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5.26 21:38
연재수 :
306 회
조회수 :
136,567
추천수 :
3,290
글자수 :
1,700,661

작성
21.04.12 10:12
조회
129
추천
4
글자
18쪽

메스에는 피가 묻어있다

DUMMY

스파세니예 연방 최고지도자 라트신은 대륙 정벌에 함께하지 않았다.


연방은 전보, 라고 하는 장거리 통신수단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뱃길로 6주가 걸리는 대륙까지 신호가 닿지는 않으니 시시각각 보고를 받기에는 무리가 있다.


따라서 정기적으로 배가 오고 가며 현 상황을 알리게 되었지만, 대륙의 정벌군을 움직이는 건 모두 현장의 지휘관에게 맡겨졌다.


라트신이 대규모 군사작전에 대한 지침만 확립해두고 손을 떼다시피한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스파세니예의 앞날을 좌우할 작전임에도.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최고지도자가 자리를 비웠다는 게 알려지면, 누가 그 빈자리를 독차지하려고 할 것이 뻔했다.


그 광활한 땅을 하나의 이름으로 묶고 있는 건 최고의회의 압도적인 힘.


그 권력의 상징이자 중심인 라트신이 장기간 나라를 떠나게 되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거머쥘 자들이 많았다.


라트신은 제일 먼저 등을 돌릴 후보로 자신의 측근들을 제일 의심했다.


의심암귀가 난무하는 연방의 정계에서 최고지도자의 자리까지 오른 라트신에게 신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가 보기에 그의 측근들은 단지 그를 따르는 게 이익이 되기에 그러고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편집증적으로 보일지도 모르는 라트신의 의심은 사실 옳다고 할 수 있었다.


최고의회의 일원 중, 라트신에 존경을 품고 따르는 자는 하나도 없었으니까.


라트신이 직접 대륙에 가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자신이 갈 필요도 없을 거라는 믿음.


십 수만의 군대와 아틀리치니 전원을 파견했다. 연방의 창설 이래 제일 큰 군사작전이다.


마왕이 아무리 대단한 놈이라고 해도 대륙에게나 위협이었지, 연방에는 별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건 라트신을 포함한 최고의회가 전원 공유하는 시각이었다.


정작 작전을 실행할 군부는 상당히 조심스러웠지만, 역사의 어느 때나 그렇듯 정계와 군부는 이해에 도달하지 못했다.


초봄이 다가옴에도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레윤케.


레윤케 정부군 소속 드숀 소령은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수도로부터의 연락을 기다리던 중, 정체를 알 수 없는 군대에게 군사기지가 통째로 함락.


적의 정체도 불명, 무기도 불명, 규모도 불명.


뭐에 당한지도 모른 채 아군이 픽픽 쓰러져 죽어갔다.


구원요청을 아무리 해봐도 수도에서 원군이 오는 일은 없었고, 비상시 지침대로 끝까지 주어진 위치를 사수하던 그는 결국 살아남은 부하 몇과 함께 포로 신세가 되어있었다.


“나를 어떻게 할 생각이지?”


손과 발을 결박당한 채 몇 시간째 홀로 텐트에서 기다리던 그는 답답해서 물었다. 낯선 언어를 쓰는 이들에게 공용어가 통하는지도 몰랐지만 말이다.


그를 감시하던 보초는 고개를 조금 틀었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떨구던 드숀 소령에게 텐트를 걷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시선 끝에 있었던 건 여의사ㅡ 아니 의사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단지 백의를 걸쳤을 뿐, 백의 사이로 군복이 제대로 보이고 있었다.


이 간부의 등장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아직 그는 알지 못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저 여자를 본 순간부터 온 몸이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위험하다.


단순한 군인이 아니다. 단순한 인간도 아니다.


그의 앞에 서 있는 그것은 근본부터 뒤틀려있다.


인간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질적인 존재다. 확실히 모습은 인간이다. 하지만 알맹이는 전혀 다른 게 들어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의 흉내를 내도 절대 통상적인 인간이 아닌 곳들이 하나의 존재로 합쳐진다면 이런 게 아닐까.


“아아~ 생존자가 있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상태 별로 안 좋아 보이네. 밥은 잘 먹고 있어?”


스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긴 금발의 여자의 얼굴에 떠오른 건 친근함과는 거리가 굉장히 먼 것이었다.


드숀 소령이 여태까지 보아왔던 사람들 중 미쳐있는 사람은 있었지만 저 정도로 미쳐 보이는 자는 없었다.


군인이 보통 승리라는 목적을 가지고 살인을 한다면. 이 여자는 아무 목적이 없어도 '취미로' 사람을 죽일 것 같다.


새하얀 백의가 피로 얼룩지지 않았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금방이라도 숨이 막힐 것 같아 드숀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눈을 마주쳤을 뿐이지만 몸을 돌려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불온한 기운이 여자의 보라색 눈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광기다.


목적이 있는 광기보다 무서운 건 목적 없는 광기다.


의도를 읽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두려워하고 멀리하는 것이다.


보라색 눈에는 광기가 짙게 서려있었다.


거대한 태풍을 보고 온 몸에 소름이 끼쳐오는 것과 `비슷할 느낌이 정신을 마비시켰다. 언제 죽임당해도 이상하지 않다.


저것은 인간사회와 공존할 수 없는 것이다. 배제해야 한다. 같은 공간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


“뭐, 정부라는 중추가 무너졌으니 상태가 안 좋은 것도 어쩔 수 없겠지.”


혼잣말을 하던 여자의 눈이 순간 그에게 고정되었다.


“나는 연방군의 일레느 코르투와 대위. 마왕군한테 정부가 무너졌다지?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어라? 그쪽은 별로 나를 봐서 반갑지 않나 보네.”


드숀은 혼미한 정신을 가까스로 가다듬었다.


반가울 리가 없다.


압도적인 공포에 몸이 굳으려 하는 걸 온 힘을 다해서 막는 게 고작이다.


말 한마디 섞지 않았음에도 이 여자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설명이 필요 없었다.


복장으로 봐서는 군위관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단언할 수 있었다.


이 대위는 생명을 살리는 쪽이 아니다. 생명을 앗는 쪽이다.


공포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던 드숀 소령은 대륙 밖의 나라 중 연방이라는 곳이 있다는 걸 떠올렸다.


“지금 연방군이라고 했지. 연방이면 스파세니예...? 어째서 연방군이ㅡ”


“재미없는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는데.”


일레느는 바로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


자신의 발언권이 없음을 깨달은 드숀은 입을 다물었다.


“그렇지, 조촐하지만 현지 시설을 구경시켜줄게. 나는 선임연구원. 여기에서는 재미난 실험들을 하고 있으니까.”


그 재미난 실험이라는 게 뭔지는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대위는 혼자 들떠서 말했다.


“이야, 발까지 묶어놓았네. 어이, 이거 풀어줘. 잠깐 산책을 나갈 거니까.”


보초가 대위가 시키는 대로 묵묵히 드숀의 발을 풀었다. 양팔은 그대로 뒤로 묶인 채다.


“요즘 들어 실험체가 부족해서 말이야. 그래도 보여줄 건 있어.”


일레느 대위는 등을 돌린 채 텐트를 나와 걷기 시작했다.


주춤하던 드숀도 일단 그걸 따랐다.


이 군인 놈들은 갑작스럽게, 예고도 없이 쳐들어왔다. 반격의 여지 없이, 반나절 만에 그의 대대를 전멸시켰다.


소수의 생존자들도 일부러 살려뒀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놈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파악하는데 급선무였다.


드숀은 폐허가 된 기지를 걸었다.


어디에나 하얀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깔려있다. 그의 대대가 주둔하고 있던 기지는 완벽하게 제압되어, 적지가 되어 있었다.


발의 구속구가 풀렸다지만 여기에서 도망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어디였지... 아, 여기다, 여기!”


일레느는 고개를 돌려 농장을 보더니 손을 들어 가리켰다.


본래 정부군에 식량을 공급하는 농부들이 농사를 짓는 농장이다.


혹독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온열마법을 제한적으로 사용해 사람이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식량을 만드는, 드숀 소령의 대대는 고맙기만 했던 시설.


하지만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건 절대 농산물 같은 순수한 게 아니었다.


어느 생물들이, 잔뜩 밭을 채우고 있었다.


드숀은 처음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신체가 더는 인간의 것이라 부르지 못할 정도로 뒤틀리고 부풀어 끔찍하게 변모한 남자가 하나 보였다.


공포 소설에 나올 망상의 산물이 현실세계에 발을 들인 것처럼 기이했다.


머리는 기형적으로 기다랗다. 어깨 한쪽이 비대하게 컸고 몸 전부에 혈관이 튀어나와 있었으며 그곳에선 노란 진물이 끊임없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단순한 병자는 아니다. 그렇다면 저렇게 될 때까지 목숨이 붙어있을 리가 없다.


눈알일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 드숀을 보았는지 남자ㅡ아니 사람이었던 것은 눈알을 뒤룩, 하고 뒤집었다.


자신도 모르고 뒷걸음질치는 드숀이 재미있는지, 일레느가 웃었다.


“아직 자의지가 없으니까 별로 걱정 안 해도 될 텐데.”


드숀은 그것에 눈을 떼지 못한 채 또각 또각, 군화 소리를 내며 걷는 일레느에게 물었다. 저런 괴물이 레윤케에 있다고는 들어본 적이 없다.


놈들이 데려온 것이다. 그의 부대를 무너뜨린 연방군 놈들이 말이다.


“무슨 짓을 한 거냐... 너희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악의 행동은 살인이라고 생각해왔다.


죽이는 것보다 더한 것은 없다고, 그것이야말로 최대의 죄악이라고. 자신을 막아서는 적을 죽일 때도 적지 않은 죄책감이 마음에 쌓여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정도로 충격받은 거야? 임시실험장은 저기에도 있는데?”


왼쪽에도 수용시설이 세워진 걸 그제야 깨달은 드숀은 고개를 돌렸다.


방금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암시가 담긴 대위의 말에는 틀린 게 없었다.


“인간... 저게 인간이라고?”


살점 덩어리로밖에 안 보였다.


어린아이가 제멋대로 짜 맞춘 것처럼 붉은 고깃덩이들이 하나로 뭉쳐져 있었다.


그게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건 그것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게 아니었으면 영원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단순한 고깃덩이로 전락했음에도 아직까지 목숨이 붙어있다.


“아, 저건 꽤 쓸 만할 데이터를 많이 얻게 해줘서 감사하고 있어. 원래 이름이 뭐였더라? 카... 카 뭐였지. 이성을 잃기 전까지는 이 정도로 굴복할 거라 생각하지 말라느니 시끄럽던 여자였는데. 뭐 상관없지 않아?”


“무슨ㅡ”


“징그럽다는 듯이 보지 말아줄래. 네 부하한테 실례라고?”


드숀은 그것이 무엇인지ㅡ아니, 누구였는지 깨닫고 걸음을 멈췄다.


카렌.


그의 직속 부관이다.


그럼 이곳에 있는 괴물들은 전부ㅡ


놈들은 포로로 잡은 그의 부하들을 전부 이런 꼴로ㅡ


“이, 이런 일이...”


그는 말을 더듬었다.


생명에 대한 모독이다.


도대체 뭐를 어떻게 해야 인간을 저렇게 만들어버린다는 것인가. 저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다.


연쇄살인마라 해도 저렇게까지 인간의 존엄을 모독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게 가능한 건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자만이다.


한 치의 공감도, 연민도, 수치도 없어야만 같은 인간을 저렇게 나락에 떨어뜨릴 수 있는 것이다. 그걸 자랑이라도 하는 것 같은 대위의 태도.


“네년... 이런 짓을 하고도 인간이냐?”


갈곳없는 드숀의 분노가 일레느를 향했다.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사람에게 저렇게...”


죽음보다 끔찍하다.


이럴 바에는 죽는게 나았다. 몰락한 중앙정부와 운명을 같이하는 게 백배 나았다.


“이런 걸 하고도 용서받을 거라곤 생각하지 말아라... 이건 악이야. 해도 해도 도가 지나쳤어, 네놈들은... 사람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고!”


“어라, 벌써 화난 거야? 아직 보여줄 건 남았는데.”


대위는 텐트 하나를 들추더니 보란 듯이 가리켰다.


“저거 봐봐. 신기하지 않아?”


그 얇은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인간의 목이 수많이 전시된 공간이 있었다.


그 정도라면 적을 참수시켰던 고대와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다른 점은 있다.


목들은 하나같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소리를 차마 듣지 못하겠어 드숀은 귀를 막았다.


목 밑으로는 아무것도 없다. 생명을 유지시켜야 할 심장도, 몸뚱이도 아무것도 없다. 굵은 선들이 잔뜩 절단 부위에 연결된 채, 철판 위에 나열되어 있었다.


수십의 목들이 아직 생명이 붙어있는 채 소리 지르고 있다. 그의 몸이 떨리는 건 공포 때문일까, 분노 때문일까.


이런 게 가능할 수 없다. 이런 게 존재해서는 안 된다.


이런 짓을 저지르고도 태연한 자가 이 세상에 살아 숨 쉬는 게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그가 느끼는 분노는 분명 여기 있는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다. 선을 넘었다. 한시라도 빨리 처단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


대위는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는 화가마냥 팔을 펼쳐 보였다.


“생명 유지 실험이야. 결과는 대성공! 살아있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저것들은 분명 목숨은 붙어있어. 신기하지 않아? 알려줄까? 궁금하지? 궁금해서 어쩔 수가 없지?”


이 여자를 처음 보고 느낀 건 절대 잘못된 생각이 아니었다. 대위는 환희에 차서 아름다운 얼굴에 황홀한 표정을 하고 춤추듯 몸을 빙그르르 돌렸다.


“재생의 마도야. 마도 중에는 어떠한 질병이든, 어떠한 상처든 바로 낫게 하는 신기한 게 있어. 그걸 사용했지! 아, 너네는 고유스킬이라고 부르던가? 마도 추출 대상이 가지고 있던 능력은 원래라면 사용자 본인한테만 통하는 힘이라서 타인에게 적용시키지 못하는 거라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어. 흠, 대성공이라고 얘기하기엔 아직 이른가? 조금 무리해서 그런지 치료받은 상대가 반쯤 미쳐버리는 부작용이 있지. 하지만 모든 성공에는 실패가 따른다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미쳐있어... 미쳐있다고, 넌.”


대위는 고개를 저었다.


“실례네, 난 단지 지식을 원하는 것뿐이야. 머리만 살아있는 걸 보고도 감상이 그 정도라니 조금 실망했다고? 멋있다고 생각해야지. 칭찬해야지. 이런 걸 이룬 건 내가 최초야! 상을 몇 개나 타도 이상하지 않아!”


“그러고도... 인간이냐.”


“그런 소릴 들으니 조금 기분이 묘하네. 나는 반박의 여지없이 인간이야. 오히려 저것들이야말로 인간이 아니지.”


일레느 코르투와 대위는 아우성쳐대는 머리들을 가리켰다.


“레윤케 중앙정부가 무너진 지금, 너희들은 쓰레기잖아? 아무 목적 없이 단지 살아가기만 할 뿐일 쓰레기들에게 그나마 사회의 도움이 될 역할을 내가 부여해줬어. 저것들은 내게 감사해야 하는 거야! 삶에 의미를 가졌다는 건 얼마나 기쁜 일일까, 쓰레기가 재활용되는 기분이겠지? 저건 기쁨의 외침이 분명해. 그게 아니면 머리가 참 나쁜 머리들이야.”


긴 금발을 조금 헝클어뜨리며 대위는 자아도취 해서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어 내렸다.


“과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 스파세니예를 일으킨 구원. 그 절차는 예부터 바뀌지 않았어. 기존 지식을 바탕으로 가설을 세운다. 가설을 바탕으로 실험을 집행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특정 조건에서의 동일 결과를 만들어낸다. 가설은 진실이 되고 실패는 성공의 발판이 된다. 과학은 진보하고 기적을 만들어 낸다. 기적 같은 과학을, 아니 과학 같은 기적을!”


자신에게 이런 걸 보여주는 이유가 뭘까, 라고 생각하던 드숀은 곧 답을 찾았다.


자신의 작품을 자랑하기 위해.


그리고, 그가 절망에 떨어지는 걸 누구보다 가까이서 보기 위해.


일레느 대위는 일그러진 웃음을 지었다.


“너를 가지고는 무슨 실험을 할까, 기대되는걸.”


◆ ◆ ◆ ◆ ◆ ◆ ◆ ◆ ◆ ◆ ◆ ◆



소년이 휘리릭 돌리던 메스가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 텐트 한 귀퉁이에 설치된 칠판에 꽂혔다.


“음, 일레느처럼 잘 되지는 않네.”


따분하다는 표정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건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었다.


갈색 머리는 대충 넘기고 불량하게 군복 상위를 풀어헤친 채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모습이다.


“이거, 정말 오기는 하는 건가?”


그는 혼잣말을 했다.


일레느는 현지 인간들을 가지고 이것저것 하며 즐기고 있는 와중인 것 같지만, 이 소년ㅡ나오키 쿠로사와 중위는 하도 오랫동안 기다리기만 해서 무료해 죽을 지경이었다.


일레느와 나오키. 둘이서 1개 사단을 이끌고 마구잡이로 레윤케를 헤집고 다니는 건 일견 단순한 살육같았지만, 확실한 군사적 목적이 있었다.


그들과 언젠가 충돌할 적이, 다시 움직이도록 끌어내는 것이다.


적의 규모, 능력, 기술을 알지 못하면 앞으로도 불리한 싸움을 끌어갈 수밖에 없었으니까. 레윤케 중앙정부를 무너뜨린 게 놈들이 맞다면, 이들을 그냥 내버려 둘 리 없겠지.


프냐르에 도착하는 것까지 치밀하게 기다려서 기습까지 한 놈들이다.


뭔가 원하는 게 있어서 관여한 레윤케에 연방군의 손이 닿는다면 보복은 확실하게 찾아온다.


말하자면 이 부대는 마왕군을 끌어내기 위한 미끼. 문제는 놈들이 언제 움직일지 모르니 기약 없이 이곳저곳을 건드리는 작전이 나오키에게는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였다.


“늙어 죽겠네,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야.”


나오키는 조바심을 냈다.


약한 놈들을 아무리 부숴봐야 그의 성에 차지 않는다. 아틀라치니 전원을 파견할 정도의 강적은 아직이었다.


지금도 그의 몸을 찌릿하게 하는, 그에게 약속되었던 전투는 아직인 것이다.


“이럴 바에야 그냥 왕국 쳐들어가는게 빠르ㅡ”


투덜거리던 나오키의 귀에 돌연 폭음이 들렸다.


푸쾅ㅡ


푸쾅ㅡ


그건 오랜 기다림의 끝을 고하는 소리였다.


의자 두 개를 연결해서 반쯤 누워있던 나오키는 몸을 일으켰다.


“드디어 나와주셨구만.”


위잉ㅡ


적습을 알리는 경보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올라와 있었다.


“기다리다 죽는 줄 알았다고.”


희번득, 하고 금색 눈이 불길하게 빛났다.


작가의말

그들의 똘끼가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주인공측만큼이나 미친 놈들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0 쿠데타 +4 22.06.04 123 5 18쪽
209 그리고, 또다시 작별 +2 22.05.28 125 5 21쪽
208 빛 바랜 재회 +2 22.05.13 112 6 17쪽
207 스비엣, 첫 번째 불꽃의 예찬자 +1 22.04.12 126 6 18쪽
206 흉조의 완성 +1 22.03.30 122 5 19쪽
205 환상을 부수는 번견 +1 22.03.25 123 4 15쪽
204 의지는 얼어붙지 않는다 +1 22.03.03 123 5 18쪽
203 격돌 +1 22.02.22 113 4 17쪽
202 집결 +1 22.02.08 110 5 17쪽
201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 +2 22.01.15 116 5 18쪽
200 패배, 그리고 지켜보는 눈 +1 21.12.31 124 4 18쪽
199 카디널 보이드 +2 21.12.24 122 4 17쪽
198 마도 vs 마법 +3 21.12.08 130 3 18쪽
197 망설임을 잠재우지 않으면 +1 21.11.29 122 3 16쪽
196 어둠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1 21.11.16 112 5 18쪽
195 엔딩의 서막 +3 21.11.02 123 7 16쪽
194 시계 바늘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돌아간다 +3 21.10.17 122 5 18쪽
193 예카테리나 페르바크 중위 +1 21.09.28 99 5 18쪽
192 이곳은 죽음이 백색을 띠고 있다 +1 21.09.03 102 5 19쪽
191 하늘에서, 하늘로 쏟아지는 파괴 +2 21.08.01 113 3 17쪽
190 여름 바다, 휴가 +2 21.07.24 111 4 16쪽
189 소녀는 절대 잊지 않는다 +5 21.07.11 119 4 17쪽
188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전란 +3 21.07.05 128 5 19쪽
187 동전의 뒷면은 온도가 다르다 +2 21.06.21 120 6 17쪽
186 전쟁은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1 21.06.07 123 4 17쪽
185 종언의 천사 +5 21.05.24 136 5 15쪽
184 광기의 과학자 +3 21.05.15 136 5 18쪽
183 표지가 새로 나왔습니다 +3 21.04.27 130 5 1쪽
182 천사, 인간, 그리고 광인 +4 21.04.25 169 5 18쪽
» 메스에는 피가 묻어있다 +2 21.04.12 130 4 18쪽
180 그것은 천천히, 하지만 치명적으로 +2 21.04.04 150 5 16쪽
179 뜻밖의 합심 +2 21.03.22 151 4 18쪽
178 인페르노 +1 21.03.11 142 4 18쪽
177 첫 번째 교전 +2 21.03.01 155 4 14쪽
176 겨울 비가 오기 전에 +3 21.02.21 167 8 14쪽
175 밤에 물들어버린 빛 +5 21.02.15 193 9 15쪽
174 손님 맞이 +2 21.02.12 166 7 17쪽
173 어둠은 꽈리를 틀었다 +4 21.02.10 177 7 15쪽
172 마왕의 방문 +3 21.02.07 182 4 16쪽
171 연방 +2 21.02.04 160 6 19쪽
170 기다리는 건 죽음 +3 21.02.02 176 6 16쪽
169 엑스트라는 엑스트라답게 퇴장한다 +5 21.01.31 161 7 17쪽
168 바람은 방향을 바꾼다 +3 21.01.27 147 7 14쪽
167 인과응보 혹은 불의 +5 21.01.25 163 7 15쪽
166 보복 +2 21.01.18 153 6 15쪽
165 우연은 필연의 모습을 하고 있다 +5 21.01.16 165 6 14쪽
164 차가운 운명의 굴레는 오늘도 +1 21.01.14 156 6 16쪽
163 모든 게 얼어붙은 나라 +2 21.01.11 188 6 15쪽
162 구원 요청 +1 21.01.10 187 6 15쪽
161 결국 놀이라고 하면 그것 +6 21.01.09 196 7 2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