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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평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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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1.01.16 11:18
최근연재일 :
2011.01.1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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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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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08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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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평범 (39)

DUMMY

이름있는 귀족가라면 으레 비밀의 방이나 비밀통로 같은게 있는 법이다. 어느쪽이건 만일을 위한 도구다. 자신들이 몰락했을때 도망갈 길과 몰락의 위기나 몰락시 뒷날을 위한 자금을 숨겨두는 곳이니까. 라미른은 그것이 우스워 견딜 수 없었다. 귀족이란 결국 권력자. 그들은 항상 몰락을 염두에 둔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난 수백년간 집권해오던 전통의 명문가부터 최근 급부상한 신흥 권력자까지 구분없이 산재해있는 의식이다.


샤피론 백작가의 선조들은 현명했다. 그들은 결국 몰락할 것이라는 미래를 예견해냈고 예언은 맞아들었다. 하지만 조금 더 현명했으면 좋았을 것을. 비밀의 방이 아니라 비밀 통로였다면 가문의 마지막 희망들은 허망하게 죽지 않았을 것이다.


라미른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금새 많은 사례들 중 예외 하나를 골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밀의 방은 훗날을 위한 비상금 창고일 수도 있지만 정말 세상에 내보이기 싫은 것을 숨겨두는 비밀의 금고일 수도 있는 것이다.


" 진귀한 책이 틀림없군. "


그는 실소를 지었다. 그것은 먼 옛날 정체를 감추고 연구활동을 하던 마법사의 책이었다. 백작가에 전해지는 전설로는 아직 가문이 남작가였던 시절, 한 마법사가 가문을 제압하고 저택을 실험실로 삼았는데 당시 가문의 사람들은 복종하는 척 하면서 헛점을 틈타 마법사를 제거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은 실험실에서 찾아낸 일지라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라미른은 바투바의 기억을 통해 마법사의 강력함을 체험했다. 그런 괴물을 아무리 마나를 다룰 수 있다지면 인간 기사 나부랭이들이 어쩔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아마 들어달라는거 다 들어주고 볼일 다 본 마법사가 던져놓고 가버린 게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면 일지가 남아있을 리 없는데.


' 함정인가? '


라미른은 수상한 냄새를 맡았다. 그러나 책을 여는 손길에 망설임은 없었다. 마법사들은 물론 그를 주목하고 있을 테지만 손을 쓰려 했다면 진작 앞을 가로막았을 것이다. 그들은 계략이나 음모가 전혀 필요없는 족속이다. 그냥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누르면 되는데 뭐 하러 그런 귀찮은 일을 하겠는가? 더군다나 그들에게는 무시무시한 정보조작 능력까지 갖춰져있다.


그렇다고 영혼의 기록에 거짓은 없는 법. 그는 이상하긴 하지만 별 탈 있으랴 하는 생각으로 책을 정독했다. 그리고 서서히 흥분하기 시작했다.


" 아하하하하하핫!!! "


라미른은 얼마 보지 않아 그가 원하는 모든 것들이 그 책 안에 있음을 깨달았다. 이것은 유혹이다. 네 맘대로 해보라는 유혹. 그리고 라미른은 자신이 이미 그들이 파놓은 수렁 속에 깊숙히 잠겼음을 깨달았다.




인간은 특별하다. 아니, 특별하다고 망상한다. 라미른의 입장에서그것은 너무나 가소로운 말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를 바 없다. 다만 두뇌를 집중적으로 발전시킨 종에 불과하다.


인간의 육체, 영혼을 사용하는 흑마법은 사악한 것으로 규탄받는고 악마를 부르는 금지된 술법, 그 외 수많은 금기들이 인간의 몸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익숙하다 못해 지겨울 지경이다.


그러나 사실 인간은 전혀 특별하지 않은 존재다.


생명을 제물로 바쳐야한다면 인간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모든 생물은 설계도가 다를 뿐, 결국 똑같은 생명력과 영혼을 가지고 있다. 짐승의 영혼이 하등한가? 아니다. 다만 짐승의 뇌가 인간만 못할 뿐이다. 식물의 영혼이 하등한가? 아니다. 다만 기록하는 형태가 다를 뿐이다.


그럼에도 라미른은 인간을 재료로 쓴다. 왜?


그는 대답한다. 흔하니까.


인간은 매우 흔하다. 최상급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양의 생명력과 영혼을 가지고 있으면서 천지사방에 깔려있다. 방대한 생명력이 필요한 일에 이보다 적합한 재료가 어디 있는가?


이쯤되면 안쓰는게 실례라고 생각하지 않나? 최소한 라미른의 생각은 그랬다. 그랬기에 책의 저자가 권하는 최고의 재료가 인간이라는데 공감할 수 있었다.


그는 파티가 열렸던 처참한 살육의 현장으로 돌아와 간단한 실험을 준비했다. 라미른이 여기까지 오면서 모은 생명력은 거의 12만여명 분으로 샤피론 백작가의 북쪽을 깔끔하게 쓸어담은 결과였다.


백작이라 해도 대게 20만 내외의 영지민을 가진다는걸 생각하면 절반 이상을 잡아죽인 것이다. 살인마도 이런 살인마가 없다. 그러나 라미른 본인은 전혀 개의치 않은 모양이다.


그는 태연하게 진을 그리고 주술에 필요한 준비를 마쳤다. 생명력은 마음대로 들고다닐 수 있는 성질의 에너지가 아니기에 그는 자신이 수집한 생명력은 본래 자리에 가둬놓고 대신 그것들을 잇는 파이프 같은 것을 연결했다. 그는 그 파이프를 자신이 원하는 곳까지 연결함으로서 어디에서든 모아둔 생명력을 퍼올 수 있는 것이다. 그가 하는 작업은 파이프 라인을 이곳 백작가까지 잇는 일이자 생명력들을 이동시키는 조치였다.


이윽고 생명력들이 지하에서 꿈틀거리며 샤피론 백작가로 몰려들었다. 라미른은 그 동안 모은 생명력의 대부분이 이동한 것을 느끼고 책을 펼쳐들었다.


"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야... "


주술은 오크들이 만들어낸 술법으로 종족 고유의 것이다. 적어도 바투바가 아는 한, 오크 이외의 종족에게 노출된 적이 없다. 그러나 라미른의 손에 들린 책은 표현이 조금 다를 뿐 훌륭한 주술서였다. 그것도 바투바 정도의 고위 주술사가 봐야 이해할 레벨의 고등한 술식들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그가 고민하던 주술들을 한데 모아놓았으면서 어떻게 해야할지 주석까지 친절하게 달아놓았다. 바투바 레벨의 주술사가 본다면 즉시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상세하게. 그래, 너무도 부자연스러운 악마의 미끼.


그는 자신의 휠체어를 밀던 병사에게 손짓했다. 병사는 아무런 의문 없이 그의 앞에 섰고 라미른은 파리를 쫓는 것처럼 생각없이 손을 휘둘렀다.


털썩


그의 손에 날카로운 검만 들려있지 않았다면 의미없는 손짓이었겠지. 병사는 내장을 쏟으면서도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였다. 라미른이 다시 손짓하자 다른 병사가 시체를 옆으로 치웠다. 그리고 병사의 피를 가득 묻힌 검이 허공을 날며 기묘한 문자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 엘 바투라 말라크 비어 베리아... "


동시에 라미른의 입에서 알 수 없는 언어가 쏟아져나오며 막대한 영력과 마나가 사방으로 폭사되었다. 동시에 이동해온 생명력들이 흥분한 듯 반응하기 시작했다. 주술이 진행될수록 바닥에 갇혀있던 생명력이 들썩들썩하더니 급기야 핏물처럼 새빨간 액체가 진 밖으로 솟아오르기까지 했다. 그러나 라미른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주술을 계속 진행시켰다. 도중에 병사들을 죽여 영력을 보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침내 한시간 쯤 되었을까? 라미른 주변에 죽어 나자빠진 병사가 300을 넘었을때 마침내 주술이 막바지에 다다랐다.


" 라크 베크 베크 갈 루이아 바르손. 일어나라! 새로운 생명체여! "


촤아악!


핏물같이 새빨간 액체가 진 밖으로 솟아올라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그 양이 무려 10 만명 분! 그는 서둘러 자신의 손가락 끝을 베어 피를 진 위에 떨어뜨렸다. 그때, 무언가 잘못된 듯 라미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 아, 안돼! "


그는 서둘러 주술을 진행시켰다. 막대한 영력이 뿜어나오고 새빨간 액체가 인간의 형상을 띄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액체 내부에서 서서히 장기 같은것이 비치더니 마침내 그것은 멀쩡한 인간이 되어 있었다.


성공이다. 누군가 보았다면 모두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라미른의 얼굴은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 안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


돼.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라미른의 귀에까진 닿지 않는다.


어둠속에서 그에게 모든 도구를 쥐어준 마법사는 즐거운 표정으로 미소지었다. 그는 아직 여기서 성공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이것으로 힌트는 얻겠지. 악마의 유혹은 이것이 전부. 그러나 파멸로 달려가는 열차는 이제 결코 멈추지 않겠지.


마법사는 유쾌한 웃음을 남기고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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