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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5.26 21:38
연재수 :
306 회
조회수 :
136,501
추천수 :
3,290
글자수 :
1,700,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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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2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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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8쪽

뜻밖의 합심

DUMMY

마왕군은 매 전투의 양상을 보고서에만 의존하지 않고 기록으로 남기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사전에 작전지역에 설치된 특제 수정이 송신하는 영상의 형태로 기록되는 전투는 권한만 있다면 언제나 열람할 수 있으며, 다음 작전을 세우려는 간부들에게 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적의 규모, 능력, 전술 따위를 알 수 있는 감시 체계다.


따라서 우리 군이 연방군과 격돌한 곳에 없었던 나도 정확히 무엇이 일어났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볼 수 있었다.


“저것이 마도인가.”


항구도시 프냐르에서 벌어진 교전을 본 내 첫 감상이었다.


내 집무실로 가져온 수정에 손을 대자, 로그가 철수하는 시점에서 멈춰있던 영상이 다시 뒤로 감기기 시작했다.


되감기를 멈추고 영상을 재생하자, 연방군 간부가 단신으로 마왕군 보병소대에 뛰어드는 장면이 비친다.


“... 음.”


작은 소녀 앞에 과자처럼 쉽게 부서지는 보병들을 보며, 나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법은 일절 사용하지 않는 연방이 고작 공기총을 가지고 현대총기에 대항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의외로 로그를 상대로도 잘 싸워주었다.


이 영상은 고유스킬은 마왕이나 용사 같은, '선택받은 자'에게 밖에 발현되지 않는다는 데트르 대륙의 통념을 깨부수고 있다. 이 간부들이 전부 용사일 리도 만무한 것이다.


“흥미로워. 적어도 황국보다는 제대로 된 저항을 해주겠군.”


비교적 짧은 전투였기에 본 건 두 명의 능력밖에 없었지만, 그것도 상급마법에 비견할 정도로 강력한 능력이었다.


마나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그만한 현실개변이 가능했던가 놀랄 정도로.


상급 빙결마법에 버금가는 얼음들을 조종하는 노장도 웬만한 궁중 마법사를 아득히 상회할 정도로 위협적이었지만, 특히 어려 보이는 소녀ㅡ카옌이 쓰는 마도는 종잡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환각 마법을 쓰고 있나 생각했지만, 부서지는 내 부하들의 모습은 환각 따위가 아니었다.


닿는 것으로 무엇이든 분해한다는 건 마법의 역사를 찾아봐도 전례가 없다.


그게 사물에 한정된 것만은 아니라는 건 그녀가 로그의 가호를 부숴서 없앤 시점에서 명확했다.


더 강한 마법이 다른 마법을 부수는 것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카옌이 휘두르는 팔에 마나는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사전에 술수를 부린 것 같지도 않았다.


뭔가 일어났다고 한다면 마법의 상식을 벗어난 무언가다.


“어떻게 생각하나, 리우.”


내가 부르자, 별말 없이 영상을 보고 있던 소녀가 고개를 돌렸다.


늘 변함없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그녀는 마왕군에서 몇 안 되는 인간. 한때 황국의 천벽인광에서 부단장을 맡고 있었던 성기사다.


“범인이 저렇게 고유스킬을 갖고 있을 리 없지. 그들은 용사인가? 아니면 신에게 가호를 받았다고 보나? 탐욕적인 신이 은총을 저렇게나 많이 내리기라도 했단 말인가?”


누구보다 용사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망국의 기사는 잠시 말을 골랐다.


“저들이 가진 것은 고유스킬이라고 하기 힘듭니다. 용사는 더더욱 아닙니다.”


리우는 속뜻을 모르겠을 눈길을 주었다.


“저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것에 가깝습니다. 스파세니예 연방은 마도를 강제로 증폭시키는 기술을 갖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고유스킬에 가까운 것을, 이 세계의 인간은 모두 미미하게나마 갖고 있으니까요.”


“... 그런 게 가능하다고?”


이 세계에 새로 태어나며 세계의 법칙으로부터 고유스킬을 부여받은 나는 그런 자연현상과 같은 것을 인공적으로 개발한다는 생각을 미처 해보지도 못했었다.


연구부가 절찬리에 개발 중인 마법 각인의 레벨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놈들은 원할 때 태풍이 오게 하고, 폭우를 내리게 하는 방법을 터득했다는 것이다.


고유스킬이라는 추상적인 자연현상을 인간의 힘으로 굴복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다.


“연방은 마법을 아주 오래전에 버린 나라. 대신에 그런 기술을 만들어냈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역시 리우를 자문으로 데려온 건 현명한 선택이었다. 유디트 황국과 스파세니예 연방은 표면적이나마 우호 관계를 맺고 있었으니까 앞으로도 이것저것 유용한 정보를 들을 수 있겠지.


“증폭이라, 대단한 놈들이군.”


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뿌리가 다른 힘일지언정, 상호 작용한다는 것에 변함은 없다. 그들은 좋은 거름이 되어주겠지.”


이번 교전은 단지 적의 힘을 시험해봤을 뿐, 본격적인 공세가 아니지만 앞으로 연방을 철저하게 꺾을 계획이 준비되어 있었다.


연방이 가진 기술은 고유스킬의 증폭만이 아니다. 그들이 고유스킬과 더불어 마도라고 부르는 기술은 증기기관에 한정되지 않겠지.


무거운 철덩이를 달리게 할 수 있는 기술과 더불어 연방이 개발했을 거라고 추측되는 건 전기. 증기기관을 사용한 발전기로 만든 전기를 사용한 현대 장거리 통신의 첫 단계였던 전보다.


키루아 덴트를 포함해 우수한 기술자들이 잔뜩 있는 연구부에 포획한 장치 따위를 전해주기만 한다면 그들의 기술이 곧 우리의 기술이 될 거란 건 확실했다.


나의 군은 압도적인 무력, 압도적인 기술, 압도적인 경제로 전세계를 압도하는 것이다.


“리우, 다음 전투에는 출전해라. 공화국에서 마중이 나올 거다.”


별 감정이 엿보이지 않는 리우가 고개를 숙여 존명을 받들었다.


과연, 그녀의 주군을 죽인 원수를 따르는 마음은 어디를 바라보고 있을까.


◆ ◆ ◆ ◆ ◆ ◆ ◆ ◆ ◆ ◆ ◆ ◆


황력 1813년, 레윤케 중앙정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수도에서 일어난 수수께끼의 폭발로 인해 수사본부를 포함한 상급공무원들이 단체로 사망.


수도방위를 중심으로 편성된 정부군도 시설째로 깔끔하게 사라진 덕분에 포로로 잡혔거나 시체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격렬한 전투에 휘말린 것으로 보였다.


수도가 침공당했다는 비상연락을 받은 근처의 아군이 도착했을 때 남은 건 수도가 있던 자리를 가득 채운 잿더미뿐이었다.


일부 건물이 남아있긴 했지만, 레윤케에서도 제일 인구밀도가 높은 수도에는 쥐새끼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 시점에서 레윤케 중앙정부의 몰락은 사실로 기정 되었던 것이었다.


한편, 레윤케라는 땅을 지배하는 건 중앙정부만이 아니었다.


정부는 수도를 기준으로 좁은 범위의 영향력을 행사할 뿐, 기타 부족국가, 도시국가들이 레윤케의 9할 이상을 갖고 있다.


워낙 넓은 영토 때문에, 정부의 힘이 닿지 않는 각지의 크고 작은 세력들은 사건이 일어나고 한참 뒤에야 소식을 받아보았다. 비상연락도 반란의 여지가 있는 지역에는 제외되었으니 말이다.


수도를 통째로 쓸어버릴 정도의 군이 레윤케에 입성해 있었다면 당연히 입소문을 탔겠지만, 그러한 소문은 일절 없이 벌어진 청천벽력같은 일.


그들은 수도의 정부 세력을 한꺼번에 말살한 범인의 정체도 뜬구름 잡듯 짐작할 뿐이었다.


동방의 한 대국이 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다는 걸 듣고 스파세니예 연방을 의심하는 자도 생기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고, 연방군이 닻을 내리기도 전에 수도가 직격탄을 맞았다는 걸 감안하면 시기도 맞지 않았다.


하지만 이전부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도시ㆍ부족 국가들은 물론 범인을 찾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중앙정부를 추종하던 자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씻었다.


그리고 벌어진 건 내전.


그렇지 않아도 나날이 쇠퇴해가던 정부가 아예 사라지자, 누가 레윤케의 주권을 잡느냐를 두고 다툼이 일어난 것이다.


레윤케가 연방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어느 세력도 모두를 통일할 힘을 갖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앙정부가 겨우 유지하고 있었던 질서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것.


연방 또한 크고 작은 나라들이 합쳐져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반란을 확실히 진압하고 모두를 하나로 뭉칠 힘이 있었기에 스파세니예라는 이름 하에 뭉칠 수 있었다.


그 이름을 따르지 않는 자는 강제로 굴복시키든지 죽이든지 하며 말이다.


그에 반면 레윤케는 고만고만한 세력들이 넓은 땅을 찢어 나눠 가지고 있기에, 확실한 승자가 나오기는커녕 끝이 보이지 않는 소모전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근시안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우두머리들이 왕이 될 수 있는 당장의 기회를 내치고 손을 잡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헛된 희망을 갖고 내전을 계속하는 레윤케를 기다리는 건 하나의 미래.


이대로면 외적에게 국경을 내주는 것보다 먼저 자멸할 게 뻔했다.


그런 레윤케의 미래를 내다보고 일찌감치 손을 턴 자가 있었다.


수도가 습격을 받았음을 알리는 비상통신을 무시하고 지휘하던 군을 임의로 본래 작전지도, 수도도 아닌 곳으로 움직인 준특등수사관.


‘마왕군’이 그럴 마음을 먹고 습격해온 것에서 레윤케는 무너지리라 깨달은 소녀다.


행선지를 굳이 프냐르로 정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마왕군의 힘이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진 걸 깨닫고, 다음 행동지침이 결정될 때까지 잠시 데트르 대륙을 벗어나 있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제일 선두에 걷고 있던 유리에는 드디어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자 얼굴이 밝아졌지만, 금세 기겁하는 표정을 만들었다.


그녀가 전해 들었던 항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반쯤 무너져가는 폐허가 나타난 것이다.


도로는 제대로 닦여있으니 그러려니 했지만, 그 도로를 중심으로 나열한 건물들은 이미 타서 없어졌거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인켈... 여기 프냐르 맞지? 뭔가 듣던 거랑 다른데?”


유리에가 말을 하기 무섭게, 마구간으로 보이는 기둥 하나가 우지끈하고 부러지며 건물이 무너졌다.


ㅡ쿵.


기둥이 지탱하던 지붕에 달려있었던 간판이 몇 번 구르더니 유리에 앞에 멈췄다. 유리에는 그 간판에 적혀있는 글귀를 읽었다.


“어서 오세요, 최고의 항구 프냐르에.”


다시 고개를 든 유리에는 잘 이해가 안된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을 길게 흐렸다.


“아무리 봐도 항구는 아닌 것 같은데에. 바비큐를 잘못 말한 것 아니야?”


“프냐르는 맞습니다만, 용이라도 한번 지나간 것 같은 모습이군요.”


하인켈이 긍정했다.


“피해가 선착장까지 이어져 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만, 이대로라면 예정대로 출항하기도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원래 대대장이던 소령이 자꾸 이쪽으로 사나운 눈길을 주고 있다.


유리에에게 지휘권을 빼앗겨서 옆에서 그저 지켜보는 입장이 된 그로서는 이럴 줄 알았다고 말하고 싶겠지.

유리에의 권한으로 1개 대대를 이끌고 프냐르에 향했지만, 정작 도착해보니 항구 태반이 잿더미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오랜 행군길에 지친 데다 반파된 항구를 보고 허탈감까지 동한 것인지 그녀를 따르는 병사들도 하나둘씩 주저앉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말 없는 소령의 항의를 무시하며 유리에가 물었다.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누가 저질렀든 간에 최근에 일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역시 우려하시던 대로 마왕군이ㅡ”


하인켈은 기묘한 소리를 듣고 말을 멈췄다.


그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마치 철덩이들이 동굴 안에서 잔뜩 움직이는 것 같은 소리였다.


뭐라고 특정하기 어려운 그 소리의 정체는 곧 명백해졌다.


마차ㅡ아니, 마차와 닮았지만 끄는 말이 없는 것을 탄 군인들이 잔뜩 접근하고 있었다. 기묘한 소리는 그 마차에서 나고 있었던 것이다.


“적습!”


그 광경을 본 소령이 크게 외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병사들이 헐레벌떡 일어서서 대열을 갖췄다.


육안으로 확인한 저들의 규모는 기껏해야 100 정도였지만, 유리에는 성급하게 싸우는 것에 좋지 않은 예감을 느꼈다.


“하인켈.”


“모르겠습니다. 저런 군복은 저도 처음 봅니다. 그렇다는 건 대륙 바깥에서 온 걸지도 모릅니다. 타고 있는 마차는 마법으로 움직이는 것일까요...?”


군인들이 마차 비스무리한 걸 멈추더니, 유리에가 기억하는 것과 닮은 무기를 들고 내렸다. 그들이 입고 있는 건 유리에의 기억과는 사뭇 다른, 새하얀 군복이었다.


정체불명의 군인들은 마차를 엄폐물로 삼듯 위치를 잡고 무기를 조준했다. 멀리서 봐도 나무 따위로 된 것이 아니라 금속으로 만들어진 차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총구가 가리키는 건 다름 아닌 유리에와 그녀의 대대.


“무기를 내려놓고 투항해라!”


서툰 대륙 공용어를 외치는 자가 한 명. 어조로 봐서는 아마 지휘관이다.


유리에는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있지, 뭔가 오해가 있는 거 아니야? 난 딱히 싸울 생각은 없다구?”


유리에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검에 손을 댔다.


놈들의 규모는 이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고 그녀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항구에 더 가까이 다가가면 사단급 규모의 군이 나올지도 모른다.


“무장을 해제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또한, 명령에 따르지 않아도 적대행위로 간주하겠다!”


적 지휘관은 아무래도 유리에와 대화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녀도 싸울 생각은 없었지만, 저쪽에서 저렇게 나온다면 그걸 그대로 따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준특등님, 어떻게 할까요?”


하인켈이 잔뜩 긴장한채 유리에의 결단을 기다렸다.


“어쩔 수 없지...”


앞으로 그녀의 손발이 되어줄 대대에 조금 피해가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저것과 비슷한 무기는 이미 전장에서 부순 적이 있다.


싸운다고 한다면, 이길 수 있다.


유리에는 달려들 준비를 하듯, 자세를 낮췄다. 그걸 보고 뭘 이해한 것인지, 적군에도 살짝 동요가 번졌다. 적병이 방아쇠에 건 검지에 힘이 들어갔다.


당장이라도 전투가 벌어지려는 그 순간.


“잠깐, 중대장.”


일촉즉발의 상황에 찬물을 끼얹은 건 어느새 나타나 적 지휘관의 어깨를 친, 유리에와 비슷한 머리색을 한 소녀였다.


“어디 맘대로 싸우려고 하고 있어. 혼날래?”


“소ㅡ소위! 와준 건가!”


명백한 계급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휘관은 사탕을 훔쳐먹다 걸린 아이처럼 쩔쩔맸다.


“정찰 임무 도중 수상한 군을 발견해서 포로로 들이려는 중이었다! 마왕군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는 데다, 그, 아틀리치니의 뜻에 반할 생각은ㅡ!”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늘어놓는 중대장을 무시하고, 소위라고 불린 소녀는 빤히 유리에쪽을 쳐다보았다.


“이놈들은 마족이 아니야. 깃발로 봐선 레윤케 정부군일까? 내가 얘기해볼게.”


“잠깐,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는...!”


“괜찮아, 괜찮아!”


어린 간부가 혼자 유리에 진영 쪽으로 가벼운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추운 날씨에도 군복 상의의 소매와 하의 밑단을 걷어올린 차림이었다.


“아니 무슨... 저렇게 어린 아이를 군의 간부로 부린다는 겁니까?”


어린 나이에 준특등 수사관의 자리까지 오른 유리에의 존재를 순간 잊은 것처럼 하인켈이 혼잣말했다.


소녀는 손에 아무 무기도 들지 않았고, 나이도 유리에보다 어렸지만 그녀는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을 능가할 수도 있는 적이라는 느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안녕! 나는 스파세니예 연방군, 카옌 콜드노바 소위야! 너희들은 레윤케에서 왔지?”


친구를 대하는 것처럼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하는 소녀.


연방이 대륙으로 군을 보냈다는 것에 놀라 병사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아아~ 놀랄 필요 없어. 대륙이 요즘 마왕군 문제로 머리 아프다며? 그래서 우리가 왔다는 이야기. 어쨌든 제안이 하나 있는데, 우리 산하로 들어오지 않을래?”


이번에는 갑작스런 제안에 하인켈이 깜짝 놀란다.


“너희들도 마왕군은 싫잖아. 안 그래도 지금 연방군은 대륙의 지리에 빠삭한 조력자를 구하고 있거든. 우리 애들이 기습당한 지 얼마 안 돼서 잔뜩 사기가 올라있기도 하고.”


카옌이 웃었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고도 하니까. 게다가 레윤케 중앙정부는 아예 무너졌으니 돌아갈 곳도 없지 않아?”


연방은 레윤케 수도가 무너진 정보도 알고 있었다. 의도는 둘째치고, 마왕군을 타도하겠다는 말은 사실이겠지.


유리에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연방군이라는 말이 판에 올라가게 되면 그녀도 마냥 불리한 건 아니었던 것이다. 연방이라는 세력을 업고 있는 카옌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상대의 태도를 보자니 이미 항구는 연방군이 점거한 뒤겠지.


“이번에는 딱히 불만 없지, 소령?”


아무 말이 없는 소령을 지나친 유리에는 카옌이 내밀고 있던 손을 잡았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감이 맞았다는 걸 깨달은 유리에가 살며시 미소지었다.


아무 무기를 쥐지 않은 상태에서도 빈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카옌이라고 이름을 댄 소녀는 그녀가 생각한 대로 강자였던 것이다.


“나는 유리에. 잘 부탁해~”


“오, 네가 지휘관이야? 또래라니 반갑네! 검을 갖고 다니는 걸 보니 검사인가봐?”


속으로 오간 생각을 내색하지 않고 유리에가 친근하게 굴고, 카옌도 반색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갑자기 바뀐 상황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던 하인켈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전군, 무기를 내려라!”


어느새 친구가 된 것처럼 굴고 있는 두 소녀를 본 두 군대는 머뭇거리며 무기를 거두었다. 공통의 적을 상대로 힘을 합치는 것에 별로 거부감이 없기도 했고.


“좋아, 일단 선봉대 총사령관에게 데려다줄게! 내가 결정할 수는 있어도 서류상 최종 승인은 그 아저씨가 해야 하니까.”


일개 소위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 말을 하며, 카옌이 유리에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유리에가 이끄는 1개 대대는 연방군에 협력하게 된 것이었다.


작가의말

사전에 써둔 여름 바닷가 에피? 같은 게 있는데 이걸 언제 올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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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엔딩의 서막 +3 21.11.02 123 7 16쪽
194 시계 바늘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돌아간다 +3 21.10.17 122 5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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