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하길 정말 잘했어
“······.”
나는 이마를 문지르며 칼을 내려놓았다.
새빨갛게 흥건한 피, 조각난 고기 조각······.
“안 익었잖아······.”
나는 컷팅······ 아니, 테어링된 비프 웰링턴을 처참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빵은 부서지고, 고기는 안 익었고.
——You fucking idiot sandwich!
루시가 보던 프로 속 쉐프의 성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와, 어머니는 어떻게 빵이 멀쩡했지?”
혜자 여사께서도 요리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어제 보여준 사진과 메시지에 따르면 고기가 너무 익었고 간이 전혀 배지 않아 완전히 실패했다고. 이따 저녁에 경험치를 공유해야겠다.
“오랜만에 조용하네.”
루시는 어머니가 일을 도와달라는 핑계로 데리고 나갔다. 새삼 그 녀석이 채우고 있던 오디오가 체감이 된다.
나는 실패한 요리 조각들을 모아 팬에 올렸다. 대충 익혀서 구워 먹을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아롱이와 콩이가 생각나서 몇 조각을 작은 선반 위에 올렸다.
‘애들 조금만 줄까.’
그렇게 그걸 들고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창문 저 멀리 보이는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응?”
고라니였다.
고라니는 야행성 동물이라 보통 낮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저 녀석들을 막기 위해서 울타리도 쳐보고 했지만 하등 소용이 없었다.
고라니는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옥수수를 뜯어 먹고 있었다. 입술을 꿈지럭대면서 씹는 모습이 얄밉다.
솔직히 산에서 내려와 작물 좀 먹는 거?
그럴 수 있다. 놈들도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녀석들은 한입충이었다. 옮겨 다니면서 한입, 한입 먹는다.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아롱이 이 녀석은 어디서 뭐 하는 거지?’
아롱아. 밥값은 해야 하지 않겠니?
마실이라도 나갔나, 해서 개집을 살펴보고 있는데······.
“저놈 봐라?”
아롱이는 개집에서 머리만 내밀고 고라니를 구경하고 있었다.
“어쭈?”
늘어지게 하품까지 한다.
나는 조용히 소리가 나지 않게 문을 열었다. 아롱이는 직무 유기에 정신이 팔렸는지 이쪽을 신경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어디선가 후각을 자극하는 향기로운 고기의 냄새.
아롱이는 코를 킁킁거리며 그 냄새의 진원지를 찾았다. 그리고 이내······.
——!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야.”
아롱이는 내가 들고 있는 고기를 보고 꼬리를 흔들었으나, 내가 고라니 쪽을 쳐다보자, 강아지들 특유의 뭔가 잘못했을 때의 표정을 지었다.
꼬리의 진자 운동이 멈추고 고개와 시선이 따로 논다.
“너 루시랑 놀더니 닮아가니? 걔 오늘 일하고 있다.”
——왈! 왈! 왕왕롸왈!!!
그 말에 아롱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짖으며 고라니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숏다리로 뛰어나가는 폼이 제법 웃기다.
고라니가 개 짖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쏜살같이 도망쳤다.
아롱이는 고라니를 잠시 쫓다가, 고라니가 숲으로 완전히 사라지자 다시금 혀를 내밀고 꼬리치며 다가왔다.
“으이그.”
난 녀석에게 톡, 하고 살짝 꿀밤을 날려주고는 고양이를 불렀다.
“콩아~”
콩이는 아롱이와 다르게 음식 냄새가 나도 먼저 다가오는 법이 없었다. 오직 자기 이름을 부를 때, 혹은 심심해서 놀아달라는 때일 뿐이었다.
——야옹.
내가 콩이 이름을 부르자 어디선가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녀석은 창고 쪽에서 나오고 있었다. 입에 큼지막한 생쥐가 물려있다.
“네가 우리 집의 평화를 지키고 있구나.”
나는 골골송을 부르며 손에 머리를 비비는 콩이를 쓰다듬었다.
그 모습을 본 아롱이가 자기도 쓰다듬어 달라며 무릎에 덥석 앞발을 올리며 맹렬히 꼬리를 흔들었다.
나는 녀석도 쓰다듬어 준 후, 가져온 고기를 주었다.
“야, 너희 이거 비싼······.”
그러나 나는 이내 녀석들이 보인 반응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고양이는 가만히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을 뿐이었고, 개는 그것을 먹다 뱉었다.
“아니, 뱉어!? 야!”
물론 녀석들이 맛을 따져가면서 무언가를 먹지는 않았으니, 아무래도 너무 뜨거워서일 것이었다.
안다. 나도 안다.
하지만······.
하지만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했다.
나는 손으로 고기를 더욱 작게 찢어 식혀주었다. 그제야 녀석들은 그것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이거 온도를 더 높이든가, 시간을 더 늘리든가 해야겠네.”
안으로 들어온 나는 피를 흘리며 죽은 비프 웰링턴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집에 오븐이 없어서 에어 프라이어로 구웠는데, 레시피에 기재된 온도와 시간이 맞지 않았다. 작은 제품이라 화력 자체가 부족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나는 실패한 요리를 대충 팬에 데우고 익혀 먹었다.
“맛은 있는데 말야.”
나는 고기를 우물거리며 스마트폰을 살폈다.
루시가 어머니와 꽃집에서 막 찍은 사진을 보내 놓았다.
루시와 어머니는 장갑과 얼굴이 흙투성이었다. 하지만 활짝 웃으며 브이를 그리고 있다.
나는 ‘ㅋㅋㅋㅋㅋ 이따 봐.’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설거지와 티타임.
원랜 식사 후에 뭐 마시는 일이 없었는데 루시 때문에 습관이 되어버렸다.
“읏차, 오늘은 마법 진도 좀 빼볼까······.”
나는 루시의 스태프를 가지고 나와 외투를 꺼내 입었다. 마법에 집중하기에는 실내보다 실외가 좋다는 그녀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핫팩을 작년에 어디 뒀더라.’
나는 창고를 뒤적였다.
작년에 김장할 때 쓰고 남은 것이 꽤 있었다. 앞으로도 밖에서 마법 수행을 할 것 같은데, 미리 대량으로 구매해 두는 것도 생각해 봐야겠다.
“오.”
발견한 핫팩을 두 개 찢어 외투 주머니에 하나씩 넣었다.
——사라락.
밖으로 나오자 바람에 낙엽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맑고 청명한 하늘.
조용하고 평화로운 고요한 시간.
나는 이제 나만의 공간, 서버를 만들어야 했다.
그곳에서 마법사들은 자신이 만들어 낸 환상을 감각화하여 그것이 마치 실제인 것처럼 느낄 수 있게 한다.
서버란 쉽게 말해 꿈을 인지의 영역으로 구현화 시킨 것이었다.
스스로 꿈을 꾸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단어인, ‘자각몽’과 어느 정도 비슷한 면이 있다고 루시가 말한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다른 이의 정신과 연결하여, 마법사가 만들어 낸 환상을 타인에게도 체험시킬 수 있는 것이 마법과 자각몽의 가장 큰 차이라고.
나는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개와 고양이도 주인을 보고 반기며 그 곁에 엎드려 자연을 즐겼다.
스태프를 양손으로 쥐고 눈을 감는다.
멀리서 들리는 새들의 지저귐,
저 앞에서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움직임,
구름이 흘러가며 별을 가벼이 쓰다듬는 광활함이 점점 멀어진다.
——화아아아!
보이지 않았지만 스태프가 빛나는 것이 느껴졌다.
“플레이.”
시동어와 함께 눈을 떴을 때, 나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공간에 앉아 있었다.
“좋았어!”
나는 쾌재를 불렀다.
확실히 방 안에서 하는 것보다 밖에서 하는 것이 집중이 잘 되고 효과도 좋은 것 같았다. 어쩌면 조용하고 자연과 가까운 시골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시금 눈을 감고 의자의 이미지를 강하게 떠올렸다.
“의자!”
허공에 대고 소리치려니 조금 부끄러웠지만, 직관성을 살리기 좋을 것이라고 루시가 추천해 준 방법이었다.
하얀 파티클들이 반짝인다.
그곳에서 천천히 의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3D 프린터로 아래에서부터 물질의 형태를 쌓아가는 모습이다.
‘생성 과정이 이렇게 진행되는 거였구나. 루시는 하도 빠르게 만들어서 그냥 허공에서 나타난 것처럼 보인 거였고.’
루시처럼 뿅, 뿅하고 순식간에 무언가를 구현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천천히 목표점에 분명히 도달하고 있었다.
“나는 발전하고 있어.”
내 도전이 결과를 보이고 있었다!
나는 가슴 속에서 희열감을 느꼈다.
루시가 처음 나와 어머니에게 마법을 보여준 날이 떠오른다.
마법.
그래. 말 그대로 마법 같았다.
“나도 할 수 있어!”
이번에는 침대를, 그다음에는 책상을, 그다음에는 또······.
기본적인 사물들이었지만, 착실히 구현되어 가며 형태를 띠는 것에 기쁨이 느껴졌다. 내가 성장하는 것이 나는 기뻤다.
이렇게 계속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루시는 어머니의 증상이 심리적인 것에 의한 것 같으니, 적절한 마법을 지속적으로 접하면 마음이 치유되어 차도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뭔가 심리 치료사 같기도 하네.
예전에 말했던 내 의견에 루시는 동의하며, 실제로 자격증을 취득해 활동하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도와줄 수 없어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현재의 자신으로선 타인의 무의식을 건드릴 수 있을 만한 마력이 없다고.
이유를 물어보았으나 프라이버시라면서 대답을 피했다.
——하지만 언젠가 당신이 어엿한 마법사가 되면, 내가 없이도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마법 응원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녀석은 히죽 이를 보이며 웃었다.
“루시······.”
그때를 떠올리니 절로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불렀습니까?”
?
“@#$)*@%!?”
내가 깜짝 놀라 괴성을 지르자, 루시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녀는 뒷짐을 지고 장난스럽게 허리를 숙인 채, 아래에서 나를 올려다보며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엄마랑 나랑 퇴근했습니다. 잘하고 있나 접속해 봤습니다.”
그리고 즐거운 표정으로 내가 만든 구현체들을 바라보았다.
“어서 나옵니다. 근사한 저녁을 준비했습니다.”
벌써 저녁이라고?
그렇게 묻기도 전에 슉, 하고 루시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뭔가 고소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호기심과 함께 눈을 감고 서버를 종료했다.
——타닥, 타닥!
눈을 뜨자 내 눈앞에 보인 것은 불통과 그 위에 올려진 불판, 그리고 큼지막한 새우들이었다.
어느새 내 옆에는 작은 테이블이 설치되어 있었고, 갖가지 소스들이 막 지기 시작한 노을에 반짝였다.
“나왔습니까?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천천히 일어납니다.”
루시는 임시 조명을 설치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불판에 숯을 올려 새우를 굽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손을 흔든다.
“깨우시지 그러셨어요.”
그러자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엄지를 들어 보일 뿐이었다.
마늘과 버터 냄새가 기분 좋게 코를 간지럽혔다.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간다.
“엄마랑 유튜브 보는데 Grilled Shrimp 나왔습니다. 내가 엄마 마구마구 꼬셨습니다.”
루시는 기대되는지 고개를 흔들며 어깨춤까지 추었다.
“와······.”
혜자 여사의 손길 아래 완벽하게 구워진 새우는 노을빛으로 찬란하게 빛났다. 윤기가 아주 좔좔 흐른다.
“앗.”
어머니가 소스를 찍어 나에게 먼저 건넸다. 나는 그걸 어머니에게 되돌려주려 했으나, 어머니는 집게를 이용해 그대로 그것을 내 입에 쑤셔 넣었다. 루시가 그것을 보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거 맛이 정말 끝내주네요. 여기에 이거 바를 생각은 어떻게 하셨어요?”
새우의 고소한 맛과 갈릭 버터의 풍부한 향미가 입 안에 번져나간다. 씹을 때마다 감칠맛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그다음으로 어머니에게 새우를 받아먹은 루시도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방방 뛰었다.
“이젠 엄마 차례입니다.”
루시가 새우를 집어 어머니에게 소스를 찍어 입에 가져다주었다.
어머니 역시 우리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맛에 만족스러움을 느끼는 표정이 얼굴에 가득하다.
“엄마 열심히 꼬신 보람이 있습니다.”
루시의 말에 어머니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보였다.
“이제 제가 구울게요. 앉아 계세요.”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집게를 건넸고, 구운 새우의 머리 몇 개를 떼어 아롱이와 콩이에게 주었다.
아까 낮과 같은 일이 반복됐다. 아롱이는 성급한 마음에 그것을 바로 입에 넣었다가, 뜨거워서 도로 뱉어버렸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웃음소리를 냈다.
——타닥, 타닥.
함께 먹는 새우는 오늘의 수고를 보답하는 듯이 특별한 맛을 자아내었다.
‘고향으로 돌아오기 정말 잘했어.’
시골의 평온한 분위기와 가족의 소중한 시간이 어우러진 이 순간은, 분명 우리 모두에게 따뜻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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