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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ressor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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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ressor
작품등록일 :
2018.04.09 19:06
최근연재일 :
2018.05.17 21:07
연재수 :
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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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44
추천수 :
65
글자수 :
471,948

작성
18.04.28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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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9화. 죄와 유체 - 4

DUMMY

그렇게 여러 가지 이야기만으로 슬슬 지쳐갈 때 쯤, 둘은 내일 또 보자는 말과 함께 돌아갔다.

꽤나 오래 시끌벅적했기 때문일까.

그 후에 남은 침묵이 이상할 정도로 어색하다.

게다가....... 그렇게 맛있다고 먹더니 결국 파이를 두 조각이나 남겼다.


“.......”


왠지 그릇 위에 남겨진 파이 두 조각이 슬플 정도로 애처로워 보여 가슴이 시리다.

음식을 남기지 말라고 하시던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간달 까.

문제는 나도 배가 불러 더 먹기 힘들다는 건데, 역시 버려야겠지.


“에휴, 그래도 역시 버리려니 아깝네.......”


하고 한숨을 쉬며 그릇을 들고 일어서다 마주친 잔느의 두 눈.

아, 그러고 보니 둘과 얘기하느라 잔느의 존재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


뭔가를 갈망하는 듯 그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다.


“.......줄까?”


대답은 안하지만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는 게....... 너무나도 먹고 싶지만 자존심 때문에 솔직하게 대답할 수 없다라는 마음이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왠지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져 말없이 다가가 그릇을 내려놓았다.


“뭐, 뭐요! 버리려니 아깝다 해서 도와주는 거니깐!”


하며 묻지도 않은 핑계를 대며 잽싸게 손을 뻗어 파이를 한 조각 주워 바로 한입 베어 무는 잔느.


“정말. 아무리 무식해도 정도가 있지. 레이디를 대접하는데 차 한 잔 내올 줄 모르는 건가요?”


전 같았으면 저 무식하다는 말에 화가 났을지도 모르나....... 얼굴은 새 빨개져가지고 오물오물 툴툴대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아아, 알 것 같다. 내가 잔느에게 매섭게 대하기 힘든 이유를.

닮았다. 물론 머리색이라든지는 다르지만....... 분위기랄까 전반적인 느낌이 인간계에 두고 온 내 여동생과 똑 닮았다.


“차 같이 비싼 건 입에도 대 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하고 전에 구현화해 만들어 두었던 컵에 심상을 뭉쳐 물을 만들고 오른손으로 쥐어 조금 차갑게 식힌 후 내밀었다.


“이래서 하층민들은 어쩔 수 없다니까요.”


라면서도 컵을 받아들고 그대로 가져가 한입 들이키고선 후, 하고 숨을 몰아쉬는 모습이 기억 속 여동생의 모습과 판박이다.


“그, 그래도 하층민 치고는 꽤나 맛있는 파이를 만들 줄 아는 군요.”


“하하, 맛있게 먹었다니 고맙네.”


“하층민 치고는 이라 구요! 하층민!”


바로 또 얼굴이 눈에 뛰게 붉어지며 피- 하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모습도 내 동생과 똑 닮았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앞으로 이 성에서 하인으로 일하게 될 텐데 계속 그런 무식이니 하층민이니 같은 말을 해도 되겠어?”


하며 작게 미소지어 보였다. 리아세스테와 세르에스테가 가기 전 까지만 해도 잔느의 처분을 어떻게 하는 게 좋으려나 계속 고민이 되었는데....... 지금은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선 이미 어떻게 할지 정해버린 듯싶다.


“누, 누가요! 이, 이런 옷을 입혀 놓는다고 왕녀인 제가 농노의 하인 노릇을 할 것 같으신가요?”


“그래? 그럼 하는 수 없지. 네가 원래 있던 사육장으로 돌려보내는 수밖에.”


라는 말에 또 금방 눈가에 눈물이 맺혀서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주저앉는다.


“노, 농담이죠?”


“푸, 푸훕....... 푸하하하하!!”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 결국 잔느를 놀리는 게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한바탕 크게 웃고 말았다.


“뭐, 뭔가요! 지금 저를 모욕하시는 건가요?”


“푸흡. 아냐, 아냐. 난 사실 지옥에 오는 사람들은 다들 말도 못하게 악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널 보니 아무래도 그런건 아닌 것 같아서 말이지. 크크”


“바보 취급 하시는 건가요!”


“칭찬이라고, 칭찬. 그보다 너. 대체 무슨 일을 저질러서 지옥에 온 거야?”


아무래도 한 번 터진 웃음이 진정되질 않아 한참을 고생.

겨우 진정되나 싶어 사과라도 하려 고개를 들었더니.......


“저도....... 몰라요.”


잔느는 당장이라도 울어버릴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

.

.


많은 죄를 지은 악인은 지옥에 가고, 선한 일을 많이 한 선인은 천국에 간다.

어렸을 때 동네 어른들에게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이런 말도 있었다.

태양신 헤레스님을 따르는 신도들은 천국에 가지만 다른 신을 섬기는 이단들은 모두 지옥에 간다.

이건 부모님이 공금을 내기 위해 마을 근처 성전에 들렸을 때 사제님들께 들었던 이야기.


당연한 얘기로만 생각했지 그에 의심을 품은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는.


“.......”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며 이미 한차례 눈물을 쏟아낸 탓일까, 잔느는 조금은 멍한 눈으로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잃었다.

그 사이를 빌어 나도 잠시 쉴 겸 허리를 피고 몸을 좌우로 한 번씩 돌려 당겼다.


잔느의 이야기는 한 남자와의 추억 얘기로 시작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아렌.

나는 그제서야 아렌이라는 이름을 어디서 봤는지 기억해냈는데....... 답은 서재에서 읽었던 책 중 하나인 대륙전기에서였다.

스스로 폭군의 목을 쳐내고는 자신도 그 책을 물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고대왕국 레자르의 영웅.


역사서에 기록된 내용은 단 그 두 줄 뿐이어서 전혀 몰랐지만 잔느의 말에 따르면 그 영웅은 본디 폭군의 근위기사였다고 한다.

그리고 잔느와는 어렸을 때부터 곧 잘 놀아주던 친한 관계이기도 하였고 말이다.


공녀라는, 그것도 폭군의 딸이라는 그녀의 입장때문에 시녀들도 눈치를 보고 피해 잔느는 항상 혼자였다고 한다.

그런 잔느에게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건네고 같이 놀아주던 아렌은 둘도 없는 친구였으며 마치 오빠 같은 존재였다고 잔느는 살짝 미소를 띠우며 얘기했다.


하지만, 대륙전기에 쓰여 있던 대로 그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던 모양이다.

잔느가 7살이 되던 해.

그 근위기사는 소수의 반란조직을 도합해 잔느의 아버지를 살해했다.

잔느는,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아버지의 죽음보다 아렌이 그런 일을 벌였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고 한다.

그 뒤는 내가 알고 있는 내용과 동일.

아렌은 국왕 시해의 죄를 물어 공개처형을 당하였다.


선왕의 억압과 공포라는 힘으로 유지되어왔던 레자르의 체제는 말 그대로 무너져 내리기 일보직전.

아렌을 처형한 것으로 가까스로 왕권의 기반을 붙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안정을 되찾기엔 이미 무리인 그 시국에.

잔느는 아무것도 모르는 7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그 후의 일은....... 정치에 무지한 나라도 눈에 보이 듯 쉬이 알 수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여왕을 필두로 국정을 마음대로 주물럭대는 귀족들.

잔느는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왕정파 귀족들의 말에 따라 10년 가까이 수많은 반대파 귀족들과 국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귀족들에게 버림받아 성 밖으로 쫓겨나.......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외지의 작은 별장에서 홀로 쓸쓸히 살아가다 병을 앓고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반드시 구하러 돌아오겠다.’ 라고 쓰인 아렌의 편지만을 손에 꼭 붙들어 쥔 채.


“물 한잔 더 줄까?”


하고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


이렇게까지 직접 들으니 실감이 나는 것이지.

사실 이 모든 일은 감히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까마득한 1500년도 더 된 얘기다.

하지만.......


“눈을 뜨니 지옥이었어요. 수십, 수백 번을 유황불에 타 재가 되기도 했고. 악마들에게 붙들려 몸을 이리저리 찢기기도 수천 번.”


이해가 가질 않는다.


“잠시도 쉬지 못하고 항상 옆에 있어온 고통에 머리가 이상해지기라도 했던 걸까요? 처음 그 쪽을 봤을 때....... 긴 악몽에서 이제 막 깨어난 줄 착각했었다니까요.”


하고 작게 소리 내어 웃는 잔느.


“아니면....... 역시 그 쪽이 아렌을 쏙 빼닮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구요. 후후.”


더는. 더는 무리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제가 그냥 바보여서 그랬던 걸지도 모르죠.”


“그쪽이 아니라....... 여기선 로제에스테라고 불리고 있으니까. 혹여라도 말실수 안하게 조심해.”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몸을 일으켰다.


“잠시 나갔다 올 테니까.”


납득할 수 없다.

잔느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지독히도 비극적이라 동정심이라도 생긴 걸 까?

알 수 없다.

허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지옥에서 천년이 넘도록 고통을 겪어야 할 정도로 그녀가 큰 죄를 진건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데 가지 말고 여기 있어.”


머릿속이 복잡해 참질 못하고 거친 손동작으로 창문을 열어젖혔다.


.

.

.


베스파로제님의 성을 빠져나온 그 길로 바로 세르니악을 향해 발을 움직였다.

평소와 같았으면 게르틴님이 계신지 안계신지 주위를 살피고 여러 가지로 신경을 쓰며 움직였겠지만,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일까? 단지 짜증만이 잔뜩 쌓인 채 걸음을 계속 할 뿐이다.


그렇게 도착한 세르니악.

세르에스테에게는 미안하지만....... 인사나 방문한 티는 모두 생략하고 그대로 2층으로 올라가 서재의 문을 열었다.

이 수많은 책들 가운데 분명 한 권쯤은 있을 것이다.

인간이 죽어 지옥에 오게 되는 조건에 대한 것이.


“마법의 기초와 이론. 예의와 범절. 대륙전력. 항해의 기초.......”


책들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맨 왼쪽 책장부터 주욱 훑어보고 있지만....... 3분지 1정도는 지나왔음에도 찾는 내용과 연관된 책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인간과 가정. 생각의 길. 신과....... 인간?”


무의식 적으로 이거다. 라고 속으로 외치며 거친 손길로 그 책을 뽑아 들었다.

신과 인간. 이라고 황금색 글씨로 쓰여 있고, 그 밑으로 작게 해그놀리아라고 쓰여 있다.

반쯤은 헤어진 낡은 겉표지를 난폭하게 넘겨들고 그 목차에 시선을 박아 넣었다.


1장. 신 그리고 창고.


2장. 신 그리고 믿음.


3장. 신 그리고 축복.


4장. 신 그리고 죄.


있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연관 있어 보이는 내용이 분명히 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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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11화. 인간계 체험 上 - 2 18.05.01 356 0 11쪽
45 11화. 인간계 체험 上 - 1 18.05.01 359 0 13쪽
44 10화. 2차 각성 - 4, After 18.04.30 383 0 19쪽
43 10화. 2차 각성 - 3 18.04.30 364 0 19쪽
42 10화. 2차 각성 - 2 18.04.29 360 0 20쪽
41 10화. 2차 각성 - 1 18.04.29 366 0 17쪽
40 9화. 죄와 유체 - 5, After 18.04.28 362 1 19쪽
» 9화. 죄와 유체 - 4 18.04.28 364 0 10쪽
38 9화. 죄와 유체 - 3 18.04.27 370 0 16쪽
37 9화. 죄와 유체 - 2 18.04.27 368 0 16쪽
36 9화. 죄와 유체 - 1 18.04.26 365 0 11쪽
35 8화. 악마의 눈물 - 5, After 18.04.26 368 0 21쪽
34 8화. 악마의 눈물 - 4 18.04.25 368 0 17쪽
33 8화. 악마의 눈물 - 3 18.04.25 366 0 17쪽
32 8화. 악마의 눈물 - 2 18.04.24 376 0 21쪽
31 8화. 악마의 눈물 - 1 18.04.24 367 0 7쪽
30 7화. 서열전쟁 - 6, After 18.04.23 366 1 14쪽
29 7화. 서열전쟁 - 5 18.04.23 371 0 8쪽
28 7화. 서열전쟁 - 4 18.04.22 372 0 9쪽
27 7화. 서열전쟁 - 3 18.04.22 366 0 11쪽
26 7화. 서열전쟁 - 2 18.04.21 358 0 17쪽
25 7화. 서열전쟁 - 1 18.04.21 371 0 10쪽
24 6화. 에스테 회의 - 3, After 18.04.20 382 0 13쪽
23 6화. 에스테 회의 - 2 18.04.19 389 0 23쪽
22 6화. 에스테 회의 - 1 18.04.19 395 0 12쪽
21 5화. 로제니악 - 3, After 18.04.18 390 1 23쪽
20 5화. 로제니악 - 2 18.04.18 38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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