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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무새 님의 서재입니다.

왕의 어사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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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상상무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1
최근연재일 :
2024.05.31 17:30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193
추천수 :
2
글자수 :
122,627

작성
24.05.0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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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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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화. 후회와 의문

DUMMY

“이안 오빠!”


“왁!”


갑작스럽게 들린 하이톤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양 갈래로 깜찍하게 머리를 묶은 소녀가 양손을 허리에 올리고 화가 잔뜩 난 가시복어가 되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화장실 간다는 사람이 왜 여기 있어?! 오빠는 똥을 방에서 싸?!!”


여동생 ‘앨리스’가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시, 심장 마비 오는 줄 알았잖아...!”


너무 놀라서 심장이 아팠다.


“변기에 빠지기라도 했나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저택의 화장실은 전부 뒤지고 다녔다고!”


“미안, 미안.”


그녀의 눈치를 봤더니 그녀가 '흥-!' 하고 콧김을 거세게 뿜어냈다.


어쨌든 이 상황을 보면 내가 누구에게 빙의했는지 바로 이해가 될 거다.


앨리스가 나를 ‘이안오빠’라고 불렀다. 아마도, 트로‘이안’ 오빠라는 의미일거다. 주인공 형의 이름이 트로이안이다. 어제 통성명 한 사람들 중에서 ‘이안’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 내가 ‘트로이안’이라고 확신을 가져도 될 거다.


프롤로그에서 자살한 주인공 형에게 빙의한 상황이라니... 절로 한숨이 튀어나온다.


“그런데... 여긴 왜 왔어...?”


가시복어처럼 잔뜩 부풀어 올랐던 앨리스의 기세는 서서히 쭈그러들었다.


이 방은 ‘트로이안 폰 라인베르크’의 방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단순히 빙의를 하고 처음 눈을 뜬 장소일 뿐이지만, 앨리스의 입장에선 큰오빠가 자살을 시도한 장소다. 당연히 이 방에 내가 서 있다는 게 달갑지 않을 거다. 심지어 화장실 간다고 했던 오빠가 자살기도 장소에 돌아와 있다면, 더더욱 밝은 상상을 하긴 어려울 터다.


“아, 그게... ...화, 화장실이 어딘지 몰라서 찾고 있었어. 무의식적으로 발이 움직이는 대로 왔는데, 화장실이 아니라 방으로 와버렸네. 하하...!”


어색한 웃음을 섞어서 변명하자 시들시들하던 앨리스의 기세가 다시 살아났다.


“그런 거였어? 나 참...! 집 구조는 오늘 아침부터 돌아다니면서 알려줬잖아.”


“저택이 너무 넓어서 한 번 본 걸로는 다시 찾아가기 어려워.”


“어쩔 수 없지~! 내가 특별히 다시 안내해줄게~ 이번엔 잘 기억하라구!”


앨리스가 따라오라는 듯 새초롬하게 몸을 돌리기에, 책상 위의 유서를 힐끗 보고는 그대로 그녀를 따라갔다.


방문을 잘 닫고 그녀의 뒤를 따라 걷고 있다 보니, 메이드 복을 입은 하녀들이 정중하게 물러서서 인사를 해주었다. 앨리스는 앞장 서서 걸으면서 재잘재잘 거렸지만, 딱히 중요한 내용은 아니라서 건성으로 대꾸해주었다. 그녀의 말에 집중을 하는 게 예의였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친구가 영업한 ‘라인베르크 어쩌구 소설’ 속 캐릭터에 빙의를 한 것 같은데, 문제는 주인공이 모험을 떠나기 위해서는 그의 형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자살을 해야 한다. 그리고 정황을 보건데, 어제 ‘형’이 자살을 시도한 것 같다.


원래대로라면, 이대로 트로이안은 사망하고 주인공인 조슈아가 형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서 모험을 하는 이야기가 시작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내가 ‘형’의 몸에 빙의를 하면서, 소설 속 캐릭터들에겐 트로이안이 살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면 어떻게 되는 걸까?


조슈아의 모험은 시작되는 걸까? 아니면, 시작되지 않는 걸까?


조슈아는 형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그의 죽음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형이 억울하게 죽은 정황을 발견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모험을 떠난다. 모험을 하는 과정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을 도와주게 되고, 그 속에서 진실을 밝혀낼 힘을 얻어가게 된다.


원래 소설은 이렇게 중세 판타지 탐정 변호물로 진행이 되지만, 내가 빙의를 하게 되면서 소설이 시작조차 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어쨌든 트로이안이 자살을 하긴 했다는 거지. 그렇다면, 지금 트로이안은 억울한 일을 겪고 있는 상황이란 말이잖아?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꽤 위험한 상황인 게 아닐까?


그가 억울하게 죽었다면, 분명 트로이안을 궁지로 몰아간 자들이 있을 거다. 이렇게 숨 쉬고 있는 나를 알게 된다면, 한 번 더 트로이안을 궁지로 몰아버릴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소설을 보면, 정해진 운명을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고 교훈을 주는 이야기들도 있잖아? 만약, 이 소설도 그런 식으로 움직인다면? 트로이안의 자살은 정해진 운명이기에,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억울한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원작의 흐름이란 순리대로 움직이기 위해서 세상이 나를 자살로 위장시켜 죽이려고 든다면? 아니면, 내 의지를 꺾어버려서 스스로 자살을 하게 만들어 버린다면?


이렇게 한가롭게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란 말이 아닐까?


살인 예고장이라도 받은 기분이라, 앨리스가 앞에서 재잘재잘 거리고 있어도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두려움과 걱정에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오빠! 내 말 듣고 있어?”


“...어?”


나의 얼빠진 소리가 충분한 대답이 되었는지 순식간에 앨리스의 표정에 황당함이 담겼다.


“뭐야~! 대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그게 말이야. 혹시... 최근에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어?”


“억울한 일?”


앨리스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곧바로 되묻는다.


이렇게 즉각적이고 순수한 반응이라면, 정말 모르는 모양인데?


“정말 몰라?”


“오빠가 억울할 일이 뭐가 있지?”


“아니면 내게 원한을 품은 사람은 있었어?”


“왜? 원한을 품을 만한 일을 했었어?”


“몰라. 기억 안 나.”


당당하게 말했다.


지금의 나는 자살시도의 후유증으로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어제 방문한 의사의 질문에 어떠한 것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진단을 내린 거다. 기억 상실이 아니라 빙의라는 걸 알면 의사도 놀라 뒤집어지겠지?


사담이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어제 의사가 한 질문은 너무 어려웠다.


‘도련님에게 1000실버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가씨께서 100실버를 도련님에게 주었다면 도합 몇 골드입니까?’


단순한 산수는 당연히 나도 할 줄 안다. 1100실버잖아. 근데 갑자기 골드로 물어볼 줄 누가 알았겠냐고?! 단위가 다르잖아!


일반적으로 장르 소설에서 ‘100실버’는 ‘1골드’로 치환되지만, 당연히 소설마다 기준이 다르다. 1000실버가 1골드가 될 수도 있고. 안타깝게도 단행본 1권에는 화폐에 대한 서술이 나와 있지 않아서 정말 곤란했다.


고심 끝에 100실버가 1골드라 어림짐작하고, ‘11골드!’라며 자신 있게 정답을 외쳤더니 순식간에 기억상실증 환자가 되었다.


정답은 ‘1100실버’란다.


뭔 골드여.


골드라는 화폐 단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화폐 단위 이름이 공교롭게도 은을 의미하는 ‘실버’이긴 하지만, 그건 대대로 은본위제 사회로서 발전해왔기 때문에 그렇게 화폐 단위의 이름이 실버라고 붙은 것일 뿐이란다. 쉽게 말하자면, 대한민국에서 ‘원’을 의미하는 단어가 ‘실버’일 뿐인 거다.


1000원 더하기 100원은? 하고 물었으면 1100원이라고 말해야지. 갑자기 금덩어리 11개란 답을 하면 누구라도 이상하게 볼 거다. 심지어 금값을 원으로 환산해서 비교해도 정답이 아닌 액수라서 변명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세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기억상실증이라는 의사의 진단이 내려졌다.


나를 환자 취급하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점은 있다. 오늘 아침부터 여러 사람들에게 많은 질문을 받았지만, 모든 일에 ‘모르겠다.’로 대처할 수 있었거든.


솔직히 단행본 1권 밖에 안 읽었는데, 심지어 언제 봤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 내용을 어떻게 다 기억하겠어? 그래서 당당하게 기억상실증 환자로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모두가 내 상태를 알고 있으니, 모든 질문에 내가 ‘모른다!’ 하고 당당하게 말해도 환자 취급을 하지 바보 취급을 하지는 않았다.


소설 속 세상에 빙의할 줄 알았더라면, 친구가 영업했을 때 전권 다 빌려 볼 걸. 그랬다면 조금 더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을까?


후회가 스멀스멀 치밀어 올랐다.


아닌가? 지금과 별 차이가 없었으려나?


모르겠다.


“모르겠는데 왜 물어보는 거야?”


“응?”


“갑자기 억울한 일이나 원한을 산 일이 있냐고 물어보는 건, 뭔가 짐작 가는 바가 있어서 묻는 거 아냐? 뭔가 떠오른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그저,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으려고 물어보는 거지. 혹시 모르잖아? 하나를 떠올렸는데 연쇄적으로 기억이 살아날지도 모르고.”


“으음... ...내가 알기로는 오빠가 딱히 원한을 산 적 없었고, 억울할 일도 없었어. ...아! 한가지는 억울하겠다.”


“뭔데?!”


“내가 오빠보다 더 많이 예쁘고 귀엽다는 거? 엣큥!”


앨리스가 분위기를 바꾸려는 모양인지 과장된 몸짓을 하며 어울리지 않는 애교를 부렸다.


“지랄 노”


뇌를 거치지 않고 바로 튀어나왔다. 말을 하고도 살짝 놀라서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역시나 앨리스가 순식간에 가시를 세우는 복어처럼 변하고 있었다.


“뭐어어어라고오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안 좋은 말 한 거지?!”


“아, 아니야. 나도 모르게 저쪽 세상의 말을 해버렸네.”


“저쪽세상?”


“어어. 저쪽 세상. 갑자기 툭 튀어나와버렸네. 나쁜 말 아니야.”


“그럼 무슨 말인데?”


“나도 잘 모르겠어. 아마, ‘귀엽다’같은 의미가 아니었을까? 하하······.”


내가 어색하게 얼버무리려고 하자, 앨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저쪽세상’이란 단어를 곱씹어 보더니 안색이 조금씩 변했다.


“음... 오빠, 가능하면 저쪽 세상의 말은 전부 잊어줬으면 좋겠어.”


“왜?”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어. 이 세상에는 사후세계와 현실세계, 그리고 신들이 사는 세상이 존재한대. 그런데 특정한 세계에 속한 음식을 다른 세상의 사람이 섭취하게 되면, 그 세계에 소속된다는 규율이 있다고 해. 그래서 예전에는 어떤 미인이 사후세계로 납치 됐는데, 구출을 기다리다가 배가 고파서 저승의 음식을 먹었다는 거야. 그래서 그 사람의 가족들이 구출하러 왔을 땐, ‘규율’ 때문에 영원히 후회하며 저승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고 해.”


“아. 그거, 나도 알아. 음, 떠올랐어.”


페르세포네의 이야기 같다. 근데, 그거 그리스 로마 신화 아니었나? 이런 판타지 세상에도 존재하는 거야?


“전설에서는 ‘음식’이었지만, 혹시 모르잖아. ...‘말’도 규율에 포함될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분주히 움직이던 발을 멈추었다.


“자. 여기가 화장실이야. 다녀와.”


그녀는 나에게 닫힌 문을 가리켰다.


“앨리스, 마지막으로 묻는 건데... 정말 최근에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한 적 없었어?”


“내가 알기로는 없어.”


“억울한 일도 없고, 원한을 사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했던 걸까?”


“나도 몰라. 전혀 모르겠어. 오빠는 우리들에게 힘들다는 내색 한 번 안했어. 나에게도, 조슈아 오빠에게도, 엄마아빠에게도 말 안했어. 그래서... 그래서 어제 모두가 놀랐고, 많이 무서워했어. 나도 궁금해. 어째서 오빠가 그런 짓을 하려고 했는지... 오빠가 쓴 글을 읽어봐도... 그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의 이유인건지... 잘 모르겠더라. 그런 후회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잖아. 그리고... 살아가면서 언제든지 만회할 수 있는 후회잖아...? 아니면, 내가 틀렸어...? 만회할 수 없는 후회였던 거야? 난 정말 모르겠어...”


앨리스의 목소리가 점점 가늘어지고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혼란과 슬픔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에 죄책감이 솟아올라서 미안하다고 그녀를 토닥여 준 뒤에 화장실로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작품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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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화. 원점? +1 24.05.27 8 1 13쪽
16 16화. 관문에 대해서 24.05.24 5 0 14쪽
15 15화. 그 사건? 24.05.23 7 0 13쪽
14 14화. 흉기 24.05.22 8 0 12쪽
13 13화. 조사 결과 24.05.21 8 0 13쪽
12 12화. 체포한 근거 24.05.20 5 0 12쪽
11 11화. 개정! 24.05.17 6 0 13쪽
10 10화. 의심과 단서 24.05.16 5 0 13쪽
9 9화. 조사 시작 24.05.15 8 0 12쪽
8 8화. 이방인의 정체 24.05.14 9 0 13쪽
7 7화. 진실을 밝혀봅시다. 24.05.13 11 0 13쪽
6 6화. 억울한 사람 24.05.10 9 0 14쪽
5 5화. 마중을 나가다 24.05.10 10 0 15쪽
4 4화. 소설 속 세상에 적응하기 24.05.09 13 0 13쪽
3 3화. 왜 그랬을까요? 24.05.09 11 0 11쪽
» 2화. 후회와 의문 24.05.08 15 0 12쪽
1 1화. 후회와 빙의 24.05.08 3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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