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맞아?
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지를 뒤에 업어, 루시가 집에 장기 거주를 선언한 지 벌써 1주가 지났다.
어머니와 루시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그새 많이 친해져 있었다. 둘이 같이 장을 보거나 하는 일도 잦았다.
“기인이 왔어? 색시는?”
내가 읍내에 일이 있어 나갈 때마다 이런 소리를 듣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색시 아니라니까요, 참······.”
“좀 데리고 다녀. 니 아빠랑 엄마가 얼마나 잉꼬부부였는데. 날짜는 잡았어?”
“기인이 색시 붙임성이 좋더라. 외국인이 한국말도 잘해.”
어르신들은 내 말을 참 안 들었다.
“어머니, 부탁하신 흙 가져왔습니다.”
이내 어머니 꽃집에 들린 나는 흙 자루를 바닥에 잠시 내려놓았다. 꽃들을 손질하고 있던 어머니는 활짝 웃으며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항상 두는 곳에 두면 되죠? 또 필요하신 것 있으시면 언제든지 부······.”
어머니가 내 옷깃을 당겼다. 뒤를 돌아보니 어머니가 내민 것은 웬 작은 큐브였다.
그녀가 요새 취미 들였다는 레진 아트였다. 투명한 정육면체의 수지 안에 마법사 모자를 쓴 소녀가 들어가 있었다.
소녀 아래에 깔린 작은 꽃들이 참 예뻤다. 실화(實花)를 쓴 것 같았다.
“······루시 주라구요? 제가 만들었다고 하라구요?”
그녀는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야 이렇게 루시를 예뻐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밥만 축내는 날강도가 따로 없었다.
“너······ 일 시킨 거 안 했지.”
집에 돌아온 나는 루시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비스킷을 씹으며 넷플릭스를 보고 있었다.
“나 아픕니다. 런던에 주문한 마도서도 도착 안 왔습니다. 연구할 수 없습니다. 이 기다림은 합리적입니다.”
그녀가 붕대 감긴 손가락들을 흔들어 보이며 뻔뻔하게 말했다. 저 손은 진작에 다 나았을 것이 분명하다.
꾀병을 부리면서 배 긁으며 뒹굴거리는 꼴이 아니꼬웠던 나는 결국 한마디 했다.
“한국에는 이런 격언이 있지.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난 영국 사람입니다. 적용 불가입니다.”
내 이마에 핏줄이 솟는 것이 느껴졌다.
“야, 아롱이랑 콩이가 너보다 일을 많이 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그녀도 자존심은 있었는지 동물과 비교되자 버럭 화를 낸다.
“콩이, 열심히 쥐 잡으니 인정입니다. But 아롱이, 나와 비슷합니다. 아롱이 내 위 아닙니다.”
고양이가 너 위인 건 괜찮고?
“어휴 됐다. 자,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거야.”
“Oh, 반짝반짝 예쁩니다. 고맙습니다. 엄마 돌아오면 감사 인사합니다.”
나는 루시에게 큐브를 건넨 후 노트북을 펼쳐서 작업을 마저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창 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때, 문득 향기가 나서 고개를 돌렸다.
루시였다.
“무엇 합니까?”
내가 하는 일을 보고 흥미가 생긴 것 같았다.
“사람들 영상을 편집하는 거야. 그 사람들이 더 돋보일 수 있도록 연출하는 거지. 너도 영상을 올린 적이 있었잖아?”
“그렇습니다. 당신의 코멘트는 정말 기분 좋았습니다.”
“······.”
이 녀석은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얼굴이 조금 화끈거렸다.
“흠흠. 그런데 왜?”
“Hmm······.”
그녀는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조금 후에 입을 열었다.
“나도 다시 할 수 있습니까? 카메라 찍을 수 있습니다. 나 사람들 기억에 내 모습 남기고 싶습니다.”
의욕을 보이는 것은 좋았으나 나는 걱정부터 앞섰다.
“네가 예전에 글만 올렸던 거랑 네 얼굴 목소리 다 나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야.”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널 좋아해 주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악플 같은 것도 분명 달릴 거야. 내가 최대한 막아줄 수 있지만 모든 걸 막아줄 수는 없어.”
“악플이 무엇입니까? 내가 모르는 말입니다.”
“어······ 배드 코멘트?”
내 말에 그녀가 아하, 하고 짧은소리를 냈다.
“걱정 않습니다. 나 멘탈 다이아몬드입니다.”
자기 가슴을 탕탕 치는 모습을 보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알았어. 하다가 혹시 못하겠으면 말해.”
“물론입니다!”
우리는 악수를 나눴다. 계약이 성립됐다.
“내 최선을 다해서 널 도와줄게.”
“알고 있습니다.”
그녀가 씩 웃으며 맞잡은 손을 흔들었다.
나는 눈을 작게 뜨고 멀쩡히 기능하는 루시의 손을 쳐다보았다.
“너······ 역시 손 다 나은 거 맞지.”
“!”
그녀는 황급히 손을 빼서 뒤로 숨겼다. 쪼르르 눈동자가 굴러가며 내 시선을 피한다.
“어, 어드바이스는 없습니까?”
화제를 돌리려고 애쓰는 게 너무 대놓고 보인다. 그래도 뭐라도 하려는 게 보여서 넘어가 주기로 했다.
“뭐 좋아하는 거 있어? 취미라든가.”
“난 글 쓰는 걸 좋아합니다. 내 유일한 취미입니다. 글은 마법 같은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남고 존재합니다. 그래서 좋습니다.”
가볍게 물은 질문에 진지한 대답이 돌아와서 조금 놀랐다.
“그러면 채널은 왜 닫았어? 쭉 해보지.”
“녹화하기 귀찮습니다. 어차피 아무도 안 봅니다. 그리고 당신 찾아 떠날 준비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자기 전, 틈틈이 작성합니다.”
이번에는 그녀다운 대답이었다.
“완성되면 보여줄 거지?”
“당연합니다. 당신은 나의 유일한 구독자입니다.”
그녀가 이를 보이며 웃었다.
“아무튼······ 그러면 뭐 잘하는 건?”
우리는 다시 채널 컨셉의 주제로 돌아왔다.
“마법? 난 마법의 천재입니다.”
“그거 막 유튜브로 보여줘도 되는 거야? 어차피 사람들이 믿을 것 같지도 않긴 한데.”
“안 됩니다. 들키면 나 머리 뎅겅 당합니다. 머리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농담 같았으나 진짜라면 꽤나 살벌한 이야기다.
“그럼 그건 안 되겠고, 다른 건?”
“외국어? 난 언어의 천재입니다.”
이 녀석 천재라는 말을 남발한다. 하지만······.
“그러고 보니 너 처음에 내 이름도 못 알아봤잖아? 한 달 만에 이 정도로 익힌 거야?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내 물음에 그녀는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천재의 단어 의미를 알지 못합니까?”
“그게 아니라······ 그런데 너 언어 능력이 그렇게 좋으면 굳이 유튜브를 안 해도 되잖아. 단순히 학원 강사를 한다고 해도 떼돈 벌걸?”
그러자 루시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귀찮은 일 싫습니다. 나는 남은 시간 놀고 먹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행복하게 지냅니다. 그러면서 돈도 법니다. 이런 걸 넷 글자로 뭐라고 했었습니다······.”
그녀가 손을 입에 대고 무언가를 떠올리려 애썼다.
“······불로소득?”
“날먹인생!”
뭔가 틀린 말은 아니라 할 말이 없다.
“뭐, 아무튼 공부를 컨텐츠로 하는 유튜버들도 있어. 볼래?”
나는 그녀에게 옆의 의자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유튜브에 ‘스터디’라고 검색하자 다양한 동영상들이 쏟아져나왔다.
“신기합니다. 남이 공부하는 걸 왜 봅니까?”
“분위기가 있잖아. 도서관에서 공부하면 분위기에 휩쓸려서 좀 더 집중하게 되잖아? 비슷한 거지.”
루시는 나한테 바짝 붙어서 마우스 휠을 굴리다가 영상 하나를 클릭했다.
“이거 공부 맞습니까? 책 어디 있습니까? 여자 가슴밖에 안 보입니다.”
“······.”
“Oh? 이거 보는 사람 숫자 훌륭합니다.”
“이런 게 수요가 없는 건 아닌데······ 이거 말고 이걸 봐봐.”
나는 다른 영상을 보여주었다.
“이곳 사람은 제대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손하고 책만 보입니다.”
“아까 거보다 조회수가 훨씬 높지?”
“당신 말대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루시가 눈썹을 들어 올렸다.
“이런 영상을 찾는 사람들은 공부하려고 들어오는 거지, 여자 가슴 보려고 들어오는 게 아니거든.”
그리고 나는 해당 채널의 정보 버튼을 눌렀다.
“더 중요한 건 이거야. 보이지? 채널 주인의 프로필이야. 이 사람은 법대, 이 사람은 의사······. 인기 있는 전문직들이지. 시청자들은 이 사람처럼 되고 싶어서 그 발자취를 따라가려는 거야. 즉 니즈 파악이 중요하다는 말씀.”
“Hmmmmm······.”
루시는 입가를 이리저리 꿈틀거리며 고민의 신음 소리를 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녀가 내 의견을 물었다.
“난 이런 정적인 컨텐츠보다는 토크를 하는 게 네 캐릭터에 더 잘 맞을 것 같아. 너는 말을 특색있게 하니까.”
나는 ‘너의 개소리가 시청자들에게 잘 먹힐 것 같다.’라는 말을 최대한 포장해서 말했다. 맨 처음 루시를 보자마자 떠오른 생각이기도 했다.
“수익 창출을 하려면 구독자가 최소 2,000명은 필요해. 처음이니까 그걸 목표로 해보자. 동영상 시간은 하다 보면 채워질 거고.”
“2천 명······ 내 이전 채널 구독자의 2천 배입니다. 진입 게이트 높습니다.”
와닿지 않을 숫자에 루시가 풀이 죽었다. 조금 응원해 줄 필요가 있었다.
“넌 예쁘잖아. 그리고 한국어도 잘하니까 어필이 확실하지.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어. 금방 채울 수 있을 거야.”
내 말을 듣자 루시의 심드렁한 표정에 빠르게 미소가 번졌다.
“조금은 솔직해졌습니까? 나에 대한 평가가 공평합니다.”
“······상품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야.”
나는 헛기침을 하며 최대한 딱딱하게 말하려 노력했다.
“방송은 언제 합니까? 기대가 됩니다.”
“방송부터 하지는 않을 거야. 아직 스트리밍을 하기엔 찾아와 줄 구독자가 전혀 없잖아. 일단은 녹화 영상을 올리면서 사람들을 모아보자.”
“Oh, Expert. 전문적입니다.”
“나름 이 업계에서 오래 굴렀다구.”
내가 자랑하듯 말하자 루시가 이를 보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유튜브 하는 외국인 나뿐일 리 없습니다. 경쟁자 분명 많습니다.”
“그렇지. 참고를 위해서 이전 사람들은 어떻게 했나 찾아보는 것도 좋은 접근 방법이야. 개중에서 맘에 드는 채널을 모티브로 시작할 수도 있지.”
“뭐라고 서치해야 볼 수 있습니까?”
“외국인이라고 한글로 치면 많이 나올걸? 참, 채널 이름도 생각해 둬.”
루시가 의욕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 언어 쪽이 특기니까 영어를 교육하는 컨텐츠도 괜찮을 것 같네. 아무튼 난 다시 작업해야 하니까, 영상들 찾아보고 있어.”
“좋습니다. 날먹인생에 성공한 선배들을 보고 배웁니다.”
——타닥, 타닥.
——딸깍, 딸깍······.
키보드 마우스 소리와 함께 꽤 시간이 흘렀다. 루시는 여전히 영상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Oh?”
턱을 테이블에 대고 유튜브를 탐색하던 루시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듯 소리를 냈다.
나는 작업하던 것을 잠시 멈추고 루시의 스마트폰 화면을 보았다.
‘저, 저건······.’
——한국에서 유튜브 하는 외국인 시청 필수!
——구독자 쓸어 담는 마법의 주문!
마법의 주문이라는 말에 그녀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실제로 마법사여서 저 말에 더 끌린 것일지도 모른다.
“두 유 노 김치?”
나는 재앙의 기운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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