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expressor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 만들기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expressor
작품등록일 :
2018.04.09 19:06
최근연재일 :
2018.05.17 21:07
연재수 :
77 회
조회수 :
33,465
추천수 :
65
글자수 :
471,948

작성
18.04.24 18:00
조회
376
추천
0
글자
21쪽

8화. 악마의 눈물 - 2

DUMMY

“무슨 말이야, 세르에스테가 안 보인다니.”


가슴에 찔리는 구석이 있긴 하지만 애써 모르는 척 되물었다.


“몰라, 난 당연히 그 때 이후로 계속 너랑 있는 줄 알았는데.......”


나스미스테는 세르에스테와 나 사이에 있던 일을 리아세스테에게 들었다고 한다.


“어디 있는지 짐작 가는 데 없어?”


라고 물어봐도 말이지. 고개를 가로저어 대답했다.


“그래, 그럼.”


하고 덤덤한 표정으로 다시 창문을 열고 나가버리는 나스미스테.

한동안 그렇게 서 있다가 다시 자리에 드러누웠으나....... 이미 마음속은 걱정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잠시 또 그렇게 몸을 뒤척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스미스테가 리아세스테에게 그런 말을 듣고도 여기까지 온 거라면....... 나름 찾아 볼 만큼은 찾아봤다는 것 같은데.

어디어디를 돌아봤는지는 몰라도 내 마음속에 짐작 가는 곳은 한 곳 뿐이다.

그곳만을 생각하며 창문을 넘었다.


“으, 으악!”


나서자마자 무언가에 부딪혀 뒤로 넘어져 버렸다.

동시에 들려온 낯익은 짧은 비명소리.


“뭐, 뭐야.......”


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앞에 나와 같은 자세로 넘어져 있는 꼬마.


“아, 아니 그게.......”


.......테르에스테?


“아, 아무 것도 아냐!”


하고 달려 도망가는 테르에스테.

나는 당황스러워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 나와 부딪혔다는 건....... 내 방에 오려고 한 거 라고 밖에는 생각이 안드는데.......

테르에스테와는 그때 이상한 약을 먹고 기절해버린 이후로 마주치더라도 말 한번 나눠본 적이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인건지.......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일단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니까.

뭐, 급한 거라면 다시 찾아오던지 하겠지 뭐.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며 로제니악을 빠져나왔다.

론니악의 광경은 아직도 장관이다.

나름 게르틴님이 팔을 걷어붙이고 전력으로 복구를 시작해 가운데의 론니악탑은 많이 복구가 되었으나, 탑이 무너지며 무너트린 주변의 수계자들의 탑은 여전히 복구가 안 된 채 그대로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래도 로제니악은 멀쩡하다는 것. 라니악도 피해를 면할 수 있었고, 나스니악은 안타깝게도 란세르님의 몸이 쓰러질 때 그 밑에 깔려 박살이 났다고 한다.

그래서 스레나스님의 성에서 지낸다는데....... 덕분에 한동안 나스미스테를 보지 못한 거고 말이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며 걷던 내 발이 멈춘 곳은....... 세르니악의 앞.

세르니악도 그 피해에서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다.

3층부터 위가 무너져 없는 그 모습에 역시 아니겠지 하고 돌아설까도 생각했으나 그런 망설임과는 다르게 이미 난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저기요.”


라고 해봤자 대답이 돌아 올리는 만무.

바로 약 일주일 전이건만 그 안의 모습은 바닥에 나뒹구는 횃대, 한쪽의 천장이 무너지며 쌓인 돌덩이, 바닥에 뿌옇게 내리깔린 흙먼지로 인해 이전 모습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점점 마음속에 그래도 만약에.......라는 가능성의 수치가 점점 낮아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역시....... 난 걸음을 계속해 무너질랑 말랑한 아슬아슬한 계단을 올라 2층에 도달했다.


눈앞에 보이는 서재의 문.

그 문을 바라보니 결투 전날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한 방울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치 이 문을 열면......... 란세르님이 계실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문고리를 돌렸다.

삐걱 거리는 불안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

서재 가운데의 천장이 무너져 란세르님이 앉아 계시던 책상은 그 돌에 깔려 완전히 박살이 나있다.

하지만 다행이도 책장들은 벽에 붙어있어선지 책 몇 개가 쏟아져 나온 것 말고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은 듯하다.

밖의 복도와 마찬가지로 바닥에 뿌옇게 깔린 먼지.

그리고 세르에스테는 그 사이에 누워있었다.


“세르에스테!”


여전히 알몸이라는 게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마치 죽은 듯 누워있는 그 모습에 너무나도 놀라 그런 건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달려가 안아들자 먼지가 물씬 일며 기침을 몇 번 하는 모습에 일단은 안심했다.


“왜 여기서 이러고.......”


라는 말에 대답 없이 눈을 떠 마주봄으로 대답해오는 세르에스테.


“갈 곳이.......”


들릴 듯 말 듯 속삭인 듯 흘러나온 한 마디.

그 말에 세르에스테와 헤어진 그 날 이후로 안개 끼듯 불투명했던 머릿속이 단숨에 말끔해졌다.

왜 이제야 눈치 챈 걸까.


“.......가자.”


뭐라 더 말을 하려했지만 목이 매여 말이 나오질 않는다.

결국 입을 다물고는 아무래도 걷기는 힘들어 보이는 세르에스테를 그대로 안아들고 몸을 일으켰다.


“아.......”


세르에스테가 몸을 바둥거리는 탓에 놓칠 뻔하기를 수번.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기위해 세르에스테가 손을 뻗은 곳을 돌아보니 방금 전까지 세르에스테가 누워있던 바닥에 놓여있던 파란색의 편지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


잠시 망설였으나, 그쪽으로 몇 걸음 다가가 잠시 다리를 굽혀 편지봉투를 주워들었다.

내가 뜯었던 그 때와 달라진 것 없는 편지봉투였지만....... 세르에스테를 부탁한다는 편지의 내용이 천추의 무게처럼 내려앉아 쉬이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세르에스테에게 넘겨주었다.


로제니악으로 돌아가는 길, 세르에스테가 내 오른 손에 반지를 끼운 건....... 그냥 모른 척 하고 넘어갔다.

아니, 모른 척 하는 수밖에 없었다.


.

.

.


그렇게 돌아온 길 그대로 베스파로제님을 찾아가 잠시 동안이라도 세르에스테를 이곳에 두면 안 되냐고 말씀드렸고, 베스파로제님은 의외로 순순히 마음대로 하라 허락해 주셨다.

그 말씀에 조금이나마 무거웠던 어깨가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나름 심상을 구현해 세르에스테의 옷도 최대한 란세르님의 것과 비슷하게 만들고 내 자리보다 한층 위의 계단에 이불도 만들어 놓고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써 방을 꾸며주었으나.......


“으응.......”


하고 오른팔을 꼭 껴안은 그대로 배시시 눈을 뜬 세르에스테.

그 자세 그대로 몸을 일으켜 작게 하품을 한번.

세르에스테가 일어나는 바람에 나도 억지로 오른팔을 잡혀 끌려 반강제로 기상했다.

부스스했던 세르에스테의 하얀 머리는 세르에스테의 작은 손짓 한 번에 언제나처럼 찰랑거리게 바뀌었다.

이 일련의 과정동안 내 오른팔은 세르에스테에게 붙들려 완전히 밀착된 상태.


그 이유를 물어본 대답은 단순했다.

이 오른팔에서 나오는 냉기가 좋다. 라는 것.

사실 이 오른팔의 덕을 보는 건 세르에스테뿐만이 아니기에 무어라 더 말을 할 수 없었다.

예를 들면 이제 더 이상 베스파로제님의 마법으로 지옥의 열기를 막을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 그리고 아침에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할 수 있다는 것 등 한두 가지가 아니라 차마 더는 말을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사유로 세르에스테의 방을 만들어주겠다고 한 나의 모든 행동은 다 헛짓거리가 되어버렸고 말이다.


뭐, 이건 이거대로 항상 세르에스테가 옆에 팔을 끼고 붙어있으니 행동에 제약이 생겨 조금 피곤하다는 것만 빼면 그렇게 못 견딜 정도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금은 좋기도 하고....... 아아, 어쨌든 그보다 문제는.


“로제에스테, 놀러 왔....... 아앗! 또!”


아아, 올게 왔다.


“또 그렇게 둘이 꼬옥 붙어가지고......”


볼을 잔뜩 부풀리며 내 왼쪽으로 달려와 왼팔을 끼고 붙는 리아세스테.

지금 내 생활을 방해하는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거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리아세스테가 세르에스테만 보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

참고로 그나마 리아세스테는 장난기라도 껴 있으니 다행이지....... 저번에 나스미스테가 왔을 때는 정색을 하며 ‘실망이야’ 라고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돌아가 버려, 이유도 모른 채 정신이 피폭됐던 걸 생각하면.......


“로제에스테- 오늘은 뭐할 거야? 수업도 없고 심심해 죽겠다구우.”


아아, 이제 막 일어난 참인데 벌써부터 피로가.......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건 이제 이런 상황을 타개할 방책을 알고 있다는 것.


“응, 란세르님의 서재에 가려고.”


처음에는 가는 게 꺼려졌으나, 역시나 난 책이 너무나도 좋아서 말이다.

한번 두 번 가던 것이 이제는 매일같이 서재에 가 시간을 때우는 게 주 일과가 되었다.

무엇보다 일단 론니악으로 넘어가면 리아세스테는 평소와 같은 천사 같은 성격으로 돌아가고, 책을 읽으면 시간도 잘 가니까.......


“그럼 나 먼저.......”


탁! 하고 양손을 조금 거칠게 잡아 빼고 창문을 열어 재꼈다.


“아.......”


그렇게 아쉬운 얼굴을 해보여도 어쩔 수 없다.

양팔을 붙들려서야 창문을 빠져나가는 것만으로도 큰일이니까.

그보다 오늘은 무슨 책을 읽지?

저번에 읽은 대륙전기라는 책은 소설로만 읽을 수 있었던 역사를 세세하게 적어놨다는 점에서 꽤나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그러고 보니 주위에 그런 류의 책이 몇 권 더 있었던 것 같은데.......

뭐, 어쨌든 지금은 다시 붙들리기 전에 창문을 넘어.......


“으, 으악!”


몸을 넘기기가 무섭게 들려온 낯익은 짧은 비명소리.

나서자마자 무언가에 부딪혀 창틀에 기대 뒤로 넘어져 버렸다.


“뭐야, 또 너냐?”


머리를 부여잡은 채 또 같은 자세로 주저 앉아있는 건 테르에스테다.


“아, 그게 그러니까.......”


테르에스테와는 아무래도 약을 먹었던 일 때문에 불편한 관계이다.

때문에 괜스레 평소보다 더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물론 그동안 쌓여왔던 짜증이 폭발한 듯한 느낌도 없지 않다 할 수는 없겠지만.


“내 방에 들어오려고 한건 다 알아.”


“아, 아니 정말 그게 아니라....... 이 건 그냥 지나가다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저번 한번은 우연이었다 할 수도 있겠지만,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 두 번째다.

우연일 리가 없다.


“아니 됐고, 대체 뭔데? 한번 들어 보기나 하자.”


같잖은 거짓말을.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스에스테와 미스테에게 단련 될 대로 단련된 나다.

속을 말이 따로 있지.


“.......하려고.”


라고 고개를 숙인 채 들리지도 않는 소리로 중얼거리는 테르에스테.

또 확 하고 짜증이 솟구친다.


“말하려면 들리게 말하던지!”


봐라, 이렇게 별 망설임 없이 버럭 소리를 질러버리고 말지 않는가.


“.......하려고 왔다고.”


“응? 뭐라고?”


“사과하려고 왔다고!”


하고 역으로 버럭 소리를 질러오는 테르에스테.

서, 성질하고는....... 아니 그보다.


“사과?”


“그, 그래. 그때 내가 멋대로 널 오해해서....... 네가 한 인사도 무시하고 그런 거 말이야.”


뭐야, 저 녀석.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었나.


“아아, 그거라면........ 난 별로 신경도 안 쓰고 있었으니까.”


“저, 정말? 그럼 용서해 주는 거야?”


하고 반색하며 달려드는 테르에스테.

저렇게 활짝 웃는 얼굴에 뭐라 하겠는가.

고개를 끄덕여 대답할 뿐이다.


“다행이다. 이제 데모테르님께 안 혼나도.......!”


흡! 하며 갑자기 손으로 자기 입을 틀어막는 테르에스테.

이미 다 들었거든요?

어쩐지. 내 기억 상 재수 없는 악마 순위 2~3위를 다투는 녀석이 갑자기 사과를 해올 때부터 알아봤다.

아, 당연한 거지만 1위는 이스에스테다.


“크, 크흠. 대신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혹시나 내게 부탁할 일이 있으면 얘기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나는 도와 줄 테니까.”


라며 호탕하게 가슴을 치며 얘기해 오는데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뭐, 뭐야 그 웃음은! 내가 못 미덥다는 거야?”


일단은 아니라는 의미로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갑자기 부탁할 일이라니.

그럼 당장 내 앞에서 사라져 같은 악질스러운 부탁도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지만 차마 그렇게는 말 못하겠고.......


“아냐, 아냐. 못 믿겠다는 게 아니라.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래? 그럼 부탁할게 생기면 언제든지 날 찾아와! 난 항상 이 옆 내 연구실에 있을 테니까.”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한번 끄덕여 보이자마자 그대로 쪼르르 달려 돌아가는 테르에스테.

과연 녀석에게 부탁할 일이 생기기나 할련지....... 하고 한 걸음.


“로제에스테!”


라는 외침소리와 함께 등을 발로 차여 고꾸라지고 말았다.

리아세스테? 그러고 보니 왜 이제야.......


“아.”


뒤돌아서 바닥을 보고야 알았다.

중복 이동을 막기 위해 문지방 위에 서 있으면 창문을 넘어오지 못하게 되어있다는 걸 완전히 잊고 있었다.


“미, 미안.”


테르에스테와 얘기하는 내내 기다렸을 걸 생각하면 미안하다는 말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만. 그나마 다행인건.......


“아뇨, 괜찮아요.”


하고 방긋 웃어 보여주는 리아세스테.

역시나 적응 안 되는 성격변화다만 그래도 이럴 때는 고마울 뿐이다.

그렇게 리아세스테가 한걸음 또 앞으로 걸어 나오자 바로 뒤따라온 세르에스테.

역시나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내 쪽으로 다가와 오른 팔부터 붙들어 안는다.


“어서 가죠, 로제에스테님.”


분명 리아세스테는 상냥하게 말했는데....... 왠지 느껴오는 분위기가.......


“그, 그래! 가야지.”


.

.

.


그렇게 얼렁뚱땅 급하게 빠져나온 로제니악.

기껏 세르니악에 가 책을 읽을 생각으로 기분전환을 했건만 오늘은 무슨 마라도 낀 날인지........

로제니악을 빠져나오자마자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아니지. 아직은 모르는 거다.

뒤에서 따라오는 리아세스테에게 눈치를 주고, 세르에스테는....... 뭐, 원래 말이 없으니까.

조심스레 한걸음, 한걸음........


“에취!”


“........”


아아, 아무리 이곳에 흙먼지가 많다만.......

방금 그 재채기 소리도 무지무지 귀여웠다만.......

그래도 믿었던 세르에스테가.......

아니,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봐도........


“음?”


하고 몸을 돌려오는 게르틴님.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아버렸다.

그럴리는 없지만 그래도 제발 날 못 봤기를 기도하며........


“로-제-에-스-테!!”


하늘이 쩌렁쩌렁 울리기라도 하는 듯한 고함소리.

아아, 잊고 있었다. 이곳은 지옥.

기도를 들어줄 신은 없다는 걸.


“안녕하세요, 게르티님.”


“오, 그래. 리아세스테는 오늘도 건강한 것 같구나.”


오오? 의외로 리아세스테의 인사에 웃으며 대답해주는 게르틴님.

화가 나신 게 아니었나? 그럼 나도.......


“아, 안녕하세.......”


“지금 안녕하게 생겼냐!”


으아악! 왜 나만!


“너! 너만 오기 전에는 이곳은 나의 성이었다! 내 예술작품! 그런데....... 네가 온 첫날부터 나의 굴지의 작품인 ‘염상의 테라스’가 날아가 버린 것부터 시작해, 바로 라니악의 ‘침상의 방’에는 구멍을 뚫어 놓지를 않나!”


으, 으아. 방 하나 하나에 전부 이름을 붙여놓은 거였어?


“뭐, 거기까지는 첫 날이니까. 에네스님의 말씀도 있으셨고 했으니 넘어가 줬다만....... 그게 내 제일 큰 실수였다! 연달아 로제니악의 벽을 무너트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베스파로제님은 이........”


목이 메이는 듯 게르틴님은 말을 잇지 못한 채 양팔을 펴 주위를 한번 주욱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걸 봐라! 예술가에게 자신의 작품이란 자식 같은 거라고 하는데 넌........ 너 때문에 내 자식들이.......”


“로제에스테님. 이대로는 끝이 없겠어요. 몰래 움직이는 게.......”


리아세스테의 말대로 지금 게르틴님은 완전히 자기 얘기에 빠져있다.

어쩌면, 지금이라면 몰래 도망가도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아세스테에게 고개를 한번 끄덕여 보이고는 세르에스테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준 뒤 조심스레, 조심스레 한걸음 한걸음.......


“그러니까 왜 베스파로제님은 이 좁은 곳에서 결투를.......”


다행이도 아직까지는 눈치 못 챈 듯하다.

좋아, 이대로 조심조심.


“란세르님도 그래! 본 모습으로 돌아가실 거면 아예.......”


좋아, 이 정도면 적당히 멀어질 만큼 멀어진 듯하다.

그럼....... 전력질주다!


“음? 어? 로제에스테? 너! 거기서!”


.

.

.


그 길로 줄행랑을 쳐 여기저기 다른 탑 사이사이로 도망 다니다가 세르니악에 안착.

숨이 턱까지 차올라 죽을 것 같이 괴롭다만.......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릴 따라오던, 아니 정확히는 날 따라오던, 리아세스테는 중간에 멈췄음에도 날 계속 따라왔으니까, 게르틴님이 중간에 두고 보자! 라는 말과 함께 쫓는 걸 포기한 것.

아아, 앞으로는 밖에 게르틴님이 있는지 없는지부터 확인하고 다녀야 할 것 같다.


“로제에스테님, 괜찮으세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마냥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리아세스테.

남은 옆에 세르에스테까지 끼고 전력 질주하느라 죽을 맛이건만.

아아, 얄밉다! 라고 생각은 하지만 직접 말로 표현할 용기까지는 없고....... 그냥 무시하고 2층 서재로 발을 돌렸다.


“스읍- 하아-”


아아, 서재 문을 열자마자 물씬 풍겨오는 이 향기로운 오래된 종이의 냄새.

아니, 사실은 대부분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흙냄새다만.

서재에 들어오자마자 말이라도 맞춘 듯 리아세스테와 세르에스테는 항상 가던 자리를 향했다.


리아세스테는 이상한 그림들이 가득한 두꺼운 책을 들고 바닥에 떨어진 천장 돌조각 중에 적당한 크기의 것 위에 자리를 잡았고, 세르에스테는 바닥에 떨어진 책들을 주워 정리를 시작했다.

대충 정리가 끝나는 대로 다시 내 오른팔에 달라붙겠지만....... 그래도 이 시간이 하루 중 유일한, 정말 억만금보다 가치가 있는 나 혼자만의 시간이다.


“으음.”


우선 목표는 서재의 모든 책을 읽는 것으로 하고 왼쪽 구석부터 읽을 수 있는 책들 우선으로 읽고 있다.

사실은 전부 다 읽고 싶은 마음이지만....... 이놈의 고대 지옥어? 그런 걸로 쓰인 책들이 대다수인지라 불가능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대륙 공용어로 된 책은 수많은 책들 중 한 줄에 한 두 권이 될 뿐이니까.


“어디.......”


어제는 네 번째 줄의 ‘대륙전기’라는 책을 읽었으니....... 다음은 저 책이로군. 악마강령개론.

무슨 내용인지는 직접 읽어봐야 알 수 있겠지만 옛날 책장수에게서 샀던 그 마법서와 비슷한 내용이 아닐까 예측해 본다.

오, 저자의 이름도 있네. 리나텔로 아센트?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이름 같은 데....... 하고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조금 찝찝하긴 하지만 뭐, 계속 고민하고 있어도 답은 나오지 않으니 일단은 무시.


책을 뽑아드니 먼지가 수북이 올라와 재채기를 서너 번.

사실 난 저번에 읽었던 대륙전기같은 역사책이 보고 싶은데.

타락한 군주의 목을 베고 처형당한 고대왕국의 기사 아렌의 이야기는 담담한 문체로 쓰인 역사책임에도 꽤나 감동까지 받았었다.


“아.......”


무언가 와르르 쏟아지는 소리가 나 돌아봤더니 세르에스테가 바닥에 엉망으로 쏟아진 책들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옮기다 놓치기라도 한 걸까?

도와줄까했지만 그만뒀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렇게 란세르님의 서재를 정리할 때가 세르에스테는 제일 편안해 보이니까.


사실 눈치 챈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워낙 감정표현이 없을뿐더러 말도 없는 세르에스테인지라 처음 며칠 동안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지만....... 알 수 있었다.

세르에스테가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불안감? 슬픔? 무슨 이유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가끔 란세르님의 얘기가 나올 때마다 몸이 경직되는 걸 보면 아마 란세르님의 소멸에 대한 슬픔. 또는 그리움일거라 생각된다.


이해는 간다.

나도 아버지의 무덤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으니까.

그때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자존심 같은 건 전부 버리고 펑펑 울어버렸더니 가슴이 좀 편해졌었는데.......

그래, 차라리 세르에스테도 한번 크게 울고 나면........이 될 리가 없지. 악마가 눈물이라니.

그게 된다면 내가 이렇게.......?


순간 뇌리를 스쳐 지나간 한 생각.


미친 듯이 손에 든 책의 책장을 넘기며 그 위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있다.”


손이 멈춘 쪽 위로 쓰여 있는 글씨.



제4장. 소환자를 위한 악마의 감정분석.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악마 만들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9 12화. 인간계 체험 下 - 1 18.05.03 368 0 7쪽
48 11화. 인간계 체험 上 - 4, After 18.05.02 351 0 18쪽
47 11화. 인간계 체험 上 - 3 18.05.02 351 0 10쪽
46 11화. 인간계 체험 上 - 2 18.05.01 356 0 11쪽
45 11화. 인간계 체험 上 - 1 18.05.01 359 0 13쪽
44 10화. 2차 각성 - 4, After 18.04.30 383 0 19쪽
43 10화. 2차 각성 - 3 18.04.30 364 0 19쪽
42 10화. 2차 각성 - 2 18.04.29 361 0 20쪽
41 10화. 2차 각성 - 1 18.04.29 366 0 17쪽
40 9화. 죄와 유체 - 5, After 18.04.28 362 1 19쪽
39 9화. 죄와 유체 - 4 18.04.28 364 0 10쪽
38 9화. 죄와 유체 - 3 18.04.27 370 0 16쪽
37 9화. 죄와 유체 - 2 18.04.27 369 0 16쪽
36 9화. 죄와 유체 - 1 18.04.26 366 0 11쪽
35 8화. 악마의 눈물 - 5, After 18.04.26 368 0 21쪽
34 8화. 악마의 눈물 - 4 18.04.25 368 0 17쪽
33 8화. 악마의 눈물 - 3 18.04.25 366 0 17쪽
» 8화. 악마의 눈물 - 2 18.04.24 377 0 21쪽
31 8화. 악마의 눈물 - 1 18.04.24 368 0 7쪽
30 7화. 서열전쟁 - 6, After 18.04.23 366 1 14쪽
29 7화. 서열전쟁 - 5 18.04.23 371 0 8쪽
28 7화. 서열전쟁 - 4 18.04.22 372 0 9쪽
27 7화. 서열전쟁 - 3 18.04.22 366 0 11쪽
26 7화. 서열전쟁 - 2 18.04.21 359 0 17쪽
25 7화. 서열전쟁 - 1 18.04.21 372 0 10쪽
24 6화. 에스테 회의 - 3, After 18.04.20 383 0 13쪽
23 6화. 에스테 회의 - 2 18.04.19 389 0 23쪽
22 6화. 에스테 회의 - 1 18.04.19 395 0 12쪽
21 5화. 로제니악 - 3, After 18.04.18 390 1 23쪽
20 5화. 로제니악 - 2 18.04.18 388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