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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무새 님의 서재입니다.

왕의 어사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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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상상무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1
최근연재일 :
2024.05.31 17:30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183
추천수 :
2
글자수 :
122,627

작성
24.05.2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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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4화. 흉기

DUMMY

“말도 안 돼...! 내 검에 묻은 혈액이 따스한 봄의 축복을 담은 피였다고? 하필이면 한스도 같은 축복을 담고 있었다고?!”


테오가 주먹을 꽉 쥐며 소리쳤다.


“그래! 그대는 이 칼로 피고인을 등 뒤에서 찔렀다는 말이 된다! 이 검이야 말로 그대가 범인이란 걸 입증하는 흉기! 위증죄와 함께 살인죄까지 달게 받아라, 이방인!”


“으윽...! 어떻게 이런 일이...!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뭔가 조사를 잘못한 게 아닌가?!”


“못 믿겠다면 네 놈 앞에서 직접 보여주지!”


조슈아의 명령에 경비병들이 새하얀 도자기 8개에 투명한 시약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는 혈액 검사가 진행되었다.


검에 묻은 피는 굳어 있었지만, 시약에 덩어리가 들어가자 서서히 혈액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굉장히 신기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한 명씩 나와서 본인들의 피 한 방울씩을 내어 시약에 떨어트렸다.


시약의 반응은 특이했다. 피가 다시 응고되는 그릇이 있고, 피가 굳지 않고 혈액 상태로 시약에 녹아있는 상태가 되는 경우가 있었다. 시약에 그대로 녹아있는 상태가 바로 같은 축복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축복’은 쉽게 말해서 ‘혈액형’이었다. 따스한 혹은 차가운 이란 수식어로 RH+와 RH-를 구분하고, 사계절을 각각 A형, B형, O형, AB형이라고 생각하면 됐다.


아까 부검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자는 따스한 봄의 축복을 담고 있다고 했다. 즉, RH+ A형이란 말이었다.


어쨌든 새롭게 한 혈액검사에도 조슈아가 말한 결과와 동일하게 나왔기 때문에, 테오는 굉장히 억울한 표정으로 이를 뿌득뿌득 갈고 있었다.


피해자의 혈액형은 RH+ A형.


피고인의 검에서 검출된 혈액형도 RH+ A형.


다만, 피고인의 옷에서 검출한 혈액은 모든 시약이 굳어버리는 바람에 어떤 혈액형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검시관은 이런 경우, 혈액 여러 개가 뒤섞여 있거나 매우 희귀한 축복을 담은 혈액이라 그런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어디, 또 다른 변명을 해보시지. 그래봤자 증거들은 네 놈이 범인이라고 말하게 될 테니까.”


조슈아가 의기양양하게 테오를 보며 말했다.


“피고인. 어째서 거짓을 말하셨습니까? 왕의 이름으로 법정에서 거짓을 말한 자는 벌금 100실버 혹은 태형 10대의 형벌을 받습니다!”


“으으... 그건... 그게... 말을 하기 곤란했어. 하필 시신을 발견했고, 공교롭게도 나는 사람을 죽이고 관문에 도달했지. 하지만 정말 믿어줘. 사람을 죽이긴 했지만, 한스는 절대 아니야. 저 영지민이 어째서 죽었는지는 전혀 몰라. 나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맙소사, 사람을 죽이긴 했다고요?!”


“하지만, 여기 영지민들이 아니야. 믿어줘.”


“매번 말이 바뀌고, 숨기는 게 많은 이방인을 얼마나 믿어줘야 하나? 이미 형은 너를 수도 없이 믿어주었어. 하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배신하고 있지. 네가 살해한 자가 영지민이 아니라는 증거도 없어. 실종자 명단을 뒤져봐야겠군. 연쇄 살인범일수도 있으니.”


“잠깐, 잠깐만 시간을 줘. 이럴 리가 없다고. 무언가 잘못됐어...!! 재판장, 나를 믿어줘.”


테오가 입술을 깨물고 초조해했다. 그는 초조한 듯 다리를 떨었다. 재판 석에서 봐도 그의 몸이 잘게 떨리고 있고,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기에 그에게 잠깐의 시간을 허락하기로 했다. 이건 그에게 있어서 목숨이 달린 중요한 일일 테니까.


조금의 시간이 흘렀지만, 테오는 여전히 어떠한 말도 하질 못했다. 그 모습이 안타까워서 내가 가지고 있던 보고서를 그에게도 보여주었다. 그는 종이를 재빠르게 읽어 나갔지만, 아무래도 너무 초조한 탓에 글자가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다시 보고서를 돌려 받은 뒤에, 고민을 하다가 테오의 입장에서 보고서를 검토해보기로 했다.


재판 전에도 말했었지. 자신은 결백하니, 증거를 제대로 검토하면 자신의 결백을 밝혀줄 것이라고. 정말 그렇다면, 이 보고서에 테오를 위기에서 구해줄 단서가 분명히 담겨 있을 터였다.


어디보자, 피해자의 사인은 원형의 관통상.

혈액형은 따스한 봄의 축복.

테오 씨가 가지고 있는 검에서도 검출된 피는 따스한 봄의 축복.


쯧... 이거 참... 흉기가 검이라는 사실이 너무 명백하게...


...


“어라? 명백...하지 않은데?”


내 목소리는 테오가 앓는 소리를 뚫고 조용한 천막 내부를 한 바퀴 돌았다.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시선을 두었다.


“조슈아. 잠깐만. 여기 부검 보고서, 이상하지 않아?”


“어디가?”


“원형의 길고 날카로운 무언가로 등과 가슴을 관통하는 상처를 입었다고 적혀 있는데... 피해자가 테오 씨의 검에 찔려 죽었다면, ‘원형의 길고 날카로운 무언가’의 형태로 상처가 생길 수 있어? 테오 씨의 검은 얇은 한손검이었잖아. 검에 찔린 상처를 표현했다면, ‘일직선’의 상처 혹은 엄밀하게 말해서 ‘폭이 매우 좁고 긴 타원형’의 상처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테오 씨였다면, 이의가 있을 것 같은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테오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어째서... 나를 변호해주는 거지...?”


내가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했다는 사실에 놀란 모양이었다.


“변호가 아닙니다. 증거를 더 자세히 봐달라면서요? 증거가 진실을 알려줄 것이라고요. 그래서, 그러고 있는 중입니다.”


“재판장...! 그대...!”


테오가 감동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검시관을 데리고 와.”


조슈아의 말에 경비병이 다급하게 천막 안에 있던 한 사람을 데리고 왔다.


그도 똑같이 경비병들과 같은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투구는 벗고 있는 상태였다.


“부르셨습니까, 공자님.”


“여기 부검에 적혀있는 ‘상처의 모양’이 ‘원형’이라고 적혀 있는데요. 정확하게 어떤 모양이에요? 제가 직접 보지 못해서요.”


“말 그대로 원형의 상처였습니다. 이런 원형 말이죠.”


경비병이 자신의 검지와 엄지를 동그랗게 굽혀서 O모양을 만들었다.


!


“그렇다면 칼에 찔린 상처라고 말할 수 없지 않나요?”


“칼을 찌른 상태에서 열쇠를 넣고 돌리듯이 비틀어도 그런 원형의 상처는 생겨.”


조슈아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런 상처였나요?”


“흐음... 실제로 비틀면 그런 상처가 나기는 합니다만...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둘째공자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정말이야?!”


“검을 찔러놓고 비틀어 놓은 상처가 아니었다고?”


조슈아의 미간이 좁아졌다.


“예. 부검서에도 기록해두었습니다. 단 한 번, 강력한 힘으로 아주 깔끔하게 피해자의 몸을 관통했다고요. 신체 내부에서 검으로 비틀어버리면 깔끔하게 관통하지는 않습니다. 매우... 더럽, 아니지, 내부에 거친 상처가 남죠. 하지만, 이번 상처는 굉장히 ‘깔끔’했어요. 마치, 얼음송곳 같은 것에 푹 찔린 것처럼 말이죠. 만약 무기 중에서 유사한 상처를 낼 수 있는 걸 생각 해본다면... 그렇죠, 토너먼트 마상 경기에서 쓰는 ‘창’처럼 생기지 않았을까요? 그것도 끝의 안전장치를 빼버린 창 말입니다.”


검시관이 ‘깔끔’에 악센트를 넣었다.


“하지만, 여행자의 검을 봐. 이렇게 많은 혈흔이 굳어 있어. 심지어 아주 작지만 뜯겨나간 살점들이 피에 엉겨 붙어서 함께 굳어 있다고...! 이런 건 단순히 찌르는 상처에는 나오지 않아.”


“조슈아의 설명에 동의하시나요?”


“네, 방금 설명은 둘째 공자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아마 저 여행자는 누군가를 검으로 찌르고, 비틀어버린 뒤에 검을 뽑아내어 죽였을 겁니다. 그리고 피가 묻은 검을 검집에 그대로 쑤셔 넣은 것 같네요.”


“그렇다면, 이 무기는 한스 이올트를 살해한 흉기가 아니란 말인가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한스’를 해친 흉기일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합니다.”


!


조슈아와 테오의 표정이 순식간에 상반되게 변했다.


“그, 그렇다면 내 검은 흉기 후보에서 벗어나게 되는 거지? 그렇다면, 한스를 해친 진짜 흉기를 찾아내면 범인을 유추할 수 있겠네?! 동그란 모양의 상처라고 했지? 아, 그렇다면, 나는 조슈아가 범인이라고 주장하겠어!”


어느새 눈을 빛내는 테오가 소리쳤다. 동시에 조슈아가 양손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쾅-!


“헛소리 하지 마라!”


“아니, 근거가 있어!”


“근거가 있다고요? 말해보세요.”


“‘스키 스톡’은 어떻게 생겼는지 다시 설명해줘!”


“너 이 자식, 설마...!”


조슈아는 그렇게 대답하다가, 눈을 부릅떴다.


“존경하는 재판장, 방청객 여러분들! 재판을 시작했을 때, 저 노란머리 도련님이 했던 말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가 말했었지. ‘본인은 이맘때 즈음에 겨울 스포츠를 즐긴다. 주로 스케이트와 스키를 즐기는데, 그 중에서 스키 장비에는 ’스키 스톡‘이란 게 있고, 그것은 언 땅을 쉽게 찍을 수 있도록 끝이 뾰족하다고! 양손에 드는 막대기 같은 것이라고! 그러니까, 그걸로 등 뒤에서 피해자인 한스를 죽인 거야! 스키 스톡이야 말로 진짜 흉기이고, 그것은 곧 저 노란머리 도련님이 영지민인 한스를 죽인 범인이란 걸 가리키게 되는 거지!”


“조슈아. ‘스키 스톡’의 굵기가 어느 정도인지 말해줄 수 있어?”


“은화의 지름과 흡사한 크기야.”


“경비대장님, 잠깐 은화를 가진 것이 있나요?”


경비대장이 다급하게 허리춤을 뒤적거렸다가, 은화를 한 개 나에게 주었다.


은화는 500원짜리 동전만했다.


“검시관, 시신의 상처와 이 은화의 지름을 비교해보세요. 어떻습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검시관이 나에게서 은화를 건네받더니, 조슈아의 양해를 구하고는 책상 위에 있는 양피지를 펼쳤다.


내가 고개를 빼들었더니, 조슈아의 양피지에는 도형이 그러져 있었다. 아주 간략하게 그린 사람의 앞모습과 뒷모습을 그린 그림에, 등과 앞에 ‘원형의 상처’가 동그라미로 그려져 있었다.


“잠깐만요! 검시관, 왜 저에게 준 양피지에는 자세하게 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은 겁니까?!”


“네? 이 보고서는 재판장님 것이 맞습니다만...?”


“저한테는 글로만 요약된 보고서를 주셨잖아요.”


“네? 그림이 그려진 양피지가 재판장님께 올린 보고서입니다. 저는... 동생분이셔서 보고서를 보여주신 건 줄 알았습니다만...?”


아.


조슈아가 홧김에 내 것을 들고 가 버렸지. 그 다음엔 바로 재판을 시작할 분위기가 되어버렸고. 그래서 경비병이 나에게 간략화 된 보고서라도 쥐어준 거구나.


“죄송합니다. 재판을 시작했을 때 아무것도 없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서... 원래 조슈아님에게 드릴 보고서를 재판장님께 드렸습니다.”


경비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아... 알겠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겠으니, 보고서 건은 넘어갑시다. 검시관님, 상처와 실버를 비교해보면 어떤가요? 지름이 비슷한가요?”


“네, 비슷합니다.”


“뭐라고?!”


조슈아가 놀란 표정으로 검시관을 노려보았다.


“등 뒤의 상처가 실버의 지름과 거의 흡사합니다.”


검시관의 말에 방청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여...?”


“검으로 찔러 죽인 게 아니었다고?”


“스키... 스톡? 뭐시기로 찔렀다는 거야?”


“아니, 조슈아님이 어째서?!”


“설마... 허억!”


“혹시, 그 사건 때문에 둘째 공자님께서...?!”


경악한 목소리가 천막을 가득 채웠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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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화. 평화로운 하루 24.05.31 4 1 13쪽
20 20화. 돌아가자 24.05.30 5 0 13쪽
19 19화. 폐정 24.05.29 5 0 13쪽
18 18화. 조각상 24.05.28 7 0 13쪽
17 17화. 원점? +1 24.05.27 7 1 13쪽
16 16화. 관문에 대해서 24.05.24 5 0 14쪽
15 15화. 그 사건? 24.05.23 6 0 13쪽
» 14화. 흉기 24.05.22 8 0 12쪽
13 13화. 조사 결과 24.05.21 8 0 13쪽
12 12화. 체포한 근거 24.05.20 5 0 12쪽
11 11화. 개정! 24.05.17 6 0 13쪽
10 10화. 의심과 단서 24.05.16 5 0 13쪽
9 9화. 조사 시작 24.05.15 8 0 12쪽
8 8화. 이방인의 정체 24.05.14 8 0 13쪽
7 7화. 진실을 밝혀봅시다. 24.05.13 10 0 13쪽
6 6화. 억울한 사람 24.05.10 8 0 14쪽
5 5화. 마중을 나가다 24.05.10 10 0 15쪽
4 4화. 소설 속 세상에 적응하기 24.05.09 12 0 13쪽
3 3화. 왜 그랬을까요? 24.05.09 11 0 11쪽
2 2화. 후회와 의문 24.05.08 14 0 12쪽
1 1화. 후회와 빙의 24.05.08 3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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