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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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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5.18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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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08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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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 vs 마법

DUMMY

테일러 에스먼드의 마도는 매우 특별하다.


연방의 기나긴 역사에서도 손에 꼽는, 인간이 이루어낸 기적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는 마도를 그가 발현한 건 열 살의 생일파티 때.


생일 케이크가 맛있어서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란 것뿐인데 신기하게도 하나가 더 나타났던 사건 이래,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연방의 주요자원으로 취급받게 되었다.


사용범위가 광범위한 그의 능력은 제일 유용한 마도라고 어디를 가나 칭송받았다.


그런 유능한 마도 보유자가 자신의 의향과 상관없이 당을ㅡ정부를 위해 일하게 된 건 연방에서 태어난 이상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굴레라고 해야겠지.


직접적인 전투에서 못 쓰는 건 아니지만, 다른 방면으로 활용했을 때 더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그 마도의 특성 덕분에 테일러 소령은 어찌 보면 현재 아틀리치니에서 전략적으로 제일 귀중한 자원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아틀리치니의 다른 멤버들이 최전선에서 빛을 발한다면, 그의 마도는 후방에 더욱 적합했다.


따라서 원래라면 절대 최전선에는 발령이 나지 않을 터인 그가 제 발로 전투원 노릇을 하는 건 그의 군경력 역사상 처음이었다.


윗선에서 기를 쓰고 반대를 하니, 전투에 불리더라도 안전한 후방에 묶여있었겠지. 이번엔 무리하게 위험한 독단행동을 했다고 질책을 받겠지만, 이쯤에 이르러선 별로 상관없는 얘기다.


테일러는 동양풍의 여우에게 리볼버를 조준했다.


여우 귀와 복슬복슬한 꼬리를 제외하면 여린 소녀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상대는 엄연한 마왕군 간부다. 그것도 마왕에서 직접 보낸 최정예.


저 마족이 아름다운 외견과는 정반대의 무력을 품고 있음을 알고 있기에, 테일러의 다음 행동에 망설임은 없었다.


탕ㅡ


방아쇠를 당기자마자 기적이라고 불려온 마도가 발동하며, 새하얀 빛의 입자들이 터졌다.


마치 탐스러운 눈꽃이 날리듯, 백색이 퍼져간다.


그 마도가 이뤄내는 현실개변이 무엇인지는 곧 명확해졌다.


테일러가 쏜 탄환. 하나였던 그것은 무슨 일인지 찬란한 빛의 입자들이 사라짐과 동시에 공중에서 돌연 수십 개로 변해 쿠도를 덮쳐온 것이다.


분명 방아쇠를 당긴 건 한 번이었지만 하나였던 것이 둘이 되고, 둘이었던 것은 넷이 된다.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이 쿠도의 눈에 스쳤다.


분명 세상의 이치를 배반하는 모습이지만, 저건 환각 따위가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실체가 뚜렷하게 있는, 오리지널과 똑같은 탄환이다. 그건 같은 재질, 같은 크기, 같은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그 마도의 본질을 바로 이해하진 못했지만, 쿠도는 우선 바로 앞의 위협부터 없애기로 했다.


이 정도라면 중급 방어마법으로도 거뜬히 막아낼 수 있겠지만, 사무라이의 나라ㅡ쿠라마사의 주민인 쿠도는 방어마법을 고려하는 대신 발도 자세를 잡았다.


쿠도 가의 격언ㅡ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것이다.


그 가르침을 그대로 이어받은 차기 당주인 쿠도 하루네는 망설임 없이 탄막을 전부 베어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한 순간, 손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흡.”


휘릭ㅡ


작은 기합과 함께 검이 칼집을 빠져나와, 그대로 횡을 그리며 휘둘러진다.


그건 모든 탄환의 궤적을 '보았기에' 할 수 있는 깔끔한 동작.


단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그녀를 노리던 탄들은 그대로 쪼개지거나 튕겨 나갔다.


찰캉.


쿠도는 바로 달려들지 않고 점잖게 검을 검집에 되돌렸다. 어안이 벙벙해서 자신을 쳐다보는 상대가 보였다.


지금 공격에, 마법은ㅡ마나의 흔적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걸로 충분한가.”


살짝 짧은 검의 손잡이를 쥐며 쿠도가 중얼거렸다.


위대한 주인에게 하사받은 명검이 있긴 하지만, 이번 적은 그 검의 도신을 보여야 할 정도의 역량을 갖지 않은 것인가. 언제나 함께해왔던 자신의 애검으로도 충분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듣던 것처럼 이번 상대가 용사의 역량을 가진 것 같지는 않았다.


“이야, 대단하네.”


잠시 얼어붙어 있던 테일러가 어깨를 으쓱했다.


검으로 수십 발의 탄환을 베어버린다는 말도 안 되는 걸 보았을 때는 아무리 그라 해도 적잖이 놀랐지만, 상대가 마왕군의 최정예라고 생각하니 다시 납득이 갔던 것이다.


“딱히 전투에 많이 나가본 건 아니지만, 내 마도를 그런 식으로 무효화한 건 네가 처음이야. 역시 마족은 인간 따위랑 신체 능력이 다르다는 건가.”


칭찬을 이어가던 테일러의 눈빛이 변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의 카피로 끝나진 않지.”


탕ㅡ!


지난번처럼 눈꽃을 연상시키는 빛의 입자가 순식간에 나타나고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기묘하게도 벌떼가 있었다. 검은 것들이 무수하게 생겨난 것이다.


‘아니지.’


쿠도의 뛰어난 동체시력은 금세 그 정보를 수정했다.


벌떼가 아니다. 하나하나가 음속보다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는 탄환이다.


단지 그 수가 엄청났기에 벌떼처럼 보이는 것뿐이었다.


그건 수천일까, 수만일까. 도저히 상대가 도망칠 여지를 주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수만 명의 병사가 동시에 총을 쏜다면 저렇게 보이지 않을까. 인간이 저것에 맞는다면 흔적도 없이 산산이 조각날 정도의 물량이다.


그 숫자의 폭력이 자신에게 도달하기 전, 쿠도는 빠르게 대응했다.


익숙하지 않은 방어마법을 펼칠 시간은 없다. 그렇다고 저렇게 많은 탄환을 베어버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검술에 능통하더라도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물리적인 방법으로 벤다면, 의 이야기지만.


쿠도의 검이 검집에서 나온 건 찰나의 순간이었다.


휘릭!


눈 부신 빛이 순간 번쩍이나 싶더니, 탄막의 정 가운데ㅡ 그녀를 정확히 노리고 있던 부분이 흩어 없어졌다.


납이 사방으로 튀고, 압도적으로 보이던 숫자의 폭력이 금방 와해되어 간다.


쿠도의 검격이 그대로 탄막의 중앙을 베어버린 것이다. 멀쩡하게 쿠도의 옆이나 머리 위를 지나가는 탄환은 처음부터 빗나가고 있었던 것들뿐.


이번에는 테일러의 입이 완전히 벌어졌다.

“이게 무슨...”


그는 몰랐지만, 마나를 담은 검격은 납 정도는 버터처럼 쉽게 가를 수 있었다.


무기에 흘려 넣은 마나를 그대로 날려 보낸다는 느낌으로, 하나하나가 상급 파괴마법이나 다름없는 위력이다.


물론 이렇게 양으로 밀어붙이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십상이겠지만, 이번에는 테일러의 상대가 나빴다고 해야겠지.


쿠도는 개인전에 능하다고는 하지만 엄연한 마왕군 친위대 소속. 단신으로 일군을 상대할 기술은 여럿 익혀두고 있었다.


“어이, 이게 말이ㅡ”


테일러가 뭐라 말하려고 하지만 , 이번에는 쿠도의 차례다.


그녀는 테일러가 다음 탄을 쏘는 걸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앞으로 달려나갔다.


원거리 공격에만 익숙한 것인지, 자신의 움직임에 전혀 대응하고 있지 못하는 상대. 근접전에 필요한 무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걸로.”


가급적 죽이지는 말리는 명령을 떠올린 쿠도가 칼등을 휘두르려는 찰나ㅡ


방금 보았던 빛의 입자가 다시 반짝임과 동시에 이번엔 거대한 철덩이ㅡ함포가 쿠도의 눈앞에 현현해서 테일러와 그녀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어째서 이런 물건이 갑자기 나타난 것인가 생각해보기도 전에 무려 사람만 한 크기의 포탄이 긴 총구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게 보였다.


“ㅡ!”


그것이 발사되기 직전임을 예감한 쿠도는 즉시 발도ㅡ단숨에 함포와 포탄 모두 반으로 갈라버렸다.


푸쾅ㅡ!


포탄 안에 들어있던 폭발물이 터지며 함포를 산산조각내고, 크고 작은 철 조각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연방군 비행선에서 주로 운용하는 이 함포의 위력은 단순한 총기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단순히 무거운 철 덩어리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폭발물을 넣은 포탄을 쏘아 보내는 것이다.


실제로 불과 얼마 전 마왕군의 냄새를 맡은 예카테리나의 판단 때문에 지상을 불바다로 만든 건 바로 이 함포를 탑재한 비행선이었다.


일찌감치 뒤로 몸을 날렸던 테일러는 역시 이번에도 입안 가득 들어간 눈을 뱉으며 일어났다.


“뭐, 이 정도로 죽을리도 없겠지만 말이야.”


아니나 다를까, 매캐한 연기가 피워 오르는 사이에서 쿠도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던 순백의 막은 이내 사라졌다.


방어마법 따위로 몸을 지켰을 거라 짐작한 테일러는 짐짓 피곤한 얼굴을 해 보였다.


“예상은 했지만 데미지 제로인거냐. 이런 괴물이랑 싸우는 연약한 인간인 내 생각도 해달라고.”


“아니, 그대는 충분히 강하다. 묘한 기술을 쓰는군.”


쿠도가 진지한 얼굴로 고했다.


“굳이 힘조절을 할 정도의 상대는 아니라고 보았다. 지금부터는 제대로 상대할 테니, 무례를 용서해주게.”


“아니, 꼭 손대중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이쪽은 다른 아틀리치니처럼 그렇게 대단한 마도가 아니라 이렇게밖에는 싸우지 못하니까.”


손을 내저으며 그런 말을 하는 테일러였지만, 그의 앞에 작은 빛의 입자들이 모이는 것 같더니, 새로운 함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게 그대의 마도인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함포를 소환해낸 것에 흥미가 동하는지 쿠도가 물었다.


“그래. 같은 배를 탈지도 모르는 사이인데 이제와서 숨길 이유도 없겠지. 이런 뻔한 연극에 오른 동료니까 말이야.”


테일러가 한숨을 쉬었다.


“내 마도는 간단해. 어떤 물건이든지 구성원리만 안다면 새롭게 만들어낼ㅡ복제할 수 있다는 말씀. 그래봤자 생명이 없는 무기물에 한정되지만 말이야. 게다가 시야에 있는 것밖에 안 통하고.”


그가 손을 들어 가리킨 곳에는 마왕의 일격에 운 좋게 멀쩡히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연방군 함포가 우뚝 서 있었다.


“아무 재료도 필요로 하지 않고 그런 게 가능하다는 건가?”


“일단은 말이지. 결국 그것뿐일 능력이니까.”


“대단하군. 신의 권능에 가까울 정도다.”


쿠도가 진심으로 감탄하는 표정을 지어와서, 테일러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 정도로 대단하진 않다고. 고국 사람들은 만물 창조라는 낯부끄러운 이름을 붙이던데, 나는 이걸 '복제'라고 불러. 결국 카피할 뿐인 마도인데 너무 호들갑이라니까.”


헛기침한 테일러는 총을 살짝 내리며 그가 준비하고 있던 이야기를 꺼냈다.


“자, 그래서 말인데. 도저히 내가 이길 것 같지가 않으니 여기서는 내가 진 거로 하고 사이좋게 웃으면서 헤어지는 건 어때.”


“아쉽지만, 그건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다”


쿠도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이 전투의 승자는 가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마왕 각하께 받은 임무는 바로 마왕군의 힘을 보이라는 것. 제대로 매듭을 지어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무척이나 정중하게 고하는 그녀의 모습에는 마족의 오만함 따위는 전혀 없었다.


상대가 검에 묘한 힘을 담아서 날려버리는 시점에서 두손 두발 다 들고 항복한다는 제안을 준비 중이었지만, 고지식한 여우 덕분에 모두 수포가 돌아가버린 테일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무서운 아가씨로구만. 역시 오늘이 내 제삿날인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테일러는 다시 총구를 겨눴다.



◆ ◆ ◆ ◆ ◆ ◆ ◆ ◆ ◆ ◆



피융ㅡ!


설원 위를 날아가는 화살에는 보랏빛 광채가 깃들어 있었다.


쿠구구구, 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며 바로 밑의 눈밭을 거칠게 갈라놓으며 내달리는 건 카니앗의 마나가 담긴 화살이라서 가능한 것이겠지.


그 화살에 머리를 노려지는 레이지스는 기죽지 않고 자세를 꼿꼿하게 한 채로 그에 맞서 광선을 발사했다.


지이잉ㅡ


붉은 광선이 더 빠른 속도로 화살을 덮치며, 마법이 깃들었음에도 본체는 나무와 철로 만들어진 화살에 불과한 것이 순식간에 형태를 잃고 바스러져 없어졌다.


자신의 마도가 마법에도 확실히 먹히는 걸 보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쉰 레이지스는 곧바로 광선을 사출해 반격했다. 노리는 건 여전히 저 다크엘프의 심장이었다.


무방비하게 활을 들고 있던 카니앗에 광선이 명중하는 순간ㅡ다크엘프의 모습이 일렁이며 사라졌다. 방금 것은 가짜, 본체는 다른 곳에 있다.


“또인가요ㅡ!”


환각에 가까운 기술임을 인지하고 적을 찾아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는 레이지스는 직감으로 뭔가를 깨닫고 즉시 하늘을 보았다.


화살이 네댓 개, 자신을 향해 쏜살같이 내리꽂히고 있다.


즉시 옆으로 뛰어 위기를 모면하려던 레이지스. 하지만 그녀의 움직임을 화살들이 그대로 따라가는 걸 인지하고는, 생각을 바꿨다.


“유도 기능까지 있는 화살은 확실히 대단하지만.”


붉은 광원이 얇은 판처럼 퍼지더니, 주인의 몸을 보호하듯 둘러쌌다. 마치 붉은 방패를 세운 것 같았다.


레이지스를 노리던 보랏빛 화살들은 하나같이 그 광원에 닿자마자 모래성처럼 부서졌다.


방어도 문제없는 게 다행이었다고 생각한 레이지스의 시야에, 어쩐지 갑자기 혼자서만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화살이 잡혔다.


화살 하나가 고개를 틀더니, 레이지스의 방패와 충돌하는 대신 그 옆의 땅에 내리꽂혔다.


파방ㅡ!


커다란 소리와 함께 엄청난 양의 눈이 터져 오른다.


순식간에 레이지스의 시야가 막혔지만, 거슬리는 눈을 한꺼번에 치워버리는 건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마도는 핀포인트로 무언가를 저격하는데 특화되어 있었기에, 광범위한 공격에는 대응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완벽한 관통을 자랑하고 있어도ㅡ아니, 그렇기에 역으로 약점이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을 카니앗도 깨달은 것이겠지.


화살을 시위에 거는 카니앗이 작게 읊조렸다.


“풀캐스트ㅡ윈드 카타스트로피.”


세계수 위그드라실의 씨앗으로 대폭 마력을 증폭시킨 카니앗은 죽음을 무릅쓰고 다크엘프의 한계를 넘어 상급 마법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토록 사납게 부는 바람은 그녀의 의지. 마법 시전자의 살기를 담아 더 날카로운 돌풍은 그녀의 끈기.


모든 것을 찢어발길 위력을 가진 세 줄기의 돌풍이 적에게 들이닥친다.


제아무리 강력한 기술을 갖고 있다고 해도, 전방위로 자신의 몸을 지킬 방도를 갖고 있지 않는 이상 빈틈이 있을 테고, 결국 돌풍에 말려들고 말 거라는 게 카니앗의 계산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지잉ㅡ


붉은 광선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고, 카니앗이 놀라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돌풍 사이를 뚫고 날아온 광선은 그녀의 어깨를 스칠락 말락 하며 뒤로 사라져갔다. 조준이 어긋나지 않았다면 목을 그대로 관통했었을 공격이다.


“이걸로 부족한 거냐고...”


오른쪽 어깨의 계급장이 그대로 소멸한 걸 힐끗 내려다본 카니앗은 바로 다음 마법을 준비했다.


저 광선을 마법으로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일부러 도박해보고 싶지 않았을뿐더러, 공격의 속도에 있어선 자신이 확연히 불리했다. 싸움의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선 적이 숨을 돌릴 사이도 없이 마법을 퍼붓는 편이 유리하겠지.


그래봤자 상대는 인간이니 직접 마법이 닿지 않는다 해도 숨을 끊을 방법은 있었다.


“방심은 하지 않는다고.”


카니앗이 중얼거렸다.


“인간이면서도 규격 외의 힘을 가진 건 너 말고도 있었으니까.”


한편, 레이지스는 가까스로 돌풍을 벗어나는 중이었다.


닿기만 해도 베여버릴 것 같은 바람인 데다 완전히 막을 방법도 없었지만, 최대한 넓게 펼친 자신의 광원이 닿은 부분은 어째서인지 살상력을 잃고 평범한 바람으로 돌아가 버린 게 다행이었다.


그래도 마법을 완전히 무효화할 수는 없는 것인지, 금방 다시 소용돌이치려고 하는 바람에 다시 말려들기 전에 도망치는 게 최선이었지만.


“마도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테일러와 달리, 그녀는 자신의 마도가 무엇인지 한가로이 설명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허를 찌르기 위해선 평범한 파괴마법이라고 생각해주는 편이 좋았다.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 나가는 붉은 광선은 일견 파괴마법과 비슷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본질에서 다르다.


파괴마법이 무언가를 부수는 기능을 한다면, 레이지스의 마도는 단지 '없앨 뿐.'


압도적인 힘으로 때려 부수는 것도, 고열로 태워 없애는 것도 아니다.


광선이 지나가는 경로의, 그 광선에 삼켜지는 모든 건 단지 없어질 뿐. 무로 돌아간다고 해도 좋다.


카옌과 닮았다고 할 수 있겠다. 유효 사거리를 늘린 대신 정작 본인의 몸은 무방비하다는 점은 그녀와 정반대겠지만.


레이지스는 매서운 바람을 벗어남과 동시에 카니앗을 찾았다.


주변에서 커다란 폭발 소리가 들렸지만, 그건 그녀의 부관이 싸우고 있는 소리이므로 무시했다. 그녀가 지금 해야 할 건 자신에게 주어진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이니까.


딱히 상대가 보호색으로 위장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기에, 금방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방심할 수 없는 저 다크엘프는 이미 시위를 당기고 있었지만, 레이지스의 머리에서는 자신이 뭔가 잘못 본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아까와 같은 자세지만 이번은 뭔가 달랐다. 시위에 화살이 걸려있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시위를 당기고 있을 뿐이지만, 화살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거대한ㅡ푸른 화염이 요동치고 있었다.


마치 활이 불꽃을 머금고 있다고 해야 할까, 말로는 형용할 수 없었다. 마법이라는 것을 데트르 대륙에서 처음 접하는 레이지스에겐 무척이나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활을 기준으로 이글이글 타며 살아있는 생명처럼 넘실거리는 그 모습은 전설 속에나 나올법한 불사조.


푸르게 타오르는 불사조가 부리를 사납게 벌리며, 날개를 펼친다. 그 우아한 자태를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해버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인가.


숨을 내쉬며 차분하게 그걸 바라보는 레이지스의 양옆으로, 수십 개의 광원이 윙윙거리며 생겨나기 시작했다.


카니앗이 시위를 놓음과 동시에 불사조가 날았고, 빗발치는 붉은 광선들이 그것을 요격하려 쏘아져 나갔다.


두 힘이 서로 마주치는 순간, 잠시 정적이 있었다.


그리고, 시야를 완전히 앗아갈 정도의 눈부신 폭발이 일었다.


작가의말

한편 한편 쓰는데 엄청 오래걸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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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환상을 부수는 번견 +1 22.03.25 123 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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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 +2 22.01.15 116 5 18쪽
200 패배, 그리고 지켜보는 눈 +1 21.12.31 124 4 18쪽
199 카디널 보이드 +2 21.12.24 122 4 17쪽
» 마도 vs 마법 +3 21.12.08 130 3 18쪽
197 망설임을 잠재우지 않으면 +1 21.11.29 121 3 16쪽
196 어둠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1 21.11.16 112 5 18쪽
195 엔딩의 서막 +3 21.11.02 123 7 16쪽
194 시계 바늘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돌아간다 +3 21.10.17 122 5 18쪽
193 예카테리나 페르바크 중위 +1 21.09.28 99 5 18쪽
192 이곳은 죽음이 백색을 띠고 있다 +1 21.09.03 102 5 19쪽
191 하늘에서, 하늘로 쏟아지는 파괴 +2 21.08.01 113 3 17쪽
190 여름 바다, 휴가 +2 21.07.24 111 4 16쪽
189 소녀는 절대 잊지 않는다 +5 21.07.11 119 4 17쪽
188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전란 +3 21.07.05 128 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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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인과응보 혹은 불의 +5 21.01.25 163 7 15쪽
166 보복 +2 21.01.18 153 6 15쪽
165 우연은 필연의 모습을 하고 있다 +5 21.01.16 165 6 14쪽
164 차가운 운명의 굴레는 오늘도 +1 21.01.14 156 6 16쪽
163 모든 게 얼어붙은 나라 +2 21.01.11 188 6 15쪽
162 구원 요청 +1 21.01.10 187 6 15쪽
161 결국 놀이라고 하면 그것 +6 21.01.09 196 7 20쪽
160 다크엘프 대 신벌의 대행자 +4 21.01.07 239 7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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