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앞으로
“100년 사는 마법사도 못 한다니. 과장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나는 루시의 말을 농담으로 듣고 피식 웃어넘겼다.
“내 말 진짜입니다. 그거 할 수 있는 마법사 세상에 없습니다. 나 솔직히 믿기지 않습니다. 당신 말 거짓이라는 마음도 듭니다.”
그녀는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진짠가?
“이따 밥 먹고 해보지 뭐. 추우니까 밖에 서 있지 말고 얼른 들어와.”
그제야 루시는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후 김칫속을 만들고, 그것으로 배추를 버무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나와 어머니는 역할을 나누어 일을 빠르게 진행했고, 루시도 설거지 등을 도우며 착실하게 김장을 마무리해나갔다.
——왈! 왈왈!
갑자기 개 짖는 소리가 난다.
“누가 왔나?”
어머니도 궁금한 표정이었다. 딱히 이 시간에 찾아올 사람이 없었다.
“제가 나가볼게요.”
나는 밖에서 말릴 소쿠리 등을 가지고 현관문을 열었다.
——왈! 왈!
개 짖는 소리가 커진다.
“어르신?”
“아.”
저어 앞에서 입구에도 들어오지도 못하고 서 있는 사람은 대장장이였다. 얼마나 옷을 두껍게 껴입었는지, 멀리서는 몸이 둥그렇게 보일 정도였다.
“밖으로 나오게 해서 미안하군. 생각해 보니까 네 전화번호를 몰라서 말이야.”
그러면서 나에게 검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자. 우리가 잡은 산돼지야.”
“어우······ 무겁네요. 많이도 주셨습니다.”
——왈! 왈왈!
“야, 야. 아롱아. 왜 그래. 괜찮아.”
멀리서만 짖던 아롱이는 내가 밖으로 나오자 내 뒤에 숨어서 열심히 짖어댔다. 택배 기사가 와도 이렇게 짖지는 않았는데, 조금 이상했다.
“죄송합니다. 애가 원래 이렇게 안 짖는데······.”
“음. 똑똑한 짐승이구나. 내가 널 해칠까 봐 경계하고 있어.”
“예? 그만, 그만! 아롱아. 괜찮아.”
개가 짖는 바람에 뭐라고 하는지 잘 못 들었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저희 김장 다 끝났습니다. 이제 도구들을 세척하기만 하면 돼요. 식사 안 하셨으면 같이 하시겠습니까?”
“응? 나야 좋지만······.”
——철컹!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 우리는 그쪽을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고무대야를 씻기 위해 수돗가로 나오고 있었다.
“!”
어머니는 대장장이를 보자마자 대야를 수도에 놓곤 활짝 웃으며 뛰어왔다. 어찌나 반가워하는지 평소보다도 손짓, 발짓이 활발하다.
“아, 그래그래. 잘 지냈나?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냐고? 옷이 엉망이라 못 안아줘서 미안하다고? 응? 밥 먹고 가라고?”
어머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놀랐다.
어머니의 제스처를 알아듣는 것이 수준급이다.
“보세요. 어르신이 주신 거예요.”
내가 봉지를 열어 어머니에게 고기를 보이자, 어머니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양손의 엄지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들어오라며 손짓하곤 뽈뽈뽈 집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대장장이가 낮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네 어미는 항상 소녀의 모습 그대로구나. 목수와 사랑하던 그때의 그 모습 그대로야.”
“아버지와 어머니를 언제부터 아셨습니까?”
“목수의 아내가 아직 목수보다 키가 컸을 때부터 알았지. 정확한 년도는 기억나지 않아.”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키가 훨씬 컸다. 그렇다면 유년기, 아무리 늦어봤자 두 사람이 초등학교 때쯤이었을 것이다.
“엄청······ 오래 전부터 보셨겠네요.”
“음. 그때 목수의 아내는 머리를 하나로 길게 땋고 있었지. 반면 목수는 머리랄 것이 없었어. 목수의 아비가 기계로 머리털을 다 밀어버렸었거든.”
“하하하. 조부님이요?”
나는 꼬마였을 때의 까까머리 아버지를 상상하며 웃었다.
“들어가서 같이 식사하시죠. 아마 이 고기로 수육을 할 것 같습니다.”
“음. 알겠어. 나도 그냥 식사를 얻어먹을 수는 없으니, 칼이라도 갈아줄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와 같이 집의 안뜰로 들어섰다.
——왈! 왈! 왈왈왈!
아롱이는 여전히 짖는 것을 멈출 줄 몰랐다.
“아롱아, 쉿!”
“괜찮아. 저 개는 너희 가족을 많이 사랑하나 봐. 잘 대해줬나 보군.”
대장장이가 대견하다는 듯 웃었다.
“Oh? 누구?”
안에서는 루시가 눈을 크게 뜨고 우리를 맞았다. 녀석의 얼굴에 양념이 묻어있어서 떼주었다.
“아까 나와 멧돼지 사냥했다는 대장장이 어르신. 어르신, 여기는······.”
“루시!”
“아, 너는 처음 보는 얼굴이군. 반가워.”
대장장이는 미소를 지으며 루시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네가 이 아이에게 마법을 가르쳤나? 수준이 대단하던데.”
“?”
“?”
나는 예상하지 못한 말에 멍청히 굳어서 루시와 대장장이를 번갈아 보았다. 그것은 루시도 마찬가지인 듯, 나와 대장장이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저, 저희가 마법사인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러자 대장장이는 눈썹을 들어 올렸다.
“조금 당황스럽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넌 내 앞에서 마법을 썼잖아. 그러니까 넌 당연히 마법사인 것이 아닌가?”
“······.”
나는 할 말을 잊었다.
그러고 보니 마법사가 서버를 열었을 때, 대체 주변 사람에게는 어떻게 보이는 거지?
순간 허공에 대고 “총!”이라고 말하던 때가 떠올라서 부끄러워졌다. 그 이후의 대사도 부끄럽다. 설마 그걸 본 건 아니겠지?
“자. 이건 네 아들과 같이 사냥한 고기야. 응? 웬 사냥이냐고? 저기 밤골 너머 뒷산에서 멧돼지 한 마리를······.”
우리가 당혹함에 멍하니 있자, 대장장이는 어머니의 부름에 그쪽으로 다가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마치 지금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태도다.
“저 사람······ 누구입니까?”
루시가 바짝 붙어 나에게 속닥댔다.
“그냥 아는 대장장이······ 가 아니신가?”
“우리 마법은 겉으로 봐서는 절대 알 수 없습니다. 결코 평범한 사람 아닙니다.”
“그럼 마법사란 얘기야?”
“모르겠습니다. 내가 아는 한국 마법사 중에 저 사람 없습니다. 이야기 나눌 필요 있습니다.”
우리는 일단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 짓고 집안을 정리했다.
——쉬이이이익! 쉭! 쉭!
고기를 삶는 솥이 숨소리를 내며 추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이내 뽀얀 쌀밥, 막 담근 겉절이김치, 그리고 다양한 향신료와 함께 삶은 돼지 수육이 식탁에 올라왔다.
“밥······ 일하고 먹는 밥이 최고입니다······.”
루시가 침을 질질 흘리며 젓가락을 들었다.
“날 초대해 줘서 고마워. 난 한 것도 없는데 와서 얻어먹기만 하는군.”
대장장이가 우리 가족들에게 눈인사를 하며 감사를 표했다.
“고기도 처리해 주신 데다 칼도 갈아주셨고 도구들도 많이 봐주셨잖아요.”
“그거 가지고 뭘.”
“Wow! 정말 맛있습니다!”
루시의 오두방정에 어머니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녀석은 앞접시 위에다가 오늘 막 한 김치를 깔고, 그 위에 수육 한 조각을 올린 뒤, 새우젓갈과 쌈장을 올려 입에 집어넣고 씹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잘 먹네.
한국인 다 됐다.
그렇게 우리는 순식간에 밥과 고기를 먹어 치웠다.
대장장이는 가볍게 차를 마시고 돌아갔다.
——응? 마법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오늘은 많이 피곤한데······ 미안하지만 내일 하면 안 될까?
이러한 그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사실 많이 피곤했다. 오늘은 이것저것 한 일이 많았다.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내 인사에 어머니가 하품을 하며 손을 흔들어 보이곤 방으로 들어갔다.
“너도 고생했어. 처음 해보는 거라 많이 힘들었을 텐데.”
“힘들었지만 재미도 있었습니다.”
녀석이 활짝 웃었다. 나는 루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나저나 나 빨리 보여줍니다. 나 어서 보고 싶습니다.”
“아, 그거?”
루시가 눈을 빛내고 있었다. 마법 관련해서 녀석이 이렇게 관심 있어 보이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옷 입고 밖으로 나갈까?”
“좋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겉옷과 스태프를 가지고 바깥으로 나왔다. 불통을 가져와 불을 피우고, 그 앞에 의자 2개를 가져다 놓았다.
“으읏······!”
루시가 거기에 앉아 기지개를 켜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하품을 하는데,
“흐아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하품이 옮아버렸다.
그러한 내 모습을 본 루시가 킥킥거리며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웃었다. 그 바람에 눈물방울이 똑 떨어진다.
“준비됐어?”
내 말에 루시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양손에 스태프를 꼭 쥐었다.
“그건 왜?”
“실험해 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무슨 내용인지 궁금했으나, 어차피 자기 입으로 알려줄 것이었다.
나는 정신을 집중하고, 자연을 느끼며 시동어를 읊었다.
“플레이.”
——사아아아아!
풍경이 뒤바뀌었다.
“Holy mother······.”
루시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느리게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현실과 구분하기 쉽도록 해를 띄웠다.
“봐. 되지?”
솔직히 걱정도 했었지만 다행히 서버는 잘 열렸다. 아까 차에서 마법이 발동하지 않은 것은 집중력 차이인 것 같았다.
“마력석이 빛나지 않습니다······ 놀랍습니다. 이 서버는 오직 당신의 마력만으로 생성해 낸 것입니다.”
“그게 그렇게 놀라운 일이야?”
솔직히 비교 대상이 없으니 그렇게 큰 성취감이 들지 않는다.
“당신이 마음만 먹으면, 런던 마법 학회에서 온갖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평생.”
“헉, 지, 진짜?”
“하지만 시계탑에 틀어박혀서 마법만 연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분명 수많은 마법사들이 당신을 찾아올 것입니다. 난 그거 귀찮아서 학교 나왔습니다.”
갑자기 싹 식는다. 나는 그런 쪽에는 관심도, 욕심도 없었다. 그냥 조용히 사랑하는 이들과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싶다.
——딱!
나는 피로감을 느끼며 서버를 닫았다.
“이거 평소보다 훨씬 빨리 지치는 것 같아.”
“당연한 일입니다. 마력석의 보조 없이 해내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굳이 보조 동력을 뗄 필요도 없습니다. 아마ㄷ······.”
——따르르르릉!
루시가 말을 이으려는 찰나, 갑자기 내 전화기가 울렸다.
“누구입니까?”
“오재수인데?”
내 말에 루시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녀가 영어로 작게 욕설을 중얼거리는 것이 들린다.
나는 조금 고민을 하다가 전화를 받아 스피커폰으로 돌렸다.
「너······ 너 뭐야 고소장? 박재혁 박수혁 변호사? 미친 새끼가 나 조질라고 변호사를 둘이나 샀어? 내가 뭘 잘못했다고 고소를 해? 형 진짜 정머리 없다. 어?」
놈은 인사도 생략하고 바로 본론을 쏟아내었다.
아무래도 고소장을 받은 것 같았다.
정작 내가 전화할 때는 받지도 않더니.
「어떻게 한솥밥 먹던 동생한테 이러냐? 이거 장난이지? 내가 저번에 좀 놀렸다고······ 다른 놈들 이름은 또 왜 있어? 진다정? 이년은 또 누구야? 지랄 그만하고······.」
녀석은 말을 끊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재수야, 앞으로 이쪽으로 전화하지 말고, 할 말 있으면 변호사분들과 이야기 해.”
그래서 내가 전화를 끊었다.
녀석과의 과거 또한 끊어낼 때였다.
다시는 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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