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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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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5.18 22:05
연재수 :
30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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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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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9
글자수 :
1,694,467

작성
21.11.1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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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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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8쪽

어둠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DUMMY

레윤케에서 연방군이 제대로 된 적ㅡ신ㆍ마왕군을 맞닥트린 건 고작 3번에 지나지 않는다.


레윤케 중앙정부가 무너지고 난 이후에 갑작스레 나타난 외적에 대해 도시국가들과 부족들이 호의적일 리는 없었지만, 연방은 그들의 앞길을 막아서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며 나아갔다.


대륙의 소국이 스파세니예 연방에게 상대가 될 리 없으니, 군 전체적으로 보자면 크나큰 방해 없이 순조롭게 설원을 횡단하는 상황이라고 봐도 이상하지 않았다.


따라서 연방의 병사들은 이 순간까지도 마음을 놓고 있었다.


마왕이라는, 그들이 쓰러뜨려야 하는 위협이 무엇인지 뜬소문으로만 들었을 뿐, 그것의 실체를 직접 마주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병사들 사이에 떠도는 마왕군 간부에 대한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는 건 소수의 인간 뿐이었다.


한 번의 검격으로 수천을 죽였다든가, 하늘에서 운석을 떨궜다는 일견 허무맹랑해 보이는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으니 말이다.


대책도 없고 긴장감마저 부족한 이들이 신ㆍ마왕군에 대항할 수 있을까?


그럴 리 없겠지.


참으로 당연하게도, 마왕이 출몰했다는 소식에 익숙한 진형을 짜서 대기하고 있던 보병 1개 대대는 무참히 짓밟히는 중이었다.


“뭐, 뭐야 저거?!”


“살려ㅈㅡ”


눈이 휘둥그레진 병사들이 소리치고,


쿠웅ㅡ.


한순간에 시끄러운 외침이 멎었다.


그것이 한 걸음을 내딛자, 무리를 지어있던 병사들 서너 명이 한꺼번에 사라진 것이다.


굳이 시체를 확인하지 않아도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예상할 수 있었다.


저 압도적인 중량을 버티지 못하고 입체에서 평면으로 상태를 바꾼 것이다.


“뭐, 뭐냐고. 저건 괴물인가?!”


벌어진 입을 겨우 닫은 병사가 소리치지만, 괴물이 아니고 엄연한 스노우 골렘이다.


성인 남자의 열 배는 되는 크기의 골렘들이 날아드는 탄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발을 옮기는 모습은 그나마 있었던 연방군의 사기도 급격하게 떨어뜨렸다.


하얀 거인들이 인간을 마구잡이로 짓뭉개고, 집어던지고, 유린한다.


가엾은 인간들의 몸이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금방 터져버렸다.


내장이 사방을 날아다니고, 살점이 튀고, 뼈가 부서지는 끔찍한 소리가 생존자의 귀를 울린다.


인간이 저걸 어떻게 쓰러뜨릴 수 있다는 마음조차 없어지게 하는 광경이었다.


타타타타탁! 타타탁!


충격받은 병사들이 겨우 마음을 다잡고 총격을 가하지만, 탄환이 튕겨버리는 것인지 눈을 닮은 신체에 그대로 흡수되는 것인지, 아무리 쏘아댄들 골렘들의 진격을 전혀 늦출 수 없었다.


“뭐냐고 도대체....!!!!”


라이플을 부여잡고 끝까지 총격을 가하던 소대장이 골렘의 발에 깔려버리고, 피가 찰박, 하고 터져나갔다.


“총이 통하지 않는다면...!”


이를 악문 병사 하나가 총을 던져버리고 주특기인 마도를 썼다. 그의 손에 화염이 일렁였다.


그의 마도는 화염계통. 저 골렘의 몸이 눈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이걸로 데미지를 줄 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한 것이겠지.


인간에게 썼을 때 매우 효과적인 마도고, 군 내에서도 평가가 꽤 좋았기에 조금은 기대를 했었던 걸지도 모른다.


완전히 쓰러뜨리지는 못해도 골렘의 진격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지 않겠냐고 말이다.


파방! 파방!


주먹 크기의 불꽃이 목표에 빠르게 날아가 명중했지만,


푸쉬이이이이ㅡ.


결국 골렘의 몸에 아무런 데미지도 못하고 꺼질 뿐이었다.


“아 ㅡ”


단말마를 끝으로 그도 거인의 발밑으로 사라졌다.


저렇게 깔려 죽는 것에는 명예도 무엇도 없다. 계급에 상관없이 모두가 공평하게 납작한 살덩이로 바뀌는 것이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다른 병사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인간을 압도하는 크기, 통하지 않는 공격, 미지의 적.


이걸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쳐들어온다는 적은 마왕군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마족의 모습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저 괴물들만이 성큼성큼 걸어와 진형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골렘이 지나가는 곳마다 납작해진 핏덩이들이ㅡ붉은 핏자국이 남을 뿐.


움직일 의지를 상실하고 무기를 놓쳐버리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이건 추위에 지친 정신이 보여주는 환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연방군이 받은 습격은 기이했다. 무기를 버리고 도망가는 자들이 슬슬 생겨날 무렵,


“여러분, 뒤로 후퇴해주세요.”


낭랑한 목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지잉ㅡ


뭔가 빛나나 싶더니, 붉은 광선이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골렘이 인간이었다면 심장이 있을 자리를 정확히 명중한 붉은 광선은 그대로 작은 크기의 구멍을 만들며, 그 단단한 몸을 관통했다.


병사들의 총탄이 도저히 뚫을 수 없었던 골렘의 신체가 그렇게 쉽게 뚫고도 광선은 멈추지 않고, 하늘로 올곧게 뻗더니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고오오오ㅡ


기괴한 소리를 내며 골렘이 쓰러진다.


1개 대대가 덤벼도 단 하나도 쓰러뜨리지 못한 골렘이 저 광선 한방에 활동을 정지한 것이다.


완전히 격이 다른 마도. 병사들이 희망을 품고 바라본 곳에는 연방군에서도 7명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아틀리치니가 있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 마왕군. 제 평가를 한층 뛰어넘는 느낌이네요.”


분홍 머리칼을 한, 10대 후반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소녀가 말했다.


단정하게 머리를 뒤로 묶은 그녀는 전투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혼자서도 일군을 상대할 수 있는 거라는 걸 병사들은 이해했다.


예나 지금이나, 아틀리치니라는 건 괴물들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 골렘들도 무적은 아닙니다.”


자신을 뚫어져라 내려다보는 골렘들을 겁내지도 않고, 소녀가 설원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코어를 파괴하면 움직일 수 없는 것 같은데, 대공포나 함포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겠네요.”


고오오오ㅡ


골렘 하나가 큰 주먹을 밑으로 휘두르려는 순간,


소녀가 표정을 바꾸자 붉은 구체들이 웅웅ㅡ 소리를 내며 생겨났다. 광선을 쏘아보내는 에너지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그건 저마다 다른 곳을 조준하고 있었다.


지잉ㅡ!


그 붉은 구체들이 동시에 광선을 발사한다.


빛의 속도로 쏜살같이 쇄도하는 그것은 그 어느 무엇에도 멈추지 않고, 진로에 있는 것 모두를 관통하고 지나갔다.


붉은빛이 지나간 순간, 골렘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꿋꿋하게 살육을 자행하던 병기들이 거짓말처럼 얼어붙은 것도 잠시, 그 거대한 조형은 앞으로, 옆으로, 뒤로 무너져내렸다.


쿵ㅡ!


쿠웅ㅡ!


쿵ㅡ!


그 거구가 단체로 쓰러지니 지면에 거대한 울림이 있었다.


더는 움직이지 않는 골렘들은 하나같이 심장이 꿰뚫려 있었다.


소녀는 별거 아니라는 듯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우선 쳐들어온 개체는 전부 파괴한 것 같고... 2차 공격에 대비해서 태세를 재정비해야겠네요.”


혼잣말한 소녀가 돌연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350m 뒤로 후퇴합니다. 대대장은 제 지시가 있을 때까지 대기하라고 하세요. 방어 라인은 제가 담당하겠습니다.”


고작 중위의 계급이지만 그녀는 아틀리치니. 힘을 상징하는 마도의 정점이자, 최고 의회 1석이 보장되는 고위인사다.


병사들은 군말 없이 그녀의 힘에 경의를 표하며 명령에 따랐다. 이 전투에서 그들이 나설 자리가 없다는 건 방금의 건으로 확실해진 참이었으니까.


짝짝짝ㅡ!


뒤에서 나는 소리에 소녀가 고개를 돌렸다. 인상이 훤칠한 청년이 박수를 치며 걸어오는 중이었다.


“레이의 마도는 언제봐도 깔끔한 걸. 덕분에 이 전투의 승산도 높아지겠어.”


“테일러 소령님.”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경례는 필요 없다.


꼬박꼬박 경례를 나누고 다니는 건 적의 저격병에게 아군 지휘관이 우선으로 노려지는 상황에서 오히려 상관이 누군지 대놓고 보여주는 식이겠지.


따라서 레이지스 휴버 중위는 인사를 생략했다.


“지휘본부에 계시라고 말했잖습니까, 적의 패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으니 여긴 위험해요.”


부관이 상관에게 하는 것치고는 너무 쌀쌀맞은 말이었지만, 테일러 에스먼드 소령은 능청스레 넘겼다.


“레이가 걱정돼서 어쩔 수 없었다는 거지, 뭐.”


“게다가 그건 뭡니까?”


레이지스는 테일러의 손에 들린, 연방군의 보급 총기와는 거리가 먼 권총을 가리켰다.


“아, 이거 말이지. 프냐르 항구에서 습격당했던 건은 레이도 기억하지? 이야, 거기에서 나온 노획품이라길래 한번 구경이나 해볼까 했는데 말이야. 이건 정말 상급품이더라고!”


테일러가 리볼버를 착하고 겨냥해 보였다.


“알고는 있었지만 우리가 쓰는 거랑은 결이 달라. 그래서 연구 주임의 양해를 구하고 계속 가지고 다니기로 했다는 말씀이지. 어차피 상층부도 나를 활용해서 전군에 보급할 생각이더라고!”


레이지스는 ‘여덟 발밖에 들어가지 않는 탄이 떨어지면 어떻게 할 거냐’는 요지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테일러의 마도를 생각하면, 앞으로도 저 마왕군의 권총을 계속 쓸 거라는 그의 말은 아마 정답이리라. 그의 마도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으니까.


“새로운 총기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화력은 확실히 증강시킬 수 있겠군요.”


단지 숨진 적병에게서 뺏은 총기뿐인 것을 단시간에 전군에 보급한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은 연방에서 오직 단 한 사람ㅡ테일러 에드먼드 소령에 한해서는 현실이 된다.


“하지만 고민이란 말이지. 그렇게 해버리면 마왕 씨가 화낼 거 같고.”


테일러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어차피 이번 건만 해도 ‘정상적인’ 전투가 아니잖아?”


레이지스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이런데서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겁니까, 소령님. 아직 확정 난 것도 아니잖아요. 즉각 군사재판에 회부될 정도의 안건입니다.”


“들을 사람도 없는데 뭐 어때? 레이도 참.”


테일러가 권총을 휘리릭 돌렸다.


“우리를 여기로 보낸 건 예카테리나야. 그 아이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너도 알고 있다. 그러니 순순히 응해서 이렇게 마왕군과 맞딱드리게 된거지.”


“부정은 않겠습니다만...”


레이지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에도 이곳은 전장입니다. 마왕이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장에서는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요. 만일 페르바크 중위의 뜻대로 일이 흘러간다고 해도, 저는 절대 긴장을 내려놓지 않을 겁니다.”


“그러네. 그 그림이 나온다고 해도 우리 군은 꽤 피해를 보게 될 테니까. 그 제안을 고려하는 시점에서, 나는 이미 매국노일지도 모르지.”


테일러가 씁쓸하게 웃었다.


“모르겠어, 레이. 빠른 패배로 끝나는 게 좋을지, 역경의 승리가 맞는지. 하지만...”


씁쓸한 미소는 곧 곰곰이 생각하는 것으로 바뀐다.


“나는 못 이길 적이 아니라면 이기는 편이 좋은걸.”


“저도 동감이에요. 연방군은ㅡ아틀리치니에게 패배라는 건 없었으니까요. 제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바로 백기를 들 생각은 없는걸요.”


“그래야 내 부관이지!”


씨익 웃은 테일러는 레이지스의 등을 두드렸다.


“그럼 가보자고, 레이. 마왕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한번 직접 확인하는 거야. 레이 혼자 보내는 건 너무 걱정되니까, 알지?”


“... 어쩔 수 없네요.”


자신만만하게 걷는 테일러. 레이지스가 한숨을 쉬며 서둘러 그를 따라갔다.



◆ ◆ ◆ ◆ ◆ ◆ ◆ ◆ ◆ ◆



압도적으로 적의 진형을 무너뜨리던 스노우 골렘이 묘한 광선을 맞고 차례로 쓰러져간다. 적진에 보낸 열 마리의 개체는 코어가 파괴당해서 무력화되었다.


코어의 귀중함을 생각하면 적에게 준 피해가 고작 이 정도로 끝났다는 것에 아쉬워해야 할 수도 있겠지만,


“예상대로다. 관객도, 배우도 모였어.”


그 모든 걸 탐지마법으로 띄워서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틀리치니가 이렇게까지 빨리 지원을 올 수 있었던 건 그 아이가 귀띔해준 덕분이겠지.


예카테리나는 말했다. 아틀리치니 전원이 그녀의 의견에 바로 찬동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모두의 의견을 돌리려면 '연방의 죄'가 등장해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건 그 준비과정에 불과했다.


“모두, 주의사항을 전달하겠다.”


나와 함께 임시 거점ㅡ피아넬이 마법으로 만들어낸 2층짜리 오두막에서 쉬던 간부들이 하던 대화를 멈추고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 작전은 스노우 골렘을 제외하면 병력을 전혀 움직이지 않으니 나를 포함한 간부들이 보고를 받을 작은 천막 정도가 필요하다고 일러둔 것뿐이었지만, 피아넬은 귀족의 별장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오두막을 순식간에 뚝딱 소환해냈다.


이렇게 거실 테이블에 모여앉으니 스키장 산장에라도 여행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내가 말을 꺼냈다.


“아틀리치니의 전략적 중요성은 이미 설파해뒀겠지. 마왕군의 힘을 보이는 건 상관없지만, 가급적 그 둘을 죽이지는 마라. 이 계획이 틀어지면 전면전으로 놈들을 짓밟는 노선을 탈 수밖에 없으니 말이야.”


“즉, 둘 이외에는 죽이나 살리나 상관없다는 말씀이시군요.”


린이 귀를 쫑긋거렸다.


“역시 린이야, 이해가 빠르군.”


내가 작게 웃었다.


“놈들은ㅡ연방군은 우리의 신성한 땅에 흙뭍은 발을 들인 불청객이다. 포로로 잡기 귀찮다면, 전부 죽여버려라.”


마왕군 간부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흡족하게 보던 나는 테이블 반대편의 대천사에게 말을 걸었다.


“가브리엘은 이전에 아틀리치니와 대립한 적이 있었지. 네 입장에서 어땠는지 다시 물어도 되겠나?”


“마법과는 전혀 종류가 다른 힘. 경계할 필요가 있다.”


언제나 무표정인 가브리엘이 입을 열었다.


“용사의 고유스킬과 흡사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짧은 답을 마치고 다시 입을 다물어버린 가브리엘. 하지만 아틀리치니 하나하나를 용사에 필적하는 정도로 경계하라는 그녀의 조언은 충분히 도움이 되었는지, 부하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가브리엘ㅡ대천사가 말하는 것처럼 그들의 마도는 강력하다. 너무 얕보고 있어서는 안 돼.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부하가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


나는 주위를 빙 둘러보았다.


“좋아, 아틀리치니가 둘이니 이쪽에서도 둘을 보내볼까. 지원자는 있나?”


동시에 거의 모든 손이 올라간다.


“보스, 굳이 둘이나 보낼 필요가 있겠습니까, 저 하나로 충분하죠.”


제일 먼저 자신만만하게 얘기한 건 가름.


“용사랑 싸우다가 제3문까지 개방해서 민폐를 끼친건 기억하고 있겠죠, 가름.”


린의 차가운 시선이 그를 향한다.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나요.”


“그, 그건...”


가름의 강아지 귀가 풀이 죽어 내려갔다.


“아직 전장에 직접 나와 공을 세우지 못한 자들도 있습니다. 가끔은 동료들에게 양보하는 것도 좋은 지휘관의 자세예요, 가름.”


린의 말마따나, 직접 전장에서 나가지 못한 자들도 있다.


평소라면 제일 먼저 자원했을 린이 손을 들지 않은 것은 역시 내게 꼭 잘 보이고 싶다는 의욕을 보이는 자들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겠지.


그 단적인 예로 바실리스크ㅡ류드라이의 경우에는 군수를 담당하느라 그 전투능력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작전에 파견된 적이 없으니 말이다.


멋쩍은 얼굴을 한 가름의 손이 내려가고, 나는 테이블을 탁탁 두드렸다.


“남자쪽의 능력은 모르겠다만, 그 소녀는 무엇이든 뚫는 광선을 쏘아보낼 수 있는 모양이더군. 다들 방어마법은 쓸 수 있겠다만, 평범한 마법으로 그 광선을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의문이다. 따라서 회피기동에 능한 자가 좋을 것 같다만.”


손이 더 내려가고, 남은 건 딱 둘이었다.


“쿠도 대위, 그리고 카니앗인가. 나쁘지 않군.”


비슷한 키의 두 소녀ㅡ여우와 다크엘프를 보며 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각하의 기대에 미칠 수 있도록 완전한 승리를 가져오겠습니다.”


쿠도가 먼저 일어서서 내게 경례하고,


“저 또한, 이번에는 반드시...!”


카니앗이 승리를 다짐했다.


저번까지만 해도 천벽인광의 리우 에스타와 호각이었던 카니앗이지만, 강자들의 싸움에는 상성이란 게 있다. 끝까지 목표를 추적하는 그녀의 화살이라면 저들에게도 밀리지 않겠지.


쿠도도 실수로 적을 죽여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강하니, 안심하고 맡길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누가 누구를 맡느냐, 정도인데. 그건 저 남자의 마도를 보고 나서 현장판단에 맡기겠다.”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어깨를 풀었다.


“아틀리치니를 제외한 졸개들은 괜히 개입하면 귀찮으니 말이 나온 김에 처리하지. 다들 구경이라도 하겠나?”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먼저 오두막의 문을 열고 대기하는 건 쿠도 대위다.


여기에서는 그녀가 제일 계급이 낮으니 저런 행동이 당연하겠지만, 여우 꼬리를 살랑이는 그녀가 고지식할 정도로 충실하다는 건 가름이 보증해주겠지.


부하들을 데리고 나온 나는 적진이 잘 보이는 위치에 서서 검지를 내밀었다. 우리가 선 언덕에는 여전히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어디보자, 얼마나 죽이면 좋을까.”


속삭이듯 말하자, 내 검지에 검은빛이 모여든다.


그건 단순한 빛처럼 보이기도 했으며, 타탁 하고 타들어가는 것 같은 불꽃 같기도 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불태워버리는 이 상급 파괴 마법은 내가 언제나 즐겨 쓰는 것으로, 이번에는 연대급 기지에 쏘는 것을 감안해서 그 위력을 꽤 높일 생각이었다.


“오오ㅡ역시 마왕님의 마법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군요.”


“쉿. 마왕님의 집중을 흩트리지 말아라.”


뒤에서 감탄하는 소리를 내는 건 피아넬 비 코르니아스, 그리고 그에 주의를 주는 건 왠지 모르게 이전부터 사이가 안 좋은 것 같은 류드라이다.


뭐, 부하들의 기대에 상응하는 걸 보여줘야 하겠군.


“풀캐스트ㅡ버스트.”


내 파괴 의지를 담은 검은빛이 순식간에 터져나갔다. 그 반동으로 인해 내 코트가 사납게 펄럭였다.


저마다 다른 동선으로 뻗어 나가는 칠흑의 빛이 가진 공통점은 모두 연방군의 기지를 향하고 있다는 것.


목표는 전방의 적기지. 마력량을 적당히 조절했으니 이 정도면 7할은 사망하겠지.


나는 상큼하게 웃었다.


“잘 보고 피해달라고, 아틀리치니 제군.”


작가의말

오늘도 빠짐없이 찾아온 격주 업로드

이번의 적들은 무슨 능력을 갖고 있을까요. 쿠도랑 카니앗 둘이서 이길 수 있을까요?

+키루아 덴트의 설정화가 완성될 예정입니다. 마음에 들면 표지로 할지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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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빛 바랜 재회 +2 22.05.13 112 6 17쪽
207 스비엣, 첫 번째 불꽃의 예찬자 +1 22.04.12 126 6 18쪽
206 흉조의 완성 +1 22.03.30 122 5 19쪽
205 환상을 부수는 번견 +1 22.03.25 123 4 15쪽
204 의지는 얼어붙지 않는다 +1 22.03.03 122 5 18쪽
203 격돌 +1 22.02.22 112 4 17쪽
202 집결 +1 22.02.08 110 5 17쪽
201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 +2 22.01.15 116 5 18쪽
200 패배, 그리고 지켜보는 눈 +1 21.12.31 124 4 18쪽
199 카디널 보이드 +2 21.12.24 122 4 17쪽
198 마도 vs 마법 +3 21.12.08 129 3 18쪽
197 망설임을 잠재우지 않으면 +1 21.11.29 121 3 16쪽
» 어둠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1 21.11.16 112 5 18쪽
195 엔딩의 서막 +3 21.11.02 123 7 16쪽
194 시계 바늘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돌아간다 +3 21.10.17 122 5 18쪽
193 예카테리나 페르바크 중위 +1 21.09.28 99 5 18쪽
192 이곳은 죽음이 백색을 띠고 있다 +1 21.09.03 102 5 19쪽
191 하늘에서, 하늘로 쏟아지는 파괴 +2 21.08.01 113 3 17쪽
190 여름 바다, 휴가 +2 21.07.24 111 4 16쪽
189 소녀는 절대 잊지 않는다 +5 21.07.11 119 4 17쪽
188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전란 +3 21.07.05 128 5 19쪽
187 동전의 뒷면은 온도가 다르다 +2 21.06.21 120 6 17쪽
186 전쟁은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1 21.06.07 122 4 17쪽
185 종언의 천사 +5 21.05.24 136 5 15쪽
184 광기의 과학자 +3 21.05.15 136 5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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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천사, 인간, 그리고 광인 +4 21.04.25 168 5 18쪽
181 메스에는 피가 묻어있다 +2 21.04.12 129 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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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인페르노 +1 21.03.11 142 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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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밤에 물들어버린 빛 +5 21.02.15 192 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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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어둠은 꽈리를 틀었다 +4 21.02.10 177 7 15쪽
172 마왕의 방문 +3 21.02.07 182 4 16쪽
171 연방 +2 21.02.04 160 6 19쪽
170 기다리는 건 죽음 +3 21.02.02 176 6 16쪽
169 엑스트라는 엑스트라답게 퇴장한다 +5 21.01.31 160 7 17쪽
168 바람은 방향을 바꾼다 +3 21.01.27 147 7 14쪽
167 인과응보 혹은 불의 +5 21.01.25 163 7 15쪽
166 보복 +2 21.01.18 153 6 15쪽
165 우연은 필연의 모습을 하고 있다 +5 21.01.16 165 6 14쪽
164 차가운 운명의 굴레는 오늘도 +1 21.01.14 156 6 16쪽
163 모든 게 얼어붙은 나라 +2 21.01.11 188 6 15쪽
162 구원 요청 +1 21.01.10 187 6 15쪽
161 결국 놀이라고 하면 그것 +6 21.01.09 196 7 20쪽
160 다크엘프 대 신벌의 대행자 +4 21.01.07 238 7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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