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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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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5.26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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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5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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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8쪽

천사, 인간, 그리고 광인

DUMMY

나오키 쿠로사와 중위에게 충성심 따위는 없다. 라트신은 인품도, 능력도 그닥 존경할만한게 되지 않았으니까.


그런 그가 스파세니예 연방군에 들어가 아틀리치니의 자리에까지 오른 이유는 단 하나.


아무런 제약 없이 싸우기 위해서다.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의 마도는 발현되고, 나이답지 않은 그 강력함에 주위 모두를 입 다물게 했다.


개인에겐 너무 과분한 힘일지도 몰랐지만, 그는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걸 좋아했다. 주위에서 보내는 두려운 시선도, 평범한 삶을 누릴 기회가 없어지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그에게 있어 마도는 몸의 일부였고, 마도를 사용하는 건 마치 당연하게 하는 운동 같은 것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스파링에 가깝다고 해야하나.


아낌없이 마도를 써서 상대를 쳐부수고, 쳐 죽이는 건 삶의 활력이었다.


역도 선수가 더 무거운 무게를 드는데 성공할 때마다 희열과 뿌듯함을 느끼듯, 소년은 나날이 강력해져 가는 마도를 시험해볼 기회를 항상 찾고 있었다.


문제는 그가 힘을 쓸 때마다 주변에 피해가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위험한 반동분자라고 결정을 내리면, 그를 처단하러 연방이 움직이는 건 시간문제였다.


물론, 나오키 쿠로사와는 언제나 그렇듯 자신만의 답을 찾아냈다.


연방군의 작전에 포함되기만 한다면 그는 자신의 능력을 아낌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


뭐, 정부가 개인의 의지보다 높은 권력을 갖는 연방에서 그만한 마도를 지녔음에도 입대하지 않는 건 애초에 선택지가 아니겠지만.


연방에 반기를 드는 적을 차례차례 쓰러뜨리고, 공적을 쌓는다.


나오키의 시건방진, 군인답지 않은 태도를 문제 삼는 상관도 간혹 있었지만, 그건 아틀리치니가 되고 나서는 완전히 없어졌다.


지금도 연방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태도는 변함이 없다.


단지 힘을 휘두를 기회를, 더 싸울 기회가 주어지는 한, 나오키는 연방군의 중위였다.


파바박ㅡ


전격이 살아있는 것마냥 공기를 타고 흘러, 목표를 노린다.


흰 천을 두른 작은 소녀를 바짝 익게 하고도 충분한 파워다. 물론, 그게 정상적인 소녀일 경우의 이야기겠지만.


찌릿ㅡ


소녀의 몸을 감싼 흰 막이 전격을 막아냈다.


그가 쓰는 마도와 마찬가지로 마법이라는 범주에 속하지 않는, 상위 차원의 힘이다.


막을 뚫지 못하고 지면으로 흩어진 전류를 보낸 장본인은 공격이 막혀서 당황하기는 커녕 호전적인 웃음을 올렸다.


“어이, 그 등뒤에 달린 날개 혹시 진짜야? 천사가 정말 있을줄은 몰랐는데.”


대천사는 대답 대신이라는 듯 흰 날개를 활짝 펼쳐 보였다. 작은 몸집에 비해 비대하다 싶은 날개가 그녀의 신분을 증명했다.


그 깃털 하나하나에 깃든 신성함. 머리 위에 떠 오른 천사의 고리.


지상의 생물이라면 누구나 경외감을 품어 마땅한 그 모든 것을 보고도 소년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연방에는 신앙 같은 구닥다리 풍습은 없거든.”


비꼬듯 말하는 그지만, 전혀 놀라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나오키는 특수 코팅이 되어있는 장갑을 소리가 나게 서로 부딪히며 입맛을 다셨다.


장갑의 금속 부분이 부딪힐 때마다 파직, 파지직하고 스파크가 튀었다.


정말 의외다.


전초기지가 습격당해 그에 대해 반격을 하라, 라는 명령까지는 들었지만 설마 습격해온 마족 중에 이런 것이 섞였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응전하던 경계 부대는 전멸한 것 같고, 나머지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폭격에 혼비백산한 상태다. 이 아수라장에서는 비행선을 띄우는 것조차 무리다.


이 자리에서 나서서 적의 주력 부대를 막아줘야 하는 건 바로 그였다.


엇.


방금까지 나오키의 머리가 있던 자리를 빠르게 가르고 지나가는 건 천사의 날개만큼이나 밝게 빛나는 검.


무슨 원리인지는 몰랐지만, 백색 도신이 마치 불처럼 타닥, 하고 타오르고 있다.


검을 비스듬히 쥔 건 그와 동년배로 보이는 인간 소녀로, 천사와 마찬가지로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펄럭이는 흰 망토 아래 엿보이는 건 항구에서도 본 적 있는 검은 군복.


전초기지를 습격한 건 분명 마왕군 소속의 병력이다.


푸쾅ㅡ!


지금도 위에서 폭격마법을 쏘아대며 인간들의 팔다리를 날려보내는 건 엘프.


그르르..


무기와 마도를 사용해서 기지를 방어하는 병사들을 사정없이 물어뜯고 있는 건 늑대형 마물.


탕탕! 탕탕탕!


시끄러운 총성과 함께 아군의 몸에 구멍을 내고 있는 건 마족 병사들.


누가 보아도 마왕군임에 틀림이 없다.


이런 위험한 생물들이 조직적으로 행동하는 건 예로부터 마왕의 지시 아래뿐이었다. 오는 걸 예상했음에도 막아내기 버겁다.


하지만 나오키는 다른 의미에서 진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잘 짜인 계획을 갖고 기지를 습격한 그들이 따르는 건 마족이 아니다.


이 마왕군 부대는 다름 아닌, 천사와 인간을 선두로 하고 있던 것이다. 천계를 관장하는 신의 사자와, 그 신들의 보살핌을 받는 인간이 나란히 서서 마왕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다.


마왕의 손은 천사에까지, 인간에까지 뻗친 것인가?


이치에 배반 되는 광경이었지만, 나오키는 들뜬 기분을 감추지 않고 사납게 웃었다. 어쩌면, 그 머나먼 대륙까지 온 보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없던 정보야, 하지만 나쁘진 않지. 정말이지 요즘 근질근질했다고ㅡ”


그가 말하게 놔두지 않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마물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그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신기한 놈들이야. 좋아, 좋다고!”


마물의 공격에 맞춰 후속타를 넣으려던 소녀가 멈칫하더니 뒤로 도약한 것과, 나오키의 몸에서 눈이 멀 것 같은 전기가 방출된 건 거의 동시다.


치지지지지직ㅡ!


팡!


그의 뒤에 있던 텐트가 산산조각이나 터져나가고, 땅에 그을린 자국이 남았다.


나오키에게 달려들던 늑대형 마물은 붉은 고깃조각이 되어, 형태를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나는 나오키. 스파세니예 연방군의 나오키 쿠로사와 중위.”


나오키는 사방으로 흩날리는 피와 고기 조각 사이에서 씨익 웃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아틀리치니의 하나에게 직접 싸움을 걸러 온 거니 네놈들은 기대해도 되겠지?”


그가 이름과 계급을 댔음에도 천사는 딱히 통성명하지 않았지만, 인간 쪽은 달랐다.


“리우 에스타. 한때 천벽인광의 두 번째 빛이었던 몸.”


“오?”


유디트 황국의 결말을 알고 있는 나오키가 눈썹을 올렸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내게 주어진 임무는 끝을 지켜보라는 것이니.”


나오키는 천사 쪽을 흘깃 보았다.


“너는 뭐 할 말 없냐? 우리에게 묻고 싶은 것도ㅡ”


천사의 날개에서 눈부신 화살이 쏜살같이 사출되어, 나오키는 하고 있던 말을 멈춰야만 했다.


그가 날렵하게 옆으로 회피하고, 그가 서있던 땅이 백색 화살 세례를 맞아 우레같은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희번득하고, 금색 눈이 불길하게 빛났다.


“자, 시작하자고!”


나오키가 그렇게 외치자마자 천사 옆에서 그를 겨누고 있던 병사들의 라이플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연방군이 쓰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기술을 가진 총기. 그 위력은 하급 방어마법 정도는 쉽게 뚫어버릴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다음 벌어진 광경은 가히 놀랄만한 것이었다.


탄환이 정확히 나오키의 이마 앞에 고정된 상태로 떠 있었다.


총에서 발사된 게 아니고 단순히 던져진 것이라는 착각이 들었지만 방금 전의 총성은 아직도 울리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힘으로 총알을 막은 것이다.


“그런 시시한 게 나한테 통할 거로 생각하면 곤란하지. 폼으로 이걸 입고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야?”


나오키는 자신이 입은 군복 견장을 톡톡 치고는, 이미 살상력을 잃고 이마 앞에서 부유하고 있는 총알을 집어 대충 보더니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그걸 보는 마족 병사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그리고 내가 흥미 있는 건 어디까지나 강한 놈들뿐이야. 잡졸은 빠져있으라고, 죽고 싶지 않으면.”


“...”


그가 그리 말하는 사이, 뒤에서 달려드는 인영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3자가 본다면 경솔한 판단은 아니다.


깔끔한 횡을 그리는 검에 불필요한 동작은 전혀 없었고, 상대가 떠드는데 정신이 팔린 사이에 선수를 취한다는 건 좋은 전략이었으니까.


“나 참. 참을성이 없구만.”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그걸 바라보기만 하고 있는 나오키의 몸에서 금방이라도 피가 솟아 나올 것 같았다. 방금처럼 피할 여유는 없어 보였다.


어떻게 올지 알고 있다고 해도 완전히 피하기 어려운 검격. 하지만 나오키는 처음부터 피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실망이야, 기대도 안 했지만 실망이라고.”


크게 한숨을 쉬며 나오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탄환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불타는 검 또한 나오키의 목 바로 앞에서 멈춰 있었다.


리우가 제아무리 힘을 주어 검을 움직이려고 애써 봐도 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철을 젤리처럼 베는 검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나오키의 몸에선 여전히 스파크가 조금씩 튀고 있었다.


역시 뭔가 다르다. 막혔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강제로 멈춰진 것이다.


“...”


유일한 무기가 뭔가에 사로잡혀 그 자리에 고정되어 버렸음에도 소녀의 얼굴에 당혹감은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 검을 버리는 선택지는 없었음에도.


“그러니까, 그런 건 안 통한다고!”


나오키의 돌려차기에 가녀린 몸이 날아갔다.


매우 아파 보였지만, 리우는 정신력으로 극복해냈는지 한 번 구르고 무릎을 꿇은 자세로 착지했다.


“기왕 하는 거 서로 즐겨보자고. 시시하게 하지 말란 말이야.”


나오키는 아침 체조에 나가기도 하는 것처럼 기지개를 풀었다.


다음 순간, 그 소년이 서있던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자신의 밑에 새로운 그림자가 생겼다는 사실을, 어린 성기사는 위를 올려다보기 전의 찰나에 생각했다.


“이미 늦었다고!”


순식간에 그녀의 위로 이동한 나오키가 주먹을 휘두른 건 천사가 제때 만들어낸 배리어에 막혔다.


고속이동의 원리는 아직 알지 못했지만,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움직인다는 것만 감안하고 있으면 막는 건 가능했다.


나오키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예상하였다는 듯 광인처럼 웃어 재꼈다.


“크흐흐, 역시 이 정도로는 부족한가.”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느긋하게 걸었다.


“...전류.”


여태 말이 없던 천사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거 아니면 뭐겠어? 한 방에 뻗으면 곤란하니까 첫발은 조절해줬다고. 두 번째는 봐주기 같은 건 없는 거 알지? 천사니까 좀 더 튼튼할 거라고 믿고 있어.”


나오키의 몸에서 튀는 스파크가 한층 더 격렬해지더니, 문자 그대로 빛의 속도로 전격이 날아들었다.


반구 형태로 전개된 천사의 배리어에 쉴 새 없이 부딪히고 흘려보내지는 전격은 그칠 기미가 없었다.


리우가 제때 배리어의 유효범위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면 벌써 새까맣게 타버렸을 것이다.


“호, 이거 보소? 조금 위력이 약했나?”


나오키의 전격이 점점 더 기세를 높여갔다.


순식간에 공기의 온도가 올라가 폭발음과 함께 바람이 강하게 밀어닥쳤다. 배리어가 아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날아갔겠지.


천사가 흘려보내는 공격이 사방으로 퍼지는 바람에, 주위 병사들은 일찌감치 후퇴하고 있었다.


레벨 자체가 다르다. 그들이 낄 전투가 아니었다.


아직 사상이 크게 나지 않은 건 어디까지나 나오키의 고집 때문이다. 그는 고의적으로 자신의 전격이 ‘잡졸’에게 흘러가지 않도록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공기가 엄청나게 뜨거워져 발생하는 폭발은 다 천사의 배리어에 집중되어 있고, 흘러간 전격이 부자연스럽게 흩어지는 것도 그의 소행이었다.


주 관심사는 강한 놈이라는 게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왜 그래? 반격을 해보라고! 천사잖아? 인간 따위는 짓밟아버릴 수 있잖아!”


나오키는 매우 즐겁게 소리치고 있었다.


그에게, 마음을 짓누르는 살인에 대한 죄악감은 전혀 없다.


어린 얼굴을 가득 채운 건 근원을 알 수 없는 흥분뿐이다.


분명 익숙한 것이다.


자신과 같은 사람을 벌레처럼 죽여 버리는 게. 저런 힘을 가지고 자신에 대적하는 자들을 장난감 삼아 그들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싸움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도박판에 자신의 목숨이 아예 올라오지 않은 건 아닐 터지만 상대의 반격을 경계하지도 않고 있다.


오히려 반격하라고 부채질한다는 건 너무 일방적인 싸움은 싫어한다는 것이다.


가엾은 장난감이 어떤 식으로 꿈틀거릴지 궁금해 죽겠다는 듯 기대감을 가득 담은 눈을 하고 있다.


고강도로 이어지는 전격은 끊길 기미가 없었고, 전류를 쉬지 않고 흘려보내면서도 나오키는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천사의 배리어가 조금씩 흔들리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이 아니다. 그녀는 방어에 집중함과 동시에, 공격을 위한 패를 하나 꺼내고 있었다.


촤락ㅡ!


천사를 주위로 물의 촉수가 생긴 것을 보고 나오키가 미소지었다. 물은 그의 마도와는 매우 상성이 좋았다.


원소를 하나씩 다룬다고 하는 천사의 특기가 물이라면, 금방 치킨구이로 만들어줄 수 있다.


“엥.”


나오키가 고개를 갸웃했다.


상대방이 만들어낸 물을 역으로 사용해서 전기의 전도를 하기도 전에, 물이 전부 얼어버린 것이다.


얼음이 하나하나, 저절로 깨지며 날카로운 창의 형태를 취한다.


천사는 물의 촉수를 만들어내서 조종하는 것뿐 아니라, 그걸 얼려서 날리는 것도 가능하다는 거였다. 전기와 물인만큼 여전히 자신이 이점을 쥐고 있었다는 것엔 변함이 없었지만.


“눈치가 좋네. 역시 위에서는 뭐든지 다 보고 있었다는 건가ㅡ!”


나오키가 손을 휘두르자마자 빗발치던 전격이 갑작스레 그치고, 그는 빠르게 리우에게 달려들었다.


조금 특이해 보이는 장갑을 낀 것 말고는 아무 무기도 들지 않은 맨손이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거리낌 없이, 천검을 든 리우에게 파고든다.


피캉!

피캉!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빙창들을 피하거나 깨부수거나 하며, 나오키는 리우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천검으로 신벌을 대행하는 리우의 입장에서 그 위력은 그렇게까지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접근해서 무기의 통제를 뺏긴 건 방금의 교전으로 확실히 이해했다.


이 소년이 연방군 최고 정예, 아틀리치니. 그렇다면 적당히 힘을 시험해볼 생각은 없었다.


일격필살로 그의 목숨을 끊어놓는 것으로 임무를 다한다.


“신벌, 그 첫 번째ㅡ”


리우는 뒤로 크게 뛰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천검에서 더 강렬한 광채가 스며 나오는 걸 알아차린 나오키가 표정을 바꾸었다.


“유황과 불의 비.”


리우가 쓰는 천검은 고대서부터 내려져 온 상급 유물이다. 오로지 자격이 주어진 신도만이 쓸 수 있는 이 유물로, 신의 권능을 제한적이지만 발현시킬 수 있다.


이글이글 불타는, 뜨거운 불덩이들이 난데없이 나타나 하늘을 가득 채웠다.


원래라면 기지 전체를 덮을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낼 수 있는 것을, 리우가 힘 조절을 한 것이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유황에 그대로 삼켜지기 직전, 나오키가 입꼬리를 살짝 올린 것 같았다.


푸과과과광ㅡ!


리우의 신벌은 사정없이 적을 덮쳤다.


천검의 발동은 리우의 마나로 한다고 해도, 신벌이 현현하는 건 오로지 신의 권능의 영역이다.


제대로 맞았다고 해도 시체는 확인할 수 없을 테지만, 리우는 눈을 조금 찡그렸다.


“맞았다는 느낌이 없다.”


“방금 건 위험했네, 인간이 저런 걸 쓸 줄 몰랐다고. 인간병기냐? 인간 맞기는 해?”


아니나다를까 소년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와, 리우가 고개를 돌렸다.


유황이 쏟아지는 걸 보고만 있었던 그다. 회피 동작을 할 시간은 없었을 텐데, 나오키는 뻔뻔하게 깍지를 끼고 가브리엘과 리우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뒤로 후퇴해있던 마왕군 동행 소대는 어느새 전부 죽어있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다 몸이 벌집이 되어있지만, 지금까지 뒤에서 아무런 기척도 듣지 못했기에 리우는 자신의 감각에 의문을 품었다.


뭔가 이치에 맞지 않았다.


도망쳤을 리 없는 적과, 죽었을 리 없는 아군.


이 기묘한 감각은 과연 무엇인 것일까.


“늦었다고 불평하고 싶은 참이지만, 어서 와 일레느. 늦은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가니까.”


다시 천검을 겨누려던 리우는 순간 행동을 멈췄다.


“아, 아~ 그러길래 조심하라고 했는데, 하마터면 네가 잘 익은 인간 구이가 될 뻔했잖니. 뭐, 그것도 꽤 재미있는 광경이었겠지만.”


한탄하듯 말하는 그 여자는, 그들 앞에 갑자기 서 있었다.


아직도 뜨겁게 불타고 있는 지면 위에 아무렇지도 않게 여유롭게 서 있다.


기척이라고는 무엇 하나 나지 않았지만, 뜬금없이 모습을 드러낸 여자를 보고 리우가 거리를 벌렸다.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거리를 두고 다음 신벌을 집행하는 게 전략적으로 올바른 선택이었다.


“어라, 바로 덤벼들지 않는 거야? 감이 좋구나.”


군인답지 않게 백의를 걸친 여자는 기분 나쁜 눈매를 하고 있었다.


삶의 대부분 동안 천벽인광의 일원이었던 리우가 수도 없이 마주하고 처단해온 광적인 이단자들이 갖고 있었던 것과 같은 눈. 그리고 최근에도 본 적이 있는 눈이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눈. 한쪽만 올린 입꼬리. 근원을 알 수 없는 여유로운 태도.


이 여자는 저 소년보다도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나는 일레느 코르투와. 연방군 대위이자 선임연구원이야.”


여자는 작은 날붙이를 휘리릭, 하고 꺼내더니 끔찍한 미소를 지었다.


“매우 흥미로운걸. 너희 몸은 꼭 열어보고 싶어.”


작가의말

중간고사 때문에 1주는 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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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집결 +1 22.02.08 110 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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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패배, 그리고 지켜보는 눈 +1 21.12.31 124 4 18쪽
199 카디널 보이드 +2 21.12.24 122 4 17쪽
198 마도 vs 마법 +3 21.12.08 130 3 18쪽
197 망설임을 잠재우지 않으면 +1 21.11.29 121 3 16쪽
196 어둠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1 21.11.16 112 5 18쪽
195 엔딩의 서막 +3 21.11.02 123 7 16쪽
194 시계 바늘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돌아간다 +3 21.10.17 122 5 18쪽
193 예카테리나 페르바크 중위 +1 21.09.28 99 5 18쪽
192 이곳은 죽음이 백색을 띠고 있다 +1 21.09.03 102 5 19쪽
191 하늘에서, 하늘로 쏟아지는 파괴 +2 21.08.01 113 3 17쪽
190 여름 바다, 휴가 +2 21.07.24 111 4 16쪽
189 소녀는 절대 잊지 않는다 +5 21.07.11 119 4 17쪽
188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전란 +3 21.07.05 128 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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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전쟁은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1 21.06.07 123 4 17쪽
185 종언의 천사 +5 21.05.24 136 5 15쪽
184 광기의 과학자 +3 21.05.15 136 5 18쪽
183 표지가 새로 나왔습니다 +3 21.04.27 130 5 1쪽
» 천사, 인간, 그리고 광인 +4 21.04.25 169 5 18쪽
181 메스에는 피가 묻어있다 +2 21.04.12 129 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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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뜻밖의 합심 +2 21.03.22 150 4 18쪽
178 인페르노 +1 21.03.11 142 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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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우연은 필연의 모습을 하고 있다 +5 21.01.16 165 6 14쪽
164 차가운 운명의 굴레는 오늘도 +1 21.01.14 156 6 16쪽
163 모든 게 얼어붙은 나라 +2 21.01.11 188 6 15쪽
162 구원 요청 +1 21.01.10 187 6 15쪽
161 결국 놀이라고 하면 그것 +6 21.01.09 196 7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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