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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무새 님의 서재입니다.

왕의 어사로 살아가는 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추리

공모전참가작

상상무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1
최근연재일 :
2024.05.31 17:30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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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수 :
122,627

작성
24.05.0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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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화. 후회와 빙의

DUMMY

인생의 여정이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있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담긴 진의를 조금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렇게 후회할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발버둥치며 노력해볼 걸 그랬다.


이렇게 고독할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소중히 여겨볼 걸 그랬다.


이렇게 책임이 이렇게 힘겨운 것인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끈기를 가져볼 걸 그랬다.


이렇게 따뜻한 것인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용기를 가져볼 걸 그랬다.


내게 기회가 주어졌더라면.


내가 희망을 붙잡을 여력이 남아있었더라면.


이런 유서 따위... 남기지 않았을 텐데.


***


편지를 눈으로 훑어 읽어 내렸다. 착잡한 심정이 되어 절로 손가락에 힘이 빠졌다.


팔락-


책상위에 뻣뻣하고 건조한 종이가 떨어지며 작은 소음을 만들어냈다.


[인생의 여정이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있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누리끼리한 종이에 앉아있는 새까만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어디에서나 적용할 수 있는 후회들이라, 나도 조금의 공감을 느꼈다.


언젠가 나도 힘든 시간을 겪을 때 이렇게 생각한 적 있었다. 내게 주어진 운명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더라면, 아마도, 무언가 바뀌지 않았을까?


매 순간을 의미 있게 살았을 거야.


아마도,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이렇게 후회를 잔뜩 머금은 글자를 다시 바라보았더니 어쩐지 씁쓸했다.


이 유서는 내가 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드는 글귀였다.


추측이지만, 이 ‘몸의 주인’이 유서를 썼을 때의 감정을 기억하고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슨 소리냐고?


아아- 나는 빙의자다. 어제 소설 속의 캐릭터에 빙의했다.


‘빙의’는 요즘 장르 소설책을 펼치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설마, 내가 빙의를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소설 속 세상으로의 ‘전이’도 아니고 ‘빙의’다.


‘빙의’라고 하면, 보통 귀신이 살아있는 인간의 몸에 들어가는 걸 말한다. 그러니까 내가 빙의를 했다는 건 곧 내가 귀신이었다는 의미이다.


소설 속의 빙의는 현실과 다른 의미로 사용했다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내가 여태까지 읽었던 빙의물 소설들은 현실에서 쓰는 의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보통 빙의물 소설의 전개는 주인공들이 여러 가지 사유로 현실에서 사망한 뒤,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소설 속 세계의 엑스트라에 빙의하여 활약한다는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그렇게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솔직히 마음 같아선 빙의라는 걸 부정하고 싶다.


다른 빙의 소설의 주인공들과 다르게 난 죽었다는 기억이 없다. 사고를 당하기 직전의 기억 같은 것도 없고, 몸에 어떤 이상 증상을 느꼈던 적도 없다. 그런데 어제 갑작스러운 빙의를 해버렸다.


‘전이’는 확실히 아니다. 거울을 확인해봤는데, 예전의 내 얼굴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 ‘환생’도 아니다. 정체불명의 서유럽풍 중세 판타지 세계관에서 태어나고 자란 기억이 전혀 없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대한민국이었다. IT강국, 아니 그 전에 양자역학의 축복을 받은 세상에서 과학의 품에 안겨 살아가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처음 눈을 떴을 땐 진짜 장난 아니게 놀랐지.


내겐 죽는 순간의 기억이 없다. 그러니, 내 입장에서는 평범하게 귀가를 하던 중에, 눈이 좀 뻑뻑한 것 같아서, 평소보다 조금 더 길게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을 뿐인데 순식간에 배경이 변하더니, 낯선 세상에 덩그러니 떨어졌다.


정말 놀랐지. 환생 트럭이 돌진했던 것도 아니다. 교통사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횡단보도 신호등이 파랗게 변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진짜 잠깐 눈 감았었는데. 매연 때문이었던 건지, 그저 눈이 건조했던 건지, 평소보다 조금 더 길게 눈을 감았다가 떴더니 내 목에는 새하얀 천이 감겨 있었다.


심지어 콱! 조르고 있었다!


숨이 틀어 막히고, 강렬한 압박감에 목을 조르는 천을 어떻게든 떨어트려 놓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주변에서는 내 목을 조르는 천을 어떻게든 빨리 풀어주려고 노력하는 낯선 사람들이 보였고 말이다.


그들의 정체는 빙의한 몸의 부모님과 여동생이었다. 그리고 일부의 기사들도 나를 구출하는 일에 도와주었다. 영어로 나이트(Knight)라 부르는 그 ‘기사(騎士)’가 맞다.


어쨌든 모든 것이 갑작스러웠다. 눈을 감았다 떴는데, 낯선 공간이었다. 공간을 제대로 확인하기도 전에, 목이 졸려서 이성이 사라지고 살고자 하는 본능이 나를 잠식했다. 겨우 목을 조르는 천에서 벗어났나 싶었는데, 거칠게 숨을 고르는 내 시야에는 날카롭게 빛나는 칼이 보였다.


날 구해줘서 고마웠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검을 착용하고 있었으니, 내 입장에서는 얼마나 놀랐겠어? 대한민국에서 칼을 들고 있는 사람을 길에서 만나게 된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야 한다. 그런데 칼을 찬 사람이 눈앞에 있다. 심지어 낯선 장소다. 내가 서 있던 횡단보도도 아니야.


무기를 든 우락부락한 외국인들이 나를 둘러 싸고 있고, 주변을 확인했더니 실내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어두컴컴하고 싸늘한 방이었다. 심지어 방금 전까지 내 호흡을 틀어막았던 새하얀 천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공포심에 비명을 지르기엔 충분한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제의 나는 겁에 질려서 온갖 비명을 지르며 외국인들에게 살려달라고 빌었다.


재차 강조하지만, 난 죽기 직전의 기억이 없었다. 그래서 납치라도 당한 줄 알았다. 횡단보도에서 무방비하게 있던 나에게,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손수건에 약이라도 묻혀 나를 단숨에 기절시키고 끌고 온 줄 알았다.


나를 납치한 이유가 있었을까? 대체 왜?


공포에 절여진 뇌는 그 당시에 그럴 듯한 답을 내놓았다.


‘장기매매범 인가봐!’


어쨌든, 공포에 질린 나는 그들에게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살려주세요! 전 모아놓은 돈도 별로 없고 건강도 안 좋아서 장기를 빼가도 소용없을 거예요!’ 라고 말하며 싹싹 빌었다.


덕분에 쪼그마한 소녀에게 정신 차리라는 이유로 등짝을 수 십 대나 얻어맞았다.


그녀는 스스로를 내 동생이라고 밝혔다. 어제는 나이도 어린데 미쳐서 참 딱하다 생각했지. 그런데 현실을 모르는 건 나였다. 그녀는 내 여동생이 맞았다. 정확하게는 내가 빙의한 육체의 여동생. 우다다다다다- 하고 나를 때리는 손이 어찌나 매운지, 아직도 등이 따가울 정도다.


지금 내가 서 있는 방은 어제 소란이 있었던 장소다. 어제는 어둡고,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살펴볼 경황이 없었기에 무슨 단서라도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 이렇게 다시 처음으로 빙의한 장소로 돌아온 것이다. 휘황찬란한 방이었다. 그것 말고는 특별할 것이 없는 방이었다.


그리고 발견한 게 이 유서다. 이걸 읽으니까, 겨우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아, 여기는 소설 속 세상이구나. 나는 소설 속 캐릭터에 빙의했구나.’ 하고 말이다.


사실 어제 밤부터 이 세상의 정체가 소설은 아닐까? 추측은 했었다.


어제 여동생이라고 스스로를 밝힌 소녀와 통성명을 끝냈는데, 그녀의 이름은 앨리스 폰 라인베르크라고 했다. 어디서 들어봤다 생각은 했지. 근데, 뭐... 내가 외국인들과 평소에 친분이 있는 건 아니라서 기분 탓이라 생각했었다.


부모님이라고 밝힌 분들과도 통성명을 끝냈다. 아버지는 하일, 어머니는 캐서린이고 역시나 성은 라인베르크로 같다. 역시나 익숙하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들의 이름이 내가 언젠가 봤던 장르 소설의 등장인물이라고는 떠올릴 새가 없었다.


어제의 내 입장은 이성적인 사고를 하기엔 너무나도 혼란스러웠고, 엉망진창이었다.


애초에, 소설 속 빙의라는 가설을 바로 떠올리는 건 현실성이 없지 않나? 가장 먼저 의심해야 되는 건, 내가 '조현병'이라도 생겼나? 혹은 내가 치매라도 걸린 건가? 라고 의심을 먼저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현실적이지.


...어쨌든, 나는 그렇게 현실적인 의심을 하면서 어제를 보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내가 조현병이나 치매를 앓고 있다고는 믿을 수가 없어서 다른 단서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여기가 소설 속 세상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도출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단순히 생각을 떠올렸을 뿐 진지하게 검토하지는 못했다. 나를 보며 펑펑 우는 외국인들을 달래주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들과 대화를 좀 나눠보려고 했더니 의사란 사람이 와서 내 정신을 쏙 빼놓았고, 의사가 가고 나서 그들과 대화를 좀 해보려고 했더니 일단 약을 먹고 쉬자고 하기에, 일단 약을 먹었고, 대화를 좀 해보려고 했더니 잘 시간이니까 일단 자고 내일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얼결에 궁전 같은 방에서 여동생이라는 아이와 부모님이란 외국인들에게 둘러싸여 거대한 침대에 눕게 됐다. 고요하고 정적인 밤이 찾아오고 나서야 '이 사람들 이름이 라인베르크라고 했지? 혹시... 친구가 추천해줬던 그 소설 속 주인공의 집안인가?' 하고 내가 얻은 단서들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분명히 내가 본 책이 맞지만, 기억을 잘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사실 내가 찾아 본 소설은 아니고, 친구가 재밌으니 읽어보라고 추천해서 딱 1권만 읽은 소설이라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대략... ‘라인베르크 백작가의 둘째 공자는 어쩌고저쩌고 하며 억울함을 풀어줍니다.’ 뭐, 그런 느낌의 제목이었다.


솔직하게 기억이 잘 안 난다. 엄청 길었어. 어쨌든 친구가 하도 재밌으니까 보라고 영업을 했었기에, 단행본으로 나온 1권만 읽은 적이 있었다.


제목에서 보다시피 주인공은 ‘라인베르크 백작가의 둘째 공자’다. 이름은 ‘조슈아 폰 라인베르크’


주인공인 조슈아는 ‘천재지만 그 재능을 숨기고 한량으로 살아가길 원하는 캐릭터’다. 천재임을 숨기는 이유는 조슈아에게 형이 있기 때문인데, 괜히 천재임을 드러내서 형제 관계가 틀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인베르크 가문의 남매들은 서로 사이가 좋다는 설정이었다.


이 소설은 조슈아의 형 ‘트로이안’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자살하면서 시작된다.


한량으로 살아가던 조슈아는 형의 죽음으로 각성하게 된다. 주인공의 목표는 단 하나, 형의 억울함을 씻어주는 것.


다만, 형이 억울하게 죽은 탓일까? 조슈아는 억울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하나 둘 사소하고도 작은 사건에 참견하기 시작한 조슈아는 점점 회차가 쌓여 나갈수록 사람들의 영웅이자 세상의 구원자가 되어간다.


그런 내용의 소설이었다.


방금 책상 위에 올려둔 유서를 보고 나서야, 내가 소설 속 세상에 빙의했단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단행본 1권에 이 유서가 그대로 적혀 있거든.


유서 내용은 기억이 난다. 너무나도 포괄적인 후회만 잔뜩 전혀 있어서 독자로서 책을 읽을 때 아주 작은 공감을 했었고, 거기다 주인공이 '대체 이 글 어디에 죽을 이유가 있냐'며 유서를 읽고 슬픔을 터트리던 장면이 있었기에 조금 더 기억이 명확하다. 솔직히 잘 모르는 독자의 입장에서도 주인공의 의견에도 공감했다.


어쨌든 이 유서를 통해 내가 소설 속 세상에 빙의했단 것도 알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왜냐하면 어제 분명히 내 여동생이라고 밝힌 앨리스가 나를 부를 때-


“이안 오빠!”


“왁!”


갑작스럽게 들린 하이톤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양 갈래로 깜찍하게 머리를 묶은 소녀가 양손을 허리에 올리고 화가 잔뜩 난 가시복어가 되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화장실 간다는 사람이 왜 여기 있어?! 오빠는 똥을 방에서 싸?!!”


여동생 ‘앨리스’가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시, 심장 마비 오는 줄 알았잖아...!”


너무 놀라서 심장이 아팠다.


“변기에 빠지기라도 했나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저택의 화장실은 전부 뒤지고 다녔다고!”


“미안, 미안.”


그녀의 눈치를 봤더니, 그녀가 흥-! 하고 콧김을 거세게 뿜어냈다.


어쨌든, 이 상황을 보면 내가 누구에게 빙의했는지 바로 이해가 될 거다.


앨리스가 나를 ‘이안오빠’라고 불렀다. 아마도, 트로‘이안’ 오빠라는 의미일거다. 주인공 형의 이름이 트로이안이다. 프롤로그부터 자살하며 이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캐릭터.


프롤로그에서 자살한 주인공 형에게 빙의한 상황이라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부족한 작품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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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화. 원점? +1 24.05.27 8 1 13쪽
16 16화. 관문에 대해서 24.05.24 5 0 14쪽
15 15화. 그 사건? 24.05.23 7 0 13쪽
14 14화. 흉기 24.05.22 8 0 12쪽
13 13화. 조사 결과 24.05.21 8 0 13쪽
12 12화. 체포한 근거 24.05.20 6 0 12쪽
11 11화. 개정! 24.05.17 7 0 13쪽
10 10화. 의심과 단서 24.05.16 5 0 13쪽
9 9화. 조사 시작 24.05.15 8 0 12쪽
8 8화. 이방인의 정체 24.05.14 9 0 13쪽
7 7화. 진실을 밝혀봅시다. 24.05.13 11 0 13쪽
6 6화. 억울한 사람 24.05.10 9 0 14쪽
5 5화. 마중을 나가다 24.05.10 10 0 15쪽
4 4화. 소설 속 세상에 적응하기 24.05.09 13 0 13쪽
3 3화. 왜 그랬을까요? 24.05.09 11 0 11쪽
2 2화. 후회와 의문 24.05.08 15 0 12쪽
» 1화. 후회와 빙의 24.05.08 33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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