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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평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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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1.01.16 11:18
최근연재일 :
2011.01.1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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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2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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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평범 (58)

DUMMY

새벽공기의 차가움을 즐기며 눈을 떴다.

기분상으로는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악몽은 오늘도 여지없이 날 습격했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많이잤나. 나는 혀를 차며 검을 뽑았다. 일찍 일어나 리디아가 깨기 전까지 몰래 수련을 했다. 검을 휘두를수록 검격의 정확도와 실리는 힘이 늘어갔다. 무엇보다 운동을 하면 할수록 잠시 피곤하긴 했지만 몸에 근육이 붙고 활력이 넘쳤다. 세상은 험하고 나는 약하다. 거기에 지킬 것도 있다. 그런 마음이 나를 매일같이 수련으로 밀어넣었다.


" 기본기는 슬슬 된 것 같은데. "


자기합리화을 위해 일부러 소리내어 말했다. 내가 생각해도 기본기는 완숙에 다다랐다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면 사람 머리 위에 사과를 놓고 휘둘러도 사람은 베지 않을 것 같다. 아니, 뭐 실제로 시킨다면 떨려서 사람 머리도 쪼개버릴 것 같지만...


흠흠, 어쨌거나 슬슬 그럴듯한 검술을 하나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우선 기본기를 한번씩 휘둘렀다. 내려치기 찌르기 가로베기 사선배기 올려치기까지.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속도, 원하는 힘으로 정확히 날아가 멈춘다. 검의 사이즈가 작아 검에 휘둘리는게 덜해서 좀 더 정확하게 컨트롤 할 수 있는 것 같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고 적과 싸우는 상상을 한다. 정면에서 날아드는 주먹. 지구에서도 흔히 보았듯, 양아치들은 우선 얼굴을 후려갈기고 보는 습성이 있었다. 오는 것만 알고 있다면 피하는 것은 간단. 오른손으로 후려친 주먹은 왼쪽 뺨을 노리고 날아든다. 고개를 살짝 숙여 주먹을 피하고 한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이걸로 몸 속으로 파고든 모양세가 되었다. 동시에 검을 가로로 휘두른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자세에 힘이 약해 검이 들어가다 옆구리에 박힌다. 여기서 상상은 끝났다. 어이, 거기. 주먹질하는 상대에게 칼질한다고 뭐라하지마라. 검술 연습이잖아. 검술.


어쨌거나 문제점은 확연했다. 실전이라 생각하고 적용하려고 하니 대응성이 너무 떨어졌다. 기본자세를 갖추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순간적으로 뿌려내는 검격에 힘이 실리지 못한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근육이 강해진 효과는 느끼고 있었지만 검술은 아직 실전에 써먹을 만한게 아니다.


나는 기본기를 계속 연습하면서 간간히 다양한 상황을 가정하며 문제점을 발견하고 보완해나갔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동이 훤하게 터오고 슬슬 리디아도 깨어날 때가 되었다.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 순간 피로와 수면이 한순간 물밀듯이 몰려온다. 지금이 고비.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호흡법을 펼쳤다. 금새 뜨거운 기운이 몰려들며 몸속을 청소하고 나간다. 요즘들어 기운이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져 5분 정도면 피로와 함께 빠져나가게 되었다.


자, 슬슬 지금쯤이면...


" 으음... "


졸린 눈을 비비며 리디아가 일어나겠지. 나는 피식 웃었다. 오늘도 이렇게 또 하루가 시작된다.



" 춥네. "


사실 춥다기보다는 쌀쌀한 정도였지만 테스톡 제국어에는 쌀쌀하다는 형용사가 없다. 내가 모르는 것 뿐인지도 모르겠지만... 하여튼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겨울에 접어드는지 매일매일 기온이 떨어지고 있다. 노숙을 할 수 있는 것도 이제 얼마 뿐인가... 빨리 자리를 잡아야 할텐데.


" 남자가 무슨 추위를 그렇게 타요? "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리디아가 핀잔을 줬다. 예이예이, 잘못했습니다. 호들갑스럽게 사과하면서 웃음을 흘렸다. 무심한 척 감정을 숨기려던 그녀가 여행을 거듭하며 감정표현이 풍부해지는 것을 보는건 여행의 숨은 재미다.


우리는 오늘도 걸음을 재촉했다. 벌써 리디아와 만난지도 열흘이 훌쩍 넘었다. 그녀도 이제는 노숙과 여정에 익숙해져가는지 걸음에 힘이 실렸다. 슬슬 펠타 왕국도 중간은 왔을려나. 용병대가 지나왔던 발자취를 거슬러가면서 용케도 도시 하나 없는 길을 찾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중간에 시골마을이 여럿 보였지만 그럴듯한 큰 마을이나 도시는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한반도를 관통하면서 대도시를 모조리 피해가는 여정이라 생각하면 비슷할 것이다. 아마 대형 용병대가 주변에 얼쩡거리면 도시들이 과민반응을 할까봐 일부러 피해간 것 같다.


도시에 정착하려는 내 입장에선 그래서야 이야기가 되지 않지만 펠타 왕국에 정착할 생각은 없었기에 여전히 용병대의 길을 따라갔다. 리디아의 말에 따르면 펠타 왕국을 벗어나면 한동안 자유도시들만 줄창 나온다고 한다. 그런 곳의 하나를 골라 정착하면 되겠지.


용병대가 주둔한 도시도 그 근처일 것이다. 그러고보니 펠타에서 나갈때는 국경을 지났는데 들어올때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럼 펠타 왕국 안의 도시일지도 모르겠는데...


슬슬 이쯤에서 길을 바꿀까 말까 생각할 무렵, 말없이 걷기만 하던 우리들을 큰 마을이 맞아주었다.


' 어라? 이런 마을 있었던가? '


북서부로 접어들기 전에는 마을에서 묵었던 기억이 없는데... 길을 잘못들었나? 나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길은 그 마을을 관통해 이어지고 있었으므로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물도 슬슬 다 떨어졌고... 겸사겸사 들리기로 할까. 어차피 엇나가기로 작정한 길이다. 빗겨나갔다면 그건 그거대로 괜찮겠지. 어쨌거나 적당한 도시에만 정착하면 되니까.


" 꽤나 큰 마을인데. 저기서 이것저것 좀 사서가자. "


식량은 아직 괜찮은 편이었지만 물은 떨어졌고 옷도 슬슬 갈아입었으면 한다. 나를 죽여야할 마법사에서 이상한 놈으로 격하시켜주는 신전의 표식도 슬슬 낡아서 불안하니 새걸로 받았으면 하고. 여기는 옷 팔려나.


옷장사는 결코 흔한 장사가 아니다. 시골에는 모두 가죽, 혹 여유 있는 집은 천으로 집에서 직접 바느질해 만든 옷을 입는다. 당연히 팔릴 리가 없다. 옛날 한국에서는 그나마 삯바느질 거리라도 많았던 모양이지만 이곳의 시골은 영주를 빼면 옷을 사입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귀족 나리들이 이름없는 농민 나부랭이가 지은 옷을 입을 리 없잖은가?


그런 이유로 시골에는 옷을 팔지 않았다.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으니까 파는 사람이 있을 리 있나. 보통 옷가게는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리디아도 집이 어려워지자 옷들을 한줌 식량과 바꿨기에 집에서 나올때 가져올 옷이 없었다. 덕분에 나나 리디아나 단벌신세. 어디 개울이라도 만나면 마음같아선 첨벙 뛰어들어 물놀이를 즐기고 싶지만 갈아입을게 없으니 머리나 얼굴, 손발을 씻는 정도에 그쳤다. 아직 크게 안춥답시고 젖은 옷을 입고 다녔다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동상 예약이다. 그나마 겨울이라서 냄새는 덜한 편이었다. 여름에 여행을 나섰으면 아마 지옥이 연출되었겠지.


이런 이유로 우리는 여벌 옷이 필요했다. 나는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마을로 접어들었다.


' 에라이... '


그리고 실망했다. 대략 130가구는 있을 법한 제법 큰 마을이었지만 옷집은 없었다. 조금 큰 시골마을 레벨인가. 나는 조금 실망했지만 마을 중심가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여관을 보고 기운을 차렸다. 이 세계에 와서 여관은 정말 처음이다. 아직 점심때 정도였지만 저기 제대로 된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가 있다고 생각하자 피로와 허기가 몰려오는 것 같았다.


" 들렀다갈까? "


리디아의 얼굴이 묘하게 변한건 기분 탓이리라. 그녀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지만 딱히 반대도 하지 않았으므로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후회했다.


" 뭐야, 외지인이잖아? 아직 대낮인데, 벌써 퍼질러 자기라도 할 셈이오? "


여관 내부는 심히 절망적이었다. 문 안에 또 문이 있었고 문 곁에 여관주인의 눈이 겨우 보이는 가로로 긴 직사각형 모양의 구멍이 있었다. 그 사이로 나 귀찮아 죽겠습니다, 하는 듯한 여관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내 뒤로 들어온 리디아를 발견한 여관주인의 눈이 불쾌함으로 물든 것 같은데, 기분 탓일까?


" 흥, 그런 볼일이구만. 들어오쇼. "


문이 덜컥 열리며 여관 내부로 통하는 복도가 들어났다. 들어가자 여관주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주인의 방은 복도쪽으로는 카운터처럼 꾸며져 있어서 어딘가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 3실러요. "


몇인실인지, 얼마나 묵을건지, 식사는 할건지 말건지에 대한 물음은 일언반구도 없이 가격부터 대뜸 불렀다. 나는 불쾌감을 느꼈지만 그보다 3실러가 얼마정도인지 몰라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저번에 보니까 석비 하나 세우는데 은화 하나 들었었지. 아무리 똥값이라지만 집을 팔고도 은화는 많이 받지 못했다. 나는 그걸 기억하고 은화 하나를 내밀었다. 잔돈이 없으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은화를 보던 주인의 얼굴이 묘하게 변하더니 갑자기 버럭 화를 내는 것이었다.


" 허어, 이사람보게. 이건 또 어디 돈이오? 보아하니 가짜는 아닌것 같고 외국 돈 같은데 여기서 쓰려면 환전을 해야할 것 아니오. "


그제야 나는 아차 싶었다. 한국에서 여관비로 달러낸 꼴이다.


" 실례했습니다. " 하고 은화를 도로 가져가려는데 주인이 손을 막았다.


" 외지에서 온 사람이라 물정을 잘 모르는 모양이니 내 이번 한번은 받아주겠소. 다음부터는 제대로 우리 돈을 내시구려. "


그러면서 은화를 주머니에 집어넣는 여관주인. 이 세상이 험하다는걸 깨달은 내 머릿속에 의구심이 솟아올랐다. 이렇게 순순히 돈을 받아준다는건...


' 이새끼, 지금 사기치고 있구나! '


2만원짜리 여관비로 100유로를 받아챙기는 꼴이 틀림없다! 나는 생각을 마치고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했다.


" 아뇨, 그냥 환전받아서 다음에 오겠습니다. 돈은 돌려주시지요. "


" 허허, 이 사람이 괜찮다고 하지 않소이까. 그냥 들어가 편히 쉬시오. "


말로해서 돌려줄 생각은 전혀 없나보다. 애써 사람좋은 척 넘어가려는 태도에서 수상함이 물씬 풍긴다. 나는 주저없이 검을 뽑아들어 놈의 목에 겨눴다.


" 이, 이게 무슨 짓이오!? "


" 이 새꺄! 내가 등신으로 보이냐? 나도 용병대서 굴러먹으면서 단맛쓴맛 다 본 놈이야. 어디서 사기를 치려고 해? "


물론 뻥이다. 용병대에 종군하긴 했지만 정작 제대로 된 전투는 한번도 안했고 쓴맛은 봤지만 단맛은 못봤다. 뭐, 어쨌거나 용병이란 직업의 평판이 영 좋지 않은건 사실인지 - 말렉을 예를 봐도 용병이란 작자들이 얼마나 제정신이 아닌지 알 수 있다 - 여관주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 얼굴이 흡사 뇌물수수를 들킨 국회의원 같아서 내 짐작이 맞았음을 증명해주었다. 나는 겁을 주고 돈을 돌려받고 끝낼 셈이었는데 놈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여, 여기는 영주님이 직접 경영하는 곳이오! 이곳에서 소란을 피

우면...! "


젠장, 영주 직영점이었어? 나는 속으로 뜨끔하면서도 겉으로는 냉기를 폴폴 풍기며 칼끝을 더욱 들이댔다.


" 아, 그러셔? 그 영주나리에게 연락이 들어가는게 빠를까 아니면 네 목에 구멍나는게 빠를까? 마음대로 선택하라고. 영주나리 귀에 연락이 들어갔을때쯤 난 이 나라에 없을 테니까. "


이새끼를 그냥 여기서 죽여버릴까? 살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이 세계지만 영주 직영점이라면 문제는 다르다. 지금 여기서 놔주더라도 이놈은 틀림없이 영주에게 꼬지를테고 나처럼 인상적인 모습의 용의자를 놓칠 리 없다. 일단 잡혀가면 내가 죄가 있건없건 상관없이 작살을 내놓을테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뒤에 있는 리디아가 마음에 걸렸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얼굴이 파래지기 시작한 그녀를 보자 살심이 솟아올랐다. 이대로 돈만 받고 가버리면 나는 물론이고 리디아도 도매금으로 잡혀갈 공산이 크다. 이놈은 보나마나 나와 같이있던 여자애를 잊지 않고 영주에게 일러바칠테니까.


어쩔까? 마음속에 갈등이 솟아올랐다. 기왕 쫒길거라면 이놈을 죽여 시간을 벌어두는게 좋다. 지금 여관에 목격자는 없다. 아마 낮이라 아무도 없는게 아닐까? 이 정도 소란을 피웠으면 누군가는 나와봐야 정상인데 아무 반응도 없다. 지금이라면...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데 여관주인의 필사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 제, 제발! 영주님에게 말하지 않을테니 목숨만 살려주시오. 자, 여기 돈도 돌려드리겠습니다. "


벌벌 떨면서 은화를 올려놓는 여관주인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 말과 달리 눈깔은 복수심으로 충만한데다 잘 보니까 얼굴이 시뻘건게 화난거 확실하다. 이새끼, 100% 뒤에 해코지한다. 나 혼자라면 모르겠지만 뒤에 있는 리디아까지 데리고 도주극이라...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무심한 칼날이 여관주인의 목을 꿰뚫는다. 단발마의 비명은 없다. 꺽꺽거리는 소리만 몇 번 들리더니 조용해진다. 멀리서 찌른 것이라 옷까지 피는 튀지 않았다. 살인을 했는데도 가슴은 차분하다.


리디아가 참상을 보고 놀랐지만 소리를 지르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나는 내 은화는 물론이고 카운터에 있던 돈 중 잔돈 약간을 챙기고 밖으로 도주하는 대신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여관 안에 인적은 없었다. 설마하니 이 큰 여관을 혼자 경영하진 않을테고 고용인이 있을텐데 아직 출근하지 않았는 모양인지 조용하기만 했다. 객실을 지나니 물을 담아둔 곳이 있었다. 창문을 보니 뒷켠에 우물이 있다. 시체를 저기다 던져버릴까. 하고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대신 물통을 가득 체웠다. 이것으로 당분간 물 걱정은 없다. 가죽부대를 가방 안에 넣고나니 여관이라면 어딘가 옷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 하다못해 그 머저리가 입을 옷이라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방들을 뒤졌다. 잠시 뒤 낡은 가죽옷 한벌을 찾을 수 있었지만 너무 상해서 입고 다닐 물건은 못되었다. 아마 걸래로라도 쓰는게 아닐까. 나는 한숨을 쉬고 슬슬 빠져나갈려다가 여관의 침대보를 보았다. 혹시 노숙할때 쓸 수 없을까 싶어서 살펴봤더니 더럽다. 많이. 천 속에 짚을 체워넣은 침대는 감촉도 별로고 오물로 얼룩진 침대보는 냄새가 나서 자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벼룩이나 튀어나오지 않으면 다행이다. 방이라고 한들 길쭉한 복도에 칸막이를 세워놓고 입구에 문 같지도 않은 허리까지밖에 안오는 나무문을 달아놓고 안에 침대를 갖다놓았을 뿐이다. 나는 앞으로 절대 여관은 쓰지 말자고 다짐하며 당당하게 현관을 나섰다. 마침 일이 되려는지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당당하게 대로를 관통해 마을을 빠져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았지만 누구하나 제지하지 않는다. 끝이다. 영주가 나중에 길길이 날뛰겠지만 목격자도 없고 용의자도 없다. cctv가 있는것도 아니니 누구도 진범을 찾지 못할 것이다. 생각할수록 잘 죽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죽이고도 잘 죽였다니. 나는 가슴 한켠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어쩐지 우스워서 그만 실소하고 말았다.


" 왜... 죽였어요? "


문득 뒤를 돌아보니 창백한 얼굴로 리디아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떨기까지 한다. 하긴,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눈앞에서 라이브로 보여주다니. 못할 짓을 했다.


" 미안, 놀랬지? "


안심시켜주려고 웃어보였더니 떨림이 더욱 심해졌다. 그녀는 이제 발작하듯 소리쳤다.


" 사람을 죽였는데 왜 그렇게 태연해요!? "


소리가 너무 커서 가슴이 철렁했다. 마을에서는 제법 떨어졌지만 누군가 귀 좋은 놈이라면 들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주변에 인기척은 없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리디아를 진정시켰다.


" 진정해. 죽기 싫어서 죽인거니까. "


" 뭐가요? 어디가 목숨이 위험했는데요!? 물론 사기친건 괘씸하지만 고작 그런 일로 사람을 죽이다니, 믿을 수가 없어. 당신들 용병의 머릿속은 대체 어떻게 되있는건가요!? "


씩씩거리는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여관주인의 죽음에서 가족들의 죽음을 겹쳐본 것일까. 나는 차분차분 상황을 설명하며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리디아는 아예 듣지도 않고 신경질을 냈다. 마침내 나도 답답해져서 그만 소리치고 말았다.


" 그럼 네가 쫒기기라도 해야 한단 말이야!? 그 새끼 살아있었으면 틀림없이 영주한테 찔렀어! 영주가 자기 영역에서 사고친걸 그냥 두고 넘어갈거라 생각하는건 아니겠지? 그래, 내가 쫒기는 건 좋아. 여관에 들어가기로 한건 나고 사고 친 것도 나니까 도망가다 잡혀죽어도 그러려니 할 수 있어. 그런데 넌 그저 내 곁에 있었다는 죄만으로 잡히면 나랑 세트로 죽어. 그래서 죽였어. 쓰래기 하나 죽이고 널 빼내면 싼 값이지. 설사 뒤에 영주가 날 찾아낸다고 해도 넌 상관없는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이해했어? 이젠 내가 생각없이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가 아니라는걸 알겠지. 그러니까 이제 이 이야기는 그만해!"


리디아의 입이 다물어졌다. 나도 다시 말하는 일은 없었다.


우리들의 여정은 그렇게 조용하게 이어졌다. 나는 내 호기심과 애꿏은 펠타 왕국을 마음속으로 욕하며 걸었다. 악몽에 나올 놈이 하나 늘겠군. 젠장, 가슴이 답답하다. 사람을 죽였는데 따라오는 감정이 고작 그 정도. 이제 겨우 두번짼데 벌써 익숙해지는걸까. 역시 이건 정상은 아니겠지. 오늘따라 집에 가고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미친 세계에서 살고있자니 나도 점점 미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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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내용의 괴리가 이제 슬슬 수습이 불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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