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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비각

여인천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동방존자
작품등록일 :
2013.04.18 18:35
최근연재일 :
2013.05.20 18:55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82,951
추천수 :
1,280
글자수 :
80,429

작성
13.05.14 20:10
조회
4,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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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글자
9쪽

밤의 시작

DUMMY

18. 밤의 시작


내실에 들어선 소황은 일이 남궁시연의 뜻대로 풀리지 않았음을 대번에 눈치챘다.

바닥을 뒹구는 잡동사니 위로 산산히 박살난 거울 파편들이 튀어, 마치 은가루를 뿌려놓은 양 달빛에 반짝인다. 굳이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남궁시연이 한 차례 발작한 결과물임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서탁에 팔꿈치를 괴어 이마를 짚고 앉은 남궁시연을 보고, 소황이 쓴 웃음을 지었다.

소황은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을 수습해 다시 경대 위에 올려놓고 선반 위에 황촉을 하나 켜 두었으며, 그 불빛에 의지해 유리 파편들을 세심하게 쓸어내 버렸다. 이어 경대 서랍에 비치된 금창약과 붕대를 꺼내들고 남궁시연에게 다가갔는데, 남궁시연의 발에서 피가 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리 조각을 밟아 살짝 베인 모양. 정작 본인은 이를 아예 의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남궁시연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소황이 피가 나는 발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받쳐 들더니, 상처 부위에 대뜸 입을 가져다 댔다.

남궁시연이 낯선 느낌에 움찔했다.


“뭐, 뭐하는 게냐?”


소황은 대꾸하는 대신 바동대는 남궁시연의 발을 꼬옥 붙잡고 볼이 홀쭉해지도록 피를 빨아들였다. 입에 머금은 피를 안 쓰는 그릇에 뱉어낸 소황이 상처에 금창약을 바르며 말했다.


“유리 조각이 몸에 들어가면 혈관이 찢어져 위험할 수도 있다더군요.”

“누가 네깟 놈에게 그런 걱정이나 하라 이르더냐!”


새침하게 쏘아부치는 소리에 소황이 속으로 생각했다.


‘어제만 해도 귀인의 풍모가 완연하더니, 정신적으로 흔들리니까 영락 없이 어린애군.’


속내를 숨기며 슬쩍 떠본다.


“부주님을 뵈러 가신다더니, 일은 잘 되셨는지요?”

“묻지 마라.”

“결과가 좋지 않았군요.”

“건방진! 비인은 판단하지 않는다.”

“비인도 생각은 있습니다.”

“비인은 비인일 뿐이지.”

“소가주께서 이리 나오시면 저도 도울 방법이 없습니다.”

“뭐라? 도와? 내가, 이 남궁시연이 네놈 따위의 도움을 필요로 할 것 같은가!”

“…….”

“…….”

“예.”


남궁시연이 눈을 흡뜨고 노려봤지만, 소황은 움찔하는 기색도 없다.

외려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일어나 경대 앞에 있는 앉은뱅이 의자를 끌어오더니, 남궁시연의 두 발을 들어 그 위에 올려 놓는다.


“무슨 짓을 하려는 게냐?”

“신경을 많이 쓰셔 예민해지신 것 같습니다. 안마를 해드릴 터이니, 마음을 좀 가라앉히시지요. 그게 먼저일 듯싶습니다.”

“헛소..., 흐음.”


당차게 나무라려던 남궁시연이 갑자기 나직한 침음성을 뱉었다.

소황이 무릎 안쪽과 엄지 발가락 아래의 혈맥점에 슬그머니 신풍의 기운을 흘려넣었기 때문이다. 두 곳 모두 십삼 개소의 이차 성감대 중 하나. 비인과의 방사 경험이 없는 남궁시연이 혈맥점을 파고드는 음유한 기운에 순간적으로 내밀한 자극을 느낀 것이다.

그냥 우연히 스쳤다는 듯 담담한 표정을 가장한 소황이 남궁시연의 다리를 부드럽게 주무르기 시작하며 물었다.


“다음 보름날까지 겨우 스무 날 남짓 남았습니다. 서두르셔야 할 것 아닙니까? 감히 추측해 보건데, 모 부주가 소가주님의 청을 거절했겠지요? 욕심이 많은 분입니다. 선남부에선 아쉬울 게 없는 분이구요.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입니다.”

“지금 내가 어리석다 비웃는 것이냐?”

“그럴 리가요. 이제 그만 소인의 손을 잡아주십사 여쭙는 거지요.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법이라지 않습니까? 소인이 지푸라기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말을 하면서도 슬쩍 슬쩍 기운을 흘려 남궁시연의 혈맥점을 자극하는 소황. 남궁시연이 거래를 수용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계치를 넘어 쌓인 뇌정의 기운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다.

티 안나게 남궁시연을 유혹하기 위해 이것저것 준비를 하기도 했다.

유리 파편들을 수습할 요량인 양 켜둔 황촉에서는 몽혼향의 일종인 백요사라향(魄搖紗羅香)이 퍼져 나왔으며, 남궁시연의 발에 뿌린 금창약에는 경미한 최혼제인 천음열락분(天陰悅樂粉)이 섞여 있었다.

때문에 남궁시연은 왠지 좀 나른한 가운데 심신이 풀어지는 느낌이었고, 소황의 손이 예민한 곳을 스칠 때는 묘한 야릇함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까지 어리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한 것은 몸 안에 들어온 독에 바로 반응하는 내공의 힘을 과신한 탓이다. 백요사라향과 천음열락분은 독이 아닐뿐더러 수 차례 희석시켜 약효를 경감시켜 놓아 내공으로도 전혀 감지가 안되는 것. 그렇기에 남궁시연은 약물 따위는 의심도 못하고 소황의 안마 기술이 생각보다 무척 뛰어나다고만 생각하는 중이었다.


“지푸라기보다는 낫다? 그래, 네 말이 맞을 지도.”


가시가 많이 걷힌 음색으로 수긍한 남궁시연이 그제야 모윤진과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소황에게 슬쩍 털어놓는다.

홍루에서 일하며 소황이 배운 철칙 한 가지.


- 진인이 남의 험담을 할 때는 따지지 말고 맞장구쳐 줄 것.


소황이 이를 철저히 지켜 적당히 추임새까지 넣어가며 진지하게 들어주니, 남궁시연의 말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말을 하면서 꼬인 심사가 점점 풀리는 느낌.

그런 탓에 소황이 자극의 강도를 점점 올려가는데도 별반 의식하지 못하고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긴 한숨과 함께 이야기를 마친 남궁시연의 허벅지를 가볍게 쓸며, 소황이 힘을 실어 말했다.


“술사와 사제라... 실제 가능할런지는 모르나 제게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허나, 궁사는 확실히 문제겠군요.”


소황의 말에 남궁시연이 눈에 이채를 띤다.


“술사와 사제를 구할 수 있다고? 정말이냐?”


소황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흘려들은 풍문에 기대 생각을 해본 것뿐입니다.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말은 그리 하지만, 눈빛이 살아있다. 자신이 있다는 뜻.

황당하면서도, 왠지 미더웠다. 또한, 그게 너무 어이가 없었다.


‘남궁시연아, 남궁시연아. 네가 뇌령신조 때문에 점점 제 정신이 아니구나. 이 쬐그만 씨종이 무어라고 자꾸 의지하려 드는 게냐! 헌데, 왜 이리 더울까?’


남궁시연이 소황을 개의치 않고 침의를 벗어제낀다.

기대고 싶을 정도로 자꾸만 놀래키는 소황이지만, 아직은 그저 깜찍한 애완견쯤으로 느껴지는 터. 거리낌이 없다.


‘갑자기 긴장이 풀려 그런가? 오늘 좀 이상하네. 이위를 부를까?’


철벽나찰 신수영은 남궁시연에게 있어 단순한 비위가 아니었다. 수시로 알몸을 맞대던 내밀한 관계. 남궁세가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절맥이 생긴 이후로 성욕이 많이 감퇴되어 이위와의 잠자리도 멀리 해온 터. 그간 섭섭해했을 이위와 모처럼 좋은 시간을 가질까 살짝 고심하는 남궁시연이었다.

허나, 남궁시연이 모르고 있는 사실 한 가지.

지금 이위는 귀빈관 내에 있지 않았다.

그는 그 나름대로 누군가와 격렬한 몸의 대화를 나누는 중. 남궁시연이 지금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류이지만.


한편, 남궁시연의 생각과 별도로, 소황은 아주 죽을 맛이었다.

백요사라향의 영향은 남궁시연 혼자 받는 게 아니다. 게다가 남궁시연을 자극하며 그 또한 상당히 자극을 받은 터. 그 와중에 남궁시연이 침의를 벗으며, 농염한 가슴을 드러내니 천변만화공으로 몸집에 맞추어져 있던 하중이 버럭 성을 내며 원래의 위용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장담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 어디 한 번. 어맛!”


하던 이야기부터 일단 마무리지으려던 남궁시연이, 돌연 전혀 귀인스럽지 않은 뾰족한 비명을 질렀다.

안마를 멈추고 남궁시연의 옆쪽으로 돌아선 소황이 갑자기 남궁시연을 번쩍 안아든 것이다. 진인으로 치면 여남은 살 또래의 몸집으로 자신보다 물경 한 자는 더 큰 남궁시연을.


“지금은 쉬실 때입니다. 아침에, 내일 아침에 얘기하시지요.”


순간적으로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남궁시연의 귓불에 닿을 정도로 입술을 가까이 가져가, 소황이 속삭였다.


“놈, 이게 무슨 짓이냐! 어디 씨종 따위. 흡!”


남궁시연은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그를 침상 위에 가볍게 내려놓으며 잆술로 입술을 덮친 소황이, 보드라운 손끝으로 이차가 아닌 일차 성감대를 바로 공격해 들어간 것이다.

그와 동시에, 태어나 단 한 번도 깨인 적 없었던 낭궁시연의 숨겨진 본능이 불 같이 타오르며 이성을 무너뜨렸다.

누적된 약기운이 계기를 맞아 들불처럼 번진 것이나, 꼭 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긴긴 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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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내공의 위대함 +8 13.05.18 3,222 50 7쪽
20 전륜무사 +11 13.05.16 3,207 59 9쪽
19 격돌 +10 13.05.15 2,658 52 8쪽
» 밤의 시작 +7 13.05.14 4,044 57 9쪽
17 농락 +8 13.05.13 3,139 53 8쪽
16 모윤진 +11 13.05.11 3,324 58 10쪽
15 사람답게 사는 것 +12 13.05.09 2,791 59 11쪽
14 금지훈 +12 13.05.07 2,579 49 7쪽
13 혁천의 왕 +9 13.05.06 3,324 49 13쪽
12 환골탈태 +11 13.05.04 3,257 59 7쪽
11 거래 +13 13.05.02 3,433 56 10쪽
10 삼음절맥 +16 13.04.28 3,945 75 8쪽
9 뇌령신조 +21 13.04.26 3,645 55 7쪽
8 은자 +21 13.04.25 3,237 54 7쪽
7 남궁세가 +20 13.04.24 3,510 72 8쪽
6 남궁시연 +24 13.04.23 3,344 56 8쪽
5 준귀인 +20 13.04.22 3,347 55 9쪽
4 매화검수 +7 13.04.21 3,901 52 6쪽
3 옥야각 +3 13.04.20 4,773 51 7쪽
2 씨종 소황 +10 13.04.19 6,264 62 8쪽
1 서장 +10 13.04.18 8,726 8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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