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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린버터 님의 서재입니다.

대공가의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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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렛
작품등록일 :
2024.07.19 13:39
최근연재일 :
2024.09.10 06:26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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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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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57,504

작성
24.07.1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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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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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글자
4쪽

프롤로그

DUMMY

아버지가 죽었다.


7년 전, 어머니와 함께.


한겨울 설산의 풍경은 온통 새하얬다. 산등성이를 타고 넘어온 바람에 냉기가 묻어나는 계절이었다. 가지만 앙상한 나무에 기대있던 나는,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뒤척이다 그만 자조섞인 한숨을 흘렸다.


발밑의 눈바닥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파랗게 질린 입술 새로 흰 김이 피어올랐다. 얼마간은 전신을 지독하게 난자하던 통증도 점점 느껴지지 않았다. 영하의 날씨에 감각이 무뎌지는 건지, 아니면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의식이 아득해 지는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알았다.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다. 여기서 눈을 감아버린다면 지난 12년간의 생이 허무하게 끝날 거라는 것도. 그럼에도 죽음에 대한 공포는 느껴지지 않았다. 삶의 끝에서 주어진 영면이 최후의 축복이자 안식처럼 다가왔다.


피로 물든 눈 위에서 나는 생각했다.


죽자.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고뇌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몰려오는 수마에 몸을 맡기자.


그렇다면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편해질 수 있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죽어가던 가문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보다, 이 영겁과도 같은 지옥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한때는 아버지를 따라 기사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먼 과거의 빛바랜 추억에 불과했다. 나는 이미 한참 전에 지쳐버렸다. 제국과의 전쟁이 터진 시점부터, 소중한 사람들을 전부 잃은 순간부터 본능적으로 죽을 곳을 찾아다녔다.


따듯한 보금자리를 바랐던 적이 있었으나 곧 현실을 깨닫고 순응했다. 전란으로 인해 전 대륙이 혼란스러운 상황에 나 같은 고아를 받아들여주는 곳은 없었다. 무거워진 눈꺼풀에 슬며시 눈을 감으려던 나는, 마지막으로 고개를 들어올려 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밤하늘이 있었다.


검은 도화지를 수놓는 별빛이 지극히 아름다웠다.


나는 눈을 감으려던 것도 잊고 한동안 광활한 은하수를 응시했다. 마지막으로 하늘을 올려다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항상 밑을 보고 살았다. 위를 보는 순간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서.


그러나 죽음의 문턱에서 바라본 별빛은 기억 속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찬란하게 빛나던 그 시절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했다. 불현듯 뺨을 타고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감각이 멀어지는 와중에 볼을 스치는 미미한 온기가 유난히 선명했다.


살아라.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사랑해.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다. 뻗은 손으로, 저 먼 은하수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잡았다는 착각은 찰나일 뿐, 말아쥔 손을 풀자 신기루처럼 흩어져버렸다.


체념했던 감정이 수면 위로 올라와 진창 속에 처박혔다. 절망이 온몸을 잠식했다. 몇번이고 손아귀를 쥐었다 펴도 별이 손안에 잡히는 일은 없었다.


나는 낙담하듯이 팔을 내렸다. 남아있는 미련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죽음을 받아들이자 차디찬 눈바닥이 포근한 이불처럼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저벅거리는 소리와 함께 내 앞에 선 남자가 있었다. 희미한 달빛 사이로 타오르는 새빨간 머리카락이 또렷하게 비쳤다.


“꼬마야.”


붉은 머리의 기사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랑 같이 갈 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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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엘리시온 5 +14 24.08.27 7,254 213 15쪽
34 엘리시온 4 +23 24.08.26 7,376 227 19쪽
33 엘리시온 3 +11 24.08.25 7,449 197 16쪽
32 엘리시온 2 +12 24.08.24 7,608 169 14쪽
31 엘리시온 1 +13 24.08.23 7,987 15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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