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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평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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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1.01.16 11:18
최근연재일 :
2011.01.1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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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2
글자수 :
816,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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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02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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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 (32)

DUMMY

대한민국 고등학생, 대학생 남아라면 누구나 군대에 대해 한번쯤 걱정해볼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고등학교 끝자락으로 달려갈 무렵 군대에 대한 정보도 슬슬 귀담아두기 시작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 위협적인 - 훈련은 단연 화생방이고 큰 소리를 싫어하는 탓에 수류탄 투척 훈련도 조금 걱정했었고 마지막으로 완전무장 행군을 걱정했었다. 유격이라던가 혹한기도 물론 걱정스럽긴 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겪어보지 않아서 그런지 위의 세개보다 임팩트가 떨어졌던 것이다.


물론, 이제는 저것들을 경험할 수 없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커녕 지구를 떠나온 덕분에 대한민국 육군에 복무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게 되버린 것이다.


그러나 세상 어떻게 꼬일지 아무도 모른다더니...


' 그러니까 왜 내가 여기까지 와서 행군을 해야되냐구요!!! '


소리없는 절규가 하늘에 울려퍼졌다.




반폼멜 용병대는 대륙 중부와 북동부에 상당한 조직망을 구축하고 있는 초거대 용병대다. 기껏해야 10명 20명 단위로 움직이는 쥐방울만한 용병대와는 질적으로 다른 집단이다. 그러니까 요컨데, 이 덩치 큰 용병대는 영향권이 넓은만큼 활동권이 넓다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전장까지 가기 위해 열흘짜리 완전 무장 행군을 체험하는 기쁨을 누리게 된 것이다.


빌어쳐먹을!!!!


농담이지? 내 허리춤에 찬 1m짜리 쪼끄마한 칼도 1kg은 거뜬히 되는데다 그게 두 개 되는데다 칼집까지 합치면 2자루 족히 2.3kg은 넘는다. 거기다 내 등에 진 열흘치 식량에다 말렉이라는 놈이 쏴제낄 화살 20개까지 나눠지고 있다. 궁수 개인당 들 수 있는 화살량은 기껏해야 30발 정도기 때문에 팀원들에게 나눠들게 시킨 것이다. 아니, 이런거 보통 수레같은데 왕창 쌓아놓고 가지않냐는 내 당연한 물음은 입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허공 속으로 흩어졌다. 요 근래 몇번 그런 질문을 했다가 상식이 결여된 멍청한 놈 취급을 여러번 받았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에는 설명을 위해 몇번이고 상식 이하의 물음을 던져도 사람들이 그냥 그런갑다 하고 받아들이지만 현실에서는 대답해주기는 커녕 병신 꼴통으로 보는것이다. 하기야, 나도 누가 연필보고 이거 어떻게 쓰는거에요? 하는 레벨의 질문을 자꾸 해대면 정상인 취급하진 않겠지.


군자는 순간적으로 바보가 될지언정 모르는걸 그냥 넘어가면 안된다지만 전쟁터에서 바보가 취급받는건 위험하다. 이놈들은 전력이 안된다 싶으면 바로 짐짝 취급하는 놈들이라는걸 직접 경험해봤기 때문에 정말 바보로 찍히면 무슨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게다가 이렇게 투덜거리고 있지만 사실 난 상황이 좋은 편이다.


자기 키를 훌쩍 넘기는 장창 - 무게가 족히 5kg은 나갈 것이다! -을 들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로만은 제쳐두고 우리 떨거지들을 감시하듯 양 옆에 5m 정도 떨어져서 같이 행군하는 정예들을 보면 기가 질린다. 그 치들은 완전 쇳덩어리를 이어만든 사슬갑옷에다 무장도 개인당 장창을 포함해 적어도 3개는 들고 다니는데다 석궁 지참에 사용할 볼트는 물론이고 자기 식량도 자기가 들고 다닌다.


우리보다 훨씬 힘든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걷는 것 봐라. 저게 사람이냐 터미네이터냐? 사람이면 당연히 지쳐야 하는데 행군 이틀이 지난 지금까지도 멀쩡했다. 과연 저게 군바리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말이다.


무엇보다 눈물나는건 그 진짜 군바리 양반들이 우리가 도주하지 못하도록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한다는 것이다. 그것만 아니면 도망가도 몇 번은 도망갔겠는데!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슬픈 눈을 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마르다 못해 멸치가 왜 그렇게 빈약하니? 하고 물어볼 만큼 허약한 내 신체는 한계에 다다랐다. 지금은 아직 초겨울이었을 터인데 내리쬐는 햇볕은 내가 불판위에 있는건지 전자렌지 속에 있는건지 햇갈리게 만들만큼 뜨거웠다. 근육은 더 이상 한발자국도 못걷겠다고 파업을 선언하고 눈앞은 흐릿흐릿 빙빙 도는게 너무 더워서 뇌가 맛이 갔는것 같기도 하고 현기증이 일어나는 것도 같았다.


문득 하늘을 올려보았다. 해는 중천, 이제 슬슬 점심시간이다.


지금쯤이면 선두가 멈추고 식사시간이다! 하는 투박한 목소리가 들리겠지. 어서 빨리 쉬고 싶다. 다리가 후들후들거리고 목구멍은 바싹 말라 숨쉴때마다 속에서 피가 솟아나오는 것 처럼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초원에서 무작정 해맬때 이후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그때와 지금은 일장일단(?)이 있어 막상막하의 고생이다. 초원에서는 짐이 없었지만 먹을 것도 없었었고 휴식은 자유였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막막함이 있었다. 반면, 지금은 완전히 반대다.


아아... 이런 말이 무슨 소용이랴? 원래 지금 힘든게 제일 힘든거다. 예전에 이만큼 힘든것도 이겨냈으니 버티라는 식으로 자기를 세뇌하려고 떠올리는 것에 불과하다.


문득 열기가 훅 뻗치는 것이 느껴졌다. 몸의 열기를 가죽 옷이 제대로 배출하지 못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정신이 아득해질만큼 진한 땀냄새가 습격해왔다. 그것도 옷을 갈아입지 못해 몇날 몇일이나 농축되어 이미 땀내도 아닌 이상한 악취로 진화해버린 탓에 내 몸에서 나는 냄새지만 견디기 힘든 고역이었다.


옷도 갈아입고 싶고 몸도 쉬고싶고 좀 씻고도 싶은데 이 모든게 불가능했다. 설령 씻게해준다고 한들 옷은 단벌이라 마를 때까지 입을 것이 없었다. 지금은 비록 덥다고 투덜대지만 초겨울의 바람은 위험하진 않아도 무시할 것도 못되어서 젖은 옷을 입고 조금만 앉아 있어도 감기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 하긴, 그건 지금도 다를 것 없나? '


땀에 절었건 물에 절었건 추위에 취약해지는건 매한가지니까.


" 모두 정지! 점심시간이다! "


드디어!


나는 쓰러지듯 주저앉아 호흡을 골랐다.


조금만 신경쓰자 뜨거운 기운이 들어와 아랫배에 뭉치기 시작했다. 몇 일 행군에서 낙오하지 않은 비결이 바로 이것이었다. 식사 시간에 휴식할때마다 이 호흡법을 사용해서 피로를 풀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길 위에서 쓰러져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분명 계약을 위해 어느 정도 숫자가 필요할 텐데도 이들은 낙오한 사람들을 길 옆으로 치워버리고는 식량과 무기를 거둬 그냥 가버린다. 그들이 그대로 죽건말건 신경쓰지 않고 말이다. 그런 모습을 몇 번이나 보았다.


그러나 이것도 만능은 아니다. 쓰러져 죽을 레벨에서 좀 나른한 정도로 회복될 뿐,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무리하고 있는 육체는 금방 피로해졌다. 휴식 이후 기껏해야 2시간 밖에 버티지 못하리라. 하긴, 내 꼴에 2시간이 어디냐마는.


" 힘들어도 먹어둬. 배고파서 쓰러지면 어찌될지 몰라. "


로만이 호흡법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들은 내가 식사 시간마다 너무 지쳐서 한동안 쉬고나서 식사를 하는 줄 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가방에서 딱딱한 흑빵을 꺼내 물었다. 다행히 건빵은 두번 다시 나오지 않아서 배는 체울 수 있었다. 주먹만한 빵하나를 다 먹고 다른 하나를 꺼내 반쯤 먹었다. 한끼에 빵 두개다. 그러는 사이에 식수가 든 가죽 부대가 우리 랜스까지 돌아왔다. 물은 이렇듯 매 식사시간마다 조금씩 허락될 뿐이라 항상 목이 말랐다.


나는 퀴퀴한 가죽 냄새를 꾹 참고 물을 들이켰다. 마치 고무 녹인 물 같아 기분이 더러웠지만 마시지 않으면 탈수로 죽을지도 모른다. 한모금 크게 들이키고 남은 빵을 입안에 털어넣었다. 급하게 먹다보니 목이 매여서 다시 한번 들이켰다. 몇 모금 더 마셔두는게 좋을까 싶었지만 너만 먹냐고 말렉이 투덜거리는 탓에 잽싸게 한모금만 더 마시고 돌렸다. 이제 저녁까진 마실 물이 없다.


" 다들 힘내라. 이제 반만 더 가면 된다! "


' 닥쳐 좀. '


절로 욕이 나오며 얼굴이 찌뿌려졌다. 말이나 안하면 밉지나 않지. 이 고생을 고스란히 더 해야한다니 막막하기 그지없다. 아니, 열흘 안에 도착이나 할 수 있을까? 어쩐지 하늘이 노랗게 보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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