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야빵야?! 너 감옥!(3)
다음 날.
향은 퀭한 눈으로 밤새 붓을 놀리느라 저릿저릿한 팔을 부여잡고 옥에서 벗어났다.
“으어 죽겠다!”
너무 졸리고 피곤하고 힘들고 지쳤다.
그럼에도 아늑한 이불이 있는 동궁으로 향하지 않았다.
향이 향한 곳은 바로 대장간!
비장한 표정의 장영실과 야장들이 향을 맞이했다.
“준비됐나?”
“예 저하. 선반 위에 총열을 올려두었사옵니다.”
장영실이 가리킨 방향에 거대한 탁자 2개가 있었다.
그 중 단 하나의 탁자에만 총열이 고정되어 있었다.
끄트머리에 타륜처럼 생긴 바퀴가 달린 탁자였다.
탁자와 맞닿은 바퀴의 안쪽에는 작고 길쭉한 드릴이 붙어있었다.
드릴에는 기름이 눅진눅진하게 묻어 있었다.
“끼우게.”
향의 지시에 따라 야장들이 탁자 가운데 고정되어 있던 총열을 바퀴에 달린 드릴과 합쳤다.
“돌리게.”
야장 하나가 바퀴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 열심히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퀴에 끼워진 드릴이 맹렬히 회전하며 총열의 안쪽을 깎아내기 시작했다.
“오오!”
야장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저리 쉽게 구멍이 뚫리면 찬혈(鑽穴)한다고 개고생을 할 필요가 없겠는데?”
“이러면 승자총 하나에 백미 한 섬이면 족하지!”
야장들이 와글와글 떠드는 사이에 총강을 다듬는 찬혈 작업이 끝났다.
“좋아!”
향의 외침과 함께 허공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위업을 달성하셨습니다!
위업내용: 수동식 선반(旋盤)의 발명
위업포인트 10을 획득했습니다.
‘아자!’
속으로 한 번 더 환호한 뒤 장영실을 불렀다.
“다음 작업을 시작하지.”
노야장이 선반에서 총열을 분리해 옆 탁자에 꽂고 고정시켰다.
강선(腔線)을 깎는 강선 선반이었다.
원래 향이 선반을 만든 이유는 선반으로 강선을 파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다큐에서 봤던 수동식 선반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과정에서 향은 자신이 봤던 다큐에서 찬혈에 쓰는 선반과 강선을 파는데 쓰는 선반이 달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단순한 선반은 만들 수 있어도 강선 선반은 만들 지식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결국 향은 강선을 파기 위해 100포인트를 내고 설계도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강선(腔線).
총강 내부에 나선형으로 파인 홈을 말한다.
별것 없어 보이지만 강선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깎게.”
향의 명에 야장이 인상을 쓰며 강선 선반에 붙은 손잡이를 당겼다.
그러자 느리지만 확실하게 선반이 총열의 쇠를 깎아내기 시작했다.
십수 분이 흐르자 지친 야장이 땀을 삐질 흘렸다.
“교대!”
대장간의 모든 야장이 번갈아 가며 강선을 계속 돌렸다.
두 시진(4시간) 만에 총열의 강선이 모두 파였다.
노야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대장간의 모든 야장이 달려들었으니 망정이지 평시처럼 둘이 작업하려 했다면 육칠일(6~7일)은 걸렸을 것이옵니다.”
장영실이 우려섞인 얼굴로 물었다.
“아무래도 단가가 크게 오를 것 같은데.. 그만한 가치가 있겠사옵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게.”
장영실의 우려를 일축하며 총강을 살폈다.
총강에 나선형의 강선이 아주 예쁘게 파였다.
위업을 달성하였습니다!
위업 내용: 강선 선반의 발명, 강선의 발견
위업포인트 200을 획득했습니다.
향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완벽해! 노야장-!”
“예, 저하.”
“이 총열을 가지고 승자총을 완성해두게. 내가 따로 달라고 한 가늠쇠와 가늠자도 꼭 달고! 나는 전하께 이 사실을 알리겠네.”
“저, 전하께 말입니까.”
노야장이 크게 당황했다.
새 총을 만들어 대간들에게 한 방 먹여준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임금이라니..
사격 시험을 보고 임금이 격노한 지 하루 만에 총 쏘는 걸 보여주겠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제정신으로 나올 발상은 아니었다.
“괜찮아! 이 총을 보시면 아바마마의 분노도 다 사그라들거야.”
‘아니, 홈을 판 게 전부이거늘 뭐가 얼마나 바뀌었다고.’
노야장으로서는 쉬이 납득하기 어려운 대답이었다.
하지만 따져 묻지는 않았다. 향의 행동에 적응한 것이다.
‘그래도 세자 저하께서 이리 말씀하시고 결과가 나빴던 적은 없으니까..’
그건 장영실도 마찬가지였기에 세자의 말에 반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불안한 눈빛으로 강녕전으로 향하는 세자를 바라볼 뿐.
******
“더 좋은 총이 만들어졌으니 그것을 확인해달라?”
세종의 두툼한 턱살이 부들부들 떨렸다.
“예. 그 수준이 이전의 총통과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오니 친견하여 주시기를 간청하옵니다.”
세종이 양손으로 서안을 쥐었다. 두꺼비만 한 양손이 부들부들 떨릴 때마다 서안이 요동쳤다.
“옥에서 풀려나자마자 문안도 없이 대장간에서 죽치고 있다더니 이제야 와서 한다는 말이 사격 시험을 봐달라?”
세종이 서안을 집어던졌다.
“네놈이 정녕 죽고 싶은 것이냐!”
날아간 서안이 기둥에 부딪혀 두 동강 났다. 궁인들이 그 모습을 보고 벌벌 떨었다.
하지만 향은 달랐다.
향은 격분한 세종의 눈동자를 맑고 또렷한 눈으로 마주 보았다.
“아니옵니다. 소자는 아바마마께 조선의 미래를 보여드리려 하옵니다.”
‘허.. 눈빛이 형형(炯炯)한 이들을 숱하게 보았으나, 이리 당당한 눈빛은 처음이구나.’
상황에 맞지 않은 당당함에서 어떤 광기(狂氣)마저 느껴졌다.
세종은 문득 자신의 분노가 부질없게 느껴졌다.
‘이리 당당한데 무언가 믿는 게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화가 절로 가라앉았다.
“그래, 어디 한번 보자!”
세종이 벌떡 일어나 향의 앞에 섰다.
“네가 말한 대로 조선의 미래를 바꿀 만한 총인지 네 두 눈으로 똑똑히 보마.”
세종이 쪼그려 앉았다.
그리곤 향의 양어깨에 손을 올린 뒤 향을 노려봤다.
“만약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 망할 대장간을 내 손으로 다 부술 테니 그리 알라!”
향의 이마에서 한줄기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
향은 세종을 이끌고 대장간 옆 사격장으로 왔다.
세종이 무표정으로 사수가 쥔 총을 흘긋 바라보았다.
“승자총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근본적으로는 그렇사옵니다. 승자총의 안에 선(線)을 팠을 뿐이옵니다.”
“고작 그걸 하고 새로운 총이라 부른 것이냐?”
“그 홈을 파는 게 총을 하나 새로 만드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오며, 총의 성능을 상상 이상으로 올려주옵니다.”
“알겠다.”
세종이 되묻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저 망할 대장간은 오늘로 끝이다!’
세종은 향에게는 친견을 하겠다 이야기했으나, 속으로는 빌어먹을 대장간을 때려 부수겠다 다짐하고 있었다.
‘내가 죽기 전에는 이놈이 화약의 화자도 꺼내지 못하게 싹을 잘라 내리라!’
그리 생각하는 와중에 장영실이 세종의 곁으로 왔다.
“전하, 발포 준비가 완료되었사옵니다.”
세종의 눈이 꿈틀거렸다.
“거리가 먼듯한데?”
“100보이옵니다.”
“100보? 이 총이 100보를 나간다는 말이냐.”
“저하께서는 그리 판단하셨습니다.”
“판단했다?”
“아직 쏘아보지는 않았습니다.”
세종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얼굴을 굳혔다.
‘이놈이 아무 생각 없이 이 자리를 만들지는 않았겠지. 갑주나 승자총처럼 확신이 있으렷다!’
그렇다면 총알이 100보를 날아갈 가능성이 컸다.
세종의 눈이 잘게 떨렸다.
“과연..”
향의 자신감이 이해가 갔다.
하지만 확인이 남았다.
세종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명을 내렸다.
“쏴보거라.”
“연달아 2개의 과녁을 쏘겠사옵니다.”
“그리하라.”
사수가 세종에게 군례를 올린 뒤 사격 자세를 잡았다.
탕-!
사격을 마친 사수가 빠르게 총강을 닦고, 새 탄환을 재었다.
사수가 탄환과 화약을 총강에 넣은 뒤 장전봉으로 있는 힘껏 두들겼다.
깡-! 깡-!
거의 1분을 두들긴 뒤에야 탄이 제자리에 안착했다.
사수가 점화약을 붓고 다시 발포했다.
탕-!
잠시 뒤, 야장들이 두 과녁을 가져왔다.
각기 중갑과 두정갑이었다.
중갑에는 홈이 파여있었고 두정갑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150보를 날아가 갑옷을 관통한다라.. 원리가 무엇이냐?”
세종의 질문의 향이 고심에 빠졌다.
강선을 썼을 때 총알이 더 멀리, 더 정확하게 날아간다는 것은 회전력 때문이다.
총알은 화약의 힘을 등에 업고 직선으로 날아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총구를 벗어나면 강력한 저항에 마주하게 된다.
세계 최고의 100m 달리기 선수라고 해도 사람이 바글바글한 야시장에서는 제 속도를 낼 수 없는 것처럼, 공기에 있는 여러 분자와 충돌하며 속도가 느려지고 진행 방향이 어긋나게 된다.
그래서 강선이 없는 소위 ‘활강’ 총은 50m만 날아가도 공기 저항에 부딪힌 총알이 엉뚱한 곳으로 튄다.
그런데 강선총은 다르다.
나선형인 강선을 따라 총알이 빙빙 돌면서 회전력이 생긴다.
총알이 하나의 드릴이 돼서 공기를 꿰뚫고 지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강선총은 같은 화약을 써도 몇 배나 더 멀리, 더 정확히 날아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걸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 잠시 고민하던 향이 힘겹게 답을 내놨다.
“왜인들은 활을 쏠 때 활시위를 그냥 당깁니다. 반면에..”
향이 오른손을 들어 열쇠를 돌리는 시늉을 했다.
“아조의 활은 화살을 날릴 때 반드시 활시위를 비틀어 쏩니다. 이유는 모르나 더 멀리, 정확히 날아가기 때문이지요. 그 원리를 총에 적용해보았습니다.”
“흐음. 그럴싸한 생각이다. 총도 훌륭해. 하지만 문제가 있다.”
세종이 사수를 가리켰다.
“저 군졸(軍卒)이 총을 되쏠 때, 탄을 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더구나. 거의 승자총의 2~3배는 되는 것 같은데.”
“강선 때문에 총알과 총강이 제대로 맞물리지 않아서 힘을 줘야 총알이 들어가기 때문이옵니다.”
“그래서야 멀리 날아간들 큰 의미가 없다.”
세종의 말이 옳았다.
100보는 대략 120m. 무구를 갖추고 뛴다고 해도 30초면 도착할 거리였다.
총알을 장전하는데 1분 이상이 걸린다면 한 발 쏘고 다음 탄을 장전할 무렵이면 적들이 코앞에 온다는 뜻이었다.
이래서야 2배 멀리 나간들 아무 의미가 없었다.
“해법이 있사옵니다.”
향이 당당한 표정으로 품에서 총알을 꺼냈다.
“이게 무엇이냐.”
“강선총에 맞게 새로 주조한 탄환이옵니다.”
“머리는 고깔 같고, 뒤는 승자총의 뒤를 막을 때 쓰는 나사의 나사산처럼 생겼구나.”
“이 탄을 쓰면 아바마마께서 지적하신 문제점이 고쳐집니다.”
세종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디 한번 쏴보거라.”
“예.”
향이 장영실에게 다가가 속닥였다.
장영실의 눈이 땡그래졌다.
“정말 그리하옵니까?”
“형 못 믿어?”
“아니 왜 저하가 제 형..”
“아잇.. 그냥 쏴!”
“예..”
장영실이 야장들에게 달려가 뭐라뭐라 지시를 내렸다.
야장들도 술렁이다가 장영실의 호통에 과녁을 들고 멀리 사라졌다.
“음?”
세종도 이변을 눈치챘다.
“거리가 멀어졌구나. 150보 정도인 것 같은데 맞느냐?”
“예, 이 탄은 총알이 더 잘 돌도록 만들었기에 더 멀리, 더 정확하게 날아갈 수 있사옵니다.”
“그건 봐야 알겠지.”
세종이 사수에게 턱짓했다.
갑자기 멀어진 과녁에 당황하던 사수가 황급히 총을 들었다.
“진정하고, 과녁이 머니 하나마다 2발씩 연달아 쏘거라!”
향의 다독임을 들은 사수가 향에게 차분히 군례를 올린 뒤 호흡을 가다듬고는 장전을 시작했다.
이전과 달리 장전봉을 서너 번 대강 두드린 것만으로 장전이 끝났다.
자신감을 회복한 사수가 연달아 사격을 이어갔다.
탕-! 탕-! 탕-! 탕-!
- 작가의말
1. 보링머신 설명
ETHW, Barrel Boring
2.보링머신 영상
(Youtube) Tyler Weymouth, ‘Gunsmith of Williamsburg (1969)’ 영상을 3분 48초부터 보십시오.
3. 강선 선반 영상
(Youtube) MenMachineAndCarbine, ‘Rifling Machine Demonstration’
4. 국궁을 쏠 때는 깍지라는 엄지 보호대를 끼고 화살을 비틀어 쏩니다. 화살에 회전을 먹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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