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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뚜기 님의 서재입니다.

극한던전운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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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뚜기
작품등록일 :
2019.04.10 15:51
최근연재일 :
2019.05.29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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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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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10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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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뻔한 이야기의 시작-(2)

DUMMY

던전! 당연히 처음 보는 건 아니다. 나도 친던전의 시대를 살아가는 애신족 나부랭이니까.


하지만 친숙한 것과 직접 보고 느끼고 던전과 함께 살아간다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다. 50던전년이나 되는 긴 의무 교육을 받는데다가 사회 전체가 성전에 미쳐있는 세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나 같은 ‘대기자’들의 숫자가 전체 애신족의 절반이나 되는 것만 봐도 목표로 하는 것과 직접 현장에서 활약하는 것에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공기부터가 다르다. 앞장서서 포메이션을 갖추고 있는 모험가 일행들의 변화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기도대 앞에서 모여 있었을 때만 해도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현대의 청년들이었지만 던전에 들어온 후부터는 그들은 성전에 미쳐있는 전사들로 바뀌어있었다.


대기자, 아니 이젠 대기자라고 하기도 뭐하군. 전 대기자인 나로서는 적잖게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변화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혼자 산책을 나온 셀럽을 연기하기엔 너무 민망할 것이 뻔했으니 조금이라도 분위기를 바꿀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보게들. 너무 힘주고 있는 것 아닌가? 2층 정도는 그렇게 큰 위험은 없을 텐데 말일세.”

“예. 그래도 항상 몸에 익혀 두는 게 중요하지요. 그리고 모처럼 귀한 분도 모시게 되었으니 자연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겁니다. 하하! 수련하고 있는가보다 생각해주십시오.”

“음. 그런 사정이 있었군. 미안하네. 내가 아직 미숙하여 눈치가 없다네.”


그랬군. 하긴 저들 입장에서는 대기자를 끼고 던전을 공략하는 것만큼 폼 나는 일도 없겠지. 그래도 달라진 기도만큼은 단순히 쇼로 보기에는 미안할 정도로 날이 날카롭게 서 있었다.


비록 이들이 군단일리는 없고 생업벌이를 위한 모험가 집단일 것이 분명했지만 그래도 절반의 대기자들보다는 훨씬 성전과 가깝다. 벌이가 시원치않다고 한들 어쨌든 목숨 걸고 던전을 공략하는 프로지 않는가? 적어도 지금의 나보다야 훨씬 나은 전사이고 그들에게 배워야 할 것은 차고 넘쳤다.


“잘 아시는 군요. 잘 아시는 분이 무슨 연유로 혼자 행차하셨죠? 아무리 공략이 목적이 아니라지만 던전은 만만치 않는 곳이에요. 몸소 성전을 거부했다면 최소한 성전을 만만하게 보지는 말아야 하지 않나요? 고작 산책을 나오기 위해 던전에 오셨다면 산책에 어울려 줄 호위 정도는 고용하셨어야 했어요.”


그냥 내 실수를 인정하고 끝날 일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한 모험가가 날카로운 음성으로 내 실수를 물고 늘어졌다. 쯧! 괜히 말 걸었다가 불똥이 튀었다.


“련! 말이 너무 심하잖아. 방금 이용한 텔레포트는 네 마나로 사용한 거야? 어서 사과드려!”

“싫어! 내가 틀린 말한 건 아니잖아? 너도 저렇게 대놓고 자랑하고 다니는 뿔만 아니었어도 거절했을 거 아냐? 저 뿔머리가 호위를 대동하고 왔으면 시간 낭비하지 않고 바로 5층으로 갈 수 있었을 거야.”


뉴스에서나 보던 사회 문제를 현실로 맞닥뜨리게 되는군. 대기자들과 성전을 행하는 성전사들. 특히 성전사들 중에서도 모험가들과의 반목은 요즘 대두되는 하나의 문젯거리라고 뉴스에서 그렇게 떠들어대도 대기자인 나로서는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었다. 그런데 이렇게 몸소 겪어보니 민감한 문제인 것만큼은 확실해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외모비하는 좀...


“죄, 죄송합니다. 저 녀석이 아직 철이 없어서.”

“괜찮네. 사실 자네들 분위기를 보고 조금 찔렸다네. 련 이라고 했나? 좋은 지적이었네. 그러나 본인은 절대 고의가 아니었고 방금 말했다시피 정말로 아는 게 부족해서 ‘호위’씩이나 대동해야 할 줄은 몰랐던 거라네!”


나는 대답을 하고 련이라고 불린 모험가를 쳐다보았다. 물론 잔잔한 미소도 함께 말이다. 련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마 버티지 못하고 질색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적의를 지웠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은 나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현상이었기에 꼬리를 말은 상대에게 후속타를 날릴 의지 같은 건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서로 크게 대여 봤으니 이후에는 긁어 부스럼이 생기지도 않을 것이고.


하여튼 그렇게 한 대 얻어맞고 났더니 괜히 이마에 난 뿔...이 신경 쓰였다. 혹자는 고귀함의 상징이다, 신들이 내리는 축복이다. 라고 부러워하지만 정작 이런 걸 달고 다니는 내 입장에서는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꼭 보면 방금처럼 대놓고 자랑하고 다닐 수밖에 없어서 문제가 생기더라. 나도 원해서 자랑하고 다니는 게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고 뿔 두건을 쓰고 다닐 순 없지 않은가? 쯧! 차라리 크고 우람해서 외관적으로 괜찮으면 모르겠는데. 허구한 날 외모비하나 당하기 딱 좋은 사이ㅈ....


음! 여기까지만 하겠다.


서로 불쾌한 일이 생겼다 보니 이후의 분위는 착착하게 가라앉았다. 물론 그 분위기도 얼마가진 않았지만.


인공 던전 저층 특유의 심플한 디자인의 가도(街道)를 따라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 때, 갑자기 내 이마, 정확하게는 뿔에 통증이 일어난 것은 살아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내 뿔은 벌겋게 달아올라서 열이 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붕붕 소리가 나며 빛까지 내뿜기 시작했으니깐 말이다.


나는 당황을 넘어서 패닉 상태에 빠졌지만 모험가 일행들은 내게 일어난 변화를 알아차려 주기는커녕 또 다른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하느라 바빴다.


“뭐야? 텔레포트한 지 얼마나 됐다고 저런 게 티어 나와?”

“대형 유지해! 다들 '툴' 전개하고!”

“아냐! 소환은 일단 접어두고 당장 공격해서 숫자를 줄여놔야 해. 더 몰리면 위험해!”


이게 무슨 상황일까? 우리가 텔레포트 해서 대형을 갖추고 움직인 지 30분이 넘지 않았다. 아무리 던전의 저층이 대기자들의 관광이나 유입을 위해 규모가 작고 가볍게 설계 되어있다고 한들 텔레포트 한 지 30분 만에 ‘파편’들과 마주칠 만큼 작지는 않을 터였다.


당장 여기까지 오면서도 이제 막 던전에 들어왔거나 혹은 거주 던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텔레포트 시설로 이동하는 다른 파티들과 제법 마주치지 않았던가?


파편들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여기서 우리랑 맞딱뜨리면 다굴 맞고 뒈지기 딱 좋은 위치다. 실제로 벌써부터 우리 측 증원일 게 분명한 다른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불리한 조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파편들은 피하지 않고 우리들을 공격해왔다. 그것도 제법 강해보이는 녀석들이.


큭! 심상치 않은 상황이 전개 되고 있는 와중이건만 나는 그것보다도 더 심해진 뿔의 통증이 걱정스러웠다. 문제는 이런 나를 케어해줄 만큼 모험가들의 상황도 넉넉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상황을 파악하고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도 우선은 자리를 옮겨야 할 성 싶다.


다행히 인공 던전의 저층 대부분은 필드 타입의 층이기에 마음먹고 전투를 피하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었다. 파편들이 나를 목표로 하고 추격해오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강한 파편들이 공격해 온 것 같지만 이곳은 모험가들의 거점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순식간에 아군의 증원이 이루어 질 것이고 놈들은 얼마 버티지 못할 게 뻔하다. 몸을 피해서 조금만 기다렸다가 다시 돌아와서 내 증상에 대해 물어보기로 하자.


그렇게 모험가 일행을 뒤로 한 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괜히 후다닥 도망치면 추격을 당할까봐 일부로 자연스럽게 빠져나왔다. 나는 지나쳐왔던 관광용 쉼터로 향했다. 인공 던전. 그것도 저층이다 보니 본격적인 던전이라기 보다는 맛보기용 튜토리얼에 가까웠던 곳이고 이런 쉼터는 곳곳에 제법 많이 존재했다. 나는 벤치에 앉아 벌겋게 달아오른 뿔을 만져보았다.


심해졌던 통증은 점점 줄어들었지만 의문점만큼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짐작 가는 게 있긴 하다. 그러나 내 얕은 지식으로는 이 현상을 완벽하게 정의 할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상황을 지켜봐야 했나?


조금은 성급한 판단이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급히 자리를 피했긴 했지만 막상 통증은 얼마가지 않아 가라앉았고 비록 뿔은 아직도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긴 했지만 그렇다고 막 엄청난 일이 벌어질 낌새도 없다보니 이렇게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는 시간이 낭비가 되어버렸다. 전투 현장에 남아 있었다면 최소한 뭐 하나라도 배우는 게 생겼을 것을 생각하니 더 손해 보는 느낌이었다.


그래. 나중에 전투가 끝나고 돌아가면 그 련인가 뭔가 하는 여자한테 다시 트집이나 잡힐 게 뻔 할 거고 그렇게 되면 한 방에 잘 풀렸던 모처럼의 기회가 흐지부지 될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모험가들의 전투를 견학하자.


그렇게 방침을 정하고 벤치에서 엉덩이를 땠을 때였다.


“케케케!

“......?”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려보니 던전 특유의 어두컴컴한 시야 끝자락에서 ‘무엇인가가’ 티어 나왔다.


“어이, 날 추격해 온 거냐?”

“기만자들! 제거해야 한다! 케케!”


그 무엇인가의 정체는 몇몇 연예인들 보다 TV에 많이 나오는 것으로 소문이 자자한 ‘파편’이었다. 바보 천치인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는 익숙한 존재다. 물론 실제로는 처음 보는 것이긴 해도.


고블린 계열의 ‘파편’인가?


암습(暗襲) 그리고 공학(工學)으로 유명한 신, 고블린. 그의 무수히 많은 창조물 중 하나가 어디서 주어온 지도 모를 짝대기를 롱소드 마냥 나에게 겨누고 있었다.


쯧! 어째 처음 대면한 파편이 고블린. 그것도 성체도 안 된 어린놈이라니, 이건 잘 봐줘도 삼류 마공서급전개다.


고블린의 파편들은 대게 체구가 작고 외형이나 갖춘 장비 수준도 볼품없다지만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녀석은 그런 고블린 중에서도 동네 초딩을 담당하고 있을 놈이었다. 아마 모험가 일행을 공격한 파편 무리 중 어린 녀석이 본능을 못 참고 나를 추격해 온 것 일터였다. 한 마디로 엄마 잃어버린 동네 초딩! 딱 그 짝 인것이다.


“그래서 나를 사냥하시겠다고?”

“당연하지! 엄마가 무섭게 생긴 기만자들은 조심 하라했는데 넌 삐쩍 말라서 안 무섭게 생겼다!”

“백번 봐줘서 내가 삐쩍 말랐다고 치자. 하지만 너에 비하면 두 배는 넘게 크잖아?”

“우린 암습의 대가야. 선빵필승 모르냐? 덤벼라, 기만자!”

“기어코 피를 보시겠다? 좋아. 나도 구태여 말리진 않으마.”


하아. 녀석은 진지하게 나를 사냥하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숱한 주인공 놈들이 뻔질나게 치는 명대사마냥 ‘성전에 임하는 바, 파편들의 도전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은 자! 신격모독이다!’가 되어버린다. 폼은 안 나지만 아무래도 이게 내 데뷔전이 될 모양이다.


물론 당연히 내가 이긴다. 아무리 내가 그동안 나태형 대기자의 전형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한들 허리에도 못 미치는 초딩 고블린한테 지겠는가?


그래서 어떻게 포장을 잘 해도 그림이 별로 좋지는 않은 상황이라 나는 최대한 빠르게 나의 첫 번째 재물을 사냥할 생각이다. 방법을 고민할 필요도 없다. 솔직히 발차기 한 방이면 끝날 걸?


녀석아. 원망하지는 마라. 애신족들이 던전계로 도망쳐 나온 이래 너희와 우리 사이 숱하게 먹고 먹혀온 순환의 고리 중 하나라고 생각하길 바란다.


그렇게 명복을 빌어준 나는 놈에게 저벅저벅 걸어가서 놈의 턱을 노리고 앞발을 내질렀다.


슉!


평생 써 본적 없는 용도도 다리를 움직인 것이었지만 위력은 충분했을 것이다. 분명 한 방에 놈의 턱이 깨지고 귀중한 첫 번째 양분이 되겠지.


슥! 탁! 철퍼덕!


음...?


내가 예상하던 전개라면 턱이 깨지는 둔탁한 사운드만이 연출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발생된 음향적 효과는 세 개가 넘었고 결과적으로 나는 놈의 웃기지도 않은 ‘나뭇가지’를 얻어맞고 꼴사납게 바닥을 굴렀다.


그래. 놈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제법 재빠르다는 건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힘이 실린 발차기를 피하고 그 사이에 반격까지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당황한 부분은 그 다음에 벌어진 사태였다.


일반적으로 건정한 현대의 애신족 남성이 나뭇가지에 얻어맞고 바닥을 구르진 않는 법이지 않는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난 저 고블린 초딩이 휘두른 나뭇가지에 얻어맞고 제법 거창하게 굴러야만 했다. 심지어 아직도 얻어맞은 오른쪽 다리에는 상당한 충격이 남아있었다.


왜? 어째서?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이 현상은 무슨 과정을 거쳐 뜬금없이 일어난 것일까?


나에게 있어선 당장 해명해야만 할 출생 이래 제 1순위의 명제급의 의문점이 일었지만 어이없게도 그럴 여유가 없었다. 내가 놈의 공격에 적중당해 틈을 보이자마자 놈은 파편 특유의 야생성을 터트렸다. 마치 정말로 ‘사냥’할 수 있는 것처럼 놈은 거듭 나뭇가지를 휘둘렀고 반해 나는 고작 나뭇가지의 맹공을 버텨내기 위해 두 손을 세워서 굳게 가드를 올려야만했다.


탁! 탁! 탁! 탁!


분명히 이건 나뭇가지의 타격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탁! 하는 가벼운 타격음이 생겨날 수가 없으니깐 말이다. 하지만... 정작 그걸 받아내는 내 양손은 뼈가 부서지는 충격을 받고 있었다. 마치 서로 다른 물리법칙이 적용되기라도 하듯 가벼운 타격음의 나뭇가지는 내 신체에 닫자마자 전혀 다른 공식을 거쳐 굳게 들어올린 가드를 박살내었다.


“꺼져!”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할 것 같았기에 될 되라 식으로 이미 못 쓸 정도로 상해버린 오른손을 크게 휘둘러 놈의 공세를 저지하지 않았다면 나의 성전은 끝이 나고야 말았을 것이다. 물론 상황은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걸레짝이 되어버린 오른손은 덤이거니와 믿고 있었던 순수한 ‘스펙’의 차이는 더 이상 나의 장점이 되지 못하였으니 결국 남은 건 피차 얼마나 잘 싸우냐의 실력 비교가 승부를 결정지을 터인데, 이런 전제라면 내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난 싸움 잘 못한다. 정확하게는 누구와 싸워본 적이 없다. 학창 시절에 한두 번씩 정도는 싸워보지 않았냐 라는 질문은 사양한다. 내게는 학창 시절 같은 게 없으니까, 당연히 무경험이다. 물론 이 상황에서 금수저가 자랑인 건 아니지만, 금수저로 태어난 게 사실인데 어쩌란 말인가?


온실의 화초였던 나와 태어난 시점부터 경쟁의 소용돌이와 맞서며 생존하는 파편을 비교하면 당연히 파편쪽의 전투 능력이 강해야 하는 게 맞는 이치일 것이다. 비교 대상이 창조 된지 고작 몇 주일 채 되지 않은 초딩 고블린 일지라도 지금 당장에는 말이다.


다행히 놈도 내 공격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살짝 스친 것에 불과했지만 크게 휘두른 오른 손에 얻어맞은 놈의 공세가 잠시나마 수그러들었다.


젠장! 마음 같아서는 당한 것만큼 되돌려 주고 싶지만 그러기 위해선 걸레짝이 되어버린 양 손의 데미지부터 회복해야 한다. 평소라면 아예 잘려나가지 않은 수준 한에서 10분이면 웬만한 외상은 완치가 되는 튼튼한 몸뚱아리를 가졌기에 평상시 같았으면 ‘힐’ 마법 이라는 낭비의 상징 같은 수단을 사용하지 않았을 터였다. 허나 지금 10분이 뭔가? 당장 뒤질 뻔한 마당에.


그래도 굳어있는 몸과는 다르게 아드레날린은 충분히 분비된 것인지 써본지가 너무 오래돼서 시동어도 잘 기억 안 나는 ‘힐’의 사용법을 실수하지는 않았다. 시동어를 영창하자 곧 푸른 빛이 감각이 없는 양 손을 먼저 휘감았고 곧이어 몸 전체로 퍼지며 자잘한 내상을 회복해주었다.


곧이어 완벽하진 않지만 오른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완전한 회복에는 1분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그래도 그로기 상태에 빠졌던 것 치고는 싼 값이었다.


“치사한 놈! 반칙이다!”

“꼬으면 너도 쓰던가!”

“칵칵칵! 죽여버리겠다!”


놈이 저렇게 승질 내는 게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게 불리했던 상황을 마법 한 방으로 통치는 건 조금 찔리는 감이 있다. 그렇지만 마법의 존재야 말로 생존에 임하는 각오나 전투 경험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 애신족들이 파편들을 구축하고, 나아가 던전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임은 명백했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비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찌되었던 쉽게 봤던 첫 사냥감에 오히려 사냥 당할 뻔한 나는 더 이상 놈이 만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까처럼 어이없게 그로기에 빠지진 않을 테지만 하여튼 저놈이 든 초라한 나뭇가지를 합금 쇠파이프로 탈바꿈 하는 물리법칙이 적용하고 있는 시점에서 내가 상대보다 가지고 있는 이점은 많지 않았다.


결국 내가 쉽사리 나서지 않자 서로 마주보고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웬일인지 놈이 먼저 공격해오지는 않았다. 아마 놈의 전투 경험도 나 못지 않게 바닥을 기고 있으니깐 일어날 수 있는 대치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원거리 공격 수단을 가진 내가 먼저 선수를.... 칫! 이것도 글러먹었군. 공격 마법을 써 본적이 한두 번쯤은 있어야 얼추 흉내라도 내보지, 거의 190던전년도 더 된 옛 날 일을 기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힐이야 가끔 컨디션 회복 용도로 써보기라도 해서 기억하는 것이다. 파이어 볼 같은 걸 거주 던전에서 썼다간 다음 달 벌금 통지서만 잔뜩 꽂힐 뿐이다.


어쩔 수 없다. 육탄전, 그것도 맨 손 육탄전만이 내가 쓸 수 있는 최대한의 공격수단인 걸 누굴 탓하랴? 하다못해 멀쩡한 무기라도 하나 손에 쥐어졌으면 이렇게 노려만 보지 않고 먼저 선빵을 날렸을 것이다.


슈웅! 쿵!


응? 난 특별히 무슨 행동을 취하지 하지 않았다.


“뭐,, 뭐낫? 또 마법인 거냐? 더럽고 치사한 위선자 새끼! 치사하게 어디서 그런 비싸 보이는걸 꺼내는 거야!”


분명 무기를 원하긴 했었다. 그렇다고 진짜 손에 찹! 하고 쥐어지는 미래를 예언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금 내 두 손에 쥐어져 있는 이것은 무엇일까?


하하하! 전혀 예상 할 수 없는 현상의 연속이지만 하여튼 지금 내 손에는 제법 구색을 갖춘 병장기가 쥐어져 있었다. 조금은 애매한 게 흠이라면 흠이다. 보통 무기 하면은 당연히 도검이나, 창, 도끼 이정도가 떠오르고 뭐, 원거리 무기 쪽으로 가면 활이라던가, 요즘은 잘빠진 소총류도 자주 주인공들의 손에 쥐어지곤 하더라.


그런데... 철퇴? 왜 뜬금없이 이런 난해한 무기가 튀어나온 걸까? 이걸 내가 잘 쓸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윽!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또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이질감이 넘쳐흐르던 이 철퇴가 갑자기 성전의 영원한 동반자, ‘더 썬더 크레셔’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수십 년을 함께한 애병기처럼 나의 손길은 저절로 녀석의 병?감대를 찾아 간지럼피우고 있었다.


크큭! 그랬나? 이제야 좀 익숙해지는군.


꼴랑 한 시간조차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알 수 없는 현상과 변화들을 많이도 겪고 나자, 나는 그제제야 이 모든 게 사실 뻔하디 뻔한 전개였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전능하신 신들은 자신의 신도들에게 절대 공짜로 희생을 강요하지 않으신다. 그에 상응하는 강력한 대가, 그리고 믿음과 사랑을 주시고 우리를 기꺼이 사용하신다. 당연히 모든 뻔한 클리셰의 주인공들은 맨 몸으로 모험에 떠나지 않는다. 믿음으로 벼린 권능이 언제나 그들과 함께하기에 그들은 ‘강한’ ‘주인공’ 일 수 밖에 없다.


나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완벽히 몸과 하나가 된 듯 썬더 크래셔의 묵직한 금속이 머리위 에서 원심력을 빨아드렸다.


숭숭숭숭!


이쯤 되면 놈도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걸 느낀 놈의 두 눈에서 처음으로 살기다운 살기가 뿜어 나왔다. 놈이 나에게로 도약한 건 찰나의 망설임도 느낄 세가 없는 본능적인 움직임이었으리라.


하지만...


푸직!


그뿐이다. 그렇게 내 첫 번째 성전은 끝이 났다.


작가의말

연재는 월화수목금 연재를 기본 방침으로 하고 있으나 시간은 딱히 정해놓지않고 여러 시간대에 올려볼 생각입니다.


2권분량을 한 달안에 연재해야 하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하루 2편 연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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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너, 나이가 많은 이유가 있구나?-(1) 19.04.19 101 1 15쪽
15 성전사식 전투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게 포인트랍니다!-(2) 19.04.18 75 1 13쪽
14 성전사식 전투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게 포인트랍니다!-(1) 19.04.18 59 1 12쪽
13 백마 탄 왕자님이 바보 미소년이라면?-(2) 19.04.17 54 1 12쪽
12 백마 탄 왕자님이 바보 미소년이라면?-(1) 19.04.17 8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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