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동방비각

여인천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동방존자
작품등록일 :
2013.04.18 18:35
최근연재일 :
2013.05.20 18:55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82,954
추천수 :
1,280
글자수 :
80,429

작성
13.05.07 20:00
조회
2,579
추천
49
글자
7쪽

금지훈

DUMMY

14. 금지훈


“어쭈! 잠영신(潛影身)으로 은신했는데, 그걸 느꼈어? 제법인데. 많이 늘었다, 너?”


장난끼 다분한 음성과 함께, 잎이 무성한 열대수 우듬지에서 희끗한 인영 하나가 실바람 같이 가벼운 몸놀림으로 뛰어 내렸다.

헌데, 궁장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이다.

소황이 형님이라 칭했을뿐더러, 목소리 또한 아주 굵지는 않아도 엄연히 사내의 그것이었건만.

구름 밖으로 고개를 내민 달빛에 의지해 보니, 절세의 미색은 아닐지언정 꽤나 곱상한 얼굴. 호리호리하니 잘 빠진 몸매도 나쁘진 않다. 칠척 장신의 소황 앞에 서니 여남은 살 어린애로 보일 지경이나, 아주 왜소한 편은 아니다. 남궁시연이나 남정인 같은 훤칠한 무사들에 비해 약간 작은 수준. 나이는 이십대 중반쯤 되었을까? 겉모습만 놓고 보면, 그것도 과해 보인다.


소황이 뭐가 그리 좋은지 활짝 웃었다.


“천변만화공(千變萬化功)을 결국 익히셨군요? 죽어도 여장은 못 하겠다 하시더니, 아예 역용까지 하셨네요.”

“젠장, 동아리 엠티 때 장난 삼아 여장했다가 두고두고 까이는 바람에, 다시는 그런 짓 안한다고 다짐했었는데...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인마! 뻔질나게 사람 만나는 일을 맡겨 놓으니, 달리 방도가 있나. 아, 또 생각하니까 열 받네!”


동아리 엠티 운운하는 소리를 온전히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묻지 않고 그저 웃어 넘겼다.


그는, 의형 금지훈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뜻이 안 통하는 말을 입에 담으며, 끊임 없이 불퉁거렸다.

그나마 지금은 많이 좋아진 편.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그가 하는 말을 열 중 하나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허나, 그와 무관하게 금지훈은 소황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그리고 존경하는 사내였다.

그에게는 상식에 구애받지 않는 파격적인 직관이 있었고, 세상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무궁한 지혜가 있었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며 많은 것을 배웠지만, 아직도 그의 혜안을 따라가려면 멀고도 멀었다는 느낌.

가끔씩 지난 날을 돌이켜 본다.

금지훈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결론은 언제나 비관적이다.

물론, 금지훈이 완벽한 인간이란 뜻은 결코 아니다. 종종 한심하기 그지 없는 짓을 잘도 한다. 지금처럼.


치맛자락을 허벅지까지 걷어 올리고 속곳 안으로 손을 넣어 사타구니를 벅벅 긁는 금지훈을 향해 소황이 말했다.


“귀찮아서 안 오시겠다고 했다면서요?”

“그랬지.”

“근데, 왜 오셨어요?”


소황의 물음에 금지훈이 아미를 역팔자로 세우며 삐죽거렸디.


“너 왜 얘기 안했어?”

“예? 뭐를요?”

“남궁시연, 더럽게 예쁘다며?”

“네에?”

“듣자니, 동주 삼대미인 중 한 명이라던데? 슬쩍 운이라도 띄워줬으면, 와도 진작에 왔지.”

“하하, 죄송합니다. 미처 그 생각을 못 했군요. 그래, 보시기에 어떻던가요?”

“실루엣, 아니 윤곽만 얼핏 봤어. 그 계집애, 양 당주가 철벽나찰이라 했던가? 확실히 보통내기가 아니더만. 삼십 장 안쪽으론 접근하기 어렵더라구.”

“형님이 그리 말씀하실 정도면, 정말 만만치 않겠군요. 같이 다니려면 운신이 쉽지 않겠어요.”

“같이 안 다니면 되는 거지, 뭐.”


금지훈의 말에 소황이 눈을 반짝 빛냈다. 행간에 다른 뜻이 있음이다.


“도와주실 겁니까?”


금지훈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귀찮기는 하지만, 심심한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어차피 전장도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힌 듯하니, 뭐. 선 당주한테 맡겨 놓으면 알아서 잘 할 거야. 그리고, 내가 언제는 네놈 하는 짓을 구경만 한 적 있었어? 벌여놓은 일이 많아서 동주까지 따라갈 수야 없겠지만, 뇌령신조 잡는데까지는 어떻게 한 손 보태보마. 에효, 내 팔자도 정말... 어쩌다 이런 애먼 곳에 와서, 이런 애먼 놈이랑 엮였는지. 웃지 마, 새꺄. 정 들라.”


그런대로 잘 나가다 마무리는 또 불퉁이다.

싱글거리며 듣고 있던 소황이, 문득 신색을 고치며 물었다.


“헌데, 남궁시연이 과연 뜻대로 움직여 줄까요? 오늘 부중에 들어 모윤진을 만날 예정이랍니다. 만약, 모윤진이 무사들을 내주면, 굳이 저를 필요로 할런지요. 아시겠지만, 무공을 익힌 게 드러나는 바람에 아무래도 꺼림칙해 하는 눈친데 말입니다.”


소황의 말에 금지훈이 코웃음을 쳤다.


“철 없는 계집애가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하고 들쑤시는 격이지. 왜 가만 있는 모윤진을 건드려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려는 지 몰라.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나.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모윤진이 남궁시연을 위해 흔쾌히 나설 것 같아?”

“그들은 화산관의 동문입니다.”

“동문은 개뿔! 지가 아쉬울 때나 동문인 게지. 특히나 감투 쓴 인간한테 뭘 바래. 남궁시연이 실수하는 거야. 모윤진이라고 언제까지 철경에 안주하고 싶겠어? 뭔가 공을 세우고는 싶은데, 시골 구석에 쳐박힌 바람에 신세 한탄만 하고 있는 거지. 그런 마당에 뇌령신조라! 놓칠 수 없는 기회지.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었던 건, 원체 성격이 우유부단한 데다가 낭설이라 생각한 탓일 뿐. 헌데, 남궁세가 소가주씩이나 되는 계집이 확신을 가지고 도와달라 호소하면, 사람 심리가 혹하게 되어 있다고. 그럼, 남궁시연을 도울 것 같애? 제 정신이라면, 뭐하러? 당연히 따로 움직이지. 괜히 강력한 경쟁자만 끌어들이는 셈이야. 더 큰 문제는 모윤진이 나설 경우, 잠자코 있던 인근의 귀인들까지 긴가민가 하면서 수하들을 풀 거란 얘기지. 모윤진이 무거운 궁뎅이를 들썩거린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할 테니까. 다른 데는 몰라도, 백리세가까지 관심을 기울이면 진짜 피곤해져. 그나마, 초량 금광 건으로 남주를 움직여 금경인 북윤아라도 발을 묶어놨기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우리가 옆에서 좀 돕는다고 신조가 남궁시연 손에 들어가겠냐? 그렇다고, 무수마곡에서 빌려온 녀석을 내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절맥을 타고 나면 아이큐 이백은 그냥 먹고 들어가는 줄 알았더니, 어째 그리 미련한 건지. 애초에 하오문을 통해 소식이 남궁 계집애한테만 들어갔어야 했는데, 뇌령신조의 비늘이 하도 번쩍거리는 탓에 다 망쳤잖아. 에잇, 시발!”


예쁘장한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씩씩거리는 금지훈을 보며, 소황이 더는 찍 소리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괜히 한 마디 했다가는 도매금으로 돌머리 취급받기 십상인 터.

다행히, 금지훈이 말머리를 돌렸다. 그리 유쾌한 주제는 아니었지만.


“계산해 보니, 적어도 오늘 밤에는 남궁가 애기하고 잠자리를 가져야 할 듯한데.. 맞지?”


소황이 멋적게 뒤통수를 긁었다.


“예, 거의 한계까지 왔습니다.”

“너도 참, 이래 저래 답이 없다. 하지 않는 사랑은 허무하고, 사랑 없이 하는 것은 공허한 법이라는데... 살자고 그 짓을 계속해야 한다니, 원.”


딱하다는 눈빛. 소황은 쓴 웃음으로 이를 받았다.




작가의말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여인천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2 술사 +22 13.05.20 3,282 63 8쪽
21 내공의 위대함 +8 13.05.18 3,222 50 7쪽
20 전륜무사 +11 13.05.16 3,207 59 9쪽
19 격돌 +10 13.05.15 2,658 52 8쪽
18 밤의 시작 +7 13.05.14 4,044 57 9쪽
17 농락 +8 13.05.13 3,139 53 8쪽
16 모윤진 +11 13.05.11 3,324 58 10쪽
15 사람답게 사는 것 +12 13.05.09 2,791 59 11쪽
» 금지훈 +12 13.05.07 2,580 49 7쪽
13 혁천의 왕 +9 13.05.06 3,324 49 13쪽
12 환골탈태 +11 13.05.04 3,257 59 7쪽
11 거래 +13 13.05.02 3,433 56 10쪽
10 삼음절맥 +16 13.04.28 3,945 75 8쪽
9 뇌령신조 +21 13.04.26 3,645 55 7쪽
8 은자 +21 13.04.25 3,237 54 7쪽
7 남궁세가 +20 13.04.24 3,510 72 8쪽
6 남궁시연 +24 13.04.23 3,344 56 8쪽
5 준귀인 +20 13.04.22 3,347 55 9쪽
4 매화검수 +7 13.04.21 3,901 52 6쪽
3 옥야각 +3 13.04.20 4,773 51 7쪽
2 씨종 소황 +10 13.04.19 6,264 62 8쪽
1 서장 +10 13.04.18 8,728 84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