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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린버터 님의 서재입니다.

대공가의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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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렛
작품등록일 :
2024.07.19 13:39
최근연재일 :
2024.09.10 06:26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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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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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엘리시온 3

DUMMY

언제였을까.


이제는 기억마저 희미해버린 먼 과거. 가문이 망하기 전 어린 리안은 딱 한 번 어머니에게 춤을 배운 적이 있었다.


—그래, 리안. 춤을 출 때는 항상 상대방의 눈을 보고 추는 거야. 손을 맞추고, 발을 맞추고, 숨을 맞추고. 네 모든 행동이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게.


당시의 리안은 호기심이 많았다. 가신들 몰래 시내로 내려갔다가 걸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유달리 맑은 눈을 한 보랏빛 눈의 아이는 매사에 궁금한 게 많았다.


딱 하나, 춤만 빼고.


—푸흡.... 도련님, 지금 그걸 춤이라고 추시는 겁니까? 흐느적대는 게 아니라?


—웃지마, 펠릭스. 좀 못할수도 있는 거잖아....


—아니, 뭐. 놀리려고 한 건 아니고....


—펠릭스 네이놈! 누가 감히 우리 도련님을 놀려!


—어, 어?


—도련님 우신다!


—잡아! 저 망할 새끼 도망친다!


그도 그럴것이 리안이 생각하는 연회란 쓸데없이 잡담을 나누고 별 의미없는 춤을 추는 자리였다. 일반적인 귀족들의 예법이나 격식도 귀찮아하던 리안이다. 당장 책을 읽거나 밖을 뛰어다니길 바쁜 리안에게 그런 쓰잘데기없는 짓거리에 시간을 쓸 여유는 없었다.


—잡았다, 이 썩을 놈! 감히 우리 도련님을 울려?


—꺽, 꺼억... 단장님, 사 살려....


—도련님 울음 그칠 때까지 아주 매운맛을 보여주마.


나이가 어린 것도 있어서 리안은 제대로 된 연회라는 걸 경험한 적이 없었다. 제국이나 브라알라스 7왕국과는 달리 중부 지역은 폐쇄적인 경향이 짙었다. 누군가를 불러 성대하게 파티를 열기보다는 가족들과, 가문의 사람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냈었다.


리안은 가문이 망할 때까지 공식적으로 대외적인 활동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처음 경험하는 이런 연회라면.


“칼로스 왕국의 방패, 브레일 백작가 드십니다!”


문이 열렸다. 내부의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건 거대하다 못해 광활한 연회장 내부였다. 연회장의 너른 홀을 양 옆으로 가로지르는 거대한 기둥들이 있었다.


찌를 듯이 높은 천장 위까지 뻗어나간 기둥들은 하얀색과 노란색 그 사이의 상아빛을 띠었다. 크리스탈로 조각된 눈부신 샹들리에 아래 여기저기 늘어진 고급스런 테이블 위에는 새하얀 식탁보가 깔려 있었다.


열린 창 너머로 조금은 미지근한 여름 바람이 불어왔다. 주홍색 노을빛이 연회장 내부를 비스듬히 비췄다. 저마다 잔을 하나씩 들고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이 약속이라도 한듯 활짝 열린 입구를 향해 눈길을 던졌다. 시종의 외침과 함께 들어온 네 사람에게.


리안은 그 모든 시선을 담담히 받아넘겼다. 더 정확하게는 신경쓰지 않았다. 어린 소년의 의식은 천천히 쓸려나가듯 기억의 파도를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머니, 이런 걸 꼭 해야 하나요? 왠지 시간이 아깝다고 할까....


리안은 종종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추억할 때가 있었다.


—당연하지. 나중에 꼭 쓸 곳이 있을 거야.


아, 그래.


—정말 그럴까요?


—응. 리안 네가 조금 더 커서 근사한 어른이 되면,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분명 엄마가 가르쳐준 춤이 생각날 걸. 미리 배워서 나쁠 건 없잖니?


그때도 이랬지.


—새벽녘의 왈츠. 엄마의 고향에서 자주 췄던 춤이야.


지는 노을이 예뻤다. 불어오는 바람은 미지근한 기분좋음을 품고 있었다.


—자, 다시 처음부터 해보자. 시작은 왼발부터....


가문의 저택에서 열린 자그마한 파티에서. 웃음 소리가 끊이질 않는 나른한 공기 속에서.


—그렇지. 잘 하네, 우리 아들.


해가 질 때까지. 별이 뜰 때까지.


—진짜요? 헤헤....


부드러운 피아노의 선율을 따라.


“칼로스 왕국의 방패이자 17가문의 일각, 브레일 백작가 드십니다!”


재차 외치는 시종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추억 속을 표류하던 리안의 상념을 일깨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세 사람은 리안보다 앞서 걷고 있었다.


뭐해, 리안!


살짝 뒤를 돌아본 세레나가 소리없이 입술을 달싹거렸다. 잠시간 주위를 둘러본 리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뒤를 따랐다.


언제까지 과거에 매여있을 수는 없다. 더이상 환상이란 이름의 꿈에 젖어있는 아이도 없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심란했던 가슴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자연스러운, 그러면서도 어딘가 가식적인 미소를 지은 리안은 익숙하지 않은 새 세상을 향해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


“오랜만입니다, 브레일 백작 각하.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케이드 경도 여전히 헌앙하시군요.”


“세레나 영애께서도 몰라보게 크셨습니다. 미래가 이리도 창창하니, 다음 대의 브레일가도 걱정이 없겠군요 하하.”


브레일 가문이 연회장에 들기 무섭게 귀족들이 몰려들었다. 더 정확하게는 한때 귀족이었던 유력 가문들이었다.


“따라와.”


“예, 예?”


의례적인 인사를 건넨 세레나는 재빨리 리안의 손을 잡고 연회장의 한쪽으로 향했다. 초면인 자신에게 어떤 질문을 건넬까, 어떻게 대답할까 머릿속으로 준비를 하고 있던 리안은 당황하면서도 얌전히 세레나의 손에 이끌렸다.


“후우... 이제야 좀 살겠네.”


“이렇게 빠져나와도 되는 겁니까?”


“어차피 대충 인사는 했어. 이 다음부터는 아주 쓸모없고 지긋지긋한 얘기들 뿐이거든.”


세레나가 넌저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쓰게 웃던 리안은 어딘가 차가운 눈으로 장내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커도 되나 싶을 정도의 연회장에선 벌써부터 아는 사람들끼리 모이기라도 한 건지 여러 파벌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는 리안의 또래거나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소년 소녀들도 있었다.


그들은 은근히, 그러면서도 약간은 노골적으로 이쪽을 향해 계속해서 시선을 보냈다. 세레나에 대한 관심이 반, 그간 보지 못했던 보랏빛 눈동자의 소년에 대한 호기심이 절반이었다.


리안은 옆에 앉아있는 백금발의 소녀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물빛 드레스를 입은 푸른 눈의 소녀는 단연코 어딜가나 눈길을 끌었다. 인형같은 외모에 아만다 부인이 손수 만든 옷을 걸친 세레나는 이런쪽에 문외한인 리안이 봐도 압도적이었다. 특히 또래의 남자 아이들이 몰래 곁눈질하면서도 제대로 눈을 맞추지 못하는 게 꼭 첫사랑에 허우적대는 여린 소년처럼 보였다.


“왜 그래? 내 얼굴에 뭐 묻었어?”


리안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세레나가 천진한 표정으로 물었다. 리안은 작게 머리를 흔들었다. 때마침 귀족들이 연달아 연회장 내부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니요. 그냥 아가씨께서 좀 태연하다 싶어서.”


“그야 이런 일 한두번이 아니니까. 싫어도 계속 하다보면 익숙해지더라. 리안 넌 어떤데? 벌써 피곤해?”


세레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요. 이런 자리는 처음이라 적응하는데 좀 걸리네요.”


“쟤들 때문에?”


그녀는 방금까지 리안이 살펴보고 있던 한 소년 소녀의 무리를 가리켰다. 반사적으로 세레나의 손가락을 따라 눈을 돌린 리안이 살짝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아는 사이십니까?”


“응. 당연히 알지. 저기 저쪽에 유난히 키 큰 중년의 남자 있지? 군대 제복을 입고 있는 사람.”


“아, 네.”


“저 사람이 그 유명한 칼베른 호크윈드 원수야. 3위계 워커로 상당한 실력자이기도 해. 그 주변에 있는 뚱뚱한 남자가 필른 대장. 아부하는 간신배처럼 생긴 사람은 세르반 대장.”


브라알라스에서도 손꼽히는 상회를 운영하는 대부호, 브레일 백작가와 시니스터 공작가가 아닌 또다른 17가문의 주인들.


17가문은 아니지만 7왕가의 방계로서 군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을 하나씩 정성스레 설명하던 세레나가 다시금 처음의 소년 소녀들에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쟤들이 바로 저 장성들과 귀족들의 자제들이야. 콧대가 높다 못해 하늘을 찌르는 놈들이지. 저 재수없게 생긴 놈은 칼베른 호크윈드의 차남. 그 옆에 빨간머리 여자애 보여? 쟤가 17가문 중 하나인 레베노 후작가의 삼녀이자 막내딸.”


리안은 세레나의 이야기에 적당히 맞장구쳤다.


“잘 아시네요.”


“틈만 나면 나한테 와서 치근덕거리거든. 남자건 여자건 상관없이.”


내뱉는 세레나의 어조에는 약간의 짜증이 섞여 있었다.


“브레일 백작가의 영애를 뵙게 되어 영광이다. 오늘도 아름다우시다. 하늘의 정원에 핀 한 떨기 꽃을 보는 것 같다. 영애께서는 여신님께서 자신을 본따 지상에 내려주신 반신이나 다름없다....”


“.......”


이번엔 리안도 말문이 막혀 대꾸하지 못했다. 듣고 있는 입장에서 손발이 자꾸만 오그라들었다.


진짜 미친 놈들인가?


“특히 저 칼베른 호크윈드 원수의 차남 있지? 혓바닥에 버터를 처바르기라도 했나, 자꾸만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귀찮게 하는데....”


“아가씨.”


주변의 눈치를 보던 리안이 가볍게 경고했다. 소곤소곤 조용했던 세레나의 음성이 점차 커지고 있었다.


“아....”


“진정하셨습니까?”


“고마워. 내가 잠시 흥분했나 봐. 원래 이러지 않는데....”


호흡을 가라앉힌 세레나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그래도 다행이야. 원래라면 지금쯤 나한테 다가왔을 텐데, 리안 네가 있어서 섣불리 움직이지 않나 봐.”


리안과 눈이 마주친 소년들 몇명의 입술이 씰룩거렸다. 먼 거리여서 들리지는 않았지만 입모양을 보니 혀를 찬 것 같았다.


“한 잔 할래?”


세레나가 근처 시종에게 잔 두잔을 받아 리안에게 하나를 내밀었다.


“감사의 의미로. 술은 좋아하시나요, 기사님?”


리안은 참지 못하고 피식 웃어버렸다.


“성년식도 아직인데 이래도 됩니까?”


“연회잖아? 지금이 아니면 언제 맛보겠어.”


“카를린 님께서 화를 내실 겁니다.”


“농담이야, 농담. 이거 포도주가 아니라 포도주스거든. 우리같은 애들 기분내는 용.”


세레나가 배시시 웃었다.


“하... 피곤해 뒤지겠네. 노망난 늙은이들, 쓸데없이 말만 많아가지고.”


뜬근없이 한 남자가 두 사람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합석한 건 막 잔을 입에 가져갔을 때였다. 털썩 하는 소리와 동시에 리안과 세레나가 입을 열었다.


“케이드?”


“삼촌이 여기 왜 있어? 아버지랑 같이 있는 거 아니야?”


케이드가 가느다란 눈으로 리안과 세레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손에 들린 잔 두잔을 보고 인상을 팍 썼다.


“이놈들이 이거 벌써부터 빠져가지고. 술이나 마시고....”


잽싸게 잔을 뺏어간 케이드가 목구멍 너머로 주스를 밀어넣었다. 음미하듯 감은 눈꺼풀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그거 술 아닌데요.”


“뭐야, 주스네... 쓰읍.”


“삼촌, 왜 여기 있냐니까. 멋대로 빠져나와도 돼?”


의자 등받이에 몸을 쭉 늘어뜨린 케이드가 풀린 눈동자로 대답했다.


“내가 빠져나오면, 뭐 어쩔건데. 권력에 찌든 노인네들이.”


“와....”


“케이드, 누가 듣겠어요.”


케이드가 리안을 힐끗했다.


“들으라고 하는 소리야. 어차피 최소한의 예의는 했어. 인사 받아주고, 궁금하지도 않은 지들 자랑 들어주고. 얼굴에 금칠까지 몇번 해줬으니 이정도면 할 도리는 다 한 거지. 애초에 내가 저런 남정네들 상대나 하려고 온 게 아닌데....”


작게 실소한 케이드가 주스가 아닌 진짜 술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케이드 경.”


“오, 이런.”


헤프게 늘어진 붉은 머리의 기사가 재빨리 자세를 잡은 것도 그 순간이었다.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잠깐 시간 있으실까요?”


멀지 않은 곳에서 다가온 한 무리가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전원 여인으로 구성된 숙녀들의 무리라는 점이었다.


“시간, 말입니까?”


방금 전까지 세상 따분하던 케이드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붉은 머리의 기사는 능숙하게 신사적인 태도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들을 맞이했다.


“네. 어려우실까요?”


“여기 이 분께서 예전부터 케이드 경을 흠모하셨다 하는데, 꼭 한번 뵙고 싶다고 하셔서요.”


“이런.”


유난히 나이가 어린 여자가 부끄럼을 타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외견상으로는 십대 후반으로 보이는데 이십대로 보이는 일행에서도 확실히 시선을 끌었다.


“일단 정원으로 나가시죠. 여기는 은밀한 대화를 나누기에 좋지 못할 듯하니.”


“어머, 그럼....”


“예. 이리 아리따운 숙녀분들이 권하시는데, 거절하는 것도 사내로서 예의가 아니겠습니까? 제가 직접 에스코트 해드리겠습니다.”


“케이드 경...!”


깊은 감명이라도 받았는지 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두 손을 마주잡고 케이드를 올려다보았다. 세상 달콤한 얼굴을 한 케이드가 여인들을 이끌고 연회장 바깥으로 사라졌다.


“아가씨.”


“응.”


“저거, 왼손 약지에 반지....”


케이드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하던 리안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나도 봤어. 남편이 있나 보네.”


“이래도 되는 겁니까?”


약간 떨리는 리안의 목소리에서는 숨길 수 없는 충격이 묻어나왔다.


“당연히 안 되지.”


“그럼....”


“근데 눈 감아주는 거야. 암묵적 합의라고 할까, 저쪽 남편도 지금쯤 열심히 다른 여자들과 놀고 있을 걸.”


이게 귀족들의 세계인가. 어쩐지 목이 타는 듯한 느낌에 리안은 시종을 불러 연거푸 냉수만 삼켰다. 여전히 연회장에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연방군의 장성.


돈깨나 있어보이는 대부호.


17가문의 일가.


의회기사인 미카엘 크로스와 한때 7왕가의 국왕들이었던 평의회 의원들이 입장할 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듯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그리고 해가 완전히 저물어 땅거미가 내려앉았을 무렵 마지막으로 들어온 한 인물이 있었다.


“500년 역사의 가문이자, 브라알라스 최고의 명문가! 소드마스터 라이넬 시니스터 공작 각하와 후계자 케네스 시니스터님 드십니다!”


***


소란스럽던 장내가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가운데 시종이 다시금 목청높여 외쳤다.


“소드마스터 라이넬 시니스터 공작 각하와 후계자 케네스 시니스터님 드십니다! 다들 예를 취하십시오!”


열린 문 너머 마지막으로 들어선 손님이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한 노인과 막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였다.


저벅.


내딛는 발걸음이 기이할 정도로 크게 들렸다. 지켜보던 이들이 하나같이 무릎을 꿇고 예를 취했다. 그 모습이 마치 응당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브라알라스 제일의 명문가인 시니스터 가문.


그리고 단 하나뿐인 소드마스터.


17가문이 모두 입장하고 7왕가마저 등장한 가운데 가장 늦게 모습을 나타냈다. 그럼에도 그 누구하나 손가락질하지 못했다. 오히려 과하다 싶을 만큼 예를 표했다. 소드마스터라는 이름에는 그만한 힘과 권력이 있었다.


또다른 마스터급 마법사인 소서러 슈프림 제피르 뒤르펭이 전사한 이후 그 영향력은 더욱 막강해졌다. 정치적 권력과 유일하게 왕가 혈통이 아님에도 명예 의원직이란 자리에 앉은 노인. 제국군 총사령관인 글라우카 장군을 막을 수 있는 하나뿐인 전력이기에 더 그랬다.


숨막히는 침묵 사이로 칼로스의 국왕이자 현재는 평의회 의장인 펠브릭 칼로스가 노인을 향해 첫 발을 내디뎠다. 그 뒤로 자연스럽게 다른 여섯 왕가의 의원들이 따라붙었다. 리안은 세레나를 따라 의자에서 일어나 무릎을 굽히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여러가지 생각이 스쳤다. 브라알라스 유일의 소드마스터, 카를린 브레일의 친부이자 시니스터 가문의 가주.


—혹시라도 시니스터 공작님을 만나게 된다면 너무 겁먹지 마려무나. 겉은 차가워보여도 속은 따듯하신 분이야.


발소리가 멎었다. 조심스럽게 시선을 들어올린 리안의 몸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저 연회장 입구, 백발의 노인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수백의 사람들 중에서 리안 단 한명만을 정확하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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