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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평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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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1.01.16 11:18
최근연재일 :
2011.01.16 11:18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156,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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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2
글자수 :
816,019

작성
10.08.18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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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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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평범 (49)

DUMMY

람푸트 자작은 멍청하지 않다. 그는 엿새가 지난 후 3천의 영지병과 함께 성으로 돌아왔다. 맨몸으로 돌아와봤자 승리를 쟁취한 원수의 과도한 요구만 받을 뿐이라는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돌아온 그를 맞이하는건 아직도 성을 둘러싸고 주둔한 무법자들의 모습이었다. 그 숫자는 많이 줄어 있었지만 족히 삼천은 남아있는 것을 봐서 자작을 찍어누를 정도는 되는 듯했다.


" 흠, 솔레리안 자작이 당했단 말인가? "


솔레리안 자작은 그리 대단한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고용한 다이탈론 용병대는 멜리움 굴지의 용병대로 그들이 솔레리안 자작의 편을 들자 람푸트 자작에게 고용되었던 용병대가 위약금을 물고 발을 뺼 정도로 강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에 편승한 용병대들도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은데 그들의 연합을 단일 세력으로 이겨버릴 줄이야...


' 북동부에서 손꼽히는 용병대라더니... '


람푸트 자작은 새삼 자신의 견문이 좁음을 한탄했다. 그러나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는 않았다. 그들이 훌륭한 용병이라면 이것은 오히려 그에게 이득이 될 수 있다. 그를 향해 한 명의 용병이 다가왔을 때 그것은 확신이 되었다.


" 어서오십시오, 자작님. "


마중나온 자의 눈은 분노에 불타는 것이 아니라 협상을 하기 위한 냉정한 눈이었다.



반폼멜 용병대는 이 전투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전투가 제대로 시작되기도 전에 외곽에 주둔한 어중이 떠중이들이 기습을 받아 일천에 가까운 피해를 보았는데다 사번대 관할이던 놈들이 대거 탈출, 거의 칠백에 가까운 병력이 빠져나갔다. 이렇게 시작도 전에 1700의 손실을 보고 시작했는데다 그 이상한 노래가 아니었다면 주력들까지도 전멸했을 만큼 적들은 강했다. 전체적인 지휘를 할 용병대장과 전력의 핵이 되어야할 1번대가 람푸트 자작의 계략으로 인해 빠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들은 전투에 참가한 정예 1500명 중 447명을 잃었고 살아남은 사람의 대다수도 크고작은 부상이 있었다. 그나마 후방 지원하던 궁병대는 마지막까지 4번대가 뚫리지 않은 덕분에 사상자가 없었다. 사온 것들은 더 말할 것도 없어서 4천 중 2600여명이 죽고 다치고 도망갔다. 그리하여 뒤늦게 탈출한 1번대와 합류한 반 폼멜 용병대는 지금 3천명이 약간 못되는 규모였다.


절반에 가까운 피해.


전투에 피해가 따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투는 치를 이유가 없었던 전투이며 전투 없이도 이윤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피해를 입었으니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한다.


살아남은 세 정예부대의 부대장들은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성에 가서 돌아오지 않은 1번대와 용병대장을 구출해냈다. 성은 안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막았을 뿐이지 밖에서 들어오는 것은 막지 않았다. 지키는 병력도 언제 도망갔는지 하나도 없었고 외성문은 아예 잠기지도 않았다. 안에서만 열지 못하게 무언가 수작은 부린 듯, 뭔가 장치가 달려있긴 했지만 용병들이 부숴버렸다.


내성을 여는 것은 더 쉬웠다. 대체 언제 이런걸 만들었는지 궁금할 만큼 훌륭한 강철로 된 이중 문이었다. 안에서는 알 수 없지만 밖에서 보면 강철 문이 성문이 열리는 방향을 막고 있는 구조로, 안에서 아무리 강하게 밀어봤자 강철 문을 부수지 못하면 열 수 없게 해놓았다. 반면 밖에서는 강철 문의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양옆으로 밀어놓기만 해도 쉽게 해제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들은 전투 후 흥분이 가라앉고 밖의 소식에 목마른 용병대장과 1번대와 마주했다. 부대장들을 본 용병대장의 얼굴이 밝아졌다.


" 어떻게 됬나? 피해는? "


부대장들이 온 것은 당연히 그들이 승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얼마나 피해를 입었냐는 것. 용병대장의 질문은 지극히 당연했다. 루체른이 대표로 나서 그의 의문에 답해주었다.


" 사온 놈들의 절반 이상이 죽었고 3번대를 제외한 2번대와 4번대의 피해가 막심합니다. 지금 남은 병력은 1번대를 포함해서 3천 정도 뿐입니다. "


" 크음... "


용병대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승리한 것은 좋지만 정예들의 피해가 아쉬웠다. 1번대가 있었으면 훨씬 피해가 적었을 것을... 그러나 그는 아쉬움에만 젖어있지 않았다.


" 적은 누구였나? 대체 누가 우리를 습격했지? 람푸트 자작에게 그런 여력이 있었을거라곤 생각하기 힘든데. "


" 당신은 알 필요가 없습니다. "


" 뭐? "


루페른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그는 냉정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 우리는 여기서 피를 흘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당초 약속한 돈 이상을 무난하게 받아내고 돌아갈 수 있었단 말입니다. 우리는 왜 싸워야 했습니까? 우리는 왜 피를 흘려야 했단 말입니까? 그것은 당신의 과욕 때문입니다. "


그제야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깨달은 용병대장이 검을 뽑으려 할때, 이미 루페른의 검이 용병대장의 목을 갈랐다. 섬광같이 빠른 검술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감탄했다. 그 한수로 루페른은 자신이 강자라는 것을 입증하며 과욕을 부린 옛 대장을 역사 속으로 던져버렸다.


" 오늘부터 내가 대장이다. 불만있는 놈 있나? "


용병대장을 벤 루페른은 당당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미 사전에 합의가 된 내용이니 2번대와 3번대에서 불만은 나오지 않는다. 남은 불만세력은 1번대 뿐. 그러나 1번대 부대장은 오히려 환영하는 눈치였다. 용병대장이 4번대에서 나온 이상 4번대가 호위대 역할을 할 게 뻔하다. 그리되면 1번대는 이름만 부대장이었던 그가 실질적인 부대장이 되어 지휘하게 된다. 용병은 어차피 피해를 줄이고 돈을 많이 가져다주는 놈이면 누가 대장을 해도 상관 없었다.


이전의 용병대장도 그러한 과정을 거쳐 올라섰기 때문에 별로 이상할 것도 없었다. 누구든 능력이 되면 자리에 올라서면 된다. 자리에 올라선 것 자체가 능력의 증명이기 때문에 용병대는 일단 대장 위에 올라선 자에게 충성한다. 꼬우면 뒷통수를 치든 독을 쓰든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자기가 올라가면 그뿐. 루페른은 그렇게 했다.


반폼멜 용병대의 42대 대장이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용병대장이 된 루페른은 예상대로 친위대로서 4번대를 선택했으며 1번대는 부대장에게 맡기고 람푸트 자작과의 협상에 들어갔다. 지난번 전투에서 솔레리안 자작이 살아남았던 이유는 단 하나, 비싸보이는 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귀족은 사로잡으면 돈이 되기 때문에 전직 용병대장이 악마와 거래할때 그렇게 부탁했던 것이다. 화려한 복장을 입은 놈은 살려두게끔 하는게 가능하냐고 물었고 악마는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루페른은 용병대장이 교체된 직후 악마의 종적이 묘연해졌다는 것을 알았다. 1번대에서 자체적으로 보상을 준 것이다. 그것은 전대 용병대장의 마지막 의지였기에 준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보여준 능력이 무서워서 비위를 거스를 생각이 들지 않았기에 한 일이었다.


루페른은 아쉽다는 생각보단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감당하지 못할 것은 품에 안고 있어봐야 골치만 아플 뿐이다. 그는 그것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람푸트 자작은 확실히 유능했다. 상처투성이가 된 용병대가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병력을 끌고왔는데다 - 그것은 사실 솔레리안 자작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였지만 - 고용주라는 명분도 잘 이용할 줄 알았다.


그들은 상호 이익을 위해 솔레리안 자작에게 악역을 뒤집어 씌웠다. 어차피 구두로만 이행된 계약이고 가신들의 증언은 증언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계약을 배제하고 보면 솔레리안 자작은 왕의 명령에 따라 토벌군에 참여할 영지병을 모으러 람푸트 자작이 자리를 비운 사이, 성을 침공했다가 람푸트 자작이 고용한 용병대에게 패퇴하여 사로잡힌 것이 된다.


이대로 재판에만 넘겨도 솔레리안 자작은 파멸이다.


왕의 직속 재판관이 있는 왕립 재판소는 귀족과 양민의 대립이나 귀족과 귀족의 대립, 귀족과 왕의 대립을 법적으로 해결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법관들 역시 귀족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보통 힘 있는 귀족의 편이를 봐주는 편이지만 왕명을 정면으로 무시한 이 상황에서 솔레리안 자작이 목숨을 부지하기란 요원해 보인다.


람푸트 자작은 용병대의 요구를 받아들여 당초 약속한 3천 틸러의 세배를 주기로 합의했다. 용병대는 자작을 위해 완벽한 상황을 만들어 주었고 주인없는 솔레리안 영지를 집어삼키지 못하는 것은 람푸트 자작의 무능이다. 그는 이빨 아래 놓아둔 음식을 씹어먹지 못할 바보는 아니었다.


그러나 당장 현금은 모자랐기 때문에 우선 4500 틸러를 선수금으로 주고 잔금은 5년 안에 내주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구두약속이 아니라 정식 계약서를 작성하고 신전의 공증까지 받은 계약이었다. 이 경우 계약을 어긴다면 람푸트 자작도 별로 무사하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람푸트 자작으로서도 손해는 아니다. 숙적인 솔레리안 자작가가 파멸했고 그 영지를 털도 안뽑고 집어삼킬 것이다. 단기간으로는 손해일지 몰라도 멀리 본다면 이런 이득이 없다. 상호간에 이익이 되었기에 반폼멜 용병대는 일단 계약을 믿고 선수금과 함께 철수를 결정했다. 이대로 판티움 정벌군에 끼어도 되겠지만 정예병들의 손해는 쉽게 체울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우선 내실을 다지기로 정한 것이다.


그렇게 반폼멜 용병대의 전쟁은 끝이났다.



솔레리안 자작은 억울함 속에 왕립재판소로 넘어갔고 말을 안듣는 영주들에 대한 시범케이스가 절실하던 왕궁은 즉시 그의 사형을 재가하고 성벽에 효수해 버렸다. 그리고 피해자인 람푸트 자작에게 솔레리안 자작의 영지를 내주었다. 본래라면 왕이 꿀꺽하기 십상이지만 이번은 다른 영주들에게 경고 차원에서 보여주는 케이스였기에 왕은 통 크게 람푸트 자작에게 인심을 배풀었다.


그리고 나는 반폼멜 용병대가 멜리움으로 들어왔던 길을 기억을 더듬어가며 되짚어가고 있었다. 이 세계에 와서 여지껏 다른 사람에게 휩쓸려가고 있었던 나는 마침내 그 흐름에서 도주함으로서 자유를 되찾았다.


달빛을 받으며 아무도 없는 시골길을 걸으며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를 회상했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지금도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최소한 말은 알고 있지않나. 허리에는 두 자루 칼도 들려있다. 여차하면 이것도 팔아서 빵 몇 개와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도 있다. 혼자 밤길을 걷고 있자니 집 생각이 간절했다. 지구에서도 학원을 마치고 이렇게 홀로 밤길을 걸었었다. 부모님의 얼굴은 물론이고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친구들도 그리웠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은 막막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이 세계로 툭 떨어졌으니 자고 일어나면 집에 돌아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은 잠들때마다 들었지만 아직까지 단 한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누구에게 물어야 돌아갈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나를 데려온 자들을 만날 수 있다면 좋을텐데. 하지만 그들이 나를 데려왔을때는 이유가 있을테니 그것만 들어주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재해 같은 것에 휩쓸렸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보다 어느 쪽이든 대체 누구에게 물어야 알 수 있을까? 로만 베르스에게 들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자들이라면 마법사들 뿐이라는 이야기는 들어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일종의 도시전설 같은 것이라 진위여부는 알 수 없는데다 설령 그들이 그런 힘을 가졌다고 한들 만날 도리가 없었다. 또 모르지, 어디서 그들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으면 그걸 추적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문의 끝에 착각이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막막했다. 그저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있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실마리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정해둔 이정표가 흔들리고 가슴이 어지럽다. 여기에서 뼈를 묻을지도 모른다. 아니, 십중팔구는 그렇게 될 것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는 사이 나는 마을에 도착했다. 우리가 주둔하지 않고 지나왔던 마을이다. 여기가 나왔다는건 람푸트 자작성에서 반나절 정도 떨어졌다는 것을 뜻했다. 집들을 보니 졸음이 몰려왔다. 어디 하룻밤 정도 재워줄 데 없으려나...


마을로 내려오자 왠 똥개가 갑자기 짖어대는 바람에 깜짝 놀라 한걸음 물러섰다. 그러나 곧 밤톨만한 개의 모습을 보고 짜증이 솟구쳐올랐다.


" 어디 똥개새끼가 사람을 놀래켜! "


꺠갱!


사람을 죽여본 영향인지 겁이 많이 줄었다. 발길질로 똥개의 배를 힘껏 걷어차자 피하지 못한 개는 깨갱하며 날아가더니 멀리 도망가 버렸다. 별것도 아닌게 까불고 있어.


괜히 옷을 털고 마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갔다. 나는 마을 외곽에서 길에 접한 첫번째 집 문을 두드렸다.


두어번 두드리니 안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문이 열렸다.


" *(&^&%^&%?! "


" 엉? "


갑자기 튀어나온 이해하지 못할 언어에 내가 어안이 벙벙해 있자니 이 사람도 갑자기 칼 찬 사람이 나타나자 겁을 먹었는지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게 보였다.


" 아, 해칠 생각은 없으니 안심해요. "


나는 그걸 보고 무심코 말했는데 그제야 저쪽도 언어가 통하지 않는걸 알았는지 벙찐 얼굴이 되었다. 피차간에 곤란해하고 있는데 안에서 남자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와 시끄럽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피차 이야기도 통하지 않는데다 시끄럽기까지 하니 그만 피곤해져서 손사래를 치고 왔던 길로 돌아갔다. 하기야 야밤에 낮선놈이 칼까지 떡 차고 나타나면 그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는데 말도 안통하는 외국놈이라면 아 예, 그러십니까? 하고 재워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옆집 숫가락 숫자까지 알고 있을 시골에서 수상한 놈이 어슬렁거리는건 별로 좋은 일이 아니다 싶어 마을을 벗어나버렸다.


허탈한 마음으로 마을을 빠져나오려는데 아까 걷어찼던 똥개가 으르렁대는게 보였다. 그러더니 이게 날 보고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안그래도 짜증이 솟구쳐오르는데 똥개새끼가 불을 붙였다. 나는 축구공을 차는 기세로 다시 한번 개를 걷어차려했다.


" 어쭈? "


그런데 이놈의 개가 이번에는 피했다! 그리고는 내 발을 사정없이 물어뜯는 것이 아닌가!


" 아아악!! "


이 빌어먹을 개새끼가!


반대편 발로 힘껏 걷어차도 다리를 문 머리는 요지부동이었다. 나 역시 아픔으로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칼을 뽑아들어 개새끼의 목을 힘껏 찔렀다.


캥!


마침내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개가 쓰러졌다. 숨이 끊어졌건만 여전히 다리를 물고 있는 모습에 머리가 식자 기가 질렸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대로 둘 수는 없는 일. 손으로 개 아가리를 벌리고 다리를 빼냈다.


" 별 재수가 없으려니. "


물린 다리에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고통은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지만 짜증이 한없이 뻗쳤다. 욕지거리를 내뱉고 가려는데 죽은 개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 처참하게 죽은 시체를 보는데 왜 배가 꼬르륵거릴까? 보신탕을 즐기지는 않았지만 두어번 맛을 본 적은 있었다. 그 멍멍이의 부드러운 살점을 생각하자 이 똥개가 훌륭한 식량으로 비쳐졌다.


" 츄릅 "


이크, 침이 고이는군. 나는 배짱 좋게 죽은 개의 시체를 들고 숲으로 향했다.


" 이걸 챙겨두길 잘했단 말이야. "


이 세게에는 숲이 넘쳐난다. 여기도 숲 저기도 숲이다. 마을만 벗어나면 숲이 튀어나오는 이유는 애당초 숲에서 평평하다 싶은 장소를 골라 개간했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숲의 영역에서 숲을 제거하고 만들었으니 주변에 숲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나는 그러한 숲에서 나무를 줏어모았다. 물론 꼬챙이로 쓸만한 긴 나뭇가지를 잘라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모아온 나무 위에 마른 풀들을 쌓아놓고 부싯돌을 튀겼다. 용병대 보급품 중 하난데 이게 어디다 쓰일까 싶어도 가볍기도 하고 혹시 몰라 몸에 지니고 있었던 것인데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이야...


마른 풀들을 쌓아놓고 부싯돌을 기세좋게 튀기자 여기저기 불똥이 튀었다. 풀에 딱 대고 한참을 반복하자 마침내 풀에 불이 붙었는지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입김을 후후 불어가며 불길을 키웠다. 그리고 거의 삼십분 후에 제법 커진 모닥불 앞에 앉아있을 수 있었다.


" 햐, 그거 신통방통하네. "


라이터보다 백만배는 신기한 것 같다. 나는 부싯돌을 잘 챙겨넣고 잡은 개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우선 가죽을 벗겨야지... 그런데 이거 어떻게 벗기는거야? 머리는 먹을 거 아니니까 잘라내고 이렇게 하면 되는건가?


나는 검으로 개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그러나 힘이 약했는지 개 목은 반쯤 잘리다 말았다. 한번 더 내리치자 이번에는 정확하게 아까 쳤던 곳에 내리꽃혀 깔끔하게 목이 잘렸다. 고작 한 닷새 연습했을 뿐인데 그것도 수련이라고 검격의 정확도가 많이 늘었다.


흉물스러운 개 머리를 멀리 던져버리고 나자 핏물이 그득한 몸통이 남았다. 나는 목의 절단면에 검을 대고 죽 그었다. 몇번을 반복하자 목등에서 꼬리까지 칼집이 났다. 그 참에 나는 꼬리도 베어내고 몸통만 남겼다. 그리고 가죽을 벗기려는데...


" 이거 어디까지가 가죽이고 어디까지가 살이야? "


난감했다. 맨날 손질된 고기만 보다가 직접 고기를 잡을려니 곤란한 점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대충 살점에 칼을 쑤셔박고 엉망진창으로 가죽을 갈랐다.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0이 되는 순간이었다. 하긴, 개가죽을 누가 살까마는. 두시간쯤 끙끙대고 나니 달도 자취를 감춰가는 가운데 마침내 가죽이 벗겨진 - 이라기보다는 갈기발기 찢어져 가죽이라 부를 수 없게된 - 핏덩어리 개가 등장했다.


" 이제 핏물을 빼야할건데. "


아차, 내장도 아직 안털었다. 나는 정성들여 배를 갈라 내장을 털어냈다. 그런데 내장이 턴다고 쉽게 안털린다. 하기야 뱃속에 장착되어 있는 내장이 가죽만 덜어내고 툭툭 턴다고 튀어나올 리 만무. 나는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피가 쏟아지는 개의 뱃속에 검을 집어넣어 내장을 잘라냈다. 몇번 반복하자 안쪽에 내장 찌꺼기가 남았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그럭저럭 깨끗하게 털어낼 수 있었다.


이제 이걸 어쩐다...


내장이나 가죽은 숲에 던져버리면 그만이었지만 핏물을 뺄 도리가 없었다. 나는 할 수 없이 대충 털어버린 뒤 그대로 항문을 통해 꼬챙이를 꿰었다. 텅 빈 배를 관통한 꼬챙이가 목에 걸리자 목을 완전히 잘라내고 꼬챙이를 꿰었다. 그리고 불 위에 올려놓았다.


" 빨리 안익을려나... "


거의 밤을 홀딱 새워서 그런가 배가 고팠다. 고기가 익으면서 나는 향기가 내 배를 더욱 자극... 해야하는데...


" 컥! 이건 또 뭐야? "


미지의 누린내가 습격해왔다. 이게 대체 어디서 나는 냄샌가 했더니 내가 고생고생해서 만든 개 구이에서 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제서야 개고기는 냄새와 비린내가 심해서 갖은 한약재와 된장으로 냄새를 빼야 맛있는 고기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 크허허허허헉! "


그럼 뭐야? 이거 실컷 익혀봐야 맛대가리도 없다는거야? 나 대체 왜 고생했어!? 못볼 꼬라지 다 봐가면서 손질했더니 이게 뭐야?


" 이런 젠자아아아아아앙... "


살짝 눈물이 베어나왔다. 그러나 익어가는 고기에서 눈을 때지도 못했다. 이제와서 맛이 없다고 버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끈기있게 기다려 다리가 살짝 탈 즈음에 고기를 내렸다.


힘차게 물어뜯은 개 다리는 텁텁했다. 오랫동안 익힌 덕에 설익은 부분은 없었지만 죽는 순간에 힘을 힘껏 주고 있는 상태에서 죽어서 그런가 근육은 질기기 그지없었고 개냄새가 진동했으며 비려서 먹을 것이 못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꾸역꾸역 먹었다. 배고프기도 했지만 억울해서라도 배부르게 먹지 못하면 안될 것 같았다. 그런데 배고픈게 나뿐만이 아니었나보다. 숲쪽에서 무언가 으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마치 뼈를 부숴먹는 것처럼...?


" 뭐, 뭐지!? "


나는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거의 다 뜯어먹은 다리를 집어던지며 검을 뽑았다. 이런 숲속에 맹수가 있는건가? 잘 생각해보면 있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러나 어둠을 해치고 나타난 그것은 내 상상을 벗어난 생명체였다.


크르르르릉!


중저음의 울림이 가슴을 두들겼다. 도망쳐야한다는 생각이 뇌를 지배하고 몸이 뻣뻣하게 마비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숲에서 나타난 그것은 괴물이었다. 길이 3m는 족히 되어보이는 거대한 덩치에 사족보행을 했는데 발톱이 사람 머리를 충분히 관통할 수 있을만큼 길어보였고 호랑이를 닳은 얼굴에 날카로운 이빨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게다가 등에는 두개의 팔 같은 것이 돋아있고 그 끝에 날카로운 송곳이 달려있어 마치 별들의 전쟁에 나오는 x그의 마스코트 저글ling을 연상시켰다.


나는 냅다 도망쳤다. 미친듯이 도망쳤다. 다행히도 개 냄새에 이끌려 나왔을 뿐인지 괴물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흥미없다는 듯 개고기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등에 달린 팔을 휘둘러 개고기를 불 위에서 걷어내곤 바닥에 떨어진 개를 뼈째로 으적으적 씹어먹는 것이다. 버려둔 개 내장과 머리도 그것이 먹었음이 틀림없다. 나는 뼈를 씹는 으스스한 소리를 피해 미친듯이 달렸다. 아까 피해왔던 마을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이 미친 세상에 있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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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만자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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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Personacon ANU
    작성일
    10.08.18 13:53
    No. 1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8 스마우그
    작성일
    10.08.18 16:51
    No. 2

    아아 루페른에게 검술을 더 배웠으면 좋으련만
    인공이가 얼른 지구로 돌아갔으면 좋겠...아 그럼 소설끝이구나 설렁설렁 돌아갔으면 좋겠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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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평범 (47) +3 10.08.16 946 11 17쪽
46 평범 (46) +1 10.08.15 949 9 13쪽
45 평범 (45) +2 10.08.13 932 11 8쪽
44 평범 (44) +5 10.08.12 1,018 9 9쪽
43 평범 (43) +4 10.08.11 1,009 8 8쪽
42 평범 (42) +3 10.08.11 972 11 9쪽
41 평범 (41) +5 10.08.10 1,017 10 9쪽
40 평범 (40) +2 10.08.09 1,104 9 15쪽
39 평범 (39) +2 10.08.08 1,032 8 9쪽
38 평범 (38) +2 10.08.08 1,003 10 9쪽
37 평범 (37) +6 10.08.06 1,008 11 14쪽
36 평범 (36) +1 10.08.05 1,010 12 8쪽
35 평범 (35) +1 10.08.05 1,091 9 8쪽
34 평범 (34) 10.08.04 1,007 10 7쪽
33 평범 (33) +2 10.08.03 1,064 8 12쪽
32 평범 (32) +4 10.08.02 1,285 8 9쪽
31 평범 (31) +1 10.07.30 1,077 9 11쪽
30 평범 (30) +2 10.07.28 1,167 10 9쪽
29 평범 (29) +2 10.07.25 1,152 10 9쪽
28 평범 (28) +2 10.07.23 1,185 14 9쪽
27 평범 (27) +3 10.07.18 1,202 10 9쪽
26 평범 (26) +2 10.07.16 1,287 10 9쪽
25 평범 (25) +2 10.07.13 1,313 11 12쪽
24 평범 (24) +4 10.07.11 1,313 12 14쪽
23 평범 (23) +3 10.07.08 1,384 1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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