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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비각

여인천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동방존자
작품등록일 :
2013.04.18 18:35
최근연재일 :
2013.05.20 18:55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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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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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5.0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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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거래

DUMMY

11. 거래


비인은 문자 그대로 사람이 아니다. 죄인의 신분인 난인조차 신분 계급상 비인보다는 엄연히 우위. 죄를 지었을뿐, 그들은 사람이니 당연한 귀결이다.

허나, 극히 드문 경우지만, 비인들 중에 사회적으로 서인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 자들이 있었다. 천상교(天上敎)와 성신교(星辰敎)의 사제, 관에 종사하는 술사(術士)와 특수 기술자, 그리고 부측 등이 이에 속한다.

그 중 부측이란, 진인들이 육체적, 정신적 만족을 위해 곁에 들이는 비인으로, 구주천에 등록되어 제도적으로 신분을 보장받는 자이다. 비교하자면, 역천세 당시 지아비란 존재와 일면 유사한 개념.

물론, 욕정 해소와 이세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사가의 씨종이 있지만, 그 경우는 사적 소유물일 따름이다. 씨종을 들인 주인에게 아무런 의무가 발생하지 않고, 천인과 마찬가지로 주인이 원하면 언제든 임대, 양도가 자유롭다.

반면, 부측을 들이면 부측에 대한 기본적인 부양의무와 함께 부측의 행위에 대한 연대책임이 발생한다. 더구나 부측의 신분은 사실상 종신토록 유지된다. 부측을 들이는 과정이 무척 복잡할뿐더러 관계를 정리하기 위한 절차 또한 대단히 까다롭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부담을 지운 것은, 부측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어이 부측을 들일 것인지 재고해 보라는 뜻이 강하다.

그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순천세 초기에는 소위 명문가의 성원들이라면 거의 누구나 부측을 들였다. 부부관계라는 역천세의 구습이 세간에 잔재하고 있었거니와 다수 씨종들과의 성행위는 문란한 것이란 관념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인과 비인의 신분적 격차가 당연한 사회상으로 굳어지고, 나아가 비인의 수명이 턱 없이 줄어들면서 부측 또한 점차 사라져갔다.

작금에 이르러선 상류층 인사들이 자신의 부와 권위를 과시하는 한 방편으로 사치품 수집하듯 부측을 들일 따름이다.


밑도 끝도 없이 부측을 들먹거리는 소황을 향해, 남궁시연이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홍루의 씨종을 부측으로 삼으려면, 이래저래 금자가 족히 열 냥은 소요된다. 엄청난 액수지만, 대 남궁세가의 소가주로서 그 정도 융통하는 게 크게 곤란할 것은 없다.

허나, 귀인도 서인도 아닌 어중간한 신분의 준귀인이 부측을 들이는 것에 대해, 세간의 평판이 좋을 리 없다. 게다가 부측의 일거일동에 대해 주인인 남궁시연이 책임을 져야 한다. 주장대로 은자는 아닐지언정 어쨌든 무공을 익힌 것이 분명한, 수상쩍기 이를데 없는 씨종 소황. 그가 자칫 엉뚱한 짓을 벌이면, 남궁시연의 후계자 지위마저 위태로울 수 있음이다.

단, 그 모든 걱정도 목숨을 건진 다음의 문제 아닐까?


“맹랑하구나, 맹랑해. 네놈 하는 양을 보고 있자니, 뇌령신조가 벌써 수중에 들어온 듯싶다.”

“반드시 그리 되도록 하겠습니다.”

“흥! 뇌령신조가 흑천밀림에 있다는 보장도 없어.”

“….”


소황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남궁시연의 눈을 물끄러미 응시할 뿐. 마치 대답이나 빨리 하라는 것마냥.


“일단 손 이리 내봐.”


은자인지 아닌지, 확인부터 하겠다는 뜻.

소황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답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뻗대는 소황을 보고 남궁시연이 피식 웃었다.


“네가 은자가 아니라면, 내 앞에서 감히 거짓을 입에 담지 않는다면, 그리고 네 덕에 신조를 잡을 수만 있다면.. 그래, 못할 것도 없지. 헌데, 왜? 왜 굳이 부측이 되고 싶다는 것이냐?”


소황이 눈을 들어 남궁시연을 정면으로 응시하고는 한자 한자 힘주어 말했다.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남궁시연이 순간적으로 흠칫했다.

원생림의 호수 같은 소황의 담연한 눈동자. 그 속에 깊이 깃든 거대한 화해(火海)를 느꼈음이다.

위험하다는 생각과 함께..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낯선 감정이 물큰 일어났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형용할 수 없는 묘한 느낌.

이유를 알 수 없다.

머리를 살짝 흔들어 털어내며, 남궁시연이 말문을 이었다.


“진지하군. 하긴, 부측은 서인과 같은 대우를 받으니, 비인들 입장에선 욕심이 날 수도 있겠지.”


숨은 진의를 간파하지 못하고 제 식대로 곡해하는 남궁시연을, 소황은 묵묵히 바라만 본다.


“좋아. 나도 진지하게 받아주마. 당장은 답을 줄 수 없어. 다른 문제는 제쳐두고라도, 네가 은자라면 애초에 가당치 않은 일이니. 하여, 먼저 확인하겠다. 그런 연후에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지. 뜻이 서면, 그때 거래를 수용하겠다. 여와(女媧)의 이름으로, 약속을 지키겠노라 맹서하마.”


여와는 천상교의 주신이자 태초에 자신의 형상을 빌려 진인을 창조했다는 존재.

순천세의 기틀을 닦은 원후가 인세에 강림한 여와라는 신앙이 있거니와, 천상교도가 아니라 해도 여와의 이름을 걸고 하는 맹서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 태화의 묵시적 불문률이다.


그제야 소황이 엎드린 자세에서 오른 팔을 머리 위로 쳐든다.

상체를 굽혀 그의 맥문을 쥔 남궁시연이 가만히 눈을 감으며 운기한다.

내공을 밀어넣어 소황의 기태(氣態)를 살피는 것.


“으으음….”


한 줄기 내공이 기맥을 헤집고 다니니 따가운 듯, 간지러운 듯 이질적인 느낌에 신음성이 절로 나왔다.

소황의 반응을 아랑곳하지 않고 내관을 지속하던 남궁시연이 문득 부러움을 느꼈다.

소황의 몸 속으로 들어간 남궁시연의 내공이 솜뭉치에 물 스미듯 순연하게 침잠된다. 주요 대맥만이 아니라 천만 갈래 세맥까지 기의 소통에 막힘이 없다는 의미. 절맥인 그의 입장에서는 망가뜨리고 싶을 정도로 샘이 나는 완벽한 체질이었다.


반각 정도에 걸쳐 꼼꼼하게 내관을 마친 남궁시연이 소황의 맥문을 놓아주며 말했다.


“과연 선력이라 할만한 기운은 없구나. 희한하군. 은자도 아니면서 어떻게 무공을 익힌 게지?”


저릿한 느낌이 남은 손목을 어루만지며, 소황이 천천히 대답했다.


“개양원에 있을 당시, 원사들 중 한 분이 은자였습니다. 그 분께 한 가지 수공과 신법을 전수받았지요. 허나, 선력을 담을 수 없는 체질인지라 선도를 익히지는 못했습니다.”


남궁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력은 내공과 달리 특수한 기질을 타고난 소수에게만 발현된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아깝군. 내공을 익힌다면 그 성취가 어느 정도일지 예단할 수 없을만큼 완벽한 몸인데 말이야. 아니, 차라리 다행이라 해야 할까?”


중얼거리듯 뇌까린 남궁시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가 은자가 아님은 알겠다. 허나, 거래를 할 것인지 여부는 조금 더 생각을 해 봐야겠어.”

“현명하신 판단,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흥! 네 말을 좇으면 현명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우둔한 게냐? 시건방지게 칼자루를 쥐었다 여기지 말거라. 어떠한 경우에도, 네가 일개 씨종, 비인이란 사실은 변치 않아. 당장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네깟 놈의 한 목숨, 이 손가락으로 벌레 잡듯 거둘 수 있음을 잊지 말거라.”

“명심하겠습니다.”


씁쓸한 목소리로 말을 받는 소황을 흘겨보며, 남궁시연이 경대에서 떨어진 작은 비취통을 집어 들었다. 절맥의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진통제가 든 약통. 소황을 내관하기 위해 운기를 한 탓인지, 몸이 으슬으슬 떨려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티를 내지 않고자 담담한 표정을 가장하며 소황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여독이 쌓여 피곤하구나. 오늘은 이만 돌아가도 좋다. 내일 이 시간, 다시 부르지.”


길게 읍을 하고 물러나는 소황의 뒤에 대고, 남궁시연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헌데, 그리 치렁치렁하게 늘어진 옷을 입을 필요가 있느냐? 어째 눈에 거슬리는구나. 내일은 바꿔입고 오너라.”




귀빈관에서 나와 월동문을 넘어 본관 부지로 들어선 소황이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슬쩍 주위를 살폈다.

시각은 풀벌레 소리조차 잦아든 인시 경.

달빛을 사른 어둠의 장막 속엔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숙소가 있는 본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나 싶던 소황의 신형 또한, 그 어둠 속에서 어느 한 순간 꺼지듯 사라졌다. 홀연히 일렁인 미풍처럼.


소황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옥야각에서 두어 마장쯤 떨어진 초우림(焦憂林)이었다.

남밀림의 한 끝자락인 초우림을 관통해 보름 남짓 길을 도우면, 적연하(赤涎河) 너머 사대금역의 한곳이자 녹귀(綠鬼)와 저원(猪猿), 무모성성(無毛猩猩) 따위의 이물이 들끓는 흑천밀림이다.

바로 거기에, 남궁시연이 간절히 원하는 뇌령신조가 있다.


초우림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간 소황은, 얼마 가지 않아 작은 공터가 나오자 걸음을 멈췄다.


“여긴 언제나 바람이 좋구나.......”


나직히 혼잣말을 중얼거린 소황이, 눈을 감고 턱을 쳐들고는 두 팔을 활짝 펴 온몸으로 바람을 맞는다.

망자(亡者)의 강이란 별칭이 붙은 적연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지만, 남국의 열기를 씻어주매 그저 싱그럽기만 하다.

소황이 바람을 희롱하는 것인지, 바람이 소황을 희롱하는 것인지, 아니면 둘이 서로를 희롱하는 것인지.. 길게 늘어진 옷자락이 가볍게 휘날리는 가운데, 소황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걸린다.

그리고, 이변이 시작되었다.


으득, 으득, 으드득.


함초롬히 피어난 고졸한 미소와 전혀 어울리지 않게, 그의 전신에서 근육이 찢어지고 뼈마디가 갈리는 듯한, 듣기 역한 기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작가의말

에고, 서둘러 썼습니다.

 

그나 저나, 이소파한과 함께 보시는 분들 중에 한 가지 오해가 있을 듯하여 말씀드립니다만..

여인천하는 어느 날 불쑥 떠오른 생각을 자유로이 옮기는 글이라, 이소파한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인명, 문파명, 무공명, 그리고 일부 설정을 귀찮아서, 그리고 재미 삼아 마구 차용해 오지만(그러다 보니, 뇌령신조도 여기 먼저 나와 버렸네요.. ㅜㅜ), 실존 명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이소파한과는 아예 다른 세계입니다.

이쪽의 나후황과 저쪽의 나후황은, 비슷한 길을 걸을지언정 다른 인물이라는 얘기지요.

덧붙여, 새로운 세계다 보니, 여자의 지시 대명사도 일부러 ‘그녀’ 대신 ‘그’를 쓰는 등 조금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을 것이고, ‘비인’, ‘부측’처럼 제 맘대로 만들어낸, 국어사전에 절대 있을 리 없는 용어도 좀 들어갈 예정입니다. ^^;;

모쪼록 이러한 점들 양지하시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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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격돌 +10 13.05.15 2,658 52 8쪽
18 밤의 시작 +7 13.05.14 4,044 57 9쪽
17 농락 +8 13.05.13 3,139 53 8쪽
16 모윤진 +11 13.05.11 3,324 58 10쪽
15 사람답게 사는 것 +12 13.05.09 2,791 59 11쪽
14 금지훈 +12 13.05.07 2,580 49 7쪽
13 혁천의 왕 +9 13.05.06 3,325 49 13쪽
12 환골탈태 +11 13.05.04 3,257 59 7쪽
» 거래 +13 13.05.02 3,434 56 10쪽
10 삼음절맥 +16 13.04.28 3,946 75 8쪽
9 뇌령신조 +21 13.04.26 3,645 55 7쪽
8 은자 +21 13.04.25 3,237 54 7쪽
7 남궁세가 +20 13.04.24 3,510 72 8쪽
6 남궁시연 +24 13.04.23 3,344 56 8쪽
5 준귀인 +20 13.04.22 3,347 55 9쪽
4 매화검수 +7 13.04.21 3,901 52 6쪽
3 옥야각 +3 13.04.20 4,773 51 7쪽
2 씨종 소황 +10 13.04.19 6,264 62 8쪽
1 서장 +10 13.04.18 8,728 8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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