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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비각

여인천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동방존자
작품등록일 :
2013.04.18 18:35
최근연재일 :
2013.05.20 18:55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82,948
추천수 :
1,280
글자수 :
80,429

작성
13.04.22 16:20
조회
3,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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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글자
9쪽

준귀인

DUMMY

5. 준귀인


정식 관도에게 무사 신분이 주어지는 구주 칠십이관은, 매년 최대 천 명까지 관도를 모집할 수 있었다.

허나, 각 주를 대표하는 구대무관에선 보통 정원 한도의 채 십분지 일조차 뽑지 않는다. 소수정예화를 통해 제대로 된 실력자를 양성하고, 이로써 무관의 품격과 명성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물론, 구주천과 각 주 총독관, 그리고 자관 출신 귀인들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관도들이 내는 수련비에 기대지 않고도 재정을 충당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무튼 시작부터 수천대 일의 경쟁을 뚫고 엄선된 기재들이 구주에서 가장 뛰어난 무공을 익히는 셈이니, 일반 무사들은 구대무관 출신들 앞에서 일단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것이 통례이다.

구대무관 중 동주에 터를 잡은 화산관도 마찬가지.

헌데, 그 화산파 무사들 중에서도 매화검수라!

매화검수라 함은 육 년의 수련 과정을 이수하고 정식 관도가 될 때, 검신에 일곱 개의 매화가 그려진 칠매검을 받은 자. 즉, 매 기수 수석수료생을 일컫는 영광스런 호칭이다.

구주에 명성을 떨친 화산관의 영웅들이 대개 이 매화검수 출신이니, 화산관 최고 검공인 칠절매화검(七絶梅花劍)이 오직 그들에게만 전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마다 차이는 다소 있겠으나 매화검수가 곧 절정검수란 등식이 자연스레 성립되는 것.

사족을 덧붙이면, 이곳 선남부의 부주인 일검오향 모윤진 또한 현존하는 이십칠 명의 매화검수들 중 하나였다.


여기 저기서 화산관과 매화검수를 연호하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진상 무사. 등줄기로 식은 땀이 흘렀다.

눈을 내리깔며 슬그머니 검을 거둔다.


“흠, 흠. 이제 보니, 매화검수셨군요. 무슨 가르침이라도..?”


대답은 매화검수가 아니라 일행인 젊은 무사의 입에서 나왔다.


“그대, 복호관 출신 같군요. 맞나요?”


자신보다 열 살은 더 어려 보이는 자가 대뜸 사문을 확인한다. 무례하기 그지 없는 행위. 허나, 그게 자연스럽다. 은연중 흘러나오는 기품이 있다. 게다가 중년의 매화검수보다 오히려 윗전인 듯한 분위기. 명문 세가의 직계가 틀림없다.

진상 무사가 마뜩치 않은 표정을 감추고, 검끝을 밑으로 해 포권을 취했다.


“복호관 이대관도 남정인이라 합니다. 무사께선..?”

“그건 알 것 없어요.”


남정인의 관자놀이에 힘줄이 서고 아미가 꿈틀거렸다.

제가 아무리 세가 직계가 맞다한들, 무슨 귀인도 아닐진대 같은 무사, 그것도 연상의 무사에게 어찌 이런 개무시를!

본래 성깔이 막 튀어나오려는 찰나.


“복호관주가 지금 멸법도장(滅法道場)이죠? 참, 나! 멸제(滅諦)의 경지에 이르라 도호를 지어줬건만, 관도들에게 법도 따위 무시해도 좋다 가르치는 모양이군요.”


남정인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일년 전 관주 직을 승계한 멸법도장. 관도들 앞에서 멸법의 진의를 장황하게 설명하며, 말한 적이 있었다. 누가 도호를 내렸는지.

그게 누구였더라?


“나, 남궁세가! 귀인이시여!”


눈이 화등잔만해진 남정인이 허물어지듯 쓰러지며 젊은 무사의 발치에 납작 엎드렸다. 아니, 그러고자 했다.

반쯤 굽어진 상체가 더는 내려가지 않는다. 부드러운, 그러나 북풍한설처럼 서늘한 기운이 그의 몸을 떠받치고 있었다. 내공이다!

남정인의 몸이 구부정한 상태로 사시나무 떨 듯 떨렸다.


“아직 귀인이 아니니, 과례는 마땅치 않아요.”


오가는 대화에 늘어선 구경꾼들 사이로 웅성거림이 커졌다. 그러면서도, 너나할 것 없이 고개를 조아리고 바짝 움츠러든 상태.


- 아직 귀인이 아니다.


귀인의 후계자, 준귀인이란 뜻 아닌가?

그것도 남궁세가!

구주십대가의 한 곳이며, 그 가주는 동주에서 가장 세력이 큰 은경(銀卿)이다.

평생에 한 번 얼굴 맞대기도 힘든 존귀한 신분이 이 외진 벽지에 등장한 것이다.


상황을 인식한 젊은 무사가 눈쌀을 살짝 찌푸렸다.

이를 눈치챈 또 하나의 중년무사, 이위(二衛)가 땅울림 같은 저음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남궁세가의 행사요. 지켜들 보실 게요?.”


나즉한 엄포에 움찔하며, 구경꾼들이 황급히 향방으로 굴러들어갔다.

정황상 남궁세가의 준귀인인 젊은 무사가 불안하게 눈동자를 굴리는 남정인 앞으로 한 발 다가가며 물었다.


“홍루 출입이 처음인가요?”

“아, 아닙니다.”

“명색이 무사라는 자가 일개 비인에게 홍루의 법도를 가르침받아서야 쓰겠어요?”

“그, 그런 게 아니오라..”


어쩔 줄 몰라하는 남정인의 눈 앞에 문자 그대로 섬섬옥수가 내밀어졌다.


“철전 석 냥.”


뉘 앞이라고 군소리를 할 것인가?

떨리는 손으로 급히 쌈지를 뒤지다, 안에 들어있던 금전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얼핏 봐도 상당한 액수. 은자도 몇 냥 섞여 있다.

쓸어담을 생각도 못하고 철전 세 개만 집어 떨리는 손으로 젊은 무사에게 바친다.


“술이 꽤 과한 것 같던데, 이만하면 충분히 즐기지 않았나요?”


명백한 축객령. 그러나 한 목숨 건졌다는 뜻이다.

태화에서 귀인은 무소불위의 권력자다. 귀인의 눈 밖에 나면 무사고 뭐고 다 소용없다. 까딱 잘못하면, 자신이 몸 담은 복호관이 하루 아침에 사라져도 하소연할 데가 없다.


“조, 존안을 뵈어 여, 여, 영광입니다. 그럼, 소인은 이만.”


떠듬거리며 주춤주춤 물러나다, 복도 모퉁이를 돌기도 전에 휭 하고 뺑소니친다. 살살 눈치만 보고 있던 남정인의 동료 둘도 마찬가지. 구르듯 발을 놀려 내뺐다. 흘린 돈은 챙길 엄두도 못 내고.

피식 웃은 젊은 무사가 옆에서 좌불안석 떨고 있는 중이에게 말했다.


“쪼잔한 인간들이니, 돈 찾으러 다시 올 걸? 잘 챙겨놨다 전해줘요.”


굽신거리는 중이를 뒤로 하고, 옆에 선 씨종을 돌아봤다.

상처가 심한 지, 아직도 피가 멈추지 않았다. 안면을 타고 흐른 피가 앞섶을 흥건히 적시고 적갈색으로 굳었다. 이 정도 피를 흘렸으면, 정신을 잃는 게 마땅한데, 아직도 굳건히 서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눈에 선연히 보일 정도인데. 이만하면, 대단한 정신력이다.


“받거라. 너와 네 친구들의 것이다.”


씨종이 고개를 조아리며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철전을 넘겨 받았다.


“감사합니다.”


입을 여는 것조차 힘겨운지 목구멍 앞에서 잦아드는 목소리. 그래서인지 아닌지, 어째 말투가 무뚝뚝하다.


“이름이 무어냐?”

“소황입니다.”

“피를 많이 흘렸다.”

“죽을 정도는 아닙니다.”


상대가 준귀인이란 것을 짐작했을 터인데도 따박따박 말대답하는 소황을 보며, 가슴이 졸아든 중이가 눈을 부라렸다. 허나, 소황은 이를 볼 수 없었다. 피가 계속 스며들어, 눈이 반쯤 감겨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재밌군. 그럼, 수발을 들 수도 있겠는가?”

“흉한 꼴이 보기 싫지 않으시다면.”

“보기 싫다. 허니, 중이.”


소황을 향해 눈 부라리던 중이가 급히 허리를 숙였다.


“말씀 하십시오.”

“이 자를 치료해 주고, 축시(丑時)에 내 침소로 들이시게.”


말을 마친 젊은 무사가 피풍의를 펄럭이며 돌아섰다.

눈치 빠른 중이가 급히 앞으로 나서며 그들 일행을 향방으로 안내했다.

막 향방에 들어서는 순간.

쿵.

둔중한 소리에 뒤 돌아본 젊은 무사가 가볍게 혀를 찼다.

소황, 그 맹랑한 씨종이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입꼬리를 말아 올리던 젊은 무사가 문득 아미를 찌푸렸다.


‘잠깐. 생각해 보니, 눈도 깜빡하지 않았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남정인이 검을 쳐냈을 때, 소황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일위가 나서 검을 막았지만, 소황이 미리 알았을 리도 없는 터. 아니, 설령 알았다 한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자가 자신의 눈 앞으로 검이 짖쳐드는데,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있을까? 손을 들어올리든, 고개를 젖히든 뭔가 반응이 있었어야 맞지 않을까?

죽기를 각오했기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럴 수는 있겠다. 허나, 찰나지간의 일이라 자세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소황은 두 눈 똑바로 뜨고 남정인의 검을 직시했던 것 같다.


‘설마, 은자(隱者)?’


젊은 무사가 고개를 흔들어 설핏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을 털어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난 백여 년래 은자가 다시 나타난 적은 없었다. 멸절되었다는 것이 정설.


‘피가 눈에 들어가 앞을 보지 못했을 거야. 그래, 그게 맞아.’


허튼 생각을 했다며 스스로에게 피식 웃어버린 젊은 무사가 이내 향방에 발을 들였다.




작가의말

재미 없나요?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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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격돌 +10 13.05.15 2,657 52 8쪽
18 밤의 시작 +7 13.05.14 4,043 57 9쪽
17 농락 +8 13.05.13 3,139 53 8쪽
16 모윤진 +11 13.05.11 3,324 58 10쪽
15 사람답게 사는 것 +12 13.05.09 2,791 59 11쪽
14 금지훈 +12 13.05.07 2,579 49 7쪽
13 혁천의 왕 +9 13.05.06 3,324 49 13쪽
12 환골탈태 +11 13.05.04 3,257 59 7쪽
11 거래 +13 13.05.02 3,433 56 10쪽
10 삼음절맥 +16 13.04.28 3,945 75 8쪽
9 뇌령신조 +21 13.04.26 3,645 55 7쪽
8 은자 +21 13.04.25 3,237 54 7쪽
7 남궁세가 +20 13.04.24 3,510 72 8쪽
6 남궁시연 +24 13.04.23 3,344 56 8쪽
» 준귀인 +20 13.04.22 3,347 55 9쪽
4 매화검수 +7 13.04.21 3,901 52 6쪽
3 옥야각 +3 13.04.20 4,772 51 7쪽
2 씨종 소황 +10 13.04.19 6,264 62 8쪽
1 서장 +10 13.04.18 8,726 8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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