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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평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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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1.01.16 11:18
최근연재일 :
2011.01.16 11:18
연재수 :
1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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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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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2
글자수 :
816,019

작성
10.07.3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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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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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평범 (31)

DUMMY

해가 뜨지도 않았는데 집합이라는 소리가 잠을 쫒아냈다. 잠이 덜깨 부스스한 얼굴로 천막에서 기어나가는데 옆에서 자던 말렉이 같이 나오면서 입구에 끼었다. 사내끼리 몸을 부대끼는 기분은 매우 더러웠다. 거기다 강제로 단잠을 방해받은 탓에 한참 사나워졌던 차라 바로 욕이 튀어나왔다.


" 야.... 삐-..... 새꺄! 뭐하는거야... 저리 비켜..."


마음 같아서는 아주 기관총처럼 쏘아붙여주고 싶었지만 아직 잠에 절어있는 뇌는 정상적인 속도로 언어능력을 구사하지 못했다. 때문에 욕은 욕인데 욕같지 않은 괴상한 언어를 뱉어내고 말았다.


" 에이... 삐-- 삐--삐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니...가 꺼져. "


말렉의 머리통도 비슷한가보다. 둘 중 아무나 조금 뒤로 빠지면 쉽게 나갈건데 서로 먼저 나가겠답시고 기를 쓰는 바람에 압박만 심해졌다. 급기야 심해진 압박에 허술한 나무기둥이 삐걱거리기 시작하자 기둥과 맞닿은 왼팔이 부러질 듯 아팠고 순간 정신이 퍼뜩 들었다.


" 아야야야야! 야! 힘빼! 빠질게! 내가 뒤로 빠질테니까! "


고통에 소리를 질렀는데 돌아오는 소리도 비슷했다.


" 니, 니가 빠져! 나 끼여서 꼼짝도 안한다! "


" 대체 뭐하는거야? 급해죽겠는데 궁댕이 빨리 안치워? "


카스티앙도 나오려고 했는지 천막 안쪽에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라고 이렇게 길막고 있고 싶어서 있는 줄 아나? 별 수 없이 앞으로 나가려고 힘을 잔뜩 줬는데 하필이면 말렉놈도 같은 생각인지 압박이 더욱 심해졌다. 이대로는 기둥이 부러지든 팔이 부러지든 사단이 날 것 같았다!


내가 멈추라고 소리치려던 찰나 로만이 깨어났는지 하품소리가 들렸다.


" 뭐하는거야? "


잠기운이 가득한 목소리, 당분간 아무짓도 못할거라 생각했는데 이놈이 글쌔 대뜸 발길질을 하는게 아닌가!


" 아야, 야! 로만! 너 지금 뭐하는 아악!! "


" 됐으니까 빨리 나가! "


로만은 그나마 잠결에 미는 수준이었는데 그걸 보고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는지 카스티앙은 아주 무식하게 발길질을 해대는게 아닌가! 정말 꼬리뼈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 이쯤되니 말렉이나 나나 사력을 다해 기어나갔고 마침내...


뿌지직!


부실한 나무 기둥이 절명하며 우리들은 천막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나오자마자 한 사람을 발가락과 대면해야 했으니...


" 너희 대체 뭐하는거냐? "


한심한 듯 내려다보는 우리의 짜가선생님, 용병이 거기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무장을 하고 나열해있던 사람들 속으로 우리 랜스도 끼어들어서 용병의 설명을 들었다. 우리 담당으로 보였던 용병은 용병대 내에서 꽤 지위가 높은지 근방에 있던 거의 1천여명을 모두 모아놓고 말하고 있었다.


" 너희들의 처지는 너희가 알고 있을거라 믿는다. 하여 미리 말해두는데 본 대는 너희에게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다. 또한 너희를 귀중히 사용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도망칠놈은 도망쳐도 좋다. 단, 도망은 전장에서다. 전장에 나가기 전에 도주하는 놈은 철저히 준비하는게 좋을거다. 걱정할 것 없다. 전쟁은 바로 코앞이니까. 바로 내일, 우리는 전쟁터로 나가게 될 것이다. 그에 대한 대비는 각자 알아서해라. 무슨 말인지 알겠나? 네 목은 네가 지키란 소리다. 그리고 오늘 식량 수송이 늦어져 아침은 없다. 이상이다. "



개새끼.

욕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왔지만 꿀꺽 삼켰다. 어제 저녁을 안먹어서 그런지 저 말을 들으니 괜히 더 배고파졌던 것이다. 물론, 어제같이 쇳덩어리 구더기집이 나온다면 먹을지는 의문이지만. 게다가 전쟁터로 간다는 말을 옆집 간다는 듯이 지껄이고 거기서 버림패로 쓰겠다는 말을 본인들 앞에서 아주 시원스럽게 이야기해주는 모습을 보고 패주고 싶다는 생각을 안한다면 그건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틀림없다.


문득 옆을 돌아보니 다른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지 용병이 가자마자 이런저런 쌍욕들이 난무했다. 그런데 쌍욕 사이에 은밀한 움직임이 있었다. 수상한 눈짓, 그리고 중얼거림. 무슨 비밀 신호를 주고받는 것 같기도 하고 잡담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몇 번 그것을 보았지만 정말인지 착각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내성 문이 열리면서 한무더기의 병사들이 튀어나왔다. 얼핏 봐도 500명은 되어보인다. 우리랑 달리 가죽 갑옷 같은걸 맞춰입고 대열을 갖춰 나오는 걸 보니 제대로 된 군대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게 용병이라고? 용병이란건 대게 막장이라는 - 요컨데 지금 우리들처럼 -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들의 등장으로 수군거림이 더욱 커졌다. 소란은 그들 사이에서 한 명이 나와 고함을 칠때까지 계속되었다.


" 다들 조용! 너희가 조용히 있으면 우리는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 그냥 없는 듯이 생각하고 지내라! "


수군거림이 잦아들었다가 조그마한 소리로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소리라도 물경 천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동시에 수군거린다면 웅웅거리는 벌때처럼 시끄러운 소리가 되는 법이라 소란은 금새 되살아났다.


이런 정예병들이 어디서 튀어나왔을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반폼멜 용병대는 북동부와 중북부에 걸쳐있는 다국적 초거대 용병대다. 왜냐면 중부와 북부 출신의 많은 사람들을 사모았으니까. 최소한 그만한 범위를 커버할만한 조직망이 있다는 것이다. 그만한 규모까지 컸다는건 그만한 실적이 뒷받침되었음을 반증한다. 그러려면 물론, 강력한 무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여기 성체의 규모도 백, 이백명이 주둔하는 레벨이 아니다. 안쪽의 정예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2천은 될거라는게 내 생각이었다. 왜냐면, 우리 같은 버림패를 각 문마다 배치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4개 문에 500씩, 최소 2천이라...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규모다. 그렇다면, 지금 1천명은 족히 넘어보이는 우리 같은 어중이떠중이들이 4배, 4천명이란 말인가?


그럼 이 성채에 무려 6천명. 아무리 거대 용병대라도 감당하기 힘든 물량이다. 인간이란 끊임없이 먹고싸고 쉴 자리가 필요한, 유지비가 많이 먹는 축에 드는 '자원'이니까.


나는 그제야 성채 안에 닭장이 있음에도 개같은 식사가 나온 이유를 깨달았다. 용병대는 나름대로 식량 자급자족 구조가 마련되어 있었겠지만 대량으로 우리 떨거지들을 끌어들이는 바람에 무기도 식량도 모자라졌다. 그래서 그런 거지같은 물건이 나온건가. 지금 돌이켜보니 무기도 좀 이상했다. 긴 칼을 주지않고 어설픈 짧은 칼 두 개 준다던가...


여기까지 집합하는 시간도 나름대로 계산한 것이 틀림없다. 또, 용병의 태도에서 우리에게 큰 기대는 커녕 전장까지만 보내면 된다고 생각하고있다.


" 그럼 원래 덩치의 두배나 되는 사람들을 끌어모은 이유가 뭘까? "


생각이 나도 모르게 중얼거림으로 튀어나왔다.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그걸 들었는지 로만이 대답했다.


" 뭐 커다란 계약 따려는데 대가리 숫자 모자란거 아냐? "


맞다. 나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정상인이지만 왠지 모르게 반푼이 같던 이미지였는데 핵심을 찌르는 말을 하니 이상했다. 이거 혹시 가짜 아닐까? 아니, 이놈 지금까지 바보인 척 한거 아닐까?


' 아니, 잠깐. 생각해보면 바보도 아니잖아? '


내 머릿속의 이미지는 대체 어떻게 된거야?


나는 고개를 흔들어 잡생각을 떨쳐냈다. 중요한건 그게 아니니까. 우리가 그저 머릿수 체우기 위해 있다는게 중요했다. 그렇다는건, 일단 계약을 따냈으니 전쟁터에 나갈거고 일단 전쟁터에 나서는 순간 우리들의 존재는 화살받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전투력을 기대하지 않았으니 남은건 인간방패 역할이겠지. 밥값은 빼낼 생각일까? 아니, 도망치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는걸 보면 자기들끼리 처리할 자신이 있는 것 같았다. 그 말이 진심이라고 가정했을때 놈들은 전장에 우리가 있을수록 부담이 누적된다는 말이 된다.


' 만일 이게 맞다면... 도망쳐야돼! '


아마 계약은 이럴 것이다.


용병대가 우리를 사들이고 유지할 비용<계약금이지만 4천명의 덤이 붙어서 처먹기 시작하면 오래지않아 이익이 손해쪽으로 기울어질 액수. 물론 적은 돈이 아니겠지만 4천명을 무장시키고 먹이는데 들어가는 돈은 결코 무시할만한게 아니다. 그리고 용병은 돈을 목숨 다음으로 귀하게 여기는 족속이다. 그들에게 적자는 결코 있어선 안되는 일인 것이다.


그렇다는건... 용병대 입장에선 최대한 우리를 소모시키려고 들겠지. 아니면 식사를 포함한 보급을 끊어버린다거나. 어느 쪽이든 비참한 꼴이 예약되어 있다. 도망치는게 상책이자 그들도 원하는 길이다.


그렇다면. 기회는 전장에 나가기 직전!


머릿수를 확인하고 돈을 받아내는 순간, 우리의 가치는 끝이다. - 용병은 항상 선불을 고집한다 - 그들로서도 우리가 도망가 줬으면 하는 입장이 된다. 이런 가정이라면 그때가 최고의 기회일 것이다. 놈들도 아예 도망가라고 방조할테니까.


'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될까? '


미심쩍긴 했다. 내가 용병대 입장이라면 그냥 소모해버릴망정 도망치게 내버려 둘 것 같진 않았다.


" 아~!!! 젠장! "


나는 머리를 쥐어뜯고 생각을 멈췄다. 나는 머리가 좋지않다. 그야, 평범한 수준은 되지만 모든걸 꿰뚫어볼만큼 명석하진 않다. 그러니 쓸대없는 생각을 해봐야 결론은 나오지 않고 같은 생각이 빙빙 돌 뿐이다. 그 정도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생각이 필요없다면 지금 해야할 일을 할 뿐.


" 젠장, 모르겠다. 난 들어가 잠이나 더 잘래. "


피곤한 척 하품을 하며 땀내 가득한 천막으로 되돌아가는 나를 아무도 막지 않았다. 놈들도 놈들 나름대로 생각이 많을테지. 천막 안으로 혼자 들어와 앉아있자니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걸 확인하고 용병에게 배운 호흡을 시도했다. 이런 것을 남들에게 보여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것 정돈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혼자 있을 상황을 만든 것이다. 호흡이 지속되면서 천천히 뜨거운 기운이 들어와서 몸속을 돌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것은 오직 이것뿐.


하루 안에 아무리 무기를 연습해도 결과가 좋을 리 없다. 그렇다면 몸이라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해야 할 밖에...


그렇게 불안감 속에 시작된 하루는 별 일 없이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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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한거랑 나오는건 항상 다르군요. 좀 더 빨리 지나가려했는데 적다보니 한편 또 끌어 먹었습니다. 쩝...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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