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동방비각

여인천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동방존자
작품등록일 :
2013.04.18 18:35
최근연재일 :
2013.05.20 18:55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82,955
추천수 :
1,280
글자수 :
80,429

작성
13.04.28 08:10
조회
3,945
추천
75
글자
8쪽

삼음절맥

DUMMY

10. 삼음절맥


순음의 내기가 유동하는 기맥이 닫혀 기경과 단절되는 현상을 일러 절맥이라 한다.

절맥이 생기면 내기가 소통되지 않아 음기가 기맥에 쌓이고, 이것이 결국 음독(陰毒)으로 화해 언젠가는 뇌수를 침범하니, 시한부의 천형(天刑)을 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절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경우도 있고 후천적으로 생기는 경우도 있다. 또한, 기경과 단절된 기맥의 수에 따라 삼음, 오음, 칠음, 그리고 구음으로 나뉘는데, 앞에 붙는 숫자가 높으면 높을수록 병증은 더욱 심각하다.

남궁시연은 그 중 삼음절맥이다. 억울하게도 후천성.

태어날 때부터 절맥을 지닌 몸이었다면 애초에 후계자 경쟁에 끼지도 못했을 터이니, 일면 당연하다 하겠다.

절맥이 생겼음을 알게된 것은, 분정이양을 시혜받고 정식으로 소가주 위에 오른지 불과 몇 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초기에는 열이 좀 나고 으스스하게 한축을 느낀다는 외에 이렇다 할 증세가 없었다. 가벼운 고뿔 정도. 내공이 있어도 고뿔은 드는구나, 생각하며 웃어 넘겼다. 허나, 며칠 뒤부터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삼복 더위에 홀로 빙굴에 빠진 듯, 견딜 수 없는 한기가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내공을 일으켜 한기를 다스리고자 했으나, 그 또한 별무소용.

소식을 듣고 찾아온 세가주 창천신검이 짚히는 바가 있어 사람들을 물리고, 친분이 있는 광혜의국주 학연경을 청했다.

그리고, 청천벽력과도 같은 선고. 삼음절맥이 급성으로 발현해 길어야 삼년을 살기 힘들 것이라는.

태화 사대신의의 한 사람이라는 학연경도 고작 절맥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단약을 지어주었을 뿐. 그나마도 음기가 성한 보름날에는 약이 듣지도 않았다.

학연경에 따르면, 절맥을 치유할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었다.

오기조원(五氣造元)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내공을 수련해 스스로 임독양맥을 타통하거나, 아니면 극양의 성질을 띤 영물을 취해 닫힌 기맥을 뚫는 것.

전자는 사실 말장난이나 진배없다.

임독양맥을 타통하면 한서불범(寒暑不犯)이요, 만독불침(萬毒不侵)이니, 당연히 절맥을 극복하는 것쯤 일도 아닐 것이다. 문제는 어느 하세월에?

그러니,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쪽은 영물을 취하는 것.

학연경이 입에 올린 것들 중 만년화리(萬年火鯉)나 천양금삼(天陽金蔘) 따위는 실제 존재하는 지도 불분명하지만, 뇌령신조의 피라면 얘기가 다르다. 황에게 달려가 대뜸 내놓으라면 대뜸 목이 떨어지겠지만, 야생으로 돌아간 뇌령신조가 한 마리 있지 않은가!

물론, 천주의 준귀인들을 모아 추룡대를 조직해 놓고도 수년째 그 종적조차 찾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개미 눈꼽만큼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판이었다.

남궁시연은 태화의 정보통인 하오문에 천금을 쥐어주고 독자적으로 뇌령신조의 행방을 쫓았다.

그러다 얼마 전, 뇌령신조가 흑천밀림 주변에서 발견되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비록 하오문을 통해 남궁시연에게만 전해진 정보는 아니지만, 이것 저것 따질 계제가 아닌 터. 수신호위 두 명만 거느리고 급히 풍주로 온 것이다.

물론, 소가주의 재량으로 세가 무사들을 동원할 수도 있겠으나, 뇌령신조를 잡아 황에게 바칠 의도가 아닌 이상 되도록 보는 눈을 줄이는 게 좋다. 또한 남궁세가의 전력이 대거 풍주에 들어서면, 공연히 풍주 금경이나 구주십대가의 하나인 백리세가를 자극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게다가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뇌령신조가 흑천밀림에 있다는 소문이 진정 사실이라면, 서황에 가 있는 추룡대가 움직일 것이다. 지금이야 소식 빠른 일부 무사들간의 경쟁이지만, 추룡대가 들이닥칠 경우 한낱 개인인 남궁시연이 뇌령신조를 차지할 기회는 없다고 봐야 옳다..

그나마 기대를 거는 것은, 흑천밀림과 가장 가까운 성읍인 이곳 선남부의 부주가 화산관 동문인 모윤진이라는 것. 허나, 크게 의지할 바는 못된다. 동문의 정은 다소 있겠지만, 직접 아는 사이도 아니거니와 그는 어디까지나 풍주 금경의 사람이다. 아직 귀인도 아닌 남궁세가 소가주를 위해 얼마나 힘을 빌려줄 것인지. 어쩌면 뒤통수나 안 맞으면 다행일지 모른다.

그런 저런 복잡한 이유와 상념을 품고 예까지 왔지만, 막상 도착하니 그저 암담했다.

시선 닿는 곳마다 눈에 밟히는 자들은 죄 무사들. 열에 아홉은 이류에도 못미치는 하수들이지만, 간간히 만만치 않은 실력자들도 눈에 띄었다. 그런 자들 틈에서 뇌령신조를 손에 넣을 수 있을까? 무시무시한 전격을 방출한다는 뇌령신조를 잡는 방법은 있는 걸까? 아니, 다른 걸 다 떠나서, 뇌령신조가 정말 있기는 있을까?

실낱 같은 희망을 가지고 이역만리 낯선 땅에 발을 디뎠지만, 마음에 깃드는 것은 깊어가는 회의뿐이었다.


어차피 이리 절망적인 상황인데, 미친 척하고 이 맹랑한 씨종을 한 번 믿어 봐?


“좋아. 다 알고 있다, 이거지? 거래를 하자고 했나? 네가 내놓을 패가 뇌령신조란 뜻인가?”

“그렇습니다.”

“뇌령신조를 잡아 주겠다고? 날 위해서?”

“잡으실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이거나 저거나! 들어나 보자. 대체 뭘 믿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게냐?”


긴가민가하면서도 조금씩 넘어오고 있는 남궁시연을 보며, 소황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삼년 전에 그러했듯, 마음만 먹으면 하시라도 속박에서 벗어나 야생으로 돌아갈 수 있는 뇌령신조입니다. 헌데, 왜 지난 수백 년동안은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아십니까?”


남궁시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선뜻 떠오르는 게 없었다.

허나, 곰곰히 생각해 보니 한 가지 짚이는 게 있었다.


“혹시, 황혈(皇血)을 묻는 게냐?”


뇌령신조의 주식은 풀도, 고기도 아니다.

그것들이 갈구하는 것은 피. 짐승의 피를 마셔 연명하는, 일종의 흡혈 동물인 것이다.

헌데, 신궁에 있는 뇌령신조에게 제공되는 피는 황혈, 즉 황의 피뿐이다.

물론, 진짜 황의 피는 아니다.

황의 핏줄을 이은 비인들. 본래는 홍루의 씨종이 되어야 할 자들 중의 일부를 신궁에 두고, 그들에게서 정기적으로 피를 뽑아 뇌령신조에게 먹이는 것이다.

왜인지는 모르나, 아주 옛적부터 그래왔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뇌령신조도 다른 사람이나, 다른 짐승의 피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로지 황혈만 취했다.

남궁시연도 일찍이 이런 정황을 들은 바 있어, 황혈을 입에 올린 것이다.

소황이 힘있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남궁시연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긍정했다.


“맞습니다, 황혈,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야생으로 나온 뇌령신조이나, 신궁에 머물 때 취한 황혈을 그리워하지 않을 리 없습니다.”

“그래서?”

“사냥이든 낚시든, 미끼가 좋아야 성과도 좋은 법이지요.”

“그래서?”


세 번씩이나 ‘그래서’를 반복한 남궁시연을 향해, 소황이 쐐기를 박았다.


“제가, 바로 그 좋은 미끼가 되어 드리지요.”


남궁시연이 행간에 담긴 뜻을 놓칠 리 없다.

어찌 보면 의외라는 듯, 어찌 보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남궁시연이 소황에게 물었다.


“그렇다는 것은.. 네 녀석 역시 황의 태를 이은 씨종이라는 게냐?”

“…….”


입 밖으로 나온 대답은 없다. 허나, 표정은 확실한 긍정.

남궁시연의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거짓을 고하는 얼굴은 아니다.


“확실히, 그건.”


화촉 불빛에 비친 남궁시연의 동공도 소황만큼이나 반짝 빛을 냈다.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군.”


소황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득한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등불을 찾은 셈이다.

기연이다. 아니, 천운이다.


“거래라 했지? 그럼, 네가 원하는 것도 있을 터. 듣겠다.”


소황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깊이 머리 숙여 고한다.



“저를, 사 주십시오! 뇌령신조를 잡으신다면, 저를 소가주의 부측(駙側)으로 삼아 주십시오!”



작가의말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여인천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2 술사 +22 13.05.20 3,282 63 8쪽
21 내공의 위대함 +8 13.05.18 3,222 50 7쪽
20 전륜무사 +11 13.05.16 3,207 59 9쪽
19 격돌 +10 13.05.15 2,658 52 8쪽
18 밤의 시작 +7 13.05.14 4,044 57 9쪽
17 농락 +8 13.05.13 3,139 53 8쪽
16 모윤진 +11 13.05.11 3,324 58 10쪽
15 사람답게 사는 것 +12 13.05.09 2,791 59 11쪽
14 금지훈 +12 13.05.07 2,580 49 7쪽
13 혁천의 왕 +9 13.05.06 3,324 49 13쪽
12 환골탈태 +11 13.05.04 3,257 59 7쪽
11 거래 +13 13.05.02 3,433 56 10쪽
» 삼음절맥 +16 13.04.28 3,946 75 8쪽
9 뇌령신조 +21 13.04.26 3,645 55 7쪽
8 은자 +21 13.04.25 3,237 54 7쪽
7 남궁세가 +20 13.04.24 3,510 72 8쪽
6 남궁시연 +24 13.04.23 3,344 56 8쪽
5 준귀인 +20 13.04.22 3,347 55 9쪽
4 매화검수 +7 13.04.21 3,901 52 6쪽
3 옥야각 +3 13.04.20 4,773 51 7쪽
2 씨종 소황 +10 13.04.19 6,264 62 8쪽
1 서장 +10 13.04.18 8,728 84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