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맞다이로 들어와!(1)
“응?”
한 아이가 대장간의 문을 박차고 와다다 뛰어 들어왔다.
어린아이다운 모습이 참 귀여웠다.
아이가 몸을 날려 향의 품에 안착했다.
향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아직 군호를 받지는 못한 향의 어린 동생 이유(李瑈), 훗날의 수양대군이었다.
“우리 귀여운 유가 왔구나! 무슨 일로 왔느냐?”
이유가 어린아이다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차랑 선반이랑.. 그리고 망치를 보러 왔사옵니다!”
“망치?”
“예. 수차에 달린 망치요. 꽈강하고 갑옷을 만든다 들었사옵니다!”
이유가 팔을 붕붕 휘둘러 망치를 내려치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이 마치 철퇴를 휘두르는 것 같았다.
“이야압!”
향이 허허롭게 웃었다.
“허허, 나중에 크면 호랑이 머리도 깨부수겠구나!”
향의 칭찬에 신이 난 이유가 방방 뛰다가 멀리 보이는 수차를 보고 외쳤다.
“형님, 형님! 수차를 보러 가도 되겠습니까?!”
“그래, 얼마든지 보거라. 단 조심하고.”
향이 뒷말을 더하기 전에 이유가 대장간의 수차를 향해 오도도 달려갔다.
‘저리 귀여운 녀석이 역적이 된다니. 세상일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동생은 잘못이 없어 보였다.
“이게 다 친구를 잘못 만나서 그런 거야! 한량 같은 놈들을 만나고 다니니까 애가 비뚤어지지!”
원래 우리 애는 잘못을 하지 않는다.
아무튼 이유는 잘못이 없다.
그럼 해법은 뭐다?
“나쁜 친구들과 놀지 못하게 해야겠어!”
한명회나 홍달손, 권람 같은 계유정난의 주범들과 이유를 멀리 떨어트려 놓는다면 이유가 사특한 생각에 빠지지 않으리라.
문제는 어떻게다.
‘대군이 돼서 사가를 얻게 되면 내가 어떻게 통제할 방법이 없는데..’
귀여운 동생을 역적으로 몰아 죽이기에는 향의 마음은 그리 모질지 못했다.
최해산은 뭐냐고?
그거야 그놈 잘못이지!
게다가 고민거리가 하나 더 있었다.
‘한명회를 멀리 떨어트려 놨는데 비슷한 놈이 달라붙으면 어떡하지?’
그럼 말짱 도루묵이다.
‘뭔가 쌈박한 방법이 없을까..’
고민이었다.
바로 그때.
향의 옆에서 향이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던 장영실에게 장인 하나가 다가와 귓속말을 건넸다.
“저하!”
“아잇, 깜짝이야!”
화들짝 놀란 향이 짜증을 냈다.
“뭔데!”
“단양에서 하얀 돌이 왔사옵니다! 이번엔 조약돌이 아니라, 암반에서 캔 돌이라 하옵니다!”
향이 벌떡 일어났다.
“정말인가?”
형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예.”
“좋아, 한번 가보지!”
대장간 한편에 마련된 야적장(野積場)으로 가자 무수히 많은 검고 하얀 돌이 쌓여 있었다.
향이 돌무더기를 지나쳐 새로 들어온 돌을 분류하는 분류장으로 갔다.
“오셨사옵니까.”
“단양에서 올라온 돌을 준비해뒀사옵니다. 확실히 잡석은 아닌 듯 하옵니다.”
장인 몇이 향을 보고 인사했다.
그들의 앞에 놓인 탁자에 새하얀 돌 몇 개가 놓여 있었다.
향이 다가가 돌을 만졌다.
‘치지야. 이 돌이 뭐야?’
-백운석 81% 외 잡석입니다.
“예이!”
향이 환호하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장영실이 상기된 낯빛으로 물었다.
“찾으시던 돌이 맞는지요?”
“맞네. 이 돌이 있다면 도가니의 강도를 올릴 수 있을 거야!”
“그럼 단양의 지군사에게 파발을 보내 돌을 더 캐어 올리라 하겠습니다.”
“그래. 참, 지군사에게 보낼 글은 내가 쓰지. 그에게도 백미 50섬을 건네야 하니까.”
“예.”
“후후.. 기다려라 최문손!”
******
백운석의 운반은 매우 신속하게 이뤄졌다.
당장 쓸 분량만 파발마에 실어 빠르게 운반한 것이다.
그 결과, 향은 세종에게 시연을 보이기로 약속한 날의 하루 전에 모든 준비를 마치는 데 성공했다.
“좋아, 이제 최문손의 사직소만 보면 되겠군!”
기세등등해진 향이 호기롭게 외쳤다.
다음 날.
낙엽이 지기 시작한 대장간의 후원에 신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향이 그 모습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수백은 넘겠군. 보아하니 6조의 참하관들까지 싹 몰려온 모양인데?”
장영실이 우려 섞인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래도 괜찮은가 모르겠사옵니다.”
“왜 그래?”
“강철을 대량으로 만드는 기술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사옵니다. 이리 많은 사람 앞에서 공개해도 될런지요.”
“왜, 최문손 같은 작자가 명나라에 말해 기술이라도 훔쳐갈까 겁나나?”
장영실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그렇사옵니다. 대국이 요구한다면, 아조에서 견딜 수 있겠사옵니까. 만산군의 일이 있잖사옵니까.”
만산군(漫散軍).
고려 시절 홍건적에게 끌려가 요동에 살게 된 이들을 이른다.
1399년, 당시 연왕이던 영락제가 황위를 찬탈하기 위해 일으킨 반란인 정난의 변이 일어났을 때, 이 만산군 수만이 조선으로 귀환했다.
조선 조정에서는 돌아온 백성들인 만산군을 환영하고 살 곳을 마련해주었다.
그런데 영락제가 황위를 찬탈하는데 성공한 뒤 이 만산군이 문제가 됐다.
조선이 강해지는 것을 경계한 영락제가 ‘조선 길들이기’ 차원에서 만산군을 돌려보낼 것을 요구한 것이다.
당연히 조선은 만산군을 돌려보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자 명나라는 요동의 관리들을 보내 만산군의 쇄환을 요구했다.
수년에 걸쳐 치열한 외교전이 벌어졌다.
결과는 조선의 패배.
명나라의 압력에 굴복한 조선은 만산군을 내어줬다.
대국이 요구하면 따라야 하는 소국의 비애.
이게 세간의 인식이었다.
향의 생각은 달랐다.
“그래 선대왕께서는 명의 압박에 백성을 내어줘야 했지. 여전히 명은 강하고. 하지만..”
향이 손가락 세 개를 펴보였다.
“세 가지 이유 때문에 명은 조선을 치지 못하고, 강한 요구를 하지도 못하네.”
“그게 무엇인지요?”
향이 검지를 들어 위를 가리켰다.
“첫째, 지금의 명나라는 만산군 사건이 일어났을 때와 달리 우리와 싸울 여유가 없네. 황제는 즉위한 이래 몽고(蒙古)의 적을 상대로 네 번이나 원정을 벌였어. 그러나 수십만 대군을 동원했음에도 몽고의 위협은 여전하고 국용만 낭비했지.”
이번엔 향의 검지가 아래로 향했다.
"남쪽의 상황도 마찬가지야. 안남을 정복하고 교지를 세웠으나, 안남의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명군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소식이 이 조선 땅까지 들리네. 북과 남에서 전쟁을 하면서 동쪽에서 새로운 전쟁을 벌이는 것은 명이라 해도 하기 힘든 일이야.”
향이 두 번째 손가락을 펼쳤다.
“둘째, 명의 신하들은 전쟁을 원치 않네. 환관을 예로 들어보지. 조선 출신 환관들은 우리 조정에게 막대한 뇌물을 받는 대가로 양국의 평화를 중재하고 있어. 그런데 전쟁이 나보게. 돈줄이 끊기는 것은 물론 조선 출신이라는 이유로 업신여김을 당할 게 뻔한데, 전쟁을 반기겠나? 아마 기를 쓰고 황제를 만류할 거네.”
장영실이 슬쩍 반론을 펼쳤다.
“환관들이야 그럴 수 있다지만 명의 신하들은 생각이 다를 수도 있는 것 아니옵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마지막 세 번째 이유 때문이라도 명의 신하들은 아조와의 싸움을 반대할 걸세.”
향의 언변에 빨려 들어간 장영실이 향에게 몸을 가까이했다.
“무엇이옵니까?”
“마지막 셋째, 그때의 조선과 지금의 조선은 완전히 다른 나라네. 만산군 문제가 불거지던 무렵의 아조는 선대왕께서 막 보위에 오르셨을 무렵으로 시국이 혼란하고 나라가 안정치 못했지.”
사실이 그랬다.
2차례의 걸친 왕자의 난 등 내부의 정치적 혼란으로 조선의 내정은 엉망이었으며 왕권이 바로 서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선대왕께서 왕권을 바로 세우시고, 내정을 든든히 다져 아조의 국세(國勢)는 크게 융성(隆盛)해졌네. 꾸준히 환관을 보내 조선을 염탐하는 명나라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 그래서 우리 조선을 우대하고 있지 않나.”
장영실이 향의 말에 욱해 반론을 펼쳤다.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환관 황엄과 윤봉이 부리는 패악에 여러 백성이 고통을 받은 게 수년이옵니다. 명이 우리를 후대한다면 어찌 이런 일을 막지 않겠사옵니까?”
향이 냉정한 표정으로 장영실을 바라봤다.
“그래서 조선이 손해를 봤나.”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하지 못하겠사옵니다.”
“흐음, 간단히 설명해주지. 지금 아조는 1년에 세 번 조공을 바치고 있네. 명에 조공을 바치는 여러 나라들이 누리지 못하는 엄청난 특혜지”
“그것이.. 왜 특혜인지요..?”
향이 비죽 웃었다.
“이런, 기술에는 해박하나 국무에는 이해가 부족하군. 명에 조공을 바칠 때, 명은 우리가 바친 조공의 가치에 몇 배에 달하는 답례품을 내줘야 하네. 그래야 위신이 산다고 생각하는 족속들이기 때문이지.”
“그 정도이옵니까?”
“그래. 여기서 얻는 이익에 비하면 환관 나부랭이들이 뜯어가는 뇌물은 조족지혈에 불과하네.”
‘이건 미래의 아바마마도 인정하시는 사실이지.’
세종 10년, 일부 신하들이 명나라의 바치는 조공 중 상당수가 환관 윤봉의 손에 들어간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이에 세종은 ‘내가 사대의 예를 지나치게 한다고 말한다는데, 지금 명나라가 사신을 보내오고 상을 주고 하는 일이 해가 없을 정도로 예우가 없었다. 다만 우리나라는 본래 예의의 나라로서 해마다 직공의 예를 닦아, 때에 따라 조빙하면 명나라가 이를 대우하는 것이 매우 후하였다.’라고 했다.
간단히 말하면, ‘조공 바치면 손해보다 득이 훨씬 크니 딴소리 말라.’는 이야기다.
이쯤 되자 장영실도 향이 하는 이야기에 반쯤 동조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궁금한 게 있었다.
“하오나 말씀하신 대로 이득을 얻었음에도 아조는 계속 명의 요구에 따르기만 했사옵니다. 이번이라고 다르겠사옵니까?”
“명이 요구하면 결국 들어줘야 할 것이다? 그리 말하는 건가.”
“솔직히.. 그렇사옵니다.”
“그럴 일은 없을 걸세. 자네가 처음 이야기한 만산군을 예로 들어보지. 만산군의 일이 일어났을 때, 선대왕께서는 황제의 요구에 응하면서 황제의 위신을 세워줬지. 그 대가로 1년의 세 번 조공을 바칠 수 있는 권리를 얻었어. 자, 여기서 문제를 하나 내보겠네. 황제가 왜 이런 특혜를 줬다고 생각하나?”
장영실이 잠시 고심하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사옵니다.”
향이 자세를 바로하고 근엄하게 선언했다.
“조선이 두렵기 때문이네.”
“두렵다니요?”
“만산군의 일은 황제가 아조를 극히 경계해 벌인 일이네. 황제가 왜 우리를 경계했겠나? 우리가 중원에 위협이 될 만큼 강성하다 믿기 때문이네. 지난 2천 년 동안 한무제, 수양제, 당태종 등 여러 황제가 삼한을 쳤으나 결국 패해 돌아갔지. 중원 사람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어. 그런데 고작 강철의 제법을 얻겠다고 우리를 친다? 명나라 백성 중 누가 그 일에 동의하겠으며 어느 신하가 그런 일을 하자고 하겠는가.”
장영실이 조심스레 의문을 던졌다.
“그래도.. 명이 모르는 게 낫지 않사옵니까? 제법이 유출되면 손해가 막심할 것이옵니다.”
“자네는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릴 수 있나?”
“예?”
“강철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조선 팔도에서 필요한 물자를 끌어모아야 하네. 이 일을 누가 하나? 관리들이 하네. 결국 여기 있는 모두가 강철의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겠지. 믿고 일을 맡겨야 할 신하들을 속여가며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일이 아니란 말일세.”
“아..”
“물론. 모든 것을 내놓아서는 아니 될 일이지. 승자총은 신하들에게 알렸으나 강선총은 그리하지 않은 것처럼 강철 생산에 필요한 상세한 물목이나 제법은 숨길 필요가 있지.”
“이해했사옵니다. 하온데..”
향이 피식 웃었다.
“또 뭔가?”
“만약에 말이옵니다. 정말 만약에 명나라가 정말 쳐들어온다면 어찌해야..”
“싸워야지.”
갑작스레 들린 목소리에 향과 장영실의 고개가 돌아갔다.
- 작가의말
1. 세종의 대명외교
조공을 바치는 예를 극진히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세종 10년 4월의 기사에 있습니다. 얼핏보면 세종이 너무 비굴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조심스레 말한다고 여겨질 정도인데요. 하지만 이후 소설에서 다룰 여진 정복을 보면, 이는 어디까지나 실리외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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