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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비각

여인천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동방존자
작품등록일 :
2013.04.18 18:35
최근연재일 :
2013.05.20 18:55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82,927
추천수 :
1,280
글자수 :
80,429

작성
13.04.21 16:10
조회
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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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글자
6쪽

매화검수

DUMMY

4. 매화검수


“시건방진 새끼! 뭐가 어쩌고, 히끅, 어째? 규화를 불러 술시중을 시켰으면 돈을 내야 한다? 그게 싫으면, 주청으로 갔어야 한다? 씨종 따위가 지금 이 몸에게 훈계라도, 흐끅, 하는게냐?”


향방에서 나온 무사가 손아귀에 잡힌 씨종들을 바닥에 패대기치곤, 피를 흘리는 씨종에게 씨근덕거렸다. 술을 어지간히 마셨는지 연신 딸꾹질을 해대며.

눈에 들어간 피를 소맷자락으로 대충 찍어낸 씨종이 이를 갈며 대꾸했다.


“홍루의 법도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처음부터 말씀 드렸구요. 왜 이제와 모른다 하십니까!”


씨종의 결기 어린 항변에 술 취한 무사의 얼굴이 아예 새빨개진 반면, 이를 지켜보던 귀빈관 일행의 눈에는 이채가 담겼다.



강제노역에 동원되는 일반 비인들은 스물을 넘겨 사는 경우가 드물었다. 원래 명이 짧기도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죽어라 일만 하니, 비인의 허약한 몸뚱이가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홍루에서 일하는 씨종들은 비인들 중에선 그나마 축복받은 족속들이다.

허나, 세상에 역시 공짜는 없다.

홍루는 주 총독관이 직영하는 공홍루와 사인이 운영하는 사홍루로 나뉘는데, 개양숙을 나온 씨종들은 일단 공홍루로 가고, 거기서 열여섯이 넘으면 금자 다섯 냥에 사홍루로 팔려간다.

이후 씨종들은 매년 그 이자에 해당하는 금자 한 냥씩을 주인에게 바쳐야 홍루에서 계속 일할 수 있다. 그렇게 못할 시, 홍루 주인은 이 같은 사실을 관에 입증하고 씨종을 창가(娼家)에 전매할 수 있기에.

진인들간의 동성애가 일반화된 사회라고는 하지만, 비인들과의 합궁을 선호하는 자들도 많았다. 사적으로 씨종을 들여 욕구를 풀 수 있지만, 그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의 얘기다.

창가는 그래서 생겨났고, 홍루에서, 혹은 사가에서 내쫓긴 씨종들이 마지막으로 갈 데는 그곳밖에 없었다.

큰 돈 들여 데려온 씨종들을 이용해 어떻게든 이문을 남길 생각밖에 없는 창가의 포주들이, 그네들의 몸까지 생각해 줄 턱이 없다. 흥분제를 계속 복용시키며 하루에도 수십 차례씩 방사를 시킨다. 일년을 버티기 어려운 비참한 삶이다.

이런 말로를 피하려면 한 가지 방법 밖에 없다. 돈!

매년 금자 한 냥에, 나아가 다섯 냥의 원본까지 갚을 수 있다면, 이 짐승 같은 삶의 굴레에서 벗어난다. 어린 비인들의 양육시설인 개양숙의 사감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홍루에 있는 모든 씨종들의 꿈이요, 소망이다.


귀빈관 일행의 눈 앞에서 벌어진 사달도 발단은 돈 문제였다.

씨종이 향방에 들어 술시중을 들면 철전 한 냥을 받는다. 잠자리를 같이 하면 추가 한 냥. 어느 주의 어느 홍루를 가도 이는 공통이다. 법도로 굳어진 관행. 물론, 손이 큰 손님이 한두 냥쯤 더 얹어주는 경우도 있지만, 드문 일이다.

결국 씨종이 하루에 벌어 들이는 수입은 많아야 철전 두세 냥. 철전 스무 냥이 은자 한 냥이고, 은자 스무 냥이 금자 한 냥이니, 결국 연중 내내 공치지 않고 손님을 받아야만이 간신히 연간 상납금을 채울 수 있다.

헌데, 손님들 중에, 특히 무사들 중에 종종 진상들이 있다. 실컷 부려먹고는 철전 한 냥이 아까워, 작은 실수로 트집을 잡아 공으로 쫓아내는 인간들.

향방에서 나온 술 취한 무사도 그런 종자였고, 그에게 차이고 끌려 나온 씨종들은 억울하게 접대비를 떼인 것. 여기까진 홍루에서 흔한 일이나, 그 다음 벌어진 사태는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다.

이런 진상을 만나면, 씨종들은 억울해도 외려 백배사죄하며 곱게 물러나는 게 일반적이다. 폭급한 무사에게 잘못 걸리면 바로 목이 달아날 수도 있기에.

헌데, 옥야각의 이 씨종은 무슨 배짱인지 피를 줄줄 흘려가면서도 술 취한 무사를 상대로 따지고 있었다. 홍루의 법도를 운운하며. 씨종 주제에.

귀빈관 일행, 특히 젊은 무사의 눈에 이채가 담긴 것도 그 때문.

천치이거나 미쳤음이 분명할진대, 그렇게 보기엔 시리도록 차가운 그 눈빛이 걸렸다.


향방에서 술을 마시다 무슨 소란인가 싶어 내다보는 손님들로 복도가 그예 북적거렸다.

상황을 바로 짐작하고 혀를 끌끌차며 비웃는 뭇사람의 시선에, 사달의 장본인인 진상 무사는 술이 확 깰 정도로 낯이 팔렸다.


“홍루의 법도.. 그래, 지켜야지. 근데, 이런 법도도 있느니라. 건방진 씨종 새끼는 그냥 베어도 좋다는.”


딸꾹질마저 멈춘 진상 무사가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스르릉.


맑은 검명과 함께 검집에서 뽑혀나온 사척의 장검이 홍등 불빛을 머금고 혈광을 토해냈다.


“꿇어라. 그리고 사죄해라. 팔만 하나 거두고 용서하마.”

“저희들 셋, 합쳐서 철전 석 냥입니다. 주십시오. 그럼, 꿇지요.”


겁을 상실한 씨종은 역시나 한 치도 물러나지 않았다.


조용히 묵시하고 있던 젊은 무사가 씨종의 당찬 대꾸에 피식 웃으며, 뒤에 선 중년 무사에게 전음을 날렸다.


- 일위(一衛). 복호관(伏虎館) 출신 무사 같은데, 맞나요?

- 그리 보입니다.

- 진짜 벨까요?

- 벨 겁니다. 살의가 느껴집니다.

- 홍루의 씨종을 죽이는 것도 죄일 텐데?

- 살인은 아닙니다. 비인은 사람이 아니니까요. 옥야각주에게 보상만 하면 그만입니다.

- 그렇군요. 살리세요.


전음이 끝난 순간, 복도에 붉은 섬광이 작렬했다. 진상 무사가 당돌한 씨종을 향해 끝내 장검을 휘두른 것.


채애-앵!


응당 뒤따라야 할 살을 찢는 파육음과 비명 대신, 잘 벼린 금속끼리 부딪히며 나는 풍경(風磬) 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들에게서 삼장쯤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일위라 불리운 중년 무사가, 그의 검이 씨종의 얼굴 위 한 치 앞에서 진상 무사의 검을 가로막고 있었다.

진상 무사가 사납게 눈을 치뜰 때, 중년 무사의 손에 들린 검을 알아본 자들이 헛바람을 삼키며 외쳤다.


“칠매검(七梅劍)! 매화검수!”

“화산관의 매화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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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농락 +8 13.05.13 3,139 53 8쪽
16 모윤진 +11 13.05.11 3,324 58 10쪽
15 사람답게 사는 것 +12 13.05.09 2,790 59 11쪽
14 금지훈 +12 13.05.07 2,579 49 7쪽
13 혁천의 왕 +9 13.05.06 3,324 49 13쪽
12 환골탈태 +11 13.05.04 3,256 59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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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삼음절맥 +16 13.04.28 3,945 7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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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남궁세가 +20 13.04.24 3,510 72 8쪽
6 남궁시연 +24 13.04.23 3,344 56 8쪽
5 준귀인 +20 13.04.22 3,344 55 9쪽
» 매화검수 +7 13.04.21 3,901 52 6쪽
3 옥야각 +3 13.04.20 4,770 51 7쪽
2 씨종 소황 +10 13.04.19 6,262 62 8쪽
1 서장 +10 13.04.18 8,720 8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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