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평범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1.01.16 11:18
최근연재일 :
2011.01.16 11:18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156,310
추천수 :
1,382
글자수 :
816,019

작성
10.08.04 14:37
조회
1,006
추천
10
글자
7쪽

평범 (34)

DUMMY

잔인한 날이다. 뭐가 잔인하냐면 내 옆을 지나가는 마차를 보고 아무 짓도 할 수 없다는게 한없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벌써 8일에 달하는 장기 행군이다. 어찌나 멀리 가는지 우리는 거대한 국경요새까지 지나와 지금은 다른 나라에 와 있다. 북동부는 소국과 자유도시들이 주가 되는 지역이니만큼 이만한 요새가 있는 국경을 지나왔다면 제대로 된 왕국 같은 곳으로 왔을 공산이 컸다. 아니, 이게 중요한게 아니지. 중요한건 우리는 힘들어 나가떨어지기 직전인데 누구는 편안하게 말이 끄는 마차에 궁댕이 붙이고 앉아 유람하듯 팔자 좋게 우리들 옆을 지나간다는 사실이다. 장담하건데 이렇게 강렬한 살의는 태어나서 처음이다.


" 저거 확 털어버리면 안되냐? "


나 뿐만 아니라 살기가 가득한 눈으로 마차를 바라보던 팀원들 중 로만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어찌나 증오가 깊었던지 그의 눈이 이글이글 불타는 것 같았다. 말렉과 카스티앙도 십분 이해한다는 듯 즉시 동조했다.


" 저 새끼들만 아니면 확 그냥... "


말렉이 활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고 카스티앙도 눈빛을 흉흉하게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공감하면서 길거리에서 만난 용병이 왜 도적때보다 무서운지 절감했다. 우리는 지금 정예병 놈들이 양 옆에서 제어하고 있기 때문에 억누르고 있는거지 그런게 없었다면 저 마차는 오늘 험한 꼴을 당했을 것이다.


그나저나 저 정예 놈들도 속이 끓을건데 민간인을 쉽사리 건드리지 않는 걸 보면 아무리 쓰래기들이라도 명문은 다르긴 다른가보다. 솔직히 의외였다.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리듬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 뭐지? '


이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음악. 그러나 어딘가 익숙한 이 소리는...


' 밴드? '


크지는 않지만 뱃속을 간지럽히는 드럼의 울림, 날카로운 클레쉬 소리를 감싸는 능숙한 기타소리를 받쳐주는 낮은 음의 베이스 소리까지. 물론 나는 밴드 악기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러니까 네 평가는 엉터리라는 말을 들어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히 장담할 수 있다. 이건 밴드 음악이다. 록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 뭐야, 저거? "


로만이 눈을 휘둥그레떴다. 말렉이나 카스티앙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은지 신기한 듯 마차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제야 그 음악이 우리를 지나치는 마차에서 들리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고작 4인승으로 보이는 마차다. 베이스나 기타는 그렇다 치고 드럼은 대체 어디에 들어있는 것일까? 나는 미스테리한 감각이 휩싸여 신기한 동물을 보듯 마차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마차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우리 곁을 지나가며 연신 빠르고 활기찬 리듬을 쏟아냈다. 벌벌 떨리던 다리가 리듬을 타고 마치 봄소풍을 가는 듯 사뿐사뿐 걸음을 옮겼다. 터질 듯한 폐도 안정을 되찾고 현기증에 시달리던 머리가 깨끗해진다.


나는 그것을 깨닫고 너무나 놀라 마차의 창문쪽을 뚫어지라 쳐다봤지만 눈에 비치는 것은 이미 지나가버린 마차의 뒷모습 뿐이었다.


너무나 신기한 경험.


나 뿐만 아니라 금방 죽을 것처럼 헉헉대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활기찬 걸음을 옮긴다. 그때부터 우리들은 지금까지의 거의 두배가 가까운 속도로 움직였지만 누구하나 지치지 않았다.


' 대체 그건 뭐였을까? '


선두에서 외치는 목적지가 가까웠다는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그리고 기억을 찬찬히 되짚어보다가 뭔가 부자연스러운 점이 있다는걸 깨달았다.


' 어? 그러고보니 보컬이 없잖아? '


훌륭한 연주였지만 뭔가 하나 빠진 듯한 느낌. 그랬다. 보컬이 없었다. 그 곡은 분명 가사가 있는 곡이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랐을때 어느새 태양은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노을에 비쳐 빨갛게 물든 낮선 마을의 울타리가 보였다. 마침내 우리의 첫번째 행군이 끝난 것이다.



우리가 도착한 도시는 발레움이라는 곳으로 대륙 북동부와 북서부의 경계선에 걸친 미묘한 위치에 있는 마을이었다. 이곳은 우리를 고용한 영지의 가장 외곽에 있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로 인구 300명 정도의 소규모 장원이었다. 보통 이 정도 규모라면 남작가나 자작가에서 정식 기사에게 봉급 대신 지불하는 일반적인 장원 규모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틀이나 먼저 도착한 우리 용병대를 맞이한 건 완전무장하고 말에 올라탄, 최소한 겉모습만은 멋진 기사였다. 안장 옆에 걸려있는 커다란 방패와 창끝에는 체크무늬의 말이 그려져 있었다. 아마 가문의 문장인 모양이었다.


" 멈춰라! 여기는 람푸트 자작가의 영역이다! "


우리는 선두와 가까운 축에 들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희미하게나마 지켜볼 수 있었다. 기사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우리 측에서 한명이 나와 무어라 대화를 나누더니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곤 길을 열어주었다. 모르긴해도 상당히 떨렸으리라. 이 조그마한 촌동내는 성벽은 커녕 제대로 된 목책 하나도 없고 기사가 있다지만 기사가 주둔하는 성은 어디를 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6천에 달하는 난폭한 무리들이 작정하고 덤벼든다면 그가 아무리 뛰어난 기사라 한들 파도 앞의 종이배처럼 흔적도 없이 쓸려가버리고 말리라.


하긴, 이게 정상일까. 이런 작은 마을을 경영하면서 번듯한 성채에서 생활한다는건 예전부터 내려오던걸 이어받거나 횡령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할 것이다.


" 모두 잘 들어라! 우리는 오늘 여기서 머물고 최종 목적지로 향한다! 알겠나? 이곳은 의뢰인의 땅이다. 소란을 피우는 자는 목숨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 반폼멜 용병대는 어중이 떠중이들과 다르다는걸 명심해라! "


선두의 지휘자는 엄포를 놓고는 기사와 함께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리고 남겨진 우리에게 예의 낮익은 용병이 공터 곳곳에 천막을 짓고 하룻밤을 지낸다고 지시했다.


나는 보급대로 가서 천막을 지급받았다. 이미 몇 번이나 반복했던 일이다. 랜스 10개마다 보급대 하나가 붙었는데 보급대들은 주로 예비 식량과 무장, 숙소로 이용될 천막, 소량의 장작이나 의료품들을 지고 다녔다.


이미 익숙해진 솜씨로 천막을 세우는데 옆에서 기둥을 세우던 말렉이 옆구리를 쿡 찔렀다.


" 왜? "


건성으로 돌아보며 물었더니 말렉이 음흉한 눈으로 카스티앙과 로만을 마저 불렀다. 그리곤 뒷집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 야, 모두 쌓이지 않았냐? 내가 아까 봐뒀는데 저기 끝내주는 계집이 있더라고. 오늘밤 몰래 한번 어때? "


뭐 임마?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평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2 평범 (52) +3 10.08.20 881 9 9쪽
51 평범 (51) +6 10.08.19 858 7 13쪽
50 평범 (50) +2 10.08.18 871 9 7쪽
49 평범 (49) +2 10.08.18 1,010 8 22쪽
48 평범 (48) - 번외 +2 10.08.17 904 10 11쪽
47 평범 (47) +3 10.08.16 946 11 17쪽
46 평범 (46) +1 10.08.15 949 9 13쪽
45 평범 (45) +2 10.08.13 932 11 8쪽
44 평범 (44) +5 10.08.12 1,018 9 9쪽
43 평범 (43) +4 10.08.11 1,009 8 8쪽
42 평범 (42) +3 10.08.11 972 11 9쪽
41 평범 (41) +5 10.08.10 1,017 10 9쪽
40 평범 (40) +2 10.08.09 1,104 9 15쪽
39 평범 (39) +2 10.08.08 1,031 8 9쪽
38 평범 (38) +2 10.08.08 1,003 10 9쪽
37 평범 (37) +6 10.08.06 1,008 11 14쪽
36 평범 (36) +1 10.08.05 1,010 12 8쪽
35 평범 (35) +1 10.08.05 1,091 9 8쪽
» 평범 (34) 10.08.04 1,007 10 7쪽
33 평범 (33) +2 10.08.03 1,064 8 12쪽
32 평범 (32) +4 10.08.02 1,285 8 9쪽
31 평범 (31) +1 10.07.30 1,077 9 11쪽
30 평범 (30) +2 10.07.28 1,167 10 9쪽
29 평범 (29) +2 10.07.25 1,152 10 9쪽
28 평범 (28) +2 10.07.23 1,185 14 9쪽
27 평범 (27) +3 10.07.18 1,202 10 9쪽
26 평범 (26) +2 10.07.16 1,287 10 9쪽
25 평범 (25) +2 10.07.13 1,313 11 12쪽
24 평범 (24) +4 10.07.11 1,313 12 14쪽
23 평범 (23) +3 10.07.08 1,384 14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