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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6.22 21:55
연재수 :
308 회
조회수 :
137,389
추천수 :
3,292
글자수 :
1,713,963

작성
21.04.04 23:20
조회
151
추천
5
글자
16쪽

그것은 천천히, 하지만 치명적으로

DUMMY

마왕군 본부, 광맥지대 제8계층.


가름은 윤기 나는 대리석이 깔린 널찍한 복도를 성큼성큼 걸었고, 그의 군화 소리가 조용한 복도를 울렸다.


마왕의 알현실과 집무실이 같이 있는 계층인 만큼 경비가 삼엄했지만, 최측근인 군무부 권한대행을 감히 막아서는 헌병은 없었다.


각 병사ㆍ간부마다 사전에 정해진 액세스 권한이 있는 만큼, 허가 없이 침입한 자가 있다면 진작에 헌병 대기조가 출동했겠지. 마왕군 시설은 몇 군데를 제외하고 전부 탐지마법에 의해 감시되고 있으니 말이다.


집무실에 들어가기 전, 가름은 뭔가를 생각해내고 군모에 쌓인 눈을 털었다. 주인의 공간에 들어가는데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다.


모자뿐만 아니라 어깨에도 수북이 쌓여있는 눈을 터는 가름.


광맥지대에 눈이 내리는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는 건 아니다. 그는 주인의 부름을 받고 머나먼 이국의 땅으로부터 전이해온 참이니까.


그가 맡아서 진행하던 레윤케 작전의 경과를 생각하던 가름은 살짝 침울해졌지만, 이내 밝은 표정을 만들고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라.”


익숙한 목소리가 그의 입장을 허가했다.


가름은 긴장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마지막으로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다.


“방금 막 도착했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보스.”


함부로 말을 꺼내기 힘든 분위기인 알현실과 다르게, 마왕의 집무실은 흔히 볼 수 있는 사무실 느낌이었다.


불필요한 가구는 없고,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술장을 빼면 지배자에 어울리는 사치도 최소한도로 줄인 건 이 집무실의 주인의 의향이었다.


창가에 마련한 책상 건너편에 앉아 손을 턱에 괴고 있던 소년이 가름을 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군복 대신 자주 걸치는 코트를 벗고 셔츠의 팔을 걷어 올린 채인 그는 가름의 우려와는 달리 그렇게 심각한 얼굴은 아니었다.


“급한 이야기는 아니다. 일단 앉도록.”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추운 겨울이지만 온도조절마법 덕분인지 실내는 꽤 따뜻했다.


가름은 외투를 벗어 걸 곳을 찾으려 했지만, 이내 그의 외투가 저절로 두둥실 뜨더니 공중에 걸렸다.


그의 주인이 무영창으로 쓴 마법이다.


“감사합니다, 보스.”


그는 내색하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


“너무 오래 붙잡아둘 생각은 없어. 연회장에 네 부대원을 위한 특식이 준비되어 있다. 그 척박한 땅에 오래 있었으니 제대로 된 음식의 맛도 슬슬 잊어버릴 참이겠지.”


“오,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가름이 반색을 하며 물었다.


온후한 계절. 맛있는 음식. 반가운 얼굴.


불린 이유는 둘째 쳐도, 그에겐 이미 집이나 다름없는 광맥지대에 돌아오는 건 절대 나쁘지 않았다.


군모를 벗는 그의 얼굴이 조금 상기되고, 꼬리가 살랑이고 있는 건 역시 그런 아늑함 때문이겠지.


“나중에 린에게도 얼굴 좀 비춰라. 아무리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아도 하나뿐인 동생 걱정을 하지 않는 누나는 없으니까.”


“옙, 물론입니다. 너무 혼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말이죠...”


가벼운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소년은 술장에 다가가 술을 골랐다. 잠깐의 고민 끝에 그가 고른 건 와인.


자연스레 가름에게도 유리잔이 건네졌다.


“이건 처음 보는 레이블이네요.”


가름은 주인이 테이블에 내려놓은 와인병을 살피다, 낯익은 이름이 적혀져 있는 걸 보고 손을 멈췄다.


황금색 글씨로 멋들어지게 쓰여 있는 건 바로 유디트 황국. 이젠 역사 속으로 사라진 비운의 나라다.


“이건 참, 사연이 깊은 놈이네요.”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치의 과장 없이 이 세상에 몇 병 남지 않은 물건이다. 그 제조법은 주인과 함께 땅으로 돌아갔으니까. 하지만 맛은 보장하지.”


와인의 맛을 본 가름은 입맛을 다셨다.


단맛이 있으면서도 술 본연의 향과 맛, 목 넘김에 충실하다. 굳이 따지자면 그는 위스키 파였지만 꽤 중독될 것 같은 맛이었다.


“엘프 놈들의 술이랑 비교해도 손색이 없군요. 다만 더는 만들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유한의 아름다움이라는 게 있지, 그만큼 마지막 잔은 더 맛있지 않겠나. 그래, 갈 때 한 병 들고 가도록 해라.”


가름이 잔을 비우는 걸 기다린 소년ㅡ마왕 류셀이 입을 열었다.


“상황이 바뀌었다, 가름.”


지금부터 일 이야기가 나온다고 직감한 가름은 진지한 얼굴을 만들고, 주인의 말을 경청했다.


검지로 원목 테이블을 두드리던 류셀은 곤란하게 되었다는 듯 작은 한숨을 쉬었다.


“원래 너와 쿠도 대위는 붉은 유령의 추적을 위해 당분간 레윤케에 있을 예정이었는데 말이지.”


그렇지 않아도 계속 속으로 앓고 있었던 문제의 등장에, 가름이 뜨끔하며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았다.


자신의 실책과 마주봐야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죄송합니다, 보스.”


푹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갓난아기도 울음을 멈추게 한다는 저승의 번견ㅡ헬하운드도 이 소년 앞에서는 주인에게 혼날까 봐 조바심을 내는 강아지에 불과했다.


“결국 제때 그 년을 잡지 못해서... 좀더 일찍 움직였어야 하는데.”


면목이 없어 그는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석탄 채굴장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그건 다른 누가 갔어도 그리되었을 것이다. 필요한 게 채굴장뿐이었다면 피아넬에게 전적으로 맡겨도 괜찮았겠지.


가름이 레윤케에 파견된 이유는 채굴장과 용사 후보ㅡ두 가지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 위해서인 것이다.


특히나 용사 후보 건은 연방군이 오기 전에 처리해야 할 안건이므로 중요도가 매우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년은 도망쳐버렸다.


이번에도 주인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에 가름은 적지 않은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마왕군 간부.


마왕의 신뢰를 받으며 높은 직책을 부여받은 종복이다.


마왕군에서도 모범이 되어야 할 그가, 마왕이 직접 내린 임무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건 좋지 않았다.


이번에도 최선을 다했음에도 그 계집은 유유자적 자취를 감춰버렸다. 단순히 감이 좋은 건지, 아니면 타이밍이 나빴던 건지.


수도를 시작으로 레윤케를 쥐잡듯이 뒤지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가름은 조마조마하며 류셀의 말을 기다렸다.


자신에게 어떤 식으로 실망할까. 기회를 계속 주지만 나아질 기미가 없는 이 한심한 부하에게.


그에게 있어 제일 무서운 것은 이놈은 쓸모없는 부하라고 단정 지어지는 것이었다.


현 마왕을 누구보다 우러러보고 섬기는 가름에게, 주인의 도움이 되지 못해 버려진다는 건 죽음보다 끔찍한 것이었다.


“가름. 너,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건가?”


하지만 류셀의 반응은 가름의 예상을 한참 벗어나는 것이었다.


“내가 너를 여기로 부른 건 문책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럴 거였으면 술을 권하지도 않았지.”


가름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주인이 늘 그렇듯 그 말에 상냥함은 미미했지만, 정작 그에 담겨 있는 건 한치도 거짓된 점 없는 배려였다.


“레윤케 건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직접 갔었어도 놓치고 말았겠지. 너는 맡은 자리에서 충분히 힘써주고 있어. 너희들과 같은 뛰어나고 충직한 부하를 둔 나는 운이 좋다고 해야겠지.”


가름이 여태 가슴 졸이고 있었던 게 바보 같을 정도로, 류셀은 당연하다는 것마냥 말했다.


“좀 더 자신이 하는 것에,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을 가지는 건 어때. 탓을 한다면 네게 지시를 내린 내 탓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가름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반복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인은 그를 꼴사납다고 꾸짖지 않았다.


부하의 실패를 부하의 능력 부족이라고 단정 짓기보다 본인에게 책임의 화살을 돌렸다. 부하를 탓하는 게 훨씬 쉽다고 알면서도 말이다.


제일 높은 곳에 서 있음에도 자만하지 않고 냉정한 시선을 유지한다. 그건 천계의 신들이 아득히 옛날 저버린 도의였다.


“... 감사합니다.”


그릇이 크다고밖에 할 수 없다.


한때 인간이었고, 지금은 마왕으로 그들을 이끌고 있는 이 소년은 어딜 봐도 명실상부한 그의 주인이었다.


가름이 새롭게 주인을 향한 존경과 충성을 다지고 있는 사이, 류셀은 마법 수정 하나를 책상 서랍에서 꺼냈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지. 네 향후 작전에 영향을 줄 만한 정보가 들어왔다. 린이 예의 용사 후보의 소재를 새롭게 파악했어. 뭐, 다른 걸 감시하다가 얻어걸린 거나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그 말씀은...?”


“너는 아직 보지 못했었지. 자, 사흘 전 있었던 교전의 기록이다.”


류셀이 말하기가 무섭게, 집무실의 한쪽 벽에 영상이 비치기 시작했다.


“스파세니예 연방... 프냐르에 도착했다고 듣긴 들었습니다. 어느 수준인지 알아보기 위해 로그가 좀 들쑤셔봤다죠.”


“그래. 드래곤을 상대로도 꽤 잘 싸워주더군. 우리의 적으로 기대해도 될만한 역량이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낸 주인의 의도를 모르겠어 가름은 그의 눈치를 살폈다. 마도라 하는 수상쩍은 힘을 쓰는 외적은 용사 후보를 쫓는 가름의 작전과는 별 관계가 없었기에.


류셀도 가름의 시선을 깨달았는지, 영상을 멈추며 말했다.


“아무래도 붉은 유령ㅡ유리에는 연방군과 손을 잡은 모양이다.”


“뭣ㅡ”


가름은 진심으로 놀랐다.


그 계집이 그 사이에 다른 세력에 붙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언제 거기까지 갔답니까?”


“글쎄다. 연방군의 도착을 알고 있었는지, 단순히 대륙을 벗어날 길을 찾으려 했던 건지. 프냐르에 나타난 그 녀석을 확인하는 데는 별로 어려울 게 없었다. 항구에도 눈을 심어뒀으니 말이지.”


류셀은 덤덤하게 말하며 술잔을 들었다.


“연방군과 하하 호호하게 된 경위는 둘째치고, 향후의 일이 좀 복잡해지게 됐다는 소리다.”


정말이지 복잡해졌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마왕군의 최우선 목적은 연방군이 이 데트르 대륙에 끌고 온 각종 기술의 진수를 최대한 온전하게 강탈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차별적인 전방위 공격은 논외.


확실하게 연방군의 주요 전력을 깎아내는 방식으로 승리를 거머쥘 예상이었다.


허나 이건 붉은 유령이 연방군과 함께 행동한다는 전제를 깔지 않은 채 내린 방침이다.


유리에는 검술과 마법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전장의 판도를 바꾸는 인간병기. 그런 것을 상대해야 한다면 일대를 불바다로 만드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을 수도 있다.


“이렇게 된 이상 그냥 제가 한 방에 쓸어버릴까요? 제3문을 쓰면ㅡ”


“네 능력인 '죽음'은 생물의 죽음만이 아니잖냐. 다 부서진 채로 기계를 회수해봤자 의미는 없지.”


가름이 살짝 시무룩해졌다.


모든 것에 죽음을 선사하는 그의 힘은 아군, 적군을 가리지 않기에 함부로 쓸 수도 없는 양날의 검이었다.


“알겠나, 가름. 놈들은 지난 12월에는 찾아오지 않은 산타다. 예상과 조금 틀어지긴 했지만 붉은 유령이 그쪽에 붙었다면 연방군과 함께 잿더미로 만들어주면 돼. 계획했던 것보다 조금 과격한 수를 둬보는 거다.”


“공격을 앞당기시는 겁니까?”


류셀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리우와 가브리엘이 마중을 나간 참이다.”


“그 성기사 말입니까... 그 인간을 신용할 수 있을까요? 뒤에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곧 명백해지겠지.”


류셀이 잠시 뜸을 들였다.


그의 눈에 비친 건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앞으로 다가올 충돌에 대한 기대였다.


“재미있어. 재미있단 말이다, 가름. 이 전쟁이 기대되지 않나? 놈들이 불태우는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보고 싶다.”


이 소년은 진심으로 들떠 있었다.


산더미처럼 쌓일 시체의 산이 벌써부터 보인다는 듯이. 전장을 가득 채울 비명과 총성이 벌써부터 들린다는 듯이.


“인간의 의지라는 게 마법과 총탄에 의해 꺾일만한 것인지, 한번 기대해보도록 하지.”


마법 수정을 다시 집어넣은 류셀은 가름의 잔에 술을 더 채워주며 말했다.


“너와 쿠도에게도 새로운 지령이 떨어질 거다. 채굴장 건은 피아넬에 맡기고, 이 위협에 대처하는 것에 집중하도록.”


가름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고개를 숙였다.


“보스의 뜻이 곧 저의 뜻입니다.”



◆ ◆ ◆ ◆ ◆ ◆ ◆ ◆ ◆ ◆



곧 도착할 본대를 기다리기보다 나중에 합류하기를 선택한 연방군은 예상대로 우회 없이 레윤케를 일직선으로 가로질렀다.


아일란즈 공국으로부터 레윤케 중앙정부가 함락당했다는 소식을 전해듣지 못한 건 아니다.


범인은 마왕일 확률이 높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지만, 마왕군과의 충돌은 어차피 피할 수 없을 테니 강행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눈이 가득 내린 혹독한 레윤케의 땅에서도 연방군은 주춤하지 않고 진군을 계속했다.


이런 날씨라면 스파세니예에서 진절머리가 나도록 보아온 그들이다.

그들이 모는 차량 중 다수는 위에서도 굴러갈 수 있는 궤도가 장착되어 있었고, 군장을 멘 병사들은 노련하게 눈신발을 신고 눈보라를 헤쳐나갔다.


증기기관에 쓸 땔감, 식수 등을 현지에서 마련해가며 진군해온 연방군은 이미 중앙정부의 세력에서 벗어나 있던 부족 국가들과 조우한 바 있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스파세니예 연방이 오로지 마왕을 타도하겠다는 숭고한 의지를 가지고 데트르 대륙에 온 게 아니라는 건 연방군이 지나온 길에 있는 함락된 부족 국가들과 반쯤 눈에 파묻힌 시체가 말해줄 것이다.


이건 구원 작전이 아닌, 침공 작전.


마왕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대륙을 구원한다, 라는 겉모습뿐인 명분은 충분했다.


대륙을 집어삼킨다는 연방의 오랜 숙원은 이들에게 팔을 뻗으면 잡히는 거리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행군을 멈추고 설원 위에서 익숙하게 식사를 준비하는 연방군, 그리고 그 캠프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광경을 멀리서 바라보는 소녀가 한 명.


단단히 여민 코트 밑에 그녀가 입은 건 과거의 사제복이 아닌, 칠흑처럼 검은 군복이었다.


“대천사님, 적 진영을 확인했습니다.”


리우 에스타는 격식있게 동행인을 불렀다.


“확인했다.”


리우보다 조금 어린 모습인 여자아이가 대답했다.


그 가녀린 몸을 감싸는 건 가벼워 보이는 흰 천이 전부였지만, 그녀의 머리 위에서 빛나는 천사의 고리가 인간이 느끼는 추위는 그녀에게 문제가 되지 않음을 시사했다.


과묵한 둘이 함께 작전지에 배치되어 지금까지 나눈 말은 출발하겠습니다, 도착했습니다, 정찰을 보냈습니다 등 사무적인 것뿐이었다.


천사와 성기사 뒤로 마도중대 하나가 따라오고 있었지만, 중대장인 하이엘프도 이 둘에게 말을 거는 건 의미가 없는 걸 깨달았기에 삭막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한 지 오래였다.


하나는 인간이고 하나는 천사.


오랜 고립의 역사 때문에 다른 마족도 대하기 껄끄러운 하이엘프인 류아는 이 둘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이엘프들 중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아 이렇게 중요한 임무가 내려온 건 반가웠지만, 기왕이면 좀 더 사교성 있는 마왕군 간부와 동행했으면 어땠을까.


“음, 그래서 공격 말인데요.”


시답잖은 이야기를 해서 분위기를 더 어색하기 만들기보다, 류아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걸 선택했다.


“작전대로 제 중대가 먼저 폭격을 하고 그 뒤에 두 분이 출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변경사항은 따로 없을까요?”


“작전대로 진행한다. 모든 건 주인의 뜻대로.”


가브리엘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그녀가 뒤로 활짝 펼친 날개에 성스러운 빛이 감돌고, 오늘도 무표정을 유지하는 대천사는 덤덤하게 말했다.


“신께서 저들에 내리는 은총은, 죽음이다.”


작가의말

오하 (오랜만에 하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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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스비엣, 첫 번째 불꽃의 예찬자 +1 22.04.12 127 6 18쪽
206 흉조의 완성 +1 22.03.30 123 5 19쪽
205 환상을 부수는 번견 +1 22.03.25 123 4 15쪽
204 의지는 얼어붙지 않는다 +1 22.03.03 123 5 18쪽
203 격돌 +1 22.02.22 114 4 17쪽
202 집결 +1 22.02.08 111 5 17쪽
201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 +2 22.01.15 116 5 18쪽
200 패배, 그리고 지켜보는 눈 +1 21.12.31 124 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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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 망설임을 잠재우지 않으면 +1 21.11.29 125 3 16쪽
196 어둠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1 21.11.16 119 5 18쪽
195 엔딩의 서막 +3 21.11.02 127 7 16쪽
194 시계 바늘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돌아간다 +3 21.10.17 132 5 18쪽
193 예카테리나 페르바크 중위 +1 21.09.28 103 5 18쪽
192 이곳은 죽음이 백색을 띠고 있다 +1 21.09.03 105 5 19쪽
191 하늘에서, 하늘로 쏟아지는 파괴 +2 21.08.01 118 3 17쪽
190 여름 바다, 휴가 +2 21.07.24 112 4 16쪽
189 소녀는 절대 잊지 않는다 +5 21.07.11 120 4 17쪽
188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전란 +3 21.07.05 129 5 19쪽
187 동전의 뒷면은 온도가 다르다 +2 21.06.21 121 6 17쪽
186 전쟁은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1 21.06.07 128 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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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광기의 과학자 +3 21.05.15 139 5 18쪽
183 표지가 새로 나왔습니다 +3 21.04.27 133 5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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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메스에는 피가 묻어있다 +2 21.04.12 134 4 18쪽
» 그것은 천천히, 하지만 치명적으로 +2 21.04.04 152 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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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인페르노 +1 21.03.11 148 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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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밤에 물들어버린 빛 +5 21.02.15 196 9 15쪽
174 손님 맞이 +2 21.02.12 169 7 17쪽
173 어둠은 꽈리를 틀었다 +4 21.02.10 180 7 15쪽
172 마왕의 방문 +3 21.02.07 185 4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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