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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무새 님의 서재입니다.

왕의 어사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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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상상무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1
최근연재일 :
2024.05.31 17:30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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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추천수 :
2
글자수 :
122,627

작성
24.05.3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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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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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1화. 평화로운 하루

DUMMY

얼굴에 내리쬐는 햇빛 덕분에 눈이 부셨다. 눈을 감고 있는데도 눈꺼풀을 뚫고 들어오는 느낌이라,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겨우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옆으로 누운 상태로 눈을 떴더니, 베개가 눈에 들어왔다. 어느새 단정하게 접혀있는 이불을 보고 그대로 기지개를 폈다.


주인공은 부지런하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똑바로 누웠다. 강렬한 햇살이 또다시 얼굴을 비추었다. 마치 뱀파이어가 된 것처럼 햇빛에 잔뜩 고통을 받으며 자리에서 신경질적으로 일어났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방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여긴 주인공 조슈아의 방이다.


소설 속 세상의 캐릭터에 빙의를 했는데, 하필이면 주인공의 형의 몸으로 빙의했다. 왜 뜬금없이 주인공 조슈아의 침대에서 일어나게 됐냐면, ‘주인공의 형’은 원래 소설의 프롤로그 시점부터 ‘자살’을 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설의 내용대로 자살을 했고, 그 직후에 내가 그의 몸에 빙의하게 된 것 같다.


백작부부를 포함해서 주인공과 여동생 앨리스도 내가 ‘빙의자’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저, 자살기도 끝에 죽다 살아난 아들이자, 형이자, 오빠로서 인식하고 있다. 다만, 죽다 살아난 탓인지 후유증으로 기억 상실증에 걸렸다고 믿고 있다. 나도 그런 믿음을 이용하고 있다. 소설 속 세상이란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지만, 사실 내가 잘 아는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내 친구가 천수를 누린 다음, 이 세상에 환생 시켜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친구는 이 소설을 엄청 좋아했는데... 가장 최신 화까지 매일매일 유료로 결제하며 따라갔던 독자인 만큼, 그 녀석이 이 세상에 빙의했더라면 정보를 모두 활용해서 잘 살아갔을 거다. 나와는 다르게 반짝반짝 빛나며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 테지.


난 친구의 강력한 추천으로 소설 단행본의 1권만 읽어봤다. 물론 1권은 재밌었다. 그 다음 편을 볼 의사도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살면서 노는 일에 시간을 많이 쏟을 수는 없었다. 모두가 공감할거다. 무엇을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악착같이 경쟁하며 성과를 내야만 했다. 그 성과가 성적일 수도 있고, 연봉일수도 있고, 어떠한 프로젝트의 성공이나 계약일 수도 있고, 대기업으로의 경영이나 훈장일수도 있고... 뭐 어쨌든, 바쁘게 살았다.


친구가 추천해준 소설은, ‘내일’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렇게 끝없이 내일로 미루다보니, 이런 상황이 되어버렸다. 1권밖에 읽지 않은 소설 속 등장인물에 빙의해버린 거다. 그것도 프롤로그에서 자살하며 주인공을 각성시키는 매개체인 캐릭터에.


난 자살할 생각이 없지만, 어쨌든 캐릭터는 자살을 이미 시도했다. 그렇기에 내가 그의 몸에 빙의 해버린 거다. 그래서 주인공을 포함한 트로이안의 ‘가족’들은 나를 혼자 방에 두면 또다시 자살시도를 할 까봐 이렇게 남동생의 방에 함께 지내도록 강제했다.


지금 주인공은 내가 자살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뭐, 그런 입장이다. 다행히도 주인공인 조슈아는 나를 귀찮아하지 않았다. 소설의 설정상 주인공의 형제 관계는 좋은 편이다. 물론, 남매끼리도 사이가 좋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남동생의 방에 얹혀살게 되긴 했지만, 녀석을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여동생인 앨리스도 종종 트로이안의 방에 와서 이야기를 하다가 함께 자기도 했었다고 하니, 형이 남동생의 방에서 지내는 것도, 앨리스까지 조슈아 방에 와서 늦은 시간까지 재잘재잘 떠들다가 셋이 함께 침대에서 자는 것 정도는 크게 이상할 것도 없는 모양이다.


어제는 정말 엄청난 일들이 일어났었다. 별장에서 스케이트를 타러 간 조슈아를 마중 나갔다가, 갑작스럽게 시신이 발견되면서 여행자 테오가 용의자로 체포됐다.


조슈아가 테오를 용의자로 체포하고, 테오는 결백을 주장했기에 어쩌다보니 내가 ‘차기 백작’으로서 재판을 열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증거물들을 검토한 끝에 테오의 무죄를 선고했다. 거기서 끝나나 했는데, 알고 봤더니 테오의 정체는 전국을 순수(巡狩)하던 국왕 테오도시우스 12세였다. 게다가 테오는 라인베르크 백작님이 혹시나 반역의 마음을 품고 있지는 않은가 의심을 했었다.


내 입장에선 소설 속 세상에 빙의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기회를 얻은 만큼, 백작 가에 어떠한 불상사도 일어나질 않길 원했다. 그래서 오해를 풀기 위해 테오 국왕을 초대했고, 백작님은 국왕과 단독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처음에 들어갔을 때 분위기가 굉장히 차가웠는데, 대화가 끝난 다음 이루어진 식사 자리에서는 분위기가 나름 훈훈했다.


내 바람대로 서로에 대한 오해를 푼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아져서 저녁 식사자리에서 와인을 좀 들이켰는데, 트로이안의 몸은 술이 약한 건지 와인을 몇 잔 들이키자마자 그대로 뻗어버렸다. 기억이 안 난다. 어떻게 조슈아의 방에 들어온 건지도. ...설마, 기어서 오진 않았겠지?


대한민국에 살 때는 다들 나보고 ‘말술’ 혹은 ‘술고래’라고 불렀을 정도로 술이 센 편이었는데, 앞으로는 주의해야 할 것 같다. 눈곱을 떼어내고 옷을 갈아입은 뒤, 방 밖을 나서자 수많은 고용인들이 나에게 아침인사를 해주었다.


“좋은 아침... 세상에! 도련님 어제 누군가에게 맞으셨어요?!”


“좋은 아침입니다. 와인에게 두들겨 맞았습니다. 완패해버렸어요.”


심지어 와인에게 살려달라고 소리라도 질렀던 건지 목소리가 쩍쩍 갈라졌다.


“와인? 아아~! 이런, 술도 약하신 분이...!”


트로이안이 술이 약하단 사실은 고용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나 보다.


그럼 어제 식사 할 때 그만 마시라고 말 좀 해주지...!


아. 그리고 보니, 어제 와인을 더 달라고 부탁드릴 때 마다 ‘괜찮으세요?’ 라고 물어보긴 했었네. 부드럽게 그만 마시라고 권했는데 내가 단순해서 알아차리지 못했던 모양이다.


“도련님 안녕하... 아, 괜찮으세요? 주치의 선생님을 부를까요?”


“아마 주치의 선생님을 부르면 잔소리 때문에 숙취가 심해져서 제 머리가 깨져버릴 지도 모릅니다.”


“아, 아이고, 도련님이 깨져버리시면 안되는데...! 힘내십시오!”


그렇게 대꾸를 해주면서 지나가는 고용인들과 일일이 아침인사를 나누었다.


“도련님, 안녕... 히에에엑?! 눈이 퉁퉁 부으셨습니다!”


“‘히에에엑?!’ 이라니, 그렇게 소설 속 엑스트라처럼 놀라시면 어떡해요?”


“소설 속 엑스트라요? 그게 무슨 말이신가요?”


“주변에서 남을 띄워주기만 하는 사람을 말하죠. 하지만 그대 인생의 주인공은 당신이니, 스스로를 왕이라 생각하시고 귀하게 여기며 살라는 의미입니다.”


“네? 그러니까... 도련님을 방방 띄우지 말아달라는 말이신가요? 고용인의 입장에선 참 어려운 요구 같습니다만,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다음번에는 적당히 띄워드리겠습니다.”


고용인은 내게 엄지를 척 치켜 올리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본인이 왕인 주체적인 인생을 살라니까. 참, 말 안 들으셔.


...그보다, 그렇게 놀랄 정도로 내 눈이 많이 부었나? 거울을 확인하지 않고 나왔는데, 이대로 부엌으로 가서 주방장에게 날계란이라도 하나 빌려달라고 할까 고민했다. 계란을 눈두덩에 문지르고 있으면 붓기가 좀 빠지지 않을까?


“앗! 도련님, 조심하세요! 앞에 계단이 있어요!”


“저도 알아요. 눈 뜨고 있습니다.”


“어머! 눈을 뜨신 거예요? 전 감고 계시는 줄 알았어요!”


“그거 인종차별 발언이에요!”


“네? 인종차별이요?”


아. 나는 지금 동양인이 아니었지? 나는 손을 휘적거리면서 “어쨌든 차별은 옳지 않습니다. 누구나 평등하게 대해야 합니다.” 라고 말했더니 “차기 백작님께서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지만... 방금 도련님께서 진심으로 하신 말이라면 저희들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라는 대화를 나누었다.


이런 식으로 정신없이 고용인들과 소소한 담소를 나누며 헤어졌다.


...


잠깐, 생각해보니까 방금 나의 ‘평등 발언’에 대답을 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걸음을 멈칫하고 뒤를 돌아보았더니, 수많은 고용인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저 중에서 누구와 그런 담소를 나누며 헤어졌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저희들’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그건 성 내부에 평등을 주장하는 불순분자가 여럿이란 말이잖아. 그런데, 어쩌다보니 나도 그 불순분자의 호감을 산 것 같은데······.


아,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나중에 신분제 폐지 운동이나 혁명을 할 때 즈음이면 나에게 먼저 접촉하지 않을까? 아니면 내 도움이 필요할 때라던가.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는데, 소설에 대한 내용을 많이 모르고 있으니 어느 쪽이든 발을 걸쳐놔서 나쁠 건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도,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도, 저 멀리 미국과 프랑스마저도 각각의 발전해온 역사는 다르지만 결국 신분제 사회에서 평등 사회로 나아갔다는 공통점이 있다. 심지어 한국 사람이 쓴 소설 속 세상이니, 여기도 언젠가 그런 역사적인 발전 과정을 밟게 되겠지. 시민혁명이 일어나고 인권을 주장하게 되는 세상이 당장 내일 벌어질지도 모르는 거다.


화장실을 다녀온 다음 세수를 하면서 조금 더 말짱하게 정신을 차리고 외출복으로 갈아입기 위해서 트로이안의 방으로 향했다. 계단을 통해 위층으로 올라가 복도를 걷고 있으려니, 손 안에서 주사위를 굴리고 있는 낯선 이방인을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음? 오오~ 나의 수호천사가 아닌가!”


“안녕히 계세요.”


그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작별인사를 하고 등을 돌렸다. 그랬더니 뒤에서 다급하게 쫓아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아니, 왜 갑자기 방향을 바꾸는 거지?”


“생각해보니까, 제가, 그... 아! 가스밸브를 잠그지 않았던 것 같아서요.”


“가스밸브가 뭐지?”


“그러니까, 제가 아궁이에 불을 뗀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끄지 않고 나온 것 같아서요. 성에서 불이라도 나면 안 되니까 확인을 좀 하러 가보겠습니다. 그럼, 이만.”


“알았어, 알았어! 장난은 그만 치도록 하지. 화 풀어. 아, 지나가는 그대. 첫째 공자가 아궁이의 불을 끄지 않고 온 것 같다고 하니 확인을 해보게.”


그 말에 정말 지나가는 고용인이 고개를 숙이고 주방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도망갈 구실도 사라져버렸다.


“저쪽 방향으로 가던 길이었지? 어딜 가는 길이었나?”


“제 방에요. 옷이 그쪽에 있거든요.”


다시 발걸음을 옮기자, 국왕 테오가 나를 따라왔다.


왜 따라오는 거야? 옷 갈아입으러 간다고 했는데.


“옷을 갈아입기 전에 주치의를 불러야 하지 않겠나? 눈이 퉁퉁 부었어. 혹시 병아리가 그대를 때리던가?”


‘병아리’ 라고 하는 건, 이 소설의 주인공인 조슈아를 가리키는 말이다.


조슈아가 샛노란 금발머리를 가져서 그런지, 국왕 테오는 주인공을 ‘병아리’라고 불렀다.


두 사람은 딱히 사이가 좋지는 않다. 실의에 빠져 있던 국왕을 살인용의자로 의심해서 체포한 건 조슈아였으니까.


원래 소설의 스토리에서 두 사람 사이는 어땠을까? 내가 읽었던 단행본 1권에는 국왕이 등장하지 않아서 그와 주인공이 어떤 관계였을지 조금 궁금해졌다.


“조슈아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세요? 알코올에게 잔뜩 구타당한 결과입니다.”


“알코올?”


“술이요.”


“아하하! 하긴, 어제 식사자리에서 좀 과음을 하긴 했었어. 혀가 그렇게 꼬부라진 사람은 내 생에 처음 봤거든!”


“혹시 어제 제가 말실수를 하거나 그러진 않았었나요?”


“아- 딱히 없었네.”


“다행입니다.”


“사람 말을 하지 않았거든! 아하하하하! 노란 병아리가 기어가는 강아지를 업고 가는 모습이 꽤 인상 깊었네.”


나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이고 손으로 뜨거워지는 얼굴을 가렸다.


“제가 개가 됐었나요?”


“사실 혀가 너무 꼬부라져서 말이야. 뭐라고 하긴 했었는데, 다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 너무 취한 것 같으니 먼저 올라가라고 권유했더니, ‘그렇게까지 배려해주신다면 먼저 방으로 돌아가겠습니다~~’까지는 들었는데, 그 다음에 네 발로 기어갈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지.”


“제가 네 발로 기었군요...!”


“기어갔다는 건 조금 과장을 담은 거니, 그리 민망해 하지 말게.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가 카펫에 걸려서 넘어졌었어. 그 후에 아주 잠깐 기었지. 한... 20초 정도?”


20초면 꽤 오래 기었네.


그의 말에 민망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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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화. 평화로운 하루 24.05.31 5 1 13쪽
20 20화. 돌아가자 24.05.30 6 0 13쪽
19 19화. 폐정 24.05.29 6 0 13쪽
18 18화. 조각상 24.05.28 8 0 13쪽
17 17화. 원점? +1 24.05.27 8 1 13쪽
16 16화. 관문에 대해서 24.05.24 6 0 14쪽
15 15화. 그 사건? 24.05.23 7 0 13쪽
14 14화. 흉기 24.05.22 8 0 12쪽
13 13화. 조사 결과 24.05.21 9 0 13쪽
12 12화. 체포한 근거 24.05.20 6 0 12쪽
11 11화. 개정! 24.05.17 7 0 13쪽
10 10화. 의심과 단서 24.05.16 6 0 13쪽
9 9화. 조사 시작 24.05.15 9 0 12쪽
8 8화. 이방인의 정체 24.05.14 9 0 13쪽
7 7화. 진실을 밝혀봅시다. 24.05.13 11 0 13쪽
6 6화. 억울한 사람 24.05.10 9 0 14쪽
5 5화. 마중을 나가다 24.05.10 11 0 15쪽
4 4화. 소설 속 세상에 적응하기 24.05.09 13 0 13쪽
3 3화. 왜 그랬을까요? 24.05.09 12 0 11쪽
2 2화. 후회와 의문 24.05.08 15 0 12쪽
1 1화. 후회와 빙의 24.05.08 3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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