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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ressor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 만들기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expressor
작품등록일 :
2018.04.09 19:06
최근연재일 :
2018.05.17 21:07
연재수 :
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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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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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7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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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18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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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5화. 로제니악 - 3, After

DUMMY

“가, 갑자기 어딜 그렇게 가시는 거예요!”


란세르님께는 죄송하지만....... 나도 성격이 결정 나면 바로 해야 하는 성격인지라 어쩔 수가 없었다.


“로, 로제에스테님!”


확실하지는 않다.

하지만 왠지 될 것 같다는 근거 없는 확신이 계속 든다.


“로제에스테님!”


응?


“아, 미안.”


이런, 뒤에서 리아세스테가 따라오는 걸 전혀 몰랐었다.

숨이 차 힘들어하는 리아세스테를 보니 왠지 미안해져.......라기보다!


“그, 그 팔은 왜 가지고 온 거야!”


“네? 아, 그게 저도 정신없이 나오다보니....... 그보다 갑자기 그렇게 나가버리시면 어떡해요!”


“응? 아아, 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열 수.......있다니요?”


리아세스테를 막아 세우고 입에 검지를 대어 보였다.

정신없이 뛰어 오다보니 어느새 130번 문 앞.

아직도 안에 있으련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가까이 온 걸 눈치 체여서 좋을 건 없지.


“저 문인가요?”


소근 거리듯 물어오는 리아세스테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뭘 더 망설일게 있겠는가.

방출을 쓰듯 심상을 뽑아내놓고 묶어둔다. 이상할 정도로 항상 여기까지는 쉽게 된다.

그리고 이제 눈을 감고.......

무쇠. 재질은 무쇠다. 그리고 모양은....... 바늘같이 날카로운 막대 하나.

그리고 끝만 살짝 꺾은 모양의 막대 하나.


“.........”


성공. 살짝 끝이 흐물거리는 거 같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만족이다.

단단하기도 이정도면 충분.


“그걸로 뭘 하시려는 거예요?”


“잠깐만.......”


지옥에서 쓰는 열쇠가 인간계에서 쓰는 열쇠와 같은지는 모르겠지만.

세르피리아님이 가슴사이에 넣기 전 얼핏 본 열쇠의 모습은 분명 비슷해 보였다.

바늘 두 개를 가지고 영주님 서재의 창문을 따고 들어가 몰래 책을 읽던 나다.

물론 한번 걸려 호되게 혼난 이후로는 다신 가지 않았지만........ 어쨌든 중요한건 도구만 있다면 잠긴 문을 여는 건 자신 있다 이거다.


“음.......”


열쇠구멍을 잘 살펴보니 역시나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원리는 비슷해 보인다.

조심스레 바늘 두 개를 걸쇠에 위치해 놓고 좌에서 우로 조금씩 조금씩.

바늘이 부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힘을 주며.......


-딸깍.


열렸다. 열렸다?

일이 이렇게 너무나도 쉽게 해결돼버리니 이건 오히려 어이가 없어 웃음이 다 나온다.

조심스레 문고리를 잡고 돌려보니 부드럽게 돌아간다.

아아, 감동이다. 오늘은 오른팔의 방출을 이미 써버려 들어가서 응징을 할 수는 없겠지만....... 왼팔의 방출이라도 날려 복수를 해야겠다 결정.

살짝 고개를 돌려 리아세스테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하나, 둘.......


“셋!”


하고 문을 박차며 방에 발을 들이자 제일 먼저 나를 반긴 건....... 철퍽. 하는 불쾌한 소리.

시선을 내려 보니 작은 물집 같은 것이 발에 밟혀 터져있다.......?


“우와아아악!”


놀란 마음에 뒤로 몇 걸음 뒷걸음질.

발에 묻은 기분 나쁜 끈적끈적한 녹색액체는 바닥에 질질 끌려 하나의 길을 만들어 놓았다.

뭐야, 뭐야 이거!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요?”


리아세스테의 말에 고개를 들어보니 말 그대로 방안에는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다만 방안 가득히 피어오른 내가 밟은 것과 비슷한 크기의 물집들과 천장에서부터 흘러내려 늘어져 있는 녹색 액체만이 가득할 뿐.


“아아.......”


최악이다. 이런 방이라면 처음부터 줘도 이쪽에서 거절이다.

이런 방을 위해 아침부터 그 고생을 했다니.

이젠 더 이상 라니악에서 힘들게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이 깡그리 무너지며 다리에 힘이 풀려 버렸다.


“심하네요. 이것들은 대체 뭐죠?”


“여기 있던 악마가 한 짓이겠지. 악취미에도 정도가 있지. 대체 남의 방을........”


“너, 너희들 남의 방에서 뭐하는 짓이야!”


들려온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온 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작은 꼬마가 한명 서있었다.

설마 저 악마가 여기 있던 악마? 아니, 그보다.......


“남의.......방? 여긴 내 방이라고!”


확실해 졌다.

저 꼬마 악마, 잠깐 빌려 쓴 게 아니라 아예 가지려 하셨다?


“내 방?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여긴 엄연히 내 방이라고!”


뭐라 반박하려 했지만 그냥 입을 다물어버렸다.

아아, 더 이상 말해서 뭐하리. 왠지 베스파로제님의 행동양식을 닮아가는 것 같아 기분 나쁘긴 하지만....... 일단 여기서는 실력행사가 정답인 것 같다.


“그, 그만하세요! 로제에스테님도. 테르에스테님도!”


.......응?


“테르.......에스테?”


“뭐? 로제에스테?”


잘 못들은 건가? 잘 못들은 거겠지?


“테르.......에스테라고? 이 작은 꼬마가?”


“로제에스테? 이 허약해 보이는 녀석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뭐, 뭣? 작은 꼬마?”


“뭐? 허약해 보이는 녀석?”


역시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맘에 드는 구석이 한 곳도 보이지 않는 녀석이다.

그보다 테르에스테라면 분명 론니악에 왔던 첫 날.

데모테르님이었던가, 실험실이라는 곳에서 만났던 그 키가 작고 곪은 얼굴을 한 악마의......


“흠흠, 그래서. 로제에스테님이시니 마음대로 내 연구실을 뺏어 가시겠다. 이건가?”


“아니, 애초에 여기는 내 방이라니까!”


사실 이제 필요 없어졌지만. 이라는 게 솔직한 속마음 이다만.

왠지 여기서 물러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라기 보다 그냥 열 받아!


“하아, 몇 번을 말해야 알건데! 여기는 내 연구실이라고!”


결국 또 원점으로 돌아왔다.

짜증이 왈칵 치솟는다.

저런 쪼그만 악마 따위 오른팔의 방출을 쓸 필요도 없다.

왼팔의 방출만으로 묵사발을 내주마.


“호오? 이젠 힘으로 빼앗으시겠다? 하! 루나에스테님을 이겼다고 기고만장해진 모양인데. 네가 이긴 건 루나에스테님의 이상한 취미 때문이란 것도. 그리고 네가 각성한지 얼마 안 된 풋내기라는 것도 난 다 알고 있다!”


조, 조금 움찔하긴 했지만........ 괜찮다. 허세다.

아무리 봐도 저 녀석 그렇게 강해보이지는 않고.


“게다가 말했지? 한 번 더 찾아오면 온 몸을 녹여버리겠다고.”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그 때 맞았던 돌멩이.

아아, 그래. 먼저 시비를 걸었던 건 너였지?

그래, 난 평화롭게 해결하려 노력했었다고.

이건 정당방위다. 정당방위라고!


“그만들 하세요!”


당황스러움에 뒤로 두세 걸음.

그건 저 테르에스테도 마찬가지다.

리, 리아세스테가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다니.......


“테르에스테님! 아무리 화가 나기로서는 엄연히 상위 서열자인 로제에스테님께 그렇게 함부로 하시면 안 되죠!”


“미, 미안.”


훗, 녀석. 리아세스테의 호통에 바로 사과부터 나오다니.

생긴 것처럼 말 그대로의 꼬맹이 같은 모습이다.


“그리고 로제에스테님!”


“으, 으응?”


갑자기 호명당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차렷 자세를 취하고 말았다.


“화를 내시기 전에 전후 사정부터 파악하셔야죠!”


“하, 하지만.......”


“여긴 테르에스테님의 연구실이 맞다구요!”


.......응?


.

.

.


“하아, 그러니까 몇 번을 말해야 아는 거야. 여기는 내 연구실이고 로제에스테를 위해 비워져 있던 방은 옆에 140번방이라고.”


그, 그렇다는 말은.......

나는 전혀 다른 남의 방에 다짜고짜 쳐들어와 행패를 부렸다는 게.......


“미, 미안.”


부끄러워 빨개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고개 숙여 사과해 버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건 처음부터 방을 잘못 알려준 세르피리아님의 잘못 이다만.......

그래도 내가 한 행동들을 생각하면 여기선 사과를 하는 수밖에 없지.

얼굴이 화끈거리는 게 분명 귀까지 빨개져 있을 거다.


“뭐, 뭐 그렇게까지 나온다면 나도 더 뭐라고 할 수는 없지.”


한층 부드러워진 테르에스테의 목소리.

다행이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수습되어서.


“하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어떡할 거야? 내 실험.”


“.......응?”


“네가 마음대로 문을 열어버리는 바람에 다 망쳐버렸다고.”


실험? 문을 여는 바람에 망쳤다고?


“하아, 약이 숙성되는 동안은 철저히 외부와 단절돼 있어야 했단 말이지.”


“약?”


“그래, 약 말이야. 너 때문에 귀중한 재료를 다 날려버렸다고. 다음에 또 이 재료를 구하려면 한참은 더 걸릴 텐데 어떻게 책임 질 거야 이거.”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내 방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거기서 끝.

별 수 없지 뭐. 가 될 줄 알았건만 일이 또 걷잡을 수 없이 꼬여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얼마나 숙성됐는지 알 방법이 없으니....... 그래, 좋은 생각이 났다.”


하고 테르에스테의 얼굴에 피어오르는 알 수 없는 미소.

등에 소름이 돋았다. 아아, 이건 그거다. 언제고 오던 그 불길한 예감이다.


“네가 약을 먹어보는 건 어때?”


........


“왜 얘기가 그렇게 되는데!”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여버릴 뻔 했다. 위험했다.


“그치만 말이지. 숙성이 다 된 건지 덜 돼서 망쳐 버린 건지 확인 할 방법이 없단 말이야. 그래, 그게 싫다면 이건 어때. 다시 재료가 들어올 때 까지 내 조수로 일하는 건.”


싫다. 절대 싫다.

저 끈적거리고 기분 나쁜 액체와 함께 지내야 한다는 것 아닌가.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라. 그러지 말고 한 번 마셔봐. 그렇게 위험한 건 아니니까.”


“무, 무슨 약인 줄 알고!”


뻔하지.

마시면 몸이 폭발하거나 아니면 폭발하거나 폭발하는 약일게 틀림없다.


“응? 아, 음. 그게.......”


봐라, 별 거 아니라면서 저렇게 말하기를 주저하는 게 멀쩡한 약일 리가 없다.


“에이, 모르겠다. 잠깐만 기다려봐!”


하고 녀석은 나를 지나쳐 방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이 약.”


발에 질척질척한 것을 잔뜩 묻혀 돌아온 녀석이 내게 보여 온 것은 작은 약병.

그 안에 가득 들어있는 연녹색 액체....... 딱 봐도 불길한 냄새가 팍팍 풍겨져 온다.


“이건 일종의 기억회복 약이야.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게 해주는 효능이 있지.”


“기억을.......되찾는다고? 대체 왜 그런 걸?”


이해가 가질 않는다.

악마와 기억?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만.

악마가 뭐 하러? 거짓말일게 분명하다.


“나한테 묻지 마. 나도 부탁받아 만든 거니까. 그래서 어쩔 거야. 마실 거야, 아니면 내 조수로 일할 거야.”


당연히 둘 다 고르기 싫다!

슬쩍 고개를 돌려 리아세스테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리아세스테는 왠지 모를 복잡한 표정을 지어보일 뿐이다.

이렇게 되면 도망가는 게.......


“설마 로제에스테님 정도나 되시는 분이 도망가 버리거나 그러지는 않겠지?”


.......제기랄.


“.......”


어쩔 수 없다.

정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 약. 정말 위험한 건 아니지?”


“몇 번을 얘기해야 믿을 건데! 이미 한 번 효력을 확인한 약이야. 다만 효과가 미미해서 좀 더 진하게 만든 것뿐이라고. 안전해! 내가 책임 질 수 있어!”


어떻게 들어도 못 미덥다만....... 에라, 이젠 나도 모르겠다.


“이리 줘.”


테르에스테의 손에서 약병을 낚아채고 침을 한번 꼴깍.

입구를 막고 있던 코르크를 잡아 뽑자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먹고 싶지 않은 마음만 더 커졌다.


“.......”


하지만 이제 와서 말을 번복할 수도 없는 노릇.

눈을 딱 감고 약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맛을 느끼기 전에 꿀꺽하고 삼키고....... 응? 생각보다 단데?

이거 의외로 맛.......


“로, 로제에스테님?”


어라? 리아세스테.

너 왜 몸이 일그러져 있.......


.

.

.


눈앞에 나열한 수백, 수천, 수만의 사람들.

왕의 손짓 한 번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그대로 검은 무리들을 향해 진격.

귀를 찢는 함성소리. 그리고 빠르게 줄어드는 간격.

내 몸은 뜨거운 심장을 부둥켜안고 가장 높은 곳에 서있는 자를 향해 전진.

좌우로 밀려드는 검은 물결.

덮쳐오는 뜨거운 피.

벅차오르는 숨.

하늘 위로 높게 솟구치고서는....... 반으로 갈라지는 시야.

손에 굳게 쥐어진 채 그 몸에 박아 넣은 순백의 검.

검 날을 따라 느껴지는 심장소리.

배를 뚫고 나온 창.

쐐기처럼 날아와 등에 꽂히는 화살.

목을 타고 올라오는 진한 피.

적의 심장이 멈추고.

나의 심장도 멈췄다.



낡아 부스러진 벽돌조각이 등불 밑으로 흘러내리고.

바닥에 떨어진 피 한 방울 두 방울.

그 흔적을 따라 끝없는 미로를 추적.

지친 동료들.

부상으로 괴로워하는 동료들.

이제는 따라올 수 없는 동료들.

그 모두를 등에 지고 흔적이 끊긴 거대한 돌 벽 위로 손을 얹었다.

작은 망설임. 짧은 결단.

돌 뒤 어둠에 숨어있는 왕의 목에 순백의 검을 내리꽂는다.

그리고 비춰오는 눈부신 태양빛.

단두대 위에 걸친 작은 그늘에 숨을 잠시 고르고.

마지막 말을 남긴 후.

떨어져 내리는 주위의 모든 것.



이글거리는 불길.

감히 짐작도 못할 혼돈.

멸망의 풍경을 아래로 눈앞에 둔 이 거대한 마법은 나의 지식과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할 수 있었다.

마치 터져버릴 것만 같이 부풀어 오르는 그 순간의 빛이 주위 모든 것을.

아니 이 세상을 무너트릴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나는 마법사의 몸에 박아놓은 순백의 검을 꺼내들고 마법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미안, 캐롤린.

짧은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분해돼 사라지는 내 몸을 바라보며.

천천히....... 천천히....... 마법을 집어삼켰다.



조심스레 모아왔던 것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마지막 한명의 목을 베어 피를 받아 뿌린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스스로가 혐오스럽다 생각하면서도 손은 멈출 줄 모르고 움직인다.

천의 혼이 모이고 마신이 강림하면.

비록 어둠이 돌아올지라도 이 땅 위 모든 모순들이 없어지겠지.

아들아, 너만 더 순수한 곳에서 살 수 있다면.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이 모든 게 너무 빨리 들통 나 버렸다는 것뿐.

하지만 비록 여기서 내가 쓸려 없어지더라도.

뽑아 든 순백의 검은 적에게 닿지 못한 채 모순된 자들의 손에 유린되어 사라져 버렸고.

남은 몸은 천천히 갈기갈기 찢겨 담은 뜻을 모두 털어내 버렸다.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아들아, 네 얼굴을 한 번 더.......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눈물이 흐른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가슴이....... 가슴이 터질 것 만 같이 아프다.

흐릿해진 머릿속이 너무나도 혼탁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단지 괴롭다. 고통스럽다. 그리고 너무나도 슬프다.

나는 대체....... 나는 왜.......


“로제에스테님! 로제에스테님!”


떨리는 눈동자 위로 차오른 눈물에 시야가 가려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에는 아무런 힘도 들어가지 않는다.

온 몸에 힘이 빠져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

단지 눈물만이 끊임없이 흐를 뿐이다.


“로제에스테님!”


“리아.......세스테?”


몸을 흔드는 리아세스테의 손길에 가까스로 정신이 들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나는....... 쓰러져 있었던 건가?


“괘, 괜찮으세요?”


걱정 가득한 리아세스테의 얼굴.


“대체 무슨 일이......”


테르에스테의 약을 먹고. 조금 어지럽더니.......

제길, 머리만 아파올 뿐 아무런 기억도 나질 않는다.

난 왜 울고 있었던 거지? 그리고.......


“테르에스테 너 이 자식. 위험하지 않다더니.......”


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전혀 모르겠다만.

온몸에 힘이 빠지고 어지러운 게....... 이게 정상일리는 없다.


“아, 아냐. 약은 아무 문제없었어.......”


떨리는 목소리.

무언가 이상함을 느껴 올려본 테르에스테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테르에스테?”


“너, 너 뭐야? 그 검. 그 힘. 분명.......”


검? 힘?


“무, 무슨 말을 하는 거.......”


몸을 일으키기 위해 내려간 눈길에 걸린 것은 작은 돌조각.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혹시 너,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아니, 그래도.......”


전에 없던 그 돌조각들을 따라가던 시선이 멈춘 곳은.

방과 방을 이어놓은....... 오른팔의 방출로 만들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한 구멍.


“리, 리아세스테? 저, 저거....... 설마 내가?”


리아세스테는 전과 같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하지만 이건 역시....... 영웅의 피? 아냐,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럴 리가 없어.”


테르에스테의 횡설수설과 주위의 모든 것이 왠지 모르게 너무나도 괴리감이 느껴져.......


“말도 안 돼. 분명 어디선가 잘못.......”


마치 이 모든 게 한순간에 무너져 버릴 것처럼.......



5화 – 로제니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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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 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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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또 다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지금 있는 곳은 베스파로제님의 성.

하루 동안 있었던 수많은 일들에 말 그대로 혼이 다 빠져나간 것만 같다.

일단 테르에스테의 약을 먹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큰일이었다고 생각했건만....... 그 후의 일들도 워낙 보통일들이 아니었으니까.

오늘이 지나간 것만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아아, 그보다 정말 무서웠다. 게르틴님....... 이라고 했던가?


.

.

.


“게, 게르틴님!”


“또 부숴놓다니....... 네 녀석! 베스파로제님의 수계자라 할 때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그 론니악의 문지기였던 거대한 악마만큼은 아니었지만 엄청나게 커다란 덩치에 압도되어 뒤로 넘어지듯 주저앉고 말았다.


“몇 번이고 얘기했지만........ 나는 내가 만든 작품이 부서지는 게 가장 싫다!”


온 몸이 날아가 버릴 정도로 큰 고함소리.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말에 리아세스테와 함께 로제니악을 나온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나오자마자 마주친 이 무식하게 거대한 악마.


“한번은 실수라 봐줄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이나! 두 번이나 나의 작품을 부순 건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


아아, 연달아 덮쳐오는 사건사고에 이젠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라는 마음이 되고 말았다.

울고 싶은 지경이다.


“내 수고의 대가는.......”


거대한 악마가 손을 들어 올리자 자연스레 내 위로 그늘이 덮쳤다.

그래, 오늘 여기서 모든 게 끝나려고 이리 힘든 하루가 되었던 모양이다.


“가볍지 않을 것이다!”


눈을 감아버렸다.

아아, 이제는 나도 몰라.


“하아, 또 무슨 일을 저지른 거냐. 에스티.”


........이 목소리는?


“베, 베스파로제님!”


당황스러움이 역력하게 느껴지는 거대한 악마의 목소리에 살짝 눈을 떠보니.......


“내가 분명 일벌이지 말고 조용히 지내라 했던 것 같은데.......”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하지만 베스파로제님이다. 진짜 베스파로제님이다.


“무슨 일이지, 게르틴? 내 수계자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이, 이 녀석이 제 작품을 부쉈단 말입니다!”


“흠, 믿을 수 없는 걸?”


“.......예?”


“게르틴, 너는 내 에스티가 각성한지 얼마 안 된 녀석이란 걸 알고 있나?”


“아, 그야 물론.......”


“난 네 작품이라는 것이 그런 녀석의 힘으로 부서질 정도로 약하다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만.......”


순간 벙찐 거대한 악마의 얼굴.

웃으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미소가 새어나온다.


“아, 그게.......”


“분명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지. 안 그런가, 게르틴?”


“예, 예에.......”


하고 물러서는 거대한 악마.

통쾌함에 몸이 다 부르르 떨린다.

베스파로제님! 정말 감사 드립.......


“자, 급한 건 해결된 것 같으니.”


자, 잠깐. 뭔가 분위기가 돌변한 것이


“자초지종을 좀 들어볼까?”


아아, 저 표정. 그 때의 그 표정이다.

루나에스테와의 결투 때문에 성에 끌려갔을 때의


.

.

.


그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지만....... 뭐, 결과는 더할 나위 없이 좋게 끝났다.

세르피리아님이 내 방 열쇠를 잃어버린 것부터 시작해서 내 방이 없어서 생긴 하소연들.

그리고 그때까지 일어난 일들을 모두 애기하였고 끝까지 다 들어준 베스파로제님은 의외로 ‘별 것 아닌 문제를.’ 이라는 말과 함께 이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주셨다.


로제니악의 130번방과 내가 낸 구멍으로 연결된 140번 방.

어차피 못 쓰는 그 방의 문을 이 곳, 베스파로제님의 성과 공간 연결해 주신 것.

자세한 원리는 모르겠지만....... 방안에 들어가듯이 140번방의 문을 열고 들어오면 베스파로제님의 성! 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성에 내 자리까지 마련해 주셨다.

성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사이에 있는 계단을 마음대로 사용하라 주신 것.

바닥이 딱딱해 불편하긴 하지만....... 조용히 지낼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것에 나름 만족 또 만족이다.


“헤에, 진짜 베스파로제님의 성에서 사는 거구나?”


“우, 우와아아악!!”


들려올 리가 없는 목소리가 들려와 심장이 떨어질 것만 같이 놀라고 말았다.


“뭐,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나스........미스테?


“정말, 보면 볼수록 한심하네.”


게다가 나스에스테도?


“여, 여긴 어떻게.......”


“아아, 오랜만에 한번 보려고 라니악에 갔더니 이제 베스파로제님의 성에서 지낸다고 하더라고. 그 말을 듣고 찾아온 거지.”


“난 그냥 남의 방에 가서 행패를 부리다 온 멍청한 녀석의 표정이 궁금해서 따라온 거지만.”


.......응? 잠깐만.


“아, 아니 그 얘기를 어떻게?”


분명 리아세스테와는 비밀을 약속했었다.

설마 테르에스테가 얘기한 건가?


“당연히 그 방이 테르에스테의 연구실이란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그것도 모르고 혼자 막 흥분하는 모습이란........ 푸훕.”


배를 부여잡고 웃음을 참는 나스에스테의 모습.

화가 난다. 이건 화가 안나는 게 이상한 거다.

아, 안되지. 이 성 어딘가에는 베스파로제님이 계시다.

참아야지. 참아야지.


“그, 그래. 나스미스테. 요즘 특별 수업을 듣는다고 들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일단 말을 돌려 내 화를 좀 식히자.


“응? 아, 넌 모르겠구나. 좀 있으면 에스테 회의가 있어. 그리고 그 다음날에는 바로 인간계 체험이 있고.”


에스테 회의? 인간계 체험?


“인간계 체험은 수계자들 전부가 가는 게 아니라 결투서열 상위 10명만 갈 수 있거든. 나, 이번에는 꼭 가고 싶어서 말이야.”


결투서열 상위 10명? 자, 잠깐만 그럼.......


“너, 너 같은 약골도 가는데 내가 못갈 수는 없잖아! 난 너보다 강하니까!”



돌아갈 수....... 있다고?




5화 - After. 끝.



6화 – 에스테 회의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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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만들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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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12화. 인간계 체험 下 - 1 18.05.03 368 0 7쪽
48 11화. 인간계 체험 上 - 4, After 18.05.02 351 0 18쪽
47 11화. 인간계 체험 上 - 3 18.05.02 351 0 10쪽
46 11화. 인간계 체험 上 - 2 18.05.01 357 0 11쪽
45 11화. 인간계 체험 上 - 1 18.05.01 359 0 13쪽
44 10화. 2차 각성 - 4, After 18.04.30 383 0 19쪽
43 10화. 2차 각성 - 3 18.04.30 365 0 19쪽
42 10화. 2차 각성 - 2 18.04.29 361 0 20쪽
41 10화. 2차 각성 - 1 18.04.29 366 0 17쪽
40 9화. 죄와 유체 - 5, After 18.04.28 362 1 19쪽
39 9화. 죄와 유체 - 4 18.04.28 364 0 10쪽
38 9화. 죄와 유체 - 3 18.04.27 370 0 16쪽
37 9화. 죄와 유체 - 2 18.04.27 369 0 16쪽
36 9화. 죄와 유체 - 1 18.04.26 366 0 11쪽
35 8화. 악마의 눈물 - 5, After 18.04.26 369 0 21쪽
34 8화. 악마의 눈물 - 4 18.04.25 369 0 17쪽
33 8화. 악마의 눈물 - 3 18.04.25 367 0 17쪽
32 8화. 악마의 눈물 - 2 18.04.24 377 0 21쪽
31 8화. 악마의 눈물 - 1 18.04.24 368 0 7쪽
30 7화. 서열전쟁 - 6, After 18.04.23 367 1 14쪽
29 7화. 서열전쟁 - 5 18.04.23 371 0 8쪽
28 7화. 서열전쟁 - 4 18.04.22 372 0 9쪽
27 7화. 서열전쟁 - 3 18.04.22 366 0 11쪽
26 7화. 서열전쟁 - 2 18.04.21 359 0 17쪽
25 7화. 서열전쟁 - 1 18.04.21 372 0 10쪽
24 6화. 에스테 회의 - 3, After 18.04.20 383 0 13쪽
23 6화. 에스테 회의 - 2 18.04.19 389 0 23쪽
22 6화. 에스테 회의 - 1 18.04.19 396 0 12쪽
» 5화. 로제니악 - 3, After 18.04.18 391 1 23쪽
20 5화. 로제니악 - 2 18.04.18 38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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