 하고 리아세스테가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뒤로 돌아설 뿐이었다.


“내, 내가 테르에스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올 테니까.......”


“절 혼자 두고 어딜 가신다는 거예요!”


라고 또 빽하고 소리를 지르니 결국 그대로 움직이지도 돌아서지도 빼도 박도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아아, 일이 어쩌다 자꾸만 이런 식으로....... 아침이 되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건만 벌써부터 피곤해 그냥 베스파로제님의 성으로 돌아가 잠이나 자 버리고 싶은 생각만이 가득 할 뿐이다.


“.......로제에스테님?”


“아아, 안 돌아볼 테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게 아니라.......”


응? 그러고 보니 뭔가 목소리가 차분해진 게.......

마른 침을 한번 삼키고 눈을 딱 감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살짝 눈을 떠보니.......


“이제 괜찮아 진거야?”


“네.......”


라고 말하는 리아세스테는 방금 전까지의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그보다 평소에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던 리아세스테의 옷이 자꾸만 신경이 쓰여 죽겠다.


“저, 도움이 되기는 한 건가요?”


“아, 으응.”


이 정도 지속시간.

조금 너무 짧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살짝 들기는 했지만 더 긴 것도 꺼려지기는 마찬가지니까.


“그, 그럼 저는 이만.......”


리사세스테는 그대로 휙 뒤로 돌아 달려가 버렸다.

그, 그렇게 부끄러웠나?

왠지 미안한 게 리아세스테에게는 빚을 졌다.

다음에 베스파로제님의 성에 놀러오면 뭐라도 대접해 줘야지.


.

.

.


“자, 여기.”


그렇게 아침부터.

아니 어제 밤부터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가며 만들어낸 약병을 보자니....... 감개가 다 무량하다.


“고마워, 테르에스테.”


뭐, 여러 가지 일이 있었으나.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


“흠, 그건 됐고 빨리 나가 줘. 나도 좀 쉬고 싶다고.”


라 해오기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군말 없이 방을 빠져 나왔다.

이제 다 끝났다. 가서 세르에스테에게 약을 먹이기만 하면 된다!



라는 건 큰 착각 이었다.



“........”


세르에스테는 또 다시 고개를 가로저어 올 뿐이다.


“그, 그러니까.......”


란세르님께서 절대 모르는 약은 먹지 말라 하셨다며 세르에스테가 약을 먹길 거부할 거라는 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렇다고 이걸 사실대로 말해버릴 수도 없고....... 한계까지 내몰린 내 참을성도 이제 슬슬 끝이 보이는 듯하다.


“정말....... 어떻게 해도 안 먹을 거야?”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끄덕임.

말은 안하고 있지만....... 사실 내가 세르에스테를 버려두고 나간 것에 앙심을 품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안 그러면 이렇게까지 날 괴롭힐 이유가 있겠는가!

아아, 이렇게까지 돼버린 이상 강제로 입을 열어서라도 먹일까라는 생각이 들 때 쯤, 란세르님이라면 이럴 때 어떡할까 생각이 들며 묘안이 떠올랐다.


“아, 배고프네.”


라고 혼잣말을 슬쩍 흘린 뒤 잽싸게 뒤로 돌아 왼팔을 살짝 올려들고 조심스레 그 밑으로 심상의 덩어리를 뭉쳤다.

실수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여........ 배웠던 내용들을 속으로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조심스럽게.


“.......됐다.”


코끝을 찌르는 향긋한 냄새.

방금 구운 것 같이 올라오는 이 따끈따끈한 열기.

그때와 같은, 아니 그때보다 더 높은 완성도의 호두파이가 눈앞에 있다.

좋아, 그럼 세르에스테가 관심을 갖기 전에 몰래 약병을 열고 파이 위로 천천히, 그리고 골고루 흘려 충분히 흡수 시키고.......


“어때, 세르에스테? 한 조각 먹을래?”


반응은 있었다.

하지만 바로 달려들 거라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다르게 의외로 망설이고 있다.

혹시 눈치 챈 건가?


“저번에 먹은 것보다 훨씬 맛있을 걸? 이 호두파이.”


라며 파이를 들고 세르에스테에게 다가가 눈앞에서 살살 흔들어 보였다. 잡아라, 잡아!

하루에 무리해 세판 씩이나 먹었다가 탈이나 일주일동안 날 고생시켰던 우리 마을의 명물인 어머니의 호두파이라고!


“.......”


됐다. 세르에스테가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마음이 바뀌기 전에 바로 뒤로 빠졌다.

조금 파이를 살펴보던 세르에스테는....... 그대로 한입 베어 물었다.

그리곤 입안에서 오물오물. 신중을 가해 끝까지 삼키는 것까지 보고.......


“아, 세르에스테.”


사실 파이에 섞여 효과가 나타날지는 의문이다만


“혹시 기억나? 그 때.”


아직 효과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란세르님의 수업시간에 말이야.”


하지만.......


“그때 내가 만든 파이를 다 함께 나눠 먹었었잖아. 기억나?”


고개를 끄덕이며 파이를 한입 더 베어 무는 세르에스테.


“그 때 네가 웃는 걸 처음으로 봤었는데.......”


생각해 둔 대사가 아직 남아있지만 더 이을 수 없었다.


“.......”


어쩌면.


이 세계에서 내가 처음으로 보는 걸지도 모르는 악마의 눈물은


아침이슬처럼 투명하고 맑아


소리 없이 떨어져 내려 그 손을 적셨다.




8화 – 악마의 눈물. 끝.



==================


세르니악의 서재.

오랜만에 돌아온 평화를 나름 온몸으로 만끽하며 잠시 책을 덮고 벽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 무리에 몸을 맡겼다.


“하~암.”


지옥에서 따스함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그래도 기분이라는 게 있으니까.

크게 기지개를 한 번 켰다.

책을 보며 기지개를 킬 수 있다 라는 일에 이렇게 까지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건 다 내 계획이 잘 들어맞은 덕분일 것이다.


“세르에스테. 그 쪽에 내가 저번에 보다 꽂아놓은 책 있잖아. 그것 좀 가져다줄래?”


“.......”


당연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깔끔한 무시다.

물론 무시당한 건 조금 기분이 상하기는 하지만 이게 세르에스테의 원래 모습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오고 만다.

그 날 이후, 세르에스테는 세르니악의 자신이 쓰던 방은 괜찮다며 베스파로제님의 성을 나가 지내고 있다.

한때는 무지 귀찮다고 느껴졌던 세르에스테도 막상 그렇게 훅 하니 가버리고 나니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건 사실.


물론 그렇다고 내 오른팔을 껴안고 있는 게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다만.......

이제는 가끔 리아세스테와 베스파로제님의 성으로 놀러올 때로 한정되어 있으니까.

그 정도는 기분 좋게 넘어갈 수 있다. 암, 나도 그 정도 그릇은 된다.


“로, 로제에스테님?”


“응? 무슨 일이야?”


항상 보던 책을 안아들고 수줍은 표정으로 내 앞에 와 선 리아세스테.

리아세스테는 원래도 조금 다소곳하긴 했지만....... 느낌탓일까나, 그날 약을 먹었던 이후로 뭔가 확실히 수줍음이 더 늘은 것 같다.


“저, 책을 다 읽었는데........”


그러고 보니 리아세스테, 내가 처음 같이 서재에 가자고 한 날부터 계속 저 두꺼운 책 한 권만을 계속 읽고 있었지. 드디어 다 읽은 건가?


“아무래도 읽는 것만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있어서....... 조금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이해가 안 가는 거라니.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약의 실험을 도와줬던 일도 있고 하니까, 뭐 책에 대한 거라면 어려운 일도 아닐 테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수락의 의미를 전했다.


“아, 감사합니다!”


라며 리아세스테는 내 옆에 와 앉았다.

그보다, 저 책. 대체 무슨 책이지?

지옥이나 악마에 관한 거라면 나도 잘 아는 게 없는데.......


“여기 이 그림 말이에요.......”


하고 리아세스테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남자와 여자가 나체로 뒤엉켜있는 그림이.......?


“자, 잠깐만!”


하고 슬쩍 책 표지를 들어보니 ‘밤의 향락을 즐기는 100가지 비법.’ 이라고 당당하게 적혀있다.


“.......”


그럼 설마 도와달라는 게.......


“일단 로제에스테님이 이렇게 누우시고.......”


라면서 리아세스테가 내 어깨를 밀치는 바람에 그대로 뒤로 벌렁 드러눕고 말았다.


“리, 리아세스테? 자, 잠깐만.......”


“네? 도와주신다고 하셨잖아요. 혹시....... 싫어지신건가요?”


라고 말하는데 거기서 어떻게 싫다고 말해!


“아, 아냐.”


아아, 이제 나도 모르겠다. 눈을 감고 몸에 힘을 빼버렸다.

다른 생각을 하자. 다른 생각을.......

바, 방금 리아세스테가 내 위로 올라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착각일거다. 착각일게 분명하다.

다른 생각을 하자, 다른 생각을.......


“하하, 재밌어 보이네요, 그거.”


“우, 우와아아아아악!!”


“꺅!”


갑자기 들려온 낯선, 그러나 조금은 낯익은 목소리.

깜짝 놀라 얼굴이 빨개져 벌떡 몸을 일으켰고, 정말 내 위에 올라타 있던 레아세스테는 그 바람에 중심을 잃고 옆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아, 리아세스테. 미안.


“루, 루즈에스테? 언제.......”


노란 곱슬머리에 새하얀 천옷.

병약한 소년같은 악마.

루즈에스테가 분명하다.

그, 그보다 전혀 들어오는 걸 눈치 채질 못했는데.


“전해드릴 말씀이 있어서 고민하다가 마침 로제에스테님의 마기가 느껴지기에 실례를 무릅쓰고 공간이동을 해 왔습니다. 놀라셨다면 사과드리죠.”


허리까지 숙여 사과를 해오니 이건 뭐 다른 말을 할 수가 없다.

일단 리아세스테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대로 몸을 일으켜 옷을 좀 바로잡고.......


“크, 크흠. 전할 말이라니?”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계 체험이 무기한 미뤄졌다는 것이고.......”


아아, 그거라면 말은 없었어도 대충 예상하고 있었다.

론니악이 이 모양이 났는데 그런 걸 겨를이 없겠지.


“다른 하나는 안제루즈님의 다음 수업일이 정해졌다는 겁니다.”


수.......업? 하고 무슨 말이냐는 눈빛으로 바라보니 루즈에스테는 작게 미소지어 보여 대답했다.


“아.”


기억났다. 에스테 회의에서 분명 에네스님이.......


“말씀을 드렸더니 흔쾌히 수락하시더군요. 아마 다음 수업 내용은.......”



8화 – After 끝.


9화 – 죄와 유체. 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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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11화. 인간계 체험 上 - 2 18.05.01 356 0 11쪽
45 11화. 인간계 체험 上 - 1 18.05.01 359 0 13쪽
44 10화. 2차 각성 - 4, After 18.04.30 383 0 19쪽
43 10화. 2차 각성 - 3 18.04.30 365 0 19쪽
42 10화. 2차 각성 - 2 18.04.29 361 0 20쪽
41 10화. 2차 각성 - 1 18.04.29 366 0 17쪽
40 9화. 죄와 유체 - 5, After 18.04.28 362 1 19쪽
39 9화. 죄와 유체 - 4 18.04.28 364 0 10쪽
38 9화. 죄와 유체 - 3 18.04.27 370 0 16쪽
37 9화. 죄와 유체 - 2 18.04.27 369 0 16쪽
36 9화. 죄와 유체 - 1 18.04.26 366 0 11쪽
» 8화. 악마의 눈물 - 5, After 18.04.26 369 0 21쪽
34 8화. 악마의 눈물 - 4 18.04.25 368 0 17쪽
33 8화. 악마의 눈물 - 3 18.04.25 367 0 17쪽
32 8화. 악마의 눈물 - 2 18.04.24 377 0 21쪽
31 8화. 악마의 눈물 - 1 18.04.24 368 0 7쪽
30 7화. 서열전쟁 - 6, After 18.04.23 367 1 14쪽
29 7화. 서열전쟁 - 5 18.04.23 371 0 8쪽
28 7화. 서열전쟁 - 4 18.04.22 372 0 9쪽
27 7화. 서열전쟁 - 3 18.04.22 366 0 11쪽
26 7화. 서열전쟁 - 2 18.04.21 359 0 17쪽
25 7화. 서열전쟁 - 1 18.04.21 372 0 10쪽
24 6화. 에스테 회의 - 3, After 18.04.20 383 0 13쪽
23 6화. 에스테 회의 - 2 18.04.19 389 0 23쪽
22 6화. 에스테 회의 - 1 18.04.19 396 0 12쪽
21 5화. 로제니악 - 3, After 18.04.18 390 1 23쪽
20 5화. 로제니악 - 2 18.04.18 38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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