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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린버터 님의 서재입니다.

대공가의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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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렛
작품등록일 :
2024.07.19 13:39
최근연재일 :
2024.09.10 06:26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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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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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엘리시온 8

DUMMY

숨이 가쁘게 차올랐다. 거칠게 움직이는 두 발을 따라 적막한 왕궁의 풍경이 빠르게 밀려났다. 리안은 미친듯이 달리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이 뒤죽박죽 엉켰다.


세레나, 세레나, 세레나.


대체 언제부터?


이변을 느꼈을 때는 이미 소녀가 사라져 있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동안 대답이 들려오지 않아 뒤를 돌아봤을 때 남아있는 거라곤 처량하게 떨어져 있는 검은 리본끈 하나뿐. 그 어디에도 세레나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그건 마치 누군가가 마법을 사용해 존재 자체를 지워버린 것 같았다.


말도 안 돼.


리안은 떠오른 가정을 부정했다. 리안의 감은 어지간한 2위계 마법사들보다 뛰어났다. 마리가 죽은 이후부터 항상 홀로 활동했던 리안이다. 잠을 잘 때나 휴식을 취할 때도 도적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살의나 기척에 유독 예민해져 있었다.


브레일 백작가에서 지낸 뒤 조금 무뎌지긴 했으나 예민한 감각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다. 그런 리안의 감을 속이려면 그 이상의 마법사인 3위계 마법사밖에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리안은 재빠르게 몸을 돌려 케이드가 있는 방을 향해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뇌리를 스치는 여러 부정적인 생각들을 애써 무시했다.


어느새 리안은 왕궁 한가운데 들어와 있었다. 저 건너편에서 나란히 걸어오던 한쌍의 남녀를 억지로 지나쳤다. 뒤에서 남자의 고함이 들려왔지만 리안은 듣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호흡이 흐트러질 수록 사람들의 기척이 늘어났다.


어디서 나타난 건지 병사 몇명이 리안을 보고 소리쳤다. 무시한 리안은 눈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케이드를 찾았다. 분명 연회도 끝나고 자정이 넘은 시각이라 다들 잠에 들어야 할 텐데, 이상하게 가면 갈수록 당황한 사람들이 밀려들어 왕궁 내의 분위기는 점점 어수선해졌다.


“케이드!”


케이드를 발견한 건 그로부터 조금 시간이 흐른 뒤였다.


“리안?”


자신의 방 근처를 서성이던 케이드는 복도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리안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예상과 다르게 케이드는 취하지 않고 자신의 애검인 붉은 해일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케이드....”


코앞에서 멈춰선 리안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꼬맹아, 도대체 어딜 갔다 오길래 이제 오는 거냐? 그보다 너. 세레나는 어쨌어? 분명 같이....”


“사라졌어요.”


“뭐?”


리안이 재차 말했다.


“사라졌다구요, 아가씨가!”


케이드의 얼굴이 굳었다. 여전히 왕궁 내부는 혼란스러웠다. 병사들이 불안해하는 귀빈들을 달래고 있었다.


진중한 얼굴을 한 케이드가 물었다.


“사라진 게 언제야?”


“방금 전....”


“너희 둘이 따로 떨어진 적 있었냐?”


“딱 한번 그랬어요. 연회장 안에서 잠깐 바람을 쐬려고 테라스로 나갔으니까. 그런데 얼마 안 있어서 다시 돌아왔고 연회장을 나올 때까지 같이 있었어요. 그리고 함께 돌아가는 길에....”


리안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횡설수설 대답했다. 입밖으로 튀어나오는 말이 잘 정리가 되지 않았다. 케이드는 그런 리안의 말을 한결같이 굳은 얼굴로 경청했다. 다급한 마음을 뒤로하고 상황을 설명하던 리안은 문득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환한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새까만 밤하늘에 뜬 아주 새하얗고 밝은 보름달. 한동안 계속해서 중얼거리던 리안이 돌연 말하기를 멈추었다. 기이한 감각이 리안의 전신을 휘감았다.


그건 아주 미미한 위화감이었다. 정말 사소한,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갔을 그런 위화감. 그러나 지금은 평상시가 아니었고, 급한 와중에도 리안의 본능은 무언가를 호소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미간을 구긴 케이드가 목소리를 높일 때였다.


“3위계... 마법사....”


“뭐라고?”


“시니스터 공작 각하는? 지금 어디 있어요?”


리안이 절박하게 물었다. 뭐라 한마디 하려던 케이드는 애원에 가까운 리안의 표정을 보고 순순히 대답했다.


“그 영감이라면 지금 펠브릭 의장님을 포함한 평의회 의원님들과 같이 있다. 병사들은 왕궁 주변을 수색하고 있고, 기사들은 전부 무장한 상태로 나오는 중이야.”


“브레일 백작님은요?”


“형님이라면 아까 인근 병사들을 인솔해 나갔다. 저래 보여도 나름 2위계 워커니까, 먼저 가서 급한 불이라도 끄겠다고. 근데 그건 왜....”


필요한 대답은 들었다. 케이드의 말이 끝나기 전에 리안은 주저없이 반대쪽으로 뛰었다.


“야, 야! 어딜 가, 이 망할 꼬맹아! 왕궁 내에는 마나 저해 술식이 걸려 있어서 멋대로 움직이면...!”


케이드의 성난 음성이 멀어졌다.


리안은 쉬지않고 달렸다.


불안한 낯빛을 한 사람들을 스쳐 지나간다. 케이드의 말대로 마나를 일으키는 족족 억지로 간섭하는 것처럼 흩어졌다.


상관없어.


흩어지는 마나를 강제로 그러모아 발 끝으로 밀어넣자 익숙한 고통이 발목을 헤집었다. 리안은 한층 더 빠르게 두 다리를 움직였다. 기사로 보이는 한 남자가 막무가내로 복도를 가로지르는 리안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거기, 멈춰! 지금은 비상 사태다. 당장 방으로 돌아....”


리안은 대답 대신 그의 허리에 걸려 있는 검을 뽑았다. 옆을 지나가면서 칼자루를 뽑아 다시 달리기까지. 한박자 늦게 기사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때쯤 리안은 저 멀리 사라져 있었다.


밖을 빠져나온 리안은 무작정 정원으로 향했다. 리안의 본능이 그곳에 답이 있다고 외쳤다.


꽃내음이 가득한 정원은 세레나와 춤을 췄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웠다. 영원히 시야에 가둬두고 싶을 만큼이나.


그러나 이전과는 달랐다. 멀지 않은 곳에서 병사들이 무리를 지어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이따금 허리에 검을 찬 기사들도 볼 수 있었다. 리안은 정원의 가장 깊숙한 안쪽으로 발을 옮겼다.


여기다. 여기가 달라.


꼭 현실과 똑 닮은 거울이 비추는 것 같은....


리안의 눈동자에 주위 풍경이 담겼다. 사방을 가득 메운 꽃의 물결, 푸르른 잎사귀와 하늘 위에서 아래로 드리우는 달빛.


더 이상의 잡음은 없었다. 사람들의 외침도, 고막을 두드리는 거친 발소리도. 그 모든 것이 멀어져 사라졌다. 귓가에 닿지 않았다.


돌아보면 늘 같은 풍경이 그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리안을 제외한 왕궁에 사는 사람들에겐 그럴 터였다. 천천히 검을 들어올린 리안은 전력으로 마나를 불어넣었다. 심장을 움켜쥐는 고통과 함께 평소보다는 작은, 그러나 선명한 자줏빛의 검기가 솟아올랐다.


찰나간 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있을까. 내 검이 이 거울을 꿰뚫을 수 있을까.


자신의 마나가 가로막는 것을 베어버리는 절단의 힘이라 해도, 상대는 예상이 맞다면 3위계의 마법사일 텐데.


스치듯 떠오른 잡념을 일거에 날린 리안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들어올린 검을 더 높게 치켜들었다.


결심과 동시에 그대로 내리그었다. 자줏빛 검광의 잔상이 일직선으로 허공에 새겨졌다.


***


불어온 바람에 꽃들이 흔들렸다. 땅 밑으로 드리운 그림자들이 불규칙적으로 춤을 춘다.


세레나는 의도치 않게 초대된 티 테이블에 앉아 보름달이 떠오른 정원의 위를 올려다보았다. 다른 날보다 유독 환한 정원의 밤하늘에는 형언할 수 없는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건 정말이지 기이한 기분이었다. 분명 왕궁의 정원과 같은 풍경인데, 세레나의 본능은 이곳이 현실 세계가 아니라고 말하는 중이었다.


꿈이라고, 환상에 불과하다고.


그러니까 제발 눈을 뜨라고.


그러나 세레나의 바람과 다르게 몇번이고 눈을 감았다 떠봐도 눈앞의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제 입으로 쌍둥이 마녀라 칭한 것과 같게 온통 검은색의 똑같은 옷을 입은 두 여인은 무척이나 챙이 큰 고깔모자를 쓰고 있었다. 겉으로만 보면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똑 닮은 쌍둥이인데, 오른쪽의 여인과 왼쪽의 여인의 말투가 확연히 달라 구분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계획엔 없었지만 손님이 찾아왔으니... 차를 내어야겠지.”


“손님? 불청객!”


왼쪽의 여인은 귀가 아플 정도로 목청이 컸으나 오른쪽의 여인은 익숙한 듯 자신의 손을 움직였다. 혹여나 무슨 일을 벌일까 싶어 긴장한 상태로 지켜보던 세레나는 깜짝 놀랐다. 티 테이블 위에 있는 찻잔의 그림자에서 또다른 찻잔이 튀어나온 것이다.


“빛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어둠이 생기기 마련. 그림자는 어디에나 있는 법이지.”


“.......”


“마셔라. 플리네타리 꽃잎으로 우린 차다. 그 아이와의 인연을 생각해 특별히 내어주는 거다.”


오른쪽의 여인이 찻잔 안으로 손가락을 기울이자 늘어진 그림자를 따라 검은색의 액체가 또르르 흘러내렸다. 절반쯤 차오른 찻잔이 저절로 움직여 세레나의 앞에 놓였다.


“차를 즐기지 않는 게냐?”


세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심심풀이를 위해 기껏 초대했건만. 이리 말수가 없다면 죽이는 수밖에 없는데....”


“차 안 마셔! 죽여버려!”


“읏....”


세레나는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쥐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지 찻물은 약간 쓴맛이 나는 것만 빼면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브레일 백작가의 여식답게 최소한의 품위는 있군.”


“저를... 아시나요?”


오른쪽의 여인이 짙게 웃었다.


“물론이다. 당연하지 않느냐? 그림자는 어디에나 있다. 우리가 마음만 먹는다면 이 세상에 가지 못할 곳이 없다는 소리지.”


“어디에나! 어디서나!”


“죽지 않는 기사단이라는 건....”


“세간에서는 불멸기사단이라 하더군. 절멸의 글라우카와 그 휘하의 죽지 않는 기사단.”


세레나의 눈이 크게 뜨였다. 불멸기사단이라면 브라알라스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단원 전원이 3위계 마법사로 이루어진 대륙 최강의 기사단이었다. 그런 자신의 경악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여인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무지한 버러지들은 말하지. 제국의 황제, 태양황 레오니스야말로 진정한 이 세계의 지배자라고.”


“지배자! 태양황 레오니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뭐든 아는 만큼 보이는 법. 태양황이 이 세계의 지배자라는 건 아주 멍청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소리야. 수백년간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은 살아있는 반신인 그분께서 아직 살아계시거늘, 감히 태양황 따위를 그분의 위에 놓는단 말이냐?”


“놓는단 말이냐! 역겨워! 머저리들!”


“.......”


세레나는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 버거워 자꾸만 차오르는 숨을 애써 삼켰다. 긴장으로 인해 손바닥에 땀이 흐르고 있었다. 억지로 쥐고 있는 찻잔도.


“저기....”


“말하렴. 브레일 가의 꼬마야.”


오른쪽의 여인이 말했다. 한결같이 느긋한 말투인데 안에 칼날이 숨어있는 것 같았다.


세레나는 간신히 호흡을 진정시킨 후 입을 열었다.


“여기가 이면세계이자 무의식이 영역이라는 건... 그러니까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다른 차원의 공간이라는 건가요?”


“맞다. 나의 심계다. 현실의 공간을 비틀어 거울처럼 덧씌우는 것이지. 아예 다른 차원으로.”


세레나가 다시금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전히 정원에는 자신과 두 여인을 제외하면 아무런 소리도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3위계 마법사의 심계라니 그제서야 이 공간이 이해가 갔다. 심계의 형태는 마법사들마다 제각기 다르지만 소서러의 경우 자신의 무의식을 특정한 영역으로 구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이 정원처럼.


“엘리시온에는. 왕궁에는 어떻게 들어오신 건가요?”


세레나는 용기를 내 질문했다.


“아까 말하지 않았느냐? 우리가 가지 못할 곳은 없다. 설령 대륙 정 반대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럼 이곳에 온 목적은....”


“제 주제도 모르고 세상을 다 가진 것마냥 행동하는 오만한 늙은이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서지.”


“오만한 놈들! 죽어! 죽어! 전부 죽어!”


세레나는 말을 하다 멈췄다. 조심스럽게 올려다본 여인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휘어져 있었다.


“하지만 칼로스 왕궁에는....”


“마나 저해 술식 말이냐? 확실히 그 귀찮은 결계는 까다롭긴 하다만 발목을 잡을 정도는 아니지. 2위계 마법사라면 모를까, 3위계부터는 약간 걸리적거리는 수준이니.”


“소용없어! 소용없어!”


“.......”


“그리고 나의 특기는 환각과 교란이다. 네 외조부인 라이넬 시니스터 그 노괴도 지금은 권력욕에 찌든 늙은이들을 지키기 위해 발이 묶여 있으니... 조금 더 이 정원을 즐기는 것 정도야 아무런 문제도 없다.”


“문제 없다! 문제 없다!”


“그럼.”


작게 숨을 들이킨 세레나가 고민했다. 하지만 그건 찰나일 뿐, 그녀는 굳게 다짐한 뒤 입을 열었다.


“왜... 저를 바로 죽이지 않으시는 거죠? 이런 정보를 말해주시면서까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까 처음 이 영역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 든 의문이기도 했다. 주저없이 세레나의 물음에 답하던 여인이 처음으로 입을 다물었다.


“제게 따로 원하는 바가 있으신가요?”


“착각을 하는구나, 브레일 가의 꼬마야. 아까 분명 말하지 않았더냐? 네가 그 아이와 연이 있어 무료함도 달랠 겸 대화 상대가 필요하다고.”


“심심해! 지겨워!”


“아니요.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돼요. 제가 이 얘기를 누군가에게 발설하기라도 한다면....”


“리안.”


찻잔을 쥔 세레나의 손가락이 움찔했다.


“그 아이의 어미가 너와 네 어미를 닮았거든. 답이 되었느냐?”


푸른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닮았다?


나랑 어머니가?


—이런 말은 실례가 될 지도 모르지만... 리안의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어?


—어머니요?”


—응. 아, 억지로 대답할 필요는 없고.


—상냥한 분이셨습니다. 카를린님 처럼....


꿈같았던 순간. 피아노의 선율을 따라 리안과 춤을 추었던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러고보면 부모님에 대해 물었을 때 리안의 표정이 많이 쓸쓸해 보였다. 꼭 가슴 아픈 과거를 떠올리는 것처럼.


“궁금한게 많은 눈치로구나.”


“궁금해? 궁금해?”


“.......”


“그 아이는 태생이 아주 복잡하지. 아비도 아비지만 특히 어미 쪽이 보통 신분이 아니거든. 그분께서 그 아이를 죽일 수 있음에도 놓아준 이유가 다름이 아니다. 세간에는 불멸기사단이 에스테반의 후계자를 놓쳤다고 알려져 있지만....”


“에스테반?”


세레나가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몰랐느냐? 그 아이가 에스테반의 하나뿐인 후계자라는 걸.”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다. 여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정말 몰랐던 모양이군.”


“정말 몰랐어? 둔해! 멍청해!”


“.......”


“이해가 안 가는구나. 단서야 많았을 텐데. 중부 지역 특유의 억양은 아무리 제국어와 브라알라스어에 능통해도 티가 나기 마련이지. 그 나이에 2위계의 경지에 오른 마법사가 역사상 몇명이나 될 것 같으냐? 태초의 마법사와 그의 다섯 제자를 제외하면... 다섯 명? 여섯 명? 아니, 일곱 명?”


“멍청한 년! 바보같은 년!”


소리가 멀어졌다. 여인의 얼굴과 정원의 풍경이 물을 탄 듯 흐릿해졌다.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는 건 다름아닌 한 소년의 얼굴이었다. 돌이켜보면 리안은 자신의 출신에 대해 단 한번도 말하지 않았다. 먼저 말을 꺼내지도 않았고, 슬며시 떠보려고 해도 화제를 돌리며 숨기려고 했다.


나이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높은 경지도.


능숙한 브라알라스어에 비해 어딘가 묘한 말할때의 억양도.


그리고 흔히 볼 수 없는 보석같은 보랏빛 눈동자도 전부 다.


“그 아이의 어미도 너와 같은 환한 백금발을 가지고 있었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래, 눈. 네 푸른 눈과 다르게 그 아이의 어미는 보라색 눈이었다.”


“보라색! 불길해!”


“5살이라는 나이에 모든 걸 잃어버리고 대륙을 방랑했으니 가족의 온기가 그리울 만도 하지. 그 고슴도치 같은 아이가 네게 무른 것도... 어쩌면 너와 네 어미에게서 자신의 친모를 겹쳐보는 게 아니냐?”


“대용품이야! 쓰다 버릴 대용품!”


콰악!


다소 신이 난 듯한 두 여인이 쉴새없이 말을 쏟아낼 때였다. 세레나의 뒤, 여인들의 앞쪽의 공간이 콰악거리는 소리와 함께 찢어졌다.


“이런.”


“허억! 침입이다! 침입!”


오른쪽의 여인이 탄식했다. 왼쪽의 여인이 호들갑을 떨었다. 뒤를 돌아본 세레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찢어진 허공에서 튀어나온 선명한 보랏빛 칼날이 있었다.


의지를 담은 칼날이 일직선으로 정원의 풍경을 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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