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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비각

여인천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동방존자
작품등록일 :
2013.04.18 18:35
최근연재일 :
2013.05.20 18:55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82,959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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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0,429

작성
13.04.24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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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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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글자
8쪽

남궁세가

DUMMY

7. 남궁세가


태화에는 성씨를 같이 하는 씨족집단, 즉 세가가 수도 없이 많다.

대부분 문사와 무사를 아우르는 신사 계급이 본위를 이루는데, 세가의 성원이면 몰라도 그 가주가 귀인의 위에 오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특히 무가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작위를 제수하는 주체인 황과 여덟 명의 금경이 이를 원치 않는 것이다.

세가주가 경의 작위를 얻을 경우, 무력 기반을 갖춘 단일 씨족이 강력한 정치 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다. 구주천의 권력을 독과점한 이들로선 달가울 게 없는 노릇이다.

허나, 예외는 당연히 존재한다. 순천세 초기부터 수백 년간 구주천의 기둥으로 뿌리를 내려온 십대무가, 소위 구주십대가(九州十大家)가 그들이다.

황이 거하는 천주에 둘, 나머지 여덟 개 주에 하나씩 존재하는 구주십대가의 가주는 모두 은경. 세가에 적을 둔 귀인들만 수십에 이른다. 작금에 이르러선 금경들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어마어마한 세력.

동주에 웅거한 남궁세가 또한 그들 구주십대가의 하나였다.

헌데, 그런 남궁세가의, 그냥 준귀인도 아니고 소가주라 한다.

이는 결국 은경, 그것도 금경에 못지 않은 막강한 지위를 승계할 자란 뜻 아닌가!

그처럼 존귀한 신분이 어이해 호위 두 명만 달랑 거느리고 이 머나먼 풍주 땅까지 왔단 말인가?

선남부에 쏟아져 들어오는 다른 무사들처럼, 그것 때문에? 그렇다면 남궁시연에 관한 소문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가 반드시 가야만 하는 동주(東州)로 갈 기회!


남궁시연이 몸을 뒤집어 바로 누우며, 복잡한 염두를 굴리고 있는 소황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리 놀라는 것을 보니, 본가에 대해 꽤 잘 아는 모양이군?”


깍지 낀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소황을 빤히 응시하는 것이, 시선을 피하며 발치로 슬쩍 물러나는 그의 반응을 은근히 즐기는 듯했다.

정작 소황은 자세를 바꾼 여파에 출렁이는 한 쌍의 거대한 육봉(肉峯)과 그 아래 위치한 검은 신비림(神秘林)에 눈둘 곳을 몰라하는 것이건만, 그에게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맹랑한 씨종조차 남궁세가 소가주란 권위에 바짝 움츠러든 꼴로 보이는 모양이다.

속으로 쓰게 웃은 소황이 남궁시연의 발에 향유를 바르며 입을 열었다.


“구주십대가의 하나이며, 세가주가 은경의 작위를 세습한다는 것쯤은 압니다.”

“제법이군. 또 무엇을 아느냐?”

“현 가주이신 창궁신검(蒼穹神劍)께선 태화 십대고수의 한 분이시지요.”

“또?”

“동경 열세 분에 철경 서른한 분. 세가주를 제하고 총 마흔네 분의 귀인이 남궁세가에 적을 두고 있다 하더군요.”


남궁시연의 낯색이 서늘해졌다.

과하다. 풍문으로 들었다기엔 너무 자세히 알고 있다. 이곳이 동주가 아닌 풍주임을 감안하면 더욱 더.


“잘 아는구나. 그럼, 나에 대해서도 들은 것이 있느냐?”

“없습니다.”


고개를 젓는 소황. 하지만, 표정이 미묘하다.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겠다는 듯한 낌새.


“말하라.”

“더는 모릅니다.”

“말하라!”


소황이 천천히 얼굴을 들어 남궁시연의 눈을 직시했다.


“정 그러시다면, 감히 아룁니다. 부용검 남궁시연, 삼년 전 세가의 후계자로 최종 낙점을 받았으나, 작위 승계를 장담할 수 없다 들었습니다.”


남궁시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밑으로.”


소황이 급히 침상에서 내려와 남궁시연을 향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폭포수처럼 구비치는 머리카락을 쓸어올려 끈으로 질끈 동인 남궁시연이, 침상 모서리에 다리를 포개고 걸터앉았다.

소황을 향해 차가운 안광을 흩뿌리던 남궁시연이 무겁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복호관 무사에게 죽을 수도 있었다. 아는가?”

“물론입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

“두렵습니다.”

“헌데?”

“죽기보다 두려운 것도 있는 법입니다.”

“예를 들어?”

“홍루의 씨종에게는.. 매음굴(賣淫窟)에 팔리는 것이 그렇겠지요.”

“매음굴? 창가를 이르는 것이냐?”


창가를 입에 올리는 소황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평정을 가장하려 애쓰지만,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남궁시연의 눈에 의아함이 담긴다.

창가에 직접 가본 적은 없으나, 대강 어떤 곳인지는 안다. 그곳에서 씨종들의 삶이 얼마나 가혹할는지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씨종들이 지레 겁을 집어먹는 것도 십분 이해는 된다. 다만, 지금 소황의 표정은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미지가 아닌 선험에 근거해 두려워하고 있음을.

허나, 어떻게?


“설마, 창가에 머문 적이 있다는 뜻이냐?”


소황이 고개를 푹 수그렸다. 긍정이다.

남궁시연의 아미가 살짝 찌푸러든다. 홍루의 씨종이 몸값을 다 치르면 개양원으로 갈 수 있지만, 창가에 팔려간 씨종은 이미 막장이다. 다시 홍루로 회귀할 방법은 없다.


“가능한 일이 아니다.”

“사고가 있었습니다.”

“…?”

“술에 취한 무사들의 난동이 있었습니다. 포주부터 씨종들까지 모두가 죽었지요. 저만 홀로 살아남았고, 관종청(管種廳)을 거쳐 이곳에 왔습니다.”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듣고 있던 남궁시연이 불쑥 물었다.


“올해 네 나이가 몇이더냐?”

“스물입니다.”


남궁시연이 살짝 놀랐다.

생각보다 많은 나이. 남궁시연 자신보다 두 살이 위다.

남궁시연이 눈을 가늘게 뜨고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소황을 응시했다.

푸른 빛이 엷게 감도는 신비로운 아미 아래 왠지 슬퍼 보이는 사슴같은 눈망울, 수려하게 내리뻗은 오종종한 콧날과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러나 알맞게 도톰한 입술을 지녔다. 간밤에 피를 많이 흘린 탓인지 안색은 백짓장처럼 창백했으나, 잡티 한 점, 주름 한 올 없는 매끈한 살결은 관옥처럼 곱디 고왔다. 가히 귀인이라도 탐을 낼 만한 절대의 미태.

남궁시연의 마음 속에 짙은 의구심이 싹텄다.

씨종, 아니 비인의 경우 성장이 일찍 멈추고 수명이 짧은만큼, 노화 또한 일찍 시작된다. 통상 스물이 넘어가면, 그들 특유의 앳되고 귀여운 용모는 사라진다.

헌데, 소황의 외모는 높게 잡아도 열대여섯? 그 이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동안? 동안과는 다르다. 단순히 어려보이는 것이 아니라, 젊음 그 자체였다. 스무 살 비인에게선 느끼기 힘든.

지난 밤 불현듯 뇌리를 스친, 터무니 없다 여기며 웃어 넘긴 생각이 다시 머리를 쳐들었다. 소황의 젊음을 설명할 수 있는 한 가지 가능성.


‘은자....’


남궁시연이 갑자기 소황의 안면을 향해 꼬아 올린 왼쪽 다리를 쭉 내찼다.

내공을 일으키지는 않았으나, 만만찮은 힘이 실렸다. 그대로 맞으면 뇌가 진탕되어 한동안 거동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소황이 무릎을 살짝 펴며 왼팔을 들어 남궁시연의 발을 막았다.

남궁시연의 발등이 소황의 팔뚝을 가격했고, 역도를 감당치 못한 소황이 옆으로 주르륵 밀려나 경대에 부딪혔다.

경대 위에 놓여 있던 잡동사니들이 와르르 쏟아지는 가운데, 소황이 속으로 침음성을 흘렸다.

결과만 놓고 보면 발에 채여 무력하게 나가 떨어진 꼴이나, 고수의 일격을 알아보고 일단 방어한 셈이니, 그가 어떻든 무공을 익혔다는 것을 남궁시연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다. 더군다나 처음부터 이를 시험해 보려는 의도였을 것.

실수다. 그것도 큰 실수!

남궁시연이 설마 일개 씨종을 향해 그런 돌발적인 공격을 하리라고 미처 예상치 못했다. 하여 희끗한 그림자가 눈 앞으로 쇄도해 들어오니, 일순 당황해 자기도 모르게 반응하고 말았음이다.


암연해진 소황의 눈에, 어느새 침상머리에 기대 놓은 장검을 뽑아들고 위에서 아래로 크게 휘두르는 남궁시연의 훤칠한 나신이 한가득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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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남궁시연 +24 13.04.23 3,344 56 8쪽
5 준귀인 +20 13.04.22 3,347 55 9쪽
4 매화검수 +7 13.04.21 3,901 52 6쪽
3 옥야각 +3 13.04.20 4,773 51 7쪽
2 씨종 소황 +10 13.04.19 6,264 62 8쪽
1 서장 +10 13.04.18 8,728 8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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