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6.15 22:10
연재수 :
307 회
조회수 :
136,817
추천수 :
3,291
글자수 :
1,707,175

작성
22.06.04 15:20
조회
124
추천
5
글자
18쪽

쿠데타

DUMMY

스비엣, 첫번째 불꽃의 예찬자의 소멸은 연방군에게 있어 큰 타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ㅡ고작 패를 하나 잃었다고 해서, 연방군의 잔존병력이 바로 싸울 의지를 잃고 투항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발발하는 교전에 아무리 숫자가 깎여나간다 해도 여전히 대군이었으며, 스비엣이 마왕과 부딪히기 전까지는 어찌어찌 방어선을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각 부대에서 날아드는 보고를 취합하는 작전사령부라면 몰라도, 일개 야전 장교나 병사 따위가 이미 기울어져 버린 전황을 확인하는 건 불가능했다.


스비엣과 마왕의 싸움을 가까이에서 본 자들이라면 저런 것과 싸울 수는 없다고 이해하는 게 빠르겠지. 자신들을 일찌감치 내팽개치고 도망친 작전사령부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후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이 일어나는지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에 있던 연방군은 스비엣과 마왕의 싸움에 말려들어 모조리 궤멸. 70만의 병력 중 절반 이상이 날아가버렸다.


일찌감치 후퇴했거나 다른 곳에 있었던 병력은 그런 사정을 모르니 그저 전투를 속행할 뿐이었다.


이대로는 소모전의 양상을 띠어 전멸할 운명이었던 파흐 평야의 연방군에게 내려진 희망이란, 아이러니하게도 내부에서의 배신이었다.


미리 쓰인 시나리오대로, 라고 해야겠지.


스비엣과 마왕의 격전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아틀리치니가 움직인 것이다.


◆ ◆ ◆ ◆ ◆ ◆ ◆


“젠장, 저것마저 격퇴하다니!”


큰소리를 내며 책상을 내리치는 연방의 야전군사령관.


처음 그 병기가 제어에서 벗어났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처음부터 일이 틀어지나 싶어 놀랐지만, 적어도 그 고삐 풀린 괴물이 발버둥 치며 마왕군에 지대한 피해를 줄 걸 내심 바라고 있었다.


“쓸모없는 것 같으니... 수만의 아군의 피해를 내놓고 결국 그렇게 죽어 자빠지는 거냐.”


스비엣의 죽음에도 그녀가 일으킨 변화ㅡ황량하게 변한 파흐 평야가 원래대로 돌아오거나 아직 미처 섬멸하지 못한 태초의 마물들이 알아서 소멸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마왕과 스비엣ㅡ그 두 괴물이 하늘에서 벌인 싸움 덕에 전 병력의 절반 이상을 잃었다는 암울한 보고가 들려오는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두꺼운 낯짝으로 서둘러 피신하는 것뿐이었다.


그가 이끄는 작전사령부는 이미 어느 정도 후퇴하고 전황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한번 승기를 잡아버린 마왕군이 금방이라도 아군이 친 진을 뚫고 마수를 뻗어도 이상하지 않다.


기대했던 최종병기의 탈락이 확정된 이상, 이미 기울어진 전투의 흐름이 뒤집힐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애초에, 저딴 걸 이겨버리는ㅡ그보다 더한 괴물이 마왕이라는 걸 안 이상, 그는 전장에 남아있을 생각이 싹 사라진 참이었다.


연방군이 낼 수 있는 최대전력인 아틀리치니도 마왕군과 전력으로 붙어서 이길지 어떨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야전군사령관ㅡ페스토 중장은 그 정예들을 그 자신의 생존을 위한 버림패로 써서라도 이곳을 벗어날 생각이었다.


“이봐, 비행선의 준비는?”


페스토 중장은 삐질삐질 나오던 식은땀을 닦고, 더러워진 손수건을 아무렇게나 버리며 부관을 다그쳤다.


“네, 테일러 에스먼드 소령이 준비한 비행선이 대기 중입니다. 이곳 사령부의 철수 준비도 마쳤습니다.”


“아틀리치니가 직접... 좋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재빨리 텐트를 나왔다. 황무지가 되어버린 파흐 평야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결과만 보자면 파흐 평야의 병력은 내팽개치고 지휘관이 먼저 도망가는 꼴이 되었지만, 당연하게도 그 자신의 생존이 훨씬 더 중요했다.


단지 최고의회에 잘 보여서 이런 높은 자리까지 올라온 정치장교인 그에게는 처음부터 책임감도, 신념도 없었기에.


이렇다 보니 지금도 전장에서 비명횡사하는 병사들에 대한 생각은 당연히 뒷전이 되었다.


어차피 지휘는 멀리서 해도 그만ㅡ사실, 이 지경까지 왔으니 굳이 필요 없지 않겠냐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아틀리치니를 필두로 한 몇몇 부대는 충실히 싸워준 것 같지만, 그들에게는 아쉽게 된 일이다.


서두르느라 아직 후퇴 명령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그거야 비행선에 탄 다음에 해도 되지 않을까.


설령 아군이 후퇴 도중 적의 추격에 당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도 전부 그의 상관 탓으로 돌리면 그만이다. 저것을 꺼내자고 한 건 애초에 그놈이었으니까.


무리한 병기의 사용으로 전세가 기울어지고, 그로 인해 그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놀라운 지휘 아래 승기를 이어가던 아군은 아쉽게도 패배... 허나 현장 지휘관은 최대한 많은 병력을 후퇴시키는 데 성공.


페스토 중장은 인민신문에 대서특필될 속보 제목을 그려보았다.


그따위 무능한 상관과 얽혀버렸으니 이 이상 출셋길은 막혔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적당한 한직으로 물러나 목숨을 부지할 수는 있겠지.


그런 무책임한 생각을 하며 그는 비행선에 올라, 곧바로 믿음직한 아틀리치니의 곁으로 향했다.


앞이 유리로 되어 탁 트인 비행선 조종실. 저멀리 짙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전장이 보이고 있었다.


“에스먼드 소령은 어디있나?”


이상하게도, 페스토 중장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도 묵묵히 일하고 있던 간부나 병사들이 일어서는 일은 없었다. 다들 무뚝뚝하다 못해 살벌한 표정들을 띄우고 있다.


조종실의 착 가라앉아 긴장된 분위기는 패전을 목전에 둔 부대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지만, 눈치 없는 페스토 중장은 그걸 알아채지 못한 채 두리번거리며 그를 이 마경에서 벗어나게 해 줄 사람을 찾았다.


마침내 낯익은 얼굴을 본 페스토 중장은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명령조로 말했다.


“에스먼드 소령, 뭘 하고 있나! 마왕군이 언제라도 이쪽을 알아차릴지 모른다. 바로 비행선을 띄워 프냐르 항구로 출발하도록.”


작은 크기의 전보를 읽고 있던 테일러 에스먼드 소령은 싹싹한 미소와 함께 경례를 올렸다.


“서두르시는 모양입니다, 각하. 그렇지 않아도 곧 출발할 예정이었죠. 뭐, 그 전에 담배라도 한 대 태우시겠습니까?”


천천히 담뱃갑을 꺼내는 테일러의 모습을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페스토 중장이 인상을 썼다.


“자네, 지금 제정신이야? 그 괴물들이랑 싸워보지 않았는가...! 한시가 급하네! 이 비행선이 살아야 지휘계통이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안절부절못하며 다그치는 페스토 중장과 대조적으로, 테일러는 느긋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남은 아군 병력이 잔뜩 있을 텐데요. 전보를 받을 수 있다고는 하나 후퇴하는 아군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일 이 비행선에서 제대로 지휘하실 수 있겠습니까?”


“뭐? 그거야ㅡ”


“비행 중에는 통신상태가 항상 양호하다고 볼 수는 없죠. 지휘의 핵심이 되는 작전사령부가 이렇게 내빼버리면 전장에 남은 아군은 순식간에 와해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틀렸나요?”


그 느긋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날카로운 눈빛이 페스토 중장을 힐난하듯 빛났다.


전혀 위기감이 없는 것 같은ㅡ오히려 지휘관의 의무를 버린 자신을 질책하는 것 같은 이 아틀리치니의 태도에 당황하면서도, 페스토 중장은 목소리를 더 높였다.


“뭐 더 어쩌라는 거냐! 이미 패배했어! 저딴 괴물들 상대로 이것까지 해낸 것도 기적이다!”


“후퇴를 진두지휘할 생각은 없으신 겁니까.”


삿대질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페스토 중장과 반대로, 테일러는 점점 차분해졌다.


“전력이라면 본국에서 얼마든지 충당할 수 있으니, 내가 도망치는 게 먼저란 말이다! 내 명령을 위반할 생각인가, 소령! 항명이라고!”


목에 핏대를 세운 페스토 중장이 지지를 얻으려는 듯 주위를 둘러보지만, 이 정도로 격한 말이 오고 가는데도 이쪽에 흥미를 보이는 병사는 하나도 없었다.


그 이상한 모습에 그가 눈썹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테일러 소령은 한눈을 감고, 혼자 뭔가를 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각하께서 그렇게 결정을 내리셨다면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적의 추격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웃음기가 싹 사라진 테일러는 그렇게 단언했다.


“이곳으로 마왕군의 공격이 날아들 일은 절대 없습니다. 제 모든 명예를 걸고 약속드리죠.”


“그, 그건 왜지?”


페스토 중장은 적의 추격이 없다니 안심했지만 일단 물어는 보았다.


“당신은 여기서 당하는 운명이니까.”


갑자기 돌변한 테일러 소령이 차갑게 말하고, 하나의 총구가 페스토 중장의 미간에 놓였다.


서슬 퍼런 은색으로 빛나는 8연발 권총은 그도 보고에서 읽은 적이 있는, 틀림없는 마왕군의 것.


“ㅡ어?”


페스토 중장은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뒷걸음치려 하지만, 뒤에도 무기를 든 병사들이 자신을 막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비명 지르듯 소리쳤다.


“잠깐만, 이게 무슨 짓인가! 소령!”


그가 필사적으로 외치지만 그것도 부질없이, 테일러는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야전군사령관의 최후는 매우 꼴사나웠다고 본국에 전해다 주지.”


끼릭ㅡ탕!


의식이 어둠 저편으로 떨어지는 와중에도, 페스토 중장은 어째서 그가 살해당한 것인지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 ◆ ◆ ◆ ◆ ◆ ◆


스비엣의 등장과 퇴장은 아틀리치니 전원이 마왕군의 편으로 돌아서는 방아쇠다.


연방의 원죄가 다시금 벌건 대낮에 드러난 건 아직도 망설이던 이들의 마음을 굳히는데 톡톡히 일조했다. 예카테리나가 예상한 그대로의 시나리오다.


다들 이대로 가면 어차피 연방의 멸망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ㅡ연방의 시작과 함께한 스비엣의 소멸을 보며 확신한 것이겠지.


지금 바꾸지 않으면 영영 미래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아틀리치니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행동을 개시했다.


아틀리치니 각 멤버가 가진 직속부대는 강한 유대로 묶여있어, 그렇게 갑작스레 연방군에서 마왕군으로 소속변경을 신청한다 해도 묵묵히 따를 뿐이다.


신뢰할 수 있는 소수로 지휘체계가 이미 무너져버린 군을 장악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은 법.


당장 움직일 수 있는 아틀리치니 다섯 명이 직속부하를 데리고 쿠데타를 일으킨 소문이 일반병사에 닿을 즈음엔, 자포자기하고 무기를 내려놓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흉악한 이빨을 드러낸 마수 앞에서도 결사 항전의 의지를 보이던 연방군 병사들이 그렇게 쉽게 포기해버린 이유는 간단하다.


아틀리치니는 그 강력한 마도 때문에 계급에 상관없이 주력 부대의 핵심이 된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제일 의지하는 전력이 등을 돌린다는 건, 군이 적과 제대로 싸워보기도 전에 내부에서부터 궤멸한다는 걸 의미했다.


잔존병력은 마지막 희망인 연방의 정예가 돌아섰다는 것에, 싸울 힘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물론 끝까지 반항하는 고위장교들도 있었지만, 그들을 설득시키는 건 의외로 간단했다.


잘 닦인 원탁이 놓인 연방군 상황통제소 막사가 그 예시로, 이곳은 귀 아픈 총성이 막 울린 참이었다.


ㅡ쿵!


머리에 총탄을 맞고 즉사한 연방군 참모장의 몸이 의자에서 꼴사납게 굴러떨어졌다.


“ㅡ그렇게 됐습니다.”


예카테리나가 라이플을 겨눈 채 담담하게 말하며, 원탁에 둘러앉은 장성들을 보았다. 평소의 여유로운 태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장성들은 하나같이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옷깃 사이에 끼인 탄피를 발견하고 톡 떨어뜨린 그녀는 흐응, 하고 한숨을 쉬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쉽게도 참모장 자리가 공석이 되고 말았네요. 여러분도 참모장과 같은 의견이라면 저렇게 될 텐데, 어떠신가요? 제 의견에 반대하시던 분들, 이 잠깐 사이에 마음의 변화가 있었나요?”


“다, 당장 마왕군에 투항하겠네!! 중위 말대로!”


“난 이견은 없다!”


“나, 나도일세! 모든 권한을 자네에게 양도하도록 할 테니 목숨만은ㅡ”


훈련병이나 할법한 우렁찬 대답이 여러 곳에서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을 보고, 예카테리나는 라이플을 내렸다.


“활기차서 좋네요. 좋은 대답입니다. 마왕군이 신병을 인도해가겠지만, 여러분도 어쩌면 저쪽이 요긴하게 써줄지도 모르죠.”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는 기대에 가득 찬 눈을 하는 장성들을 보며, 예카테리나는 이 상황에도 자신의 목숨을 부지할 생각밖에 안 하는 썩어빠진 장성들은 아마 마수들의 먹이로 쓰여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다 쏴버리세요.”


같은 종류의 라이플을 들고 우뚝 선 자신의 직속 부하들에게 그렇게 말해주고는, 예카테리나는 밖으로 나와 걸음을 옮겼다.


불길한 황무지라는 장소에 변화는 없었지만, 전투가 차츰 잦아들며 조금 전까지만 해도 총탄이 사방에서 날아다니던 밖도 슬슬 조용해진 참이었다.


장성들이 모인 막사를 지키던 자들 중 끝까지 무기를 내려놓지 않은 쪽은 땅에 굴러다니는 시체가 된 지 오래였다.


예카테리나는 꽤 쌓인 시체를 요령껏 피해, 임시병동을 차린 텐트로 들어갔다.


이번 전투 중 적습을 받은 병력치고 단지 부상을 입는 것으로 끝난 아군은 없었기에, 병동의 침대는 텅텅 비어있다.


그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던 붉은 머리칼의 소녀는 누군가가 들어오는 기척에 부스스한 머리를 일으켰다.


“으, 으으음... 리...나?”


그제야 방금 방아쇠를 당길 때도 무표정이던 예카테리나의 얼굴에 미소가 올라갔다.


“카옌. 정신이 들었어?”


예카테리나를 멀뚱멀뚱 쳐다보던 카옌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두리번거리다, 마침내 자신이 어디 있는지를 알아차렸는지 아, 하는 소리를 냈다.


“나, 여태 자고 있었던 거야?”


“그래, 부상이 없는 게 다행이야. 카옌이 쉬고 있는 동안 계획대로 아틀리치니가 윗선을 싹 정리했어. 지금 밖은 대부분 정리되어서, 잔존병력에 대한 지휘권은 일단 우리들이 가져왔으니 곧 마왕군 측에서 책임자를 보내올 거야.”


예카테리나가 쿠데타에 대한 소식을 전하지만, 카옌은 그런 것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구나. 나, 진거구나.”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도, 분한 얼굴은 하지 않았다.


웅, 웅ㅡ


예카테리나는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고, 작게 진동하는 본인의 팔찌를 확인했다.


마왕군에게서 받은 통신용 마법 도구는 기술의 종류는 다를지언정 연방의 전보보다 많이 발달해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연락이 왔어. 피아넬 원장이 합류 포인트를 지정해준 모양이야.”


예카테리나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듯 바깥쪽을 슬쩍 보았다.


카옌은 끄응, 하는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폈다.


“있잖아, 리나. 여기는 성공했잖아. 그럼 데트르 나머지에 주둔하고 있는 연방군은? 파흐 말고도 병력은 꽤 남아있으니까, 그쪽이 살짝 걸리는걸.”


카옌이 묻자, 예카테리나의 얼굴에 쓴웃음이 살짝 걸렸다.


“원정군이 분열해서 또 다른 전쟁이 발발하면 안 되니 프냐르 쪽도 마왕군의 협력을 받아 이곳과 동시에 정리했어. 데트르 전역의 원정 연방군에 대한 지휘권을 우리가 가져갔으니, 이걸로 이 전쟁은 끝이야, 카옌.”


전쟁이 끝났다.


연방에겐 독만 되던 전쟁이 끝나, 더이상 불필요하게 연방의 피를 흘릴 이유가 없어졌다. 소수 지휘관들의 피를 흘리는 것으로, 스파세니예 인민의 미래를 사수한 것이다.


이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던가. 하지만 예카테리나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다는 것에 주목해, 마냥 들뜨지는 않았다.


“이곳의 잔존병력은 무기를 버리고 포로로 들어가기로 이야기를 끝내뒀으니까, 우리도 슬슬 움직이자.”


“다른 사람들은?”


“코르투와 대위와 쿠로사와 중위는 아군 무장을 수거하고 있고, 에스먼드 소령이랑 휴버 중위는 도망친 상층부를 처리하고 있어. 뮬러 대령은 전투에서 입은 상처가 너무 심해서 마왕군 쪽에 거둬져 치료 중이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만한 적과 제대로 맞부딪힌 것치고는 이쪽의 피해가 적다는 생각을 하는 예카테리나였다.


적어도 절반이 살해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전투였다. 루웨인 뮬러 대령을 굳이 치료해준 것이나, 일레느 코르투와 대위를 죽이지 않고 끝낸 것은 양측이 전력을 다한 전투에서 일어날 법한 건 아니었으니.


그 생각은 카옌도 마찬가지인지, 붉은 사이드테일의 소녀는 흠, 하고 생각하는 얼굴을 했다.


역시 저쪽이 봐준 것은 아닐까, 미심쩍은 생각이 스쳤지만 예카테리나는 그걸 구태여 입에 담지는 않았다.


“그래도 죽은 사람이 없는 건 다행이네. 전부 리나가 생각한 대로 흘러갔구나.”


“맞아.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야. 연방을 철저하게 뜯어고쳐야 하니까.”


예카테리나는 평소처럼 무감각하게 말했지만, 그 눈은 비장에 차 있었다.


국가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표면상으로는 최고의회의 일곱 석을 차지 하고 있는 아틀리치니가 국가를 배신한 것에 변함은 없는 것이다.


이제부터 연방에 어떻게 개입할지는 기나긴 대화가ㅡ어쩌면 조금 더 피를 흘리는 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카옌은 그 눈을ㅡ홀로 마왕군과의 교섭에 나서 전쟁을 조기 종결시킨, 야망 넘치는 친우의 두 눈을 잠시 바라보았다.


예카테리나의 눈에 담긴 결의와, 그에 이르기까지 거친 수많은 고민들이 남긴 흉터들을 보았다. 다른 누구라면 몰라도, 카옌에겐 보이고 있었다.


“...그렇구나. 리나가 그러면 됐어.”


“카옌?”


피식, 하고 혼자 웃은 카옌은 언제 진지한 표정을 지었냐는 것처럼 평상시의 장난기 짙은 표정을 지었다.


“아, 아~ 김빠지게 끝나버렸네. 이번엔 좀 더 제대로 싸워보고 싶었는데.”


잠시 말이 없던 카옌은 예카테리나가 보채기 전에 힘차게 몸을 일으켰다.


“뭐, 소속이 바뀐 것뿐이지 내가 할 일에 변함은 없나!”


마왕군의 잔존병력 5만 명. 부상자 713명, 사망자 35명.


데트르 대륙 내 연방군의 잔존병력 120만 명. 부상자 8812명, 사망자 40만 명(추정).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던 스파세니예 연방과 마왕군의 전쟁은 이렇게 막을 내린 것이었다.


작가의말

연방의 침공 arc 끝내는데 자그마치 1년하고도 4개월이 걸렸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1 황혼의 다짐 +2 22.06.14 111 5 19쪽
» 쿠데타 +4 22.06.04 125 5 18쪽
209 그리고, 또다시 작별 +2 22.05.28 126 5 21쪽
208 빛 바랜 재회 +2 22.05.13 112 6 17쪽
207 스비엣, 첫 번째 불꽃의 예찬자 +1 22.04.12 127 6 18쪽
206 흉조의 완성 +1 22.03.30 122 5 19쪽
205 환상을 부수는 번견 +1 22.03.25 123 4 15쪽
204 의지는 얼어붙지 않는다 +1 22.03.03 123 5 18쪽
203 격돌 +1 22.02.22 113 4 17쪽
202 집결 +1 22.02.08 110 5 17쪽
201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 +2 22.01.15 116 5 18쪽
200 패배, 그리고 지켜보는 눈 +1 21.12.31 124 4 18쪽
199 카디널 보이드 +2 21.12.24 122 4 17쪽
198 마도 vs 마법 +3 21.12.08 130 3 18쪽
197 망설임을 잠재우지 않으면 +1 21.11.29 123 3 16쪽
196 어둠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1 21.11.16 115 5 18쪽
195 엔딩의 서막 +3 21.11.02 124 7 16쪽
194 시계 바늘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돌아간다 +3 21.10.17 129 5 18쪽
193 예카테리나 페르바크 중위 +1 21.09.28 100 5 18쪽
192 이곳은 죽음이 백색을 띠고 있다 +1 21.09.03 103 5 19쪽
191 하늘에서, 하늘로 쏟아지는 파괴 +2 21.08.01 114 3 17쪽
190 여름 바다, 휴가 +2 21.07.24 111 4 16쪽
189 소녀는 절대 잊지 않는다 +5 21.07.11 119 4 17쪽
188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전란 +3 21.07.05 128 5 19쪽
187 동전의 뒷면은 온도가 다르다 +2 21.06.21 120 6 17쪽
186 전쟁은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1 21.06.07 126 4 17쪽
185 종언의 천사 +5 21.05.24 136 5 15쪽
184 광기의 과학자 +3 21.05.15 137 5 18쪽
183 표지가 새로 나왔습니다 +3 21.04.27 130 5 1쪽
182 천사, 인간, 그리고 광인 +4 21.04.25 171 5 18쪽
181 메스에는 피가 묻어있다 +2 21.04.12 132 4 18쪽
180 그것은 천천히, 하지만 치명적으로 +2 21.04.04 150 5 16쪽
179 뜻밖의 합심 +2 21.03.22 151 4 18쪽
178 인페르노 +1 21.03.11 146 4 18쪽
177 첫 번째 교전 +2 21.03.01 160 4 14쪽
176 겨울 비가 오기 전에 +3 21.02.21 167 8 14쪽
175 밤에 물들어버린 빛 +5 21.02.15 195 9 15쪽
174 손님 맞이 +2 21.02.12 168 7 17쪽
173 어둠은 꽈리를 틀었다 +4 21.02.10 179 7 15쪽
172 마왕의 방문 +3 21.02.07 182 4 16쪽
171 연방 +2 21.02.04 160 6 19쪽
170 기다리는 건 죽음 +3 21.02.02 176 6 16쪽
169 엑스트라는 엑스트라답게 퇴장한다 +5 21.01.31 161 7 17쪽
168 바람은 방향을 바꾼다 +3 21.01.27 147 7 14쪽
167 인과응보 혹은 불의 +5 21.01.25 163 7 15쪽
166 보복 +2 21.01.18 154 6 15쪽
165 우연은 필연의 모습을 하고 있다 +5 21.01.16 165 6 14쪽
164 차가운 운명의 굴레는 오늘도 +1 21.01.14 156 6 16쪽
163 모든 게 얼어붙은 나라 +2 21.01.11 188 6 15쪽
162 구원 요청 +1 21.01.10 188 6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