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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평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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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1.01.16 11:18
최근연재일 :
2011.01.1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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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16,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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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29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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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 (59)

DUMMY

진짜로 그놈 악몽에 나왔다.


나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잠자리를 벗어났다. 어제 쌓아둔 장작이 한참 타오르는 것을 보니 거의 잠들지 못한 모양이다. 이제 갓 새벽에 접어든 시간일까. 찬바람이 스쳐지나가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벌써 불쾌한 일이 있었던 마을을 벗어난지 사흘. 무심코 입김을 불어본다. 새하얀 입김이 이제 정말 겨울이 되었다는걸 알려주었다. 리디아는 괜찮을까. 돌아보니 오들오들 떨면서 잠이 들어 있었다. 뭐 덮어줄 것이 없다는게 견딜 수 없이 한심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러운 이불이라도 걷어올 걸 그랬다.


마음같아선 옷이라도 벗어주고 싶지만 이 겨울에 웃통까고 있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진 장담할 수 없다. 나는 할 수 없이 장작이라도 더 때려고 숲에 들어가 나뭇가지를 몇 개 더 주웠지만 하나같이 새벽이슬에 젖은 것들이라 쓸데가 없었다. 정말 시작부터 되는게 없는 날이다.


할 수 없이 나는 조금 위험하지만 리디아를 모닥불 곁에 데려다 놓았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흙을 약간 쌓아서 낮고 허약한 벽을 만들었다. 영 미덥지 못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그래도 불 곁에서는 춥지않은지 리디아의 떨림이 멎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검을 뽑았다. 할일이 없으면 검술을 연마하는게 도움이 된다. 그런데 늘 뽑던 왼쪽 허리의 검이 뽑히질 않는다. 어라? 이게 왜이러지? 오른쪽에 걸린 칼은 잘 뽑히는데 왼쪽거는 용을 써도 안뽑힌다. 한참을 땡겨도 안나오자 오기가 생겨서 양손으로 잡아당겨 보았다.


스릉!


마침내 검이 뽑혀나왔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뽑힌 검은 녹이 잔뜩 슬어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제서야 여관에서 피묻은 검을 물에 씻었던 것을 떠올렸다. 애휴... 안그래도 관리가 허술한데 물에 듬뿍 적셔주었으니 녹스는 것도 무리는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꽤 잘버텼다.


새거뽑아야겠네. 어차피 한자루밖에 안쓰니까 당분간은 멀쩡한 남은 한개를 쓰면 그만이지만 남은 한자루도 지금처럼 언제 못쓰게 되버릴지 모른다. 나는 약하다.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무기 하나쯤은 언제나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고철값은 받을 수 있을려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두 검의 위치를 바꿨다. 물론 비상시엔 녹슨거라도 도움이 될지 모르니까 녹은 나름대로 때어낸 뒤였다. 바위에 비비고 칼집으로 긁어낸 정도지만 이제 뽑히긴 할거다.


검을 휘두르며 생각한다.


이 길은 어디로 이어져 있을까?


평소라면 상상만 하고 넘어가는 그런 의문.


그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게 여행은 재미 아닐까, 하는 배부른 생각을 잠깐 했다.




진실은 때론 잔혹하다. 모르는게 약이라는 옛 사람들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날 이후로 입을 열지 않았던 리디아가 기가막혀 말을 꺼낸것도 무리는 아니다.


" 대체 어디로 가려는거에요? "


그 질문은 지당하다. 길을 따라온 우리들을 맞이한건 기분상으론 알프스 못지않은 험한 산맥의 입구였다. 뒷통수에 땀이 절로 맺힌다. 산이 하나로 끝나는게 아니라 산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말 그대로 산맥이다. 다른 길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여기까지는 쭈욱 이어지는 외길. 한참을 돌아가야 다른 길로 갈 수 있다는 말이다.


어째 이 근처는 마을도 없더라니!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리디아에게 물었다. 설마하니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이렇게 잘 닦여있을 리 없다는 한줄기 희망을 잡고서 말이다.


" 여기가 어딘지 알아? "


대답은 없었다. 자기가 토라져 있다는걸 이제야 기억한걸까? 그러나 지금은 그런 배부른 소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 알고 있으면 말을 해. 지금 심각한 상황이니까. "


" ..... 아마 라븐 산맥의 초입일거에요. 의외로 제대로 왔을지도. "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참동안 뭔가를 생각하더니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봐야 못알아먹는다. 리디아도 낌새를 챘는지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 펠타 왕국과 세계의 끝을 갈라주는 산맥이에요. "


오케이,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세계의 끝이란 끝없이 펼쳐진 그 초원을 말한다. 이 길은 아마 옛날 탐험대가 지나갔던 길이 아니었을까 싶다. 몬스터 - 그 카마르 같은! - 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산을 기껏 넘어갔더니 아사(餓死)라니. 농담이지? 나는 일찍이 이 길을 닦으며 지나갔을 탐험대의 명복을 빌어주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 미안, 길을 잘못들었나봐. "


데헷~ 여자애였으면 귀엽게 혀라도 빼물었겠지만 나는 당당한 남자였기 때문에 마지막 대사는 마음속에 묻어버렸다. 그러나 리디아의 신경을 건드리고 말았는지 그만 흉성이 폭발하고 말았다.


" 그렇게 말하면 다에요!? "


그 동안 말을 안해서 답답했는지 일단 물꼬가 트이자 끝이 없다. 물론 하나같이 날 까는 말들이었기 때문에 나는 청각을 차단하고 망부석 코스프레 차원에서 먼산보기 모드를 유지했다.


이야~ 날씨좋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리디아가 핵핵대는게 한참은 지났나보다. 말 한마디 할 기력도 없어보여서 청각을 다시 개통하고 코스프레를 그만뒀다.


" 자, 그럼 돌아갈까? "


" 사람 말을 좀 들어어어어어어엇!!!!! "


아, 터졌다. 이제 기력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저렇게 큰 소리를 지르다니, 리디아는 생각보다 터프하구나~


어쨌거나 리디아가 걸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으므로 한참을 기다렸다. 그 사이 기력을 회복한 리디아는 차근차근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흐응. 이번엔 제대로 듣고 있는거겠죠? "


이 험한 세상, 눈뜨고 있어도 코베어가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내게 무슨 실례를. 가슴을 펴고 말하자. 나는 언제나 귀를 열어두고 있는 사람이다.


" .....좋아요. 믿어드리죠. "


잠시간의 침묵이 무슨 뜻인지 신경쓰였지만 기분탓이리라 믿고 넘어갔다.


" 라븐산맥은 이렇게 늘어서있어요. 우리가 있는건 아마도... 이쯤일거에요. "


리디아가 알기 쉽게 그림을 그려줬기에 한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라븐 산맥은 세계의 끝과 펠타 왕국의 경계선이기도 했지만 실은 역 『 자 형태로 길게 뻗어있는 산맥이다. 따라서 북부 펠타와 자유도시 밀집구역을 갈라놓는 경계선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 중에서 딱 산맥이 꺾어지는 코너 부분에 와 있었다.


" 그러니까 이 산을 넘어가면 펠타를 벗어날 수 있어요. "


" 생각보다 유식하네. 이런건 어떻게 알았어? "


시골에서만 살았던 여자애가 알거라곤 생각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지구야 문명이 발달해서 정확한 지도가 나오고, 의무교육도 받으니까 일개 고등학생인 나라도 우리나라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이 교육도 안받은 체 시골에서만 살았던 여자애가 어떻게 이런걸 알고 있는걸까? 조선시대 대구 사람이 백두산 지리를 아는것처럼 신기하다.


" 죽은 오빠가 그런데 관심이 많았어요. "


그녀는 생각하기 싫다는 듯 재빨리 내뱉었다. 흐음, 시골 사람이 지리에 관심이 있었다니, 리디아의 오빠도 별종이었구나. 어쩌면 그런 별종들이 쌓이고 쌓여서 정확한 지도가 만들어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말렉이란 미친놈이 날린 한대의 화살에 맞아 산산히 깨어졌다. 나는 새삼 생명의 무게를 느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 모습이 안좋은 기억을 건드렸는지 리디아가 화재를 돌렸다.


" 그보다 어쩔거에요? "


그녀의 눈은 명백히 이 산 넘어서 빨리 벗어나자고 제안하고 있었다.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 돌아가자. "


휘청, 열심히 설명하던 리디아가 균형을 일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저런, 여자애가 좀 더 조신하지 못하고. 내가 혀를 차고 있자니 리디아가 버럭 화를 냈다.


" 왜 그렇게 되는거에요!? "


아니,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저 산 무지 높잖아? 험해보이기도 하고 혹시나 저번에 봤던 카마르같은 괴물이라도 튀어나오면 우리 둘이 사이좋게 괴물의 뱃속으로 들어갈 확률은 정확히 0에 수렴한다고 언론에 대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러느니 좀 돌아가는게 낫지. 뭣보다 겨울이잖아? 슬슬 먹을게 떨어진 맹수들의 눈에라도 띄면 좋을 일 하나도 없다.


결국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쪽팔리지만 사실을 이야기해줄 수 밖에 없었다.


" 그야 나 약하니까... "


한숨과 함께 털어놓은 진실.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 한방울이 맺혔다. 그야말로 남자의 눈물, 능력없는 남자의 설움이었다.




불쌍한 남자가 불쌍한 여자애와 함께 발걸음을 돌렸을 무렵, 세계의 끝에서는 긴급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마치 화상전화처럼 허공이 뜬 화면엔 마법사들의 얼굴이 비춰졌다. 그 숫자는 모두 다섯. 화면들의 중심에 선 마법사를 합치면 여섯명이다. 마법사들이 그들을 보았다면 경의를 표했을 것이다. 모두 한 계통의 수장을 맡고있는, 각 분야 최강의 마법사들이었다. 그런데 세계에 적수가 없을 그들은 하나같이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 2품 대악마가 소환됐다. "


중앙의 사내가 불편한 기색으로 말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그의 눈은 어딘가 멍한것이 초점이 잡혀있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화면에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눈도 마찬가지였다.


" 이건 계약이 틀리잖아! 놈들이 우릴 속인건가? "


화면 너머의 검은 로브를 입은 사내가 이를 갈았다. 그는 주먹을 힘껏 쥐고 있었는데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손바닥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 처리반이 우릴 버렸다면 위험한 것 아닌가? "


이를 가는 사내와 맞은편에 있던 여마법사가 불안한 듯 눈을 굴렸다. 그녀의 말에 공감하듯 곁의 화면의 갈색 로브의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 놈들이 우릴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우리라고 더 이상 계약을 지킬 필요는 없지. 이참에 놈들이 쫒아오지 못할만큼 먼 세계로 뜨는건 어떤가? 힘을 모으면 불가능하진 않을거야. "


중앙의 사내는 그들의 의견을 끝까지 듣고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 아니, 아직은 이르다. 게다가 그건 너무 큰 도박이야. 세계의 벽을 뚫지 못하고 아공간에라도 떨어지는 날엔 우린 모두 끝장이다. 설령 성공한다 해도 거기라고 강력한 악마가 없으리란 법은 없어. "


불안해하던 두 마법사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때, 조용히 듣고만 있던 황색로브의 마법사가 말했다.


" 그럼 어쩌자는건가? 대악마가 돌아다닌다면 우리의 존재가 들키는 것도 시간문제야. 처리반이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


" 우리가 놈을 제거해버리면 되지. "


마지막으로 곤색 로브의 마법사가 황색로브의 마법사의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그의 말에 좌중의 표정이 모두 얼어붙었다.


" 승산이... 있겠는가? "


중앙의 마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곤색 로브의 마법사 역시 긴장한 얼굴이었지만 또박또박 말을이었다.


" 계약의 조건에 따라 놈은 힘을 거의 못쓰는 상황일지도 몰라.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계약자만 제거하면 여기에 있을 구실이 사라지잖아. 우리는 수가 많아. 놈이 아무리 대단해도 우리 모두를 상대하면서 계약자까지 지켜낼 수는 없겠지. 다소 피해가 있겠지만 놈이 아니라 계약자 정도라면 충분히 제거할 수 있을거다. "


좌중의 긴장이 극에 달했다. 모두들 중앙의 사내만 바라보며 결단을 기다렸다. 전쟁이냐? 도망이냐? 중앙의 마법사는 마침내 결단을 내리고 고개를 들었다.


" 좋아. 놈을 제거한다. "


초원의 마법사들이 전쟁을 결의하는 순간이었다. 이 회의를 지켜본 마법사가 있다면 고개를 갸웃했을 것이다.

왜냐면, 중앙의 마법사 - 대표 - 는 1품 대악마와. 나머지 5명의 대표들도 2품 대악마와 계약을 맺은 마법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의문을 표시할 마법사는 여기에 없다.


오직 결론, 그들의 결의만이 마나를 타고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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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주, 죽을거같어...! 덜컹덜컹, 힘내 선풍기야 넌 아직 돌아갈 수 있어! 머, 멈추지마! 제발, 제바알! 너마저 멈춰버리면 난..! 아, 안돼에에에에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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