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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평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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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1.01.16 11:18
최근연재일 :
2011.01.16 11:18
연재수 :
1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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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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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2
글자수 :
816,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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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26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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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평범 (57)

DUMMY

악몽을 꿨다.


팔다리가 없는 사내 셋이 지렁이처럼 몸을 꿈틀거려 움직이지 못하는 내게 다가오는 꿈이다. 그 뒤로 말렉이 전신에 구멍이 뚫린 체 원한어린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 우리는 네놈이 한 짓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


콧방귀를 껴주고 싶었다. 네놈들이 한 짓이나 생각해보라고 쏘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몸은 떨리고 입은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놈들은 천천히 다가와 입을 벌렸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이빨로 마치 짐승처럼 나를 산체로 뜯어먹기 시작했다.



꿈에서 숨이 끊어지는 것과 동시에 눈을 떴다. 소리를 지르진 않았지만 전신에 땀이 흥건하고 가슴이 쿵쿵 뛰었다. 곁을 보자 리디아가 모닥불에 너무 가까이 붙어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녀를 살짝 움직여 불에서 떨어뜨려 놓은 뒤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잠은 오지 않는다. 그런 꿈을 꾸었는데 자고 싶을 리 없다. 나는 차가운 밤공기가 더운 몸을 식히는 감각을 즐기며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앞으로 몇번이나 더 이런 밤을 보내야할까?


대답은 없었다.




" 어디서 왔나? "


" 서쪽에서 왔습니다. 원래 이쪽 출신인데 용병대와 계약해서 일 때문에 잠시 갔다왔죠. 지금은 계약이 끝나서 돌아가는 중입니다. "


" 그래? 그쪽은? "


" 아, 친구 여동생입니다. 용병대에서 사귄 친구가 얘를 부탁하고 죽었거든요. 달리 가족이 없기도 해서 제가 맡기로 했습니다. "


" 호오, 요즘 보기드문 의리있는 친구일세. 그쪽 아가씨는 여기 말을 할줄 아나? 자네도 알다시피 말을 모르면 이 지역에선 적응하기 좀 힘들잖나. "


" 괜찮습니다, 원래 친구네 집이 북동부 출신인데 서쪽으로 이주했던 집이라서요. 이쪽말도 잘하죠. "


" 그런가, 그러게 괜히 여기사람이 다른데 가는게 아닐세. 젊은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불만들이 많지만 내가 여기 30년간 세계 각지에서 오는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어딜가나 북동부 만한데가 없거든. 여튼 잘 왔네. 앞날에 신의 가호기 있기를 빌지. "


" 고맙습니다. "


국경은 하품 날 정도로 시시하게 지나올 수 있었다. 국경이라고 딱히 검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세금을 때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국경을 지키는 경비원과 몇 마디 잡담을 하고 지나가는게 끝이었다. 이럴거면 저 요새는 왜 지었을까 싶을만큼 쉽게 지나올 수 있었다.


그때의 나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북동부에서 국경이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국경을 따지는 것 자체가 몇 안되는 왕국들 뿐인데다 그 왕국이란 것들이 도시 몇개 합쳐놓은 도시연합체 같은 것이라 세계의 다른 왕국들과 비교하기가 미안한 수준이다.


그나마 그런 왕국이란 것들은 상황이 좀 낫다. 대게는 도시와 도시에 딸린 시골들로 이루어져있다. 도시는 기본적으로 농산물 생산량이 미약하고 소모량이 많기 때문에 결코 도시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 그랬기에 자유 도시는 보통 장원을 몇 개씩 가지고 있었고 시골의 농산물을 끌어옴으로서 도시를 유지했다. 이러한 장원은 보통 시골이라 불렀고 시골에 사는 농부들은 도시민들에겐 경멸의 대상이었다. 시골에서부터 비롯된 자들이 어느새 뿌리를 잊어버린 것이다.


그러한 내부적 차별이 있긴 했지만 원칙적으로 자유도시에 신분제는 없다. 타국의 귀족들은 나름의 대우를 해주지만 그들 역시 도시의 법을 준수해야 했다.


그랬기에 북동부는 세계에서 제일 자유로운 땅이라 불렸지만 귀족들에게는 세계에서 제일 버릇없는 땅이라고 불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만고만한 도시들이 뭉쳐있는 북동부가 오늘날까지 무사히 유지될 수 있었던 건 세계 최강대국인 테스톡 제국 덕분이다.


북동부는 솔직히 테스톡 제국령이나 다름없는 땅이다. 제국의 개척자들이 세계의 끝으로 가는 여정 사이에 발견하고 개척하는 과정에서 성립된 도시들이 북동부의 기원이다. 모두 테스톡 제국이란 뿌리에서 시작된 탓에 언어도 비슷했고 문화도 세부적인 것은 도시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기본적인 틀은 같았다. 어느 정도냐하면 북쪽 끝 페투나의 사람이 제국과 맞닿아 있는 남쪽 끝 도시 페렐로 이주하더라도 고향처럼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다를게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북동부 사람들은 동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북동부 사람이라면 외국인으로 보지 않았고 자기 소개할때도 '나는 어느나라 사람이오 ' 하는 것이 아니라 ' 나는 어디 출신 북동부 사람이오 ' 하는 식의 소개가 보통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북동부 내부에선 국경을 넘어선 교류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자연 국경이란 개념이 희미해졌고 영토에 민감한 몇몇 왕국들만이 국경에 요새를 지어놓고 방비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그 국경요새라는게 일상적 교류를 막는게 아니라 전쟁같은 비상시 최전방에서 버티며 군대를 모을 시간을 버는 용도였다.



그랬기에 나는 시시할 정도로 쉽게 북동부 서쪽 끝의 왕국, 펠타에 들어올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용병대가 지나온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기에 마을들의 모습이 낮설지 않았다. 왠지 고향에 돌아오는 기분이라 피식 웃었다. 그런데 리디아도 비슷한 기분을 느끼는 모양인지 주변에서 눈을 때지 못했다.


" 전 여기 출신이에요. "


리디아가 말했다. 나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노력해서 무표정을 가장하고 있는게 티가 났다. 감출 수 없는 감정은 경멸. 하긴, 살기 힘들어서 이주했다고 했던가. 고향에 좋은 기억이 남아있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겠지.


" 그래? 그럼 이 근처에 살았어? "


나는 애써 모른 척, 무심하게 물었다.


" 예. 국경이 바로 옆이니까 이주할 생각을 했었죠. "


" 그럼 들렀다가 갈까? "


눈치없는 행동이라는걸 알지만 상대가 감정을 숨기고 싶다면 평범한 반응을 보여주는게 좋다고 생각했다. 고향 바로 곁에 왔는데 가보자는 이야기가 없다면 감정을 들켰다고 생각할테니까.


" ..... 아뇨. 괜찮아요. "


예상대로 그녀는 착잡한 눈으로 애써 무심을 가장해 이야기를 흘렸다. 나는 " 그래. " 하고 짧게 대답하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직 갈길은 멀다. 용병대가 주둔하고 있는 도시로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페투나로 갈 생각도 없다. 이렇게 북동부를 떠돌아다니며 괜찮은 도시가 있으면 정착할 생각이다. 그곳이 어딜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 나라 안에 있지는 않겠지. 나는 어쩐지 입맛이 써서 물을 들이키다 눈살을 찌뿌렸다. 가죽부대에 담긴 물은 슬슬 바닥을 들어내고 있었다.


우리는 가급적 마을에 들리지 않았다. 시골 마을에서 외부인이란 별로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 세계의 인간들은 음흉하고 잔인하며 이기적이기까지 하다. 도시와 달리 시골은 특별한 치안유지 기구가 없어서 현지인과 싸움이라도 붙으면 내가 피해자일지라도 외부인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죄를 뒤집어쓸 공산이 크다. 원래 팔은 안으로 굽는 법 아니던가? 그래서 나 혼자라면 모르되 리디아까지 데리고 마을에 묵기는 껄끄러웠다.


' 그것 참.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친절해졌지? '


문득 리디아의 안전을 걱정하는 나를 발견하고 실소했다. 별로 나쁜 기분은 아니었지만 이토록 냉정하고 이기적인 세계에서 남을 위해준다는 사실이 웃겼다.


어쨌거나 물은 필요하다. 내키지는 않지만 물이 없으면 죽어버리니까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길 아래로 보이는 작은 마을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눈에 띄는 건물이 고작해야 스무 가구 정도밖에 없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의 외곽에 커다란 나무가 한그루 서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점은 없었다. 무엇보다 사람이 저렇게 적다면 미친놈이 있어도 많아야 한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웠다.


" 물이 다 됐어. 잠깐 들렸다가자. "


앞만 보고 걷던 리디아가 내 말을 듣고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마을을 바라보던 그녀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걸 보는 순간 나는 지뢰를 밟았다는걸 직감했다. 설마하니 여기가 고향이었나?


" .....그래요. "


저 떨떠름한 표정. 100%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어떻게 회피해야할지 고민했지만 답이 떠오를 리 없었다. 지뢰를 밟아도 더럽게 밟았다. 이건 도망가지도 못한다. 잠시 갈등했지만 결단은 빨랐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낸 이상, 둘러댈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빨리 일을 보고 떠나는게 최고다.


나는 애써 모른 척 발걸음을 옮겼다.


" 어서오십쇼, 여행자님! 우리 마을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


지금 거울이 있다면 절대 보고싶지 않다. 여느 좀비 못지않게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을테니까. 이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환영받았다. 독특한 외모 때문에 이젠 귀찮아서 생략하고 지나가지만 처음 만난 사람들은 우선 마법사로 의심하고 신전에서 발급해준 증표를 보고 의심을 풀지만 역시 이상한 놈이라는 의심을 눈초리를 쉽게 거두지 않는다. 그런데 이리 상쾌하게 맞아주니 기쁘기보다는 이놈이 뭘 잘못처먹었나 싶어 꺼려졌다.


리디아를 돌아보니 이런 돌+아이는 그녀도 알지 못하는지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아니, 어딘가 안도하는 듯도 싶다. 어쨌거나 아직까지는 세이프. 나는 지뢰밟기 전에 빨리 지나치기로 마음먹었다.


" 여행중에 물이 떨어져서 말입니다. 물을 좀 얻을 수 있을까요? "


" 아~ 여행자시군요! 물론이죠! 이럴게 아니라 저희 집에 가시죠! 물은 제가 책임지고 구해드리겠습니다. "


이자식, 미소가 너무 상큼해.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 너무 친절한 사람은 수상하다. 경계심이 고개를 들며 손에 힘이 들어갔다.


" 하하하. 괜찮습니다. 마음써주셔서 고맙습니다. "


나는 나도 놀랄만한 속도로 잽싸게 말을 마치고는 리디아를 손을 잡고 속보로 걸었다. 뒤에서 무어라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절대 멈추지 않고 달리듯이 걸었다. 길까지 멈추지 않고 올라온 나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 가자. "


" 예. "


리디아의 표정도 나 못지않게 굳어 있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고향은 그녀에게 별로 좋은 인상은 주지 못한 모양이다. 다시 길을 재촉하려고 할때, 그녀가 못박힌 듯 어딘가를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마을 외곽의 유독 커다란 나무였다. 인상이 옅은 이 마을에 개성을 부여해주는 마스코트처럼 튀어나온 나무를 바라보는 리디아의 눈길은 추억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 그나저나 그 나무 참 크네. "


나는 지나가듯 말을 흘렸다. 리디아의 눈이 나를 향한다. 나는 어린애처럼 짖궂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 한번 가까이 가볼래? "


" 의외로 어린애 같네요. "


" 싫으면 말구. "


" 싫다고는 안했어요. "


새침하게 고개를 돌리는 그녀의 얼굴에 걸려있던 미소는 환각이 아니겠지. 피식 웃고는 나무를 향해 다가간다. 마을 외곽에 있는 나무근처엔 아무도 없었다.


나무는 컸다. 수백년은 살아왔는 듯, 성인 두세명이 두 팔을 벌려도 끌어안지 못할만큼 굵었다.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뿐이다. 이런 나무를 보며 감상을 늘어놓을 만큼 내 감수성은 깊지 않다. 하지만 리디아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를 그녀의 눈가에는 물기가 서려 있었다. 나무를 만져보기도 하고 둥치 곁에 앉기도 하고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을 바라보며 그렇게 한참을 보냈다. 그러더니 별안간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 언제까지 어린애처럼 나무만 보고 있을 거에요? "


푸핫.


내 탓으로 돌리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그만 웃고 말았다. 왜 웃는거에요! 날카로운 반박이 들려왔지만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전에없이 밝은 분위기로 길을 나섰다.


왠지 오늘 밤은 푹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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