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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평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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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1.01.16 11:18
최근연재일 :
2011.01.16 11:18
연재수 :
1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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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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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2
글자수 :
816,019

작성
10.08.05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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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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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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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평범 (36)

DUMMY

살인.

살인자.


평범한 우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자 경멸의 대상. 그리고 언제든 우리도 될 수 있는 것이지만 내게만은 결코 관계되는 일이 없을거라고 생각하는 그런 것.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것은 뉴스 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이며 내가 그럴 일은 없을거라고. 그런 내가 처음으로 진지하게 살인에 대해 걱정했던건 용병대에 팔려가면서였다.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장소.


나는 걱정하던대로 살인을 저질렀고, 훌륭한 살인자가 되었다.

내가 상상하던 식의 살인과는 다른, 정말 훌륭한 살인자가 되버렸다.


전신이 벌벌떨리고 머리가 마비된다. 바보처럼 시체 위에서 멍청하게 있었다. 그리고, 어처구니없게도 시체에서 흘러나온 끈적끈적한 피가 기분나쁘다는 생각과 함께 이성이 돌아왔다.


생명이 빠져나간 인간의 시체는 추했다. 내가 찔렀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으로 수없이 찍어버린 탓에 시체의 전신엔 바람구멍이 숭숭 뚫려있었다. 이런 것과 불과 몇일 전에 어깨를 부대끼며 서로 앞서나가려고 버둥거렸던 것을 생각하자 역겨움이 몰려왔다.


그러나 정작 구토는 올라오지 않는다. 충분히 끔찍한 참상을 눈앞에 두고도, 그것도 자신이 만든 참상을 보면서도 일단 이성을 되찾은 머리는 너무나 차갑게 가라앉아서 스스로도 이상하게 생각할 만큼 침착했다. 발달한 기술로 찍어낸 영화에서 자극적인 장면을 너무 많이 봐서 무덤덤해진 것인가?


이윽고 나는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깨닫고 역겨움이 올라왔다. 어떻하면 이 일을 덮어버리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는 자신의 모습은 추악하기 그지 없었다.


인간을 죽였다.

그 인간이 가진 가능성을 송두리째 앗아가버렸다.


나는 새삼스럽게 시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차갑게 식은 머리는 전신을 통틀어 유일하게 깨끗한 부분이었다. 미친듯이 찍어버렸는데도 의식적으로 머리만은 피했던 것 같다. 그는, 말렉은 선인은 아닐 것이다. 주저없이 죄없는 민간인을 세명이나 죽였으며 아마, 그 전에도 용병으로서 전쟁에 몇 번은 나갔을 것이고 많은 사람을 죽였을 것이다.


그리고 살아있었다면 앞으로도 많은 사람을 죽여갔을테지.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는 분명 살인자고 악한이다. 그것은 틀림없는 진실이다.

동시에 내게는 동료가 아닌가? 아무일 없이 전장으로 나섰다면 그가 나의 목숨을 구해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 그가 다른 누군가를 구해주었을 수도 있고 회개하여 선인으로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도왔을 수도 있다. 가능성이 낮더라도, 그 모든 것은 분명 있을 수 있는 미래였다.


그리고 나는 그 미래를 내 손으로 끊었다. 그것 역시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옳은걸까?

내가 그래도 되는걸까?

나는... 용서받을 수 있는걸까?


갑자기 무서워졌다. 저 하늘위에서 거대한 존재가 나에게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찍는 것 같았다. 순간, 피로 젖은 이마위로 차가운 바람이 스쳐지나갔다. 몸이, 정신이 발작적으로 떨렸다.


" 뭐냐, 이건? "


" 허억!!! "


저승사자의 목소리처럼 스산한 목소리가 들리자 일순 전신에 소름이 돋으며 전기충격을 받은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올랐다. 보통 사람이라면 놀라 당황했을만큼 갑작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러나 저승사자, 아니. 그에게 호흡법을 전수해주었던 용병은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추궁했다.


" 너희들의 사이는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구나. 설명해봐라 커티스 버질. 나를 납득시켜봐라. 그렇지 못하면... "


스르릉!


금속이 빠져나오는 소리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죽는다. 나도 이렇게 추한 모습이 되어 죽는다. 인간이 아니라 쓰래기가 되어버린다. 내가 쓰래기가 된다. 내가 쓰래기가 되어 버려진다.


" 죽는다. "


감정없는 목소리가 나를 페닉으로 몰아넣었다.




샤피론 백작가는 명문가다. 판티움에서 손꼽히는 정도까진 아니지만 북부에선 알아주는 가문으로 어지간한 후작가도 쉽게 볼 수 없는 막강한 재력과 영향력을 자랑했다.


그런 백작가의 후계자, 켈루안 리페릭 샤피론은 오늘 16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둘도 없는 귀한 아들이다. 뮐리앙 레만테 샤피론 백작은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의 생일을 기념해 파티를 열었다. 동시에 영지 전체에 하루 동안 모든 부역을 면제했고 죄질이 가벼운 죄수들을 사면했다.


파티에는 샤피론 백작가의 막강한 힘을 대변하듯 수많은 사절들이 찾아와 있었다. 수도에서도 손꼽히는 공작가에서 사람을 보내오는가 하면 주변 중소귀족들은 자식을 데리고 직접 찾아오기까지 했다. 게다가 그 수많은 손님들이 맨손으로 올리 만무. 온갖 진귀한 선물들이 백작가로 몰려들었다. 손님들은 하인을 시켜 가져온 선물을 직접 켈루안에게 건내주었고 선물들이 개봉될때마다 소년은 감탄의 환성을 내지르며 눈동자를 반짝였다. 그러던 중, 벨람 남작가에서 나온 가신, 노텐 트리올의 차례가 돌아왔다.


" 벨람 남작가의 노텐 트리올이다. "


그는 대뜸 반말을 찍 내뱉었다. 훈훈한 봄바람이 불던 파티장의 분위기가 눈깜짝할사이에 냉동창고처럼 싸늘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노텐은 가지고 온 상자를 열었다. 사람 머리만한 크기의 상자에서 나온 것은 커다란 케이크였다. 지구에서는 나름대로 적절한 생일 선물일지 모르지만 생일날 케이크를 먹는 풍습이 없는 이곳에서는 좀 많이 쌩뚱맞은 물건이었다. 새하얀 생크림 케이크는 이 세계에선 아직 개발되지 않은 빵이었기에 몇몇 사람들은 분위기도 망각하고 눈을 반짝였다. 그들의 눈에 생크림 케이크는 굉장히 멋지고 진귀하게 비춰졌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라미른이 켈루안의 생일이 가까웠다는 소식을 듣고 즉흥적으로 만들게 한 물건이다. 여러모로 관련 지식이 모자랐던 탓에 몇일 사이에 지구에서 맛볼 수 있는 레벨의 케이크가 나오진 않았지만 라미른에겐 외관만 비슷하면 맛 따위는 전혀 상관없었다.


그야, 먹이려고 만든게 아니니까.


노텐은 그의 주군이 즐겁게 웃으며 시켰던 행동을 그대로 따랐다.


퍼-억!!!


시원스러운 소리와 함께 생크림 케이크가 켈루안의 얼굴에 작렬했다. 동시에 노텐이 파티장이 쩌렁쩌렁 울릴만큼 커다란 목소리로 선언했다.


" 주인님의 전언이다. 영광인 줄 알아라. 미리 귓구멍 파고 한마디도 빼놓지 말고 잘 새겨듣도록. "


그는 과장된 태도로 옷매무새를 다듬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 전쟁이다, 개새끼들아!!! "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파티장은 땅에서 솟은 듯한 수천의 병사들에게 둘러쌓였다. 그리고, 완전히 포위당한 파티장의 입구에 누구도 초대한 적이 없는 사내가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입장했다.


" 잘했다, 노텐. 아주 훌륭하다. "


그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노텐을 칭찬했다. 고작 그것뿐이었으나 노텐은 세상 최고의 상을 받은 듯 감격에 겨운 눈으로 목이 메이는지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금방이라도 왈칵 눈물을 쏟을 듯한 노텐을 무시한 체 사내, 라미른은 말없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휠체어를 밀고 있던 병사가 지체없이 허리춤의 검을 뽑아 라미른의 손에 쥐어주었다.


" 안녕하신가, 샤피론 백작나리. "


그는 느긋하게 검을 건내받고는 상석에 앉아 아직까지 사태 파악을 못하는 백작을 향해 비웃음 가득한 인사를 올렸다.


" 네...!!! "


콰직!


" 허나 안녕이군. 짧은 만남 즐거웠소. "


화가 치민 백작이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건내받았던 검이 제멋대로 둥실 떠오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백작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간단히 백작을 살해한 라미른은 아무 감흥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 그리고 귀빈 여러분도 이제 헤어질 시간이군. 잘 가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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