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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린버터 님의 서재입니다.

대공가의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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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렛
작품등록일 :
2024.07.19 13:39
최근연재일 :
2024.09.10 06:26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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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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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변하는 것, 변하지 않는 것 2

DUMMY

18살이 된 소년은 전과는 많이 인상이 변해 있었다.


12살의 겨울날. 다이어울프의 변종 밑에 깔려 죽어가던 아이는 당장이라도 죽을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꿈과 희망을 모두 내려놓은 채, 진창 속에서 죽을 순간을 기다렸다. 영원한 안식이 될 그런 죽음을.


그러나 죽어가는 아이의 눈동자에는 마지막까지 꺼지지 않는 불씨가 있었다. 그 아이에게 시선이 끌린 건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고 케이드는 생각했다. 죽음을 바라면서도 살기를 원한다. 얼핏 모순적인 감정이었지만 케이드는 그 감정을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주웠다. 자신의 사비로 아이를 치료하고, 엘도르 기사단장으로서 독단으로 아이를 가문으로 데려왔다. 가문의 주인이자 자신의 친형의 반대같은 건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엘도르 기사단원은 자유롭게 종자를 선택할 수 있으니, 여차하면 그 권리를 내세워서라도 억지를 부릴 생각이었다.


그로부터 6년.


“여기서 뭐하냐? 사춘기는 애저녁에 지났는데, 이제와서 고독을 씹기라도 하는 거냐?”


“케이드.”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리안이 다가오는 붉은 머리의 기사를 보고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전에는 상상도 못할 표정에 케이드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냥요. 이러고 가만히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서.”


리안이 나직막이 중얼거렸다. 막 성인이 된 리안은 예전의 앳된 느낌이 거의 없었다. 대신 장성한 사내 특유의 날카로운 인상이 그곳에 자리했다. 그러나 선이 고운 이목구비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라서, 사내와 여인 그 사이의 이질적인 부조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확실히 답답할때는 땡땡이만한게 없긴 하지.”


“케이드. 설마 일 빼먹고 나온 거 아니죠?”


“내가 언제 일 빼먹은 적 있냐? 오전 업무 다 끝내고 나온거야.”


“그럼 점심은요?”


“오는 길에 먹었다. 길거리에서.”


“아쉽네. 안 먹었으면 같이 먹으려고 했는데.”


히히힝!


리안의 옆에 서 있던 지크가 케이드를 향해 눈을 부라리며 가볍게 투레질했다. 케이드가 작게 혀를 찼다.


“망할 말새끼가 사람 흉내는....”


“말새끼라니요.”


히히힝!


“성격 지랄맞은 건 여전하네. 나중에 갖다 팔던가 해야지....”


“애는 착해요.”


히히힝!


“어련하시겠습니까.”


연신 투레질하는 지크를 무시한 케이드가 성벽에 기대선 채 품안의 궐련을 꺼냈다. 익숙하게 입에 물고 손가락을 가져가자 순식간에 검붉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후우.


하얗게 흩어지는 연기에 리안이 절로 미간을 찌푸렸다.


“오늘 몇 개비 폈어요?”


“이게 처음이야.”


“거짓말. 담배냄새가 아주 진동을 하는데.”


“들켰냐?”


케이드가 넉살 좋게 받아쳤다. 그러나 리안의 구겨진 얼굴은 펴질 줄을 몰랐다.


“그래도 술은 많이 줄였잖아. 한번 봐 줘라.”


“줄인 술 만큼 담배가 늘면 의미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결혼을 못하는 거예요, 케이드.”


“결혼, 결혼, 결혼. 그놈의 지랄맞은 결혼. 매일 형수님 잔소리 듣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리안 너까지 그러기냐?”


“내일 모레면 마흔인데 아직도 결혼을 안 하니까 그렇죠. 정 잔소리가 지긋지긋하면 빨리 결혼을 해버려요. 상대가 없는 것도 아니고.”


“예전이면 모를까, 지금 나같은 아저씨가 좋다고 매달리는 여자가 어디 있다고.”


“정 뭣하면 찾아봐 드려요? 카를린님도 좋아하실 텐데.”


“여자 경험이라고는 일절 없는 숙맥이 훈수는.”


“......!”


담배를 깊게 한모금 빤 케이드가 무심하게 연기를 내뱉었다. 슬며시 옆을 흘기니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게 달아오른 리안이 있었다.


“케이드, 제발 좀.”


“뭐, 왜.”


“그 빌어먹을 주둥아리 좀 어떻게 해 봐요 제발. 엘도르 기사단장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품위가 없어도 되는 거예요?”


“왜, 찔렸냐? 정곡이야? 여자랑 키스 한번 못해본 숙맥 맞잖아.”


“아 진짜 케이드!”


케이드가 한바탕 낄낄거렸다. 리안이 케이드의 손가락에 걸린 담배를 빼앗으려 안간힘을 썼다.


“어어. 뭐하는 거야. 하극상이냐?”


케이드가 몸을 휙 뒤로 젖혔다. 짧은 시간에 담배를 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사이에 공방이 오갔다. 누군가 보기엔 별 것 아닌 것 같은 동작 하나하나에 깊은 깨달음이 담겨 있었다.


“좀 닥쳐요, 부탁이니까!”


입매를 비튼 리안이 소리쳤다. 케이드가 리안을 놀리듯 콧소리를 냈다.


“처음은 사랑하는 사람이랑 할래요~ 짐승도 아니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건 너무 더러워요~”


“아 좀!”


“인적 없는 달밤에 첫사랑과 나눈 첫키스라도 꿈꾸는 거냐?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나서 결혼하겠다? 이것 참 눈물 나는 이 시대의 낭만주의자시군. 너무 달다 못해 이빨이 썩어 없어지겠어.”


리안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여전히 담배는 케이드의 손 안에 있었다.


“아직 넌 나한테 안 돼, 꼬맹아.”


케이드가 끝이 얼마 남지 않은 담배를 마저 피웠다.


“너도 세레나가 몰래 읽는 로맨스 소설에 빠지기라도 한 거냐?”


“하아... 됐어요. 갈게요, 그냥.”


“싱겁긴.”


케이드가 끄트머리만 담배를 마나를 일으켜 흔적도 없이 불태웠다. 리안은 거칠게 자신의 머리를 헝클이고선 한심하다는듯 둘을 쳐다보는 지크의 고삐를 쥐었다.


“어디 가냐?”


“강철 망치요.”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그날이었나.”


케이드가 혼자 납득한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늘은 리안의 진짜 검이 완성되는 날이었다.


“예. 좀 일찍 가는거긴 한데 여기서 바보같은 대화를 더 하는 것보단 낫겠네요.”


임시로 사용하는 진철제 검이 아닌 별철로 만든 검. 녹여낼 검을 구하고 리안에게 맞춰 새롭게 제련하기까지 무려 1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페리아 최고의 대장장이이자 브라알라스에서 한손에 꼽히는 야장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검인 만큼 케이드도 어떤 검이 나올지 꽤나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별철제 검을 구한다고 했던 게 거의 6년 전인데. 거 오래도 걸렸다.”


“오래 걸린 것도 아니죠. 시니스터 공작님이 아니었으면 평생 구경도 못했을지 모르니까.”


“그것도 그렇지. 기대되냐?”


케이드가 지크를 이끌고 성벽을 내려가려는 리안의 등에 대고 물었다.


“딱히.”


“거짓말하기는. 어젯밤부터 한숨도 못 잤지?”


케이드가 빈정거렸다.


“예, 예. 그렇네요. 맨날 힘조절하면서 쓰는 임시 검을 휘두르다 별철제 검을 가질 생각을 하니까 한숨도 못 잤네요. 이제 됐죠?”


리안이 무심하게 대꾸했다. 케이드가 짧게 말했다.


“조심히 가라.”


“네. 아, 궁금하면 지금 같이 가도 되는데.”


“아니. 나는 조금 더 여기 있다 저택으로 돌아갈란다. 네 검이야 저녁에 구경해도 충분하고.”


“그래요. 적당히 하다 내려와요. 카를린 님이 또 화낼 지도 모르니까.”


충고아닌 충고를 덧붙인 리안이 지크를 이끌고 성벽의 계단을 내려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것도 잠시, 품안을 뒤적거리던 케이드가 작게 탄식했다.


아, 이런.


한 개비 더 가져올 걸.


***


“왔냐?”


거리를 돌아다니며 아는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은 리안은 곧장 강철 망치로 향했다. 5년이 훌쩍 넘어 거의 6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노인의 가게는 예전의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발터 어르신.”


“일찍 왔군. 뭔 일이라도 있었냐?”


“그건 아니고요. 그냥 산책이 일찍 끝나서요.”


가게 앞에 지크를 묶어둔 리안은 투덜거리는 녀석을 뒤로한 채 곧장 문을 열어 카운터 쪽으로 다가갔다. 평소라면 가게 안쪽의 대장간에 박혀 있어야할 노인은 오늘만큼은 팔짱을 끼고 카운터 앞에 앉아 있었다.


“후우....”


“왜 그러세요, 어르신. 무슨 문제라도 있었습니까?”


“그건 아닌데....”


발터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쉬었다. 괜시리 불안해진 리안이 노인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나 노인은 한결같이 팔짱을 끼고 가게 바닥만 노려볼 뿐이었다.


“혹시 아직 완성이 덜 된거라면....”


“아니, 그건 아니다. 완성이라면 오늘 아침에 다 됐어.”


“그럼 왜....”


“네가 검을 만들어달라며 별철제 검을 가져온 게 언제였지?”


뜬금없이 발터가 질문을 던졌다. 한순간 의아해한 리안이었지만 분위기를 파악하고선 순순히 대답했다.


“일년하고도 2개월 전이죠. 제 검을 만들기 시작한 게 작년 봄이었으니까.”


“그래, 벌써 1년이 넘게 지났지. 나도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대뜸 별철제 검을 가져와선 자기 검을 만들어달라고 할 땐 얼마나 놀랐는지....”


과거를 회상하는 발터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작년 3월 말의 봄. 자신이 가진 인맥과 연줄을 총 동원해도 구하지 못한 별철제 검을 대뜸 가져와 노인에게 내민 리안이 간절히 부탁했다.


—어르신. 제가 예전에 별철제 검에 대한 선수금을 드린 일.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당돌하기 짝이 없는 태도에 발터는 헛웃음을 흘렸다. 내심 깜짝 놀란 것도 잠시 그는 사건의 전말을 케이드에게서 전부 들을 수 있었다.


시니스터 가문의 숨겨진 세 번째 별철제 검.


리안이 가져온 별철제 검은 라이넬 시니스터가 가진 검과 백작가의 안주인 카를린이 훔친 검이 아닌,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공작가의 세번째 검이었다. 시니스터 가문의 보고에 박혀 비밀리에 내려오던 보검. 칼자루와 검집, 칼날이 모두 순백색으로 이루어진, 마치 성검을 연상시키는 그 검은 리안의 생일 선물로 라이넬 시니스터가 직접 내주었다고 케이드가 말했다.


아무리 재능이 넘치는 유망주라고 해도 그렇지 별철제 검을 생일선물로 선뜻 내주다니.


누가봐도 먼저 침을 발라두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발터는 거세게 고개를 저었다. 대장장이인 그가 보는 리안은 단순한 천재에 불과했지만,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시니스터 공작은 리안에게서 재능 이외의 번뜩이는 무언가를 보았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어르신.”


“됐다. 네가 직접 보고 판단해라. 백날 한탄해봐야 뭐가 되는 것도 아니니.”


발터가 카운터 아래를 뒤적거리더니 한 자루의 검을 꺼내 위로 올려놓았다. 리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겁니까?”


“그래. 방금 막 완성된 거다.”


새까만 검은색의 검집을 가진 검은 리안의 요구대로 거추장스러운 장식이 달려있지 않았다. 단지 은빛의 매끄러운 크로스가드와 폼멜 위로 달린 푸른색의 큼지막한 보석만이 전부인 검이었다.


그러나 그 밋밋함이 오히려 검의 아름다움을 부각시켰다. 유려한 곡선으로 그려낸 것만 같은 검은 꼭 하나의 예술 작품을 보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리안은 조심스럽게 검을 들어올렸다. 한번 심호흡을 한 뒤 그대로 칼자루를 잡아 끌었다.


그리고.


“.......”


리안은 말문이 턱 막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게, 그러니까....”


“그래. 이제 내가 왜 한숨만 쉬었는지 알겠냐?”


발터가 몇번인지 모를 숨을 내쉬었다.


“불량품이다. 아니, 불량품이라고 단정짓기엔 좀 이른가... 하지만 적어도 내가 철을 두드리기 시작한 60년간 단 한번도 보지 못한 검인 건 확실해.”


검의 칼날은 투명했다.


마치 유리나 다이아몬드를 보는 것처럼.


“.......”


리안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몰라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런 리안을 힐끗한 발터는 애써 리안의 시선을 피했다.


“언제부터....”


“.......”


“언제부터 이랬습니까? 분명 제가 저번주에 왔을 때는....”


“보라색이었지. 네 마나의 색처럼.”


발터가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북북 긁었다. 손짓에서 숨길 수 없는 짜증이 묻어나왔다.


“내가 일년 전에 했던 말 기억하냐? 너보고 주기적으로 가게에 오라고 하면서 했던 말.”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별철제 검의 칼날은 사용자의 마나색을 따라가니, 주기적으로 와서 마나를 불어넣어줘야 한다고....”


발터의 말대로였다. 다른 금속을 사용한 크로스가드나 폼멜과 달리 순수 별철로 이루어진 칼날은 사용자의 마나색을 따라간다.


케이드의 붉은 해일이나 카를린의 낙뢰같은 검은 수백년 전에 만들어진 검이기에 칼날의 색을 바꿀 수 없었다. 두 사람의 마나색과 검의 색이 똑같은 건 순전히 우연에 의한 결과였다. 아주 드물게 기존의 검을 녹여 탄생하는 새로운 별철제 검들은 전부 사용자의 마나색을 따라갔고, 그건 일반적인 강철과는 다른 별철만의 고유한 특성이었다.


리안이 일년도 넘게 매주 강철 망치를 방문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금속을 녹이는 데만 무려 한달. 그 후로도 곧장 모양을 잡지 않고 리안의 순수한 마나를 불어넣어 때가 될 때까지 망치로 두드려야 했다.


별철이 보라색으로 바뀐 것도 한달 전의 일이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때가 되었다며 발터는 본격적으로 단조작업에 들어갔다. 저번주까지만 해도 거의 칼날의 형태를 갖춘 별철은 선명한 자줏빛을 띄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결과라니.


“나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별철제 검을 직접 제련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래도 관련 기록이 남이있는 서적이나 고서는 죄다 뒤졌는데....”


발터의 처진 음성에서는 리안에 대한 미안함이 묻어나왔다. 리안은 왼손에 든 검집을 카운터에 올려둔 채 두손으로 칼자루를 쥐고선 투명한 칼날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일단 내가 시험해 본 결과 내구성에 있어서는 문제가 없었다. 마나 전도율도... 마도구를 사용해서 테스트를 해봤지만 딱히 이상은 없었지. 다른 별철제 검처럼 백프로에 가깝게 나왔으니.”


칼날과 크로스가드가 맞닿은 끝 부분에서 보랏빛 마나의 파편이 서서히 일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른다. 가장 치명적인 건... 생사의 싸움이 걸린 결투에서 검이 부러진다거나 마나가 흩어지는 경우인데.”


리안은 쥐고 있는 칼자루에 힘을 불어넣었다. 발터는 계속해서 미안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별철제 검을 새로 제련하는 경우가 백년에 두세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라 정보가 너무 적어. 철을 다루는 나로서는, 특히 검에 있어서는 이런 큰 변수나 이변을 용납할 수 없다. 네가 원한다면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그 검을 다시 녹여 새로운 검을....”


“아니요.”


칼날 위로 자주색 불꽃이 일었다. 그러나 폭력적으로 일어난 그 불꽃은 다른 검들과 다르게 그대로 칼날 안으로 빨려들어가더니 한없이 투명하던 검을 보라색으로 물들였다.


“이걸로 할게요.”


“뭐?”


“제 검이요. 이걸로 하겠다구요.”


리안이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에 땅을 바라보던 발터가 고개를 휙 들었다.


“맙소사... 그게 뭐냐?”


발터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방금 전까지 투명했던 칼날이 자수정처럼 빛나고 있었다.


“마나를 빨아들여? 칼날 자체의 색이 바뀐다고?”


“.......”


“그런, 그럴 리가. 이런 경우는 단 한 번도....”


몇가지 검식을 시험한 리안이 호흡이 조금 거칠어질 즈음 검을 휘두르기를 멈췄다. 그리고 허리춤에 걸린 기존의 검을 뽑아 위로 던졌다. 이전까지 열심히 수리해서 사용하던 순수 진철로 만든 검이었다. 떨어지는 검 사이로 자줏빛 검광이 번뜩였다.


쨍강—!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렸다. 두동강 난 진철이 허무하게 바닥을 굴렀다. 리안의 입가에는 뚜렷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지켜보던 발터가 입을 떡 벌렸다.


“어르신.”


“.......”


“감사합니다. 역시 실력 하나는 확실하시네요. 기대 이상이에요. 그것도 엄청.”


발터가 입을 뻐끔거렸다. 리안이 바닥에 떨어진 진철의 파편을 주워 근처의 나무통 안에 던졌다.


“이건 불량이 아니에요. 검의 균형도 그렇고, 마나를 받아들이는 것도.”


“불량이 아니다? 그럼 그 투명한 칼날이 정상이라는 소리냐?”


“네. 칼날의 색이 왜 이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허어... 어쩔 수 없지.”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르신.”


“네가 좋다는데 내가 뭘 어떻게 하겠냐? 더 이상 강권하지는 않겠다. 네 마나를 일년 넘게 먹은 놈이니, 나보단 네가 더 잘 알겠지.”


검에 스며든 마나가 사라져간다. 짙은 보랏빛의 파편이 허공에 풀려나는 만큼 반대로 검은 원래의 투명한 색으로 돌아왔다.


“이름은 정했냐?”


“이름....”


카운터에 놓아둔 검집을 집어 납검하려던 리안이 멈칫했다. 노인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없으면 하나 지어줘라. 앞으로 너와 평생을 함께할 검이 아니냐.”


“.......”


“보통 기사들은 자신의 애검에 애칭 하나쯤은 붙이곤 하지. 네가 모시는 기사인 케이드의 붉은 해일이나 브레일 백작 부인의 낙뢰는 대대로 내려온 검이라 애칭이랄게 따로 없지만 말이다. 네 그 검은 물려받은 검이 아닌, 아예 새롭게 태어난 검이니 당연히 네가 이름을 지어주는 게 이치에 맞지 않겠냐.”


리안은 가만히 서서 투명한 검의 칼날을 바라보았다. 풍경 너머가 이지러지듯 비치는 검은 마치 아무런 색도 없는 무색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 투명한 칼날 속에 자신의 과거가 비치듯 떠올랐다. 춥고 외롭던 겨울날. 홀로 죽어가던 자신과 그걸 구해주던 한 붉은 머리 기사의 모습이.


“겨울.”


“겨울?”


리안이 말했다. 발터가 되물었다.


“겨울로 할게요.”


리안은 다시금 힘을 주어 검의 이름을 불렀다.


“이 녀석 이름이요. 겨울로 할게요. 무색의 겨울. 한없이 맑고 투명한 그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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