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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무새 님의 서재입니다.

왕의 어사로 살아가는 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추리

공모전참가작

상상무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1
최근연재일 :
2024.05.3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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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27

작성
24.05.1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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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8화. 이방인의 정체

DUMMY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자세히 봐봐. 정말 저 사람이 범인이라고 생각해? 양심에 손을 얹고. 아니, 신에게 자세히 봤다고 맹세할 수 있을 정도로 자세히 보란 말이야. 누군가가 앞으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뺏을지 말지, 그 기로에 우리가 서 있다고.”


조슈아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조슈아는 억울한 사람을 도와주는 주인공이다. 하지만 원래는 그렇게 인정이 많은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량으로 살았던 세월이 길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조슈아는 자기 마음대로 자유분방하게 행동하는 이기적인 삶을 살아갔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가족들에게는 따뜻했지만, 타인에게는 살갑게 구는 성격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의 신분을 떠올려보면 살갑게 굴 이유도 없었다. 남들이 오히려 그에게 살갑게 굴어야만 했지. 그래서 오히려 독선적이었고, 타인에게 차가운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사람을 조슈아가 도와주었던 건, 순전히 트로이안 때문이었다. 형이 억울하게 사망했기 때문에, 억울한 사람들을 보면 트로이안이 떠올라서 죄책감 때문에 마지못해 도와준다는 설정이었다. 심지어 타인에게 예의 있게 행동한 것도 필요해서 그랬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을 존중했기 때문이 아니라, 트로이안과 관련된 진실을 캐기 위해서, 진실을 캐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해서 그들의 협조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지.


조슈아는 그런 신분을 타고 났었다. 대귀족인 백작가의 차남. 말이 백작이지, 그들이 가진 권력을 보나, 재력이나 소유한 토지로 보나, 그들이 운영하고 있는 사병의 규모를 보나, 사실상 소국의 왕자나 다를 바가 없는 존재였다. 심지어 이 세계관은 왕의 위상이 낮다. 그래서 봉건계약을 통해 여러 소국의 대표자를 자처하고 있지만, 소국의 자치권에 대해서 함부로 손을 대기엔 국왕들도 부담스러워 하는 형편이었다. 그 증거도 있다. 지역마다 관습법이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점. 그리고 현 국왕이 편찬한 법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작님조차도 나에게 이 법을 잘 지켜야 한다는 당부를 하신 적이 없었다.


오히려, 관습법의 사례를 더 읽어보라고 했었지. 이건 더더욱 중앙의 권력이 강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조슈아는 소국의 왕자로 태어났고, 심지어 장남이 죽으면서 그 자신이 후계자가 된 상황이었다. 그런 조슈아가 예의를 갖추어야 할 사람이 세상에 대체 몇 명이나 됐을까?


봉건계약상 군주의 지위를 얻게 된 소수의 후작들, 그보다 더 적은 공작들, 그리고 세계에 유일한 국왕 말고는 없다고 보면 된다. 모험을 떠나는 데, 길거리에서 후작과 공작과 국왕을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되겠어? 살면서 예의를 차릴 이유가 단 하나도 없다. 누군가에게 살갑게 굴면서 다가갈 사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소설의 전개가 끊임없이 이어졌다는 건, 작가의 아주 강한 의지가 적용이 됐기 때문이다.


작가는 사건의 전개를 위해서 여러 가지 장치를 조슈아에게 넣어두었다. 사람들이 호의적인 마음을 품고 그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미남이라는 장치를.


억울한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베풀고, 공감이라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일 수 있도록 죄책감이라는 장치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슈아에게 ‘억울함 트랩’의 속성을 부여했다.


아, 억울함 트랩이란 단어는 방금 내가 만들어냈다. 초파리 트랩이라고 들어봤나? 초파리들이 좋아하는 페로몬을 덫에다가 뿌려 놓으면, 초파리들이 잔뜩 모여들었다가 덫에 걸려 죽는 거 말이다. 조슈아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억울함 트랩. 억울함을 풀어주는 주인공이기 때문에, 그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억울한 사건이 터진다는 거다.


추리 소설의 주인공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살인 사건이 터지잖아? 그거랑 똑같은 원리다. 기본적으로 조슈아에게는 억울한 사람이 꼬이는 특성이 있다는 거다. 그런 녀석이 직접 행동해서 붙잡은 사람이 테오다. 심지어 그는 억울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인공이 아무나 붙잡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아직 조슈아의 재능이 각성하기 전이라, 그가 테오를 잡은 상황은 둘 중 하나의 의미를 가질 거다. 테오가 정말 억울한 사람이라서 주인공인 조슈아의 페로몬에 홀렸거나, 아니면 죽은 사람의 억울함에 이끌려서 조슈아가 직접 범인을 잡아버렸거나.


친구가 내게 이 소설을 추천했을 땐, 주인공이 마치 ‘명탐정’처럼 사건들을 다 풀어버린다고 말했다. 뛰어난 관찰력으로 증거를 빠르게 알아내고 풍부한 추리력으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낸다고 말이다.


하지만, 눈앞의 조슈아는 명탐정처럼 추리조차도 하지 않고 있다. 그냥 유죄를 때리라고만 하고 있다. 아마도 트로이안이 죽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각성하지 않았으니까. 죄책감도 있지 않으니까. 여전히 한량으로 느긋하게 살아가겠다는 목표가 남아있으니까.


하지만, 그가 이 세상의 주인공은 맞는 것 같다. 그 전까지는 정말 평화로웠는데, 조슈아가 영지로 돌아오는 날 살인사건이 터졌다. 그리고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테오가 등장했다. 그렇다면 조슈아의 체포에도 분명 의미가 있을 거다.


나는 그 가능성을 믿는다.


그러니까 억울함 트랩아, 힘을 좀 내 봐. 억울함을 주장하는 테오를 자세히 보라고.


저 억울함은 진실일까? 아니면, 죽은 자의 억울함이 진실일까?


“잘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조금 더 확실히 봤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저 자를 감옥으로 넘기기엔 뭔가 찝찝하긴 하네.”


조슈아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


주인공의 촉이 말해줬다.


테오, 이 사람은 범인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좋아. 그럼 그 찝찝함을 없애보자고!”


나는 조슈아의 등을 살짝 두드려주고는 테오에게 다가갔다.


조슈아가 내 옆에 서서 팔짱을 꼈다.


“자! 그럼... 사건의 현장을 조사해볼까요?”


내가 큰 목소리로 테오와 조슈아의 시선을 잡으면서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두 사람의 머리에 동시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조사를 하는 건 좋은데...”

“설마 저 사람도 포함이야?”


테오와 조슈아는 한 마디씩 사이좋게 이어서 말하더니, 서로 으르렁 거리며 노려보았다.


“범인일지도 모르는 자와 현장을 조사하겠다고?!”

“날 범인으로 몰아가는 병아리하고 현장을 조사하라고?!”


아무래도 둘이 똑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어쩔 수 없잖아. 이렇게 추운 날씨에 영지민들을 붙잡아 둔 이상, 최대한 빠르게 범인을 잡을 수밖에 없어. 최대한 민폐를 줄이려고 노력해야지. 안 그래?”


테오와 조슈아가 경비병들과 찬바람에 덜덜 떨고 있는 영지민들에게 시선을 두었다.


“아... 정 그렇다면, 저들에게는 천막이라도 쳐주면 좋겠는데? 저들이 바람이라도 피할 수 있도록 말이야. 여기가 원칙대로 운영하고 있다면, 경비대는 전쟁을 대비해서 구비해둔 물자가 있을 거야. 군용천막 정도는 있겠지. 그걸 설치하면 저기 있는 자들을 전부 수용할 수 있을 거야.”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테오의 의견에 내가 기뻐하며 말하자, 그가 조금은 유순해진 눈빛으로 작게 미소지었다.


“화로도 있을 거야. 따뜻하게 대기하고 있으면 필요할 때 협조적으로 굴겠지.”


조슈아도 여전히 툴툴거리는 어투였지만, 나를 보며 어쩐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도 좋겠다! 영지민들이 따뜻하게 기다릴 수 있고, 천막은 입구가 하나니까 적은 수의 경비병들로 돌아가며 저들을 감시할 수 있을거야. 만약 범인이 도주한다고 해도 루트가 한정되니 그 자리에서 제압하기도 편할 거고.”


그 순간, 테오와 조슈아의 의아한 시선이 나에게 닿았다.


“왜?”


“...아니야.”

“...아니네.”


나는 경비병에게 부탁해서 이 자리에서 바로 거대한 군용천막을 설치해달라고 부탁했다.


의자를 여러 개 가지고 와서 사람들이 편하게 대기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고, 천막 가운데에 화로를 넣어 불을 지펴주었다. 천막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일일이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하며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는 공동체를 위해서 살인범을 잡는 일에 협조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사람들은 불만이 어린 눈빛이었다가, 천막 내부에 화로를 들어오는 보고 표정이 조금 풀렸고, 이내 내가 그들에게 일일이 사과를 하자 응어리진 마음이 대부분 풀린 눈치였다.


‘우리도 살인범이 마을에 들어오는 걸 원하지 않아요, 그 놈이 소중한 우리 가족과 이웃들을 해칠지 어떻게 안답니까?’


어느 한 가장의 발언에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 되었다.


조슈아는 굳이 허리를 숙여가면서까지 사과할 필요가 있냐고 투덜거렸지만, 테오는 그런 나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와 조슈아, 테오는 다른 천막에 모여서 앉았다. 여기는 경비병들이 교대하며 쉴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었는데, 살인용의자인 테오까지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꽤나 험악한 시선이 그에게 향하고 있었다.


“일단, 테오 씨에게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음. 사건에 대한 말은 아까 전부 말했는데······.”


테오가 난색을 표했다. 그러자 조슈아의 눈이 뾰족하게 빛났다.


“일단 당신의 신상정보를 좀 기록하자. 이름과 나이, 직업이 무엇인지 그리고 출신지가 어디인지 말해.”


“아까 말했지만, 이름은 테오야. 나이는 22살. 직업은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여행자. 출신지는 윈이다.”


“윈? 멀리서 왔네.”


윈이라고 하면, 왕이 통치하고 있는 직할지 중 하나라고 공부한 기억이 있다. 라인베르크에서 굉장히 거리가 먼 곳이다. 라인베르크는 나라의 동부 쪽으로 많이 치우쳐져 있는데, 왕이 통치하는 직할지인 ‘윈’은 왕령의 가운데에서 서쪽으로 살짝 치우쳐있다.


“뭐, 먼 곳을 탐험하는 건 여행자들의 로망이거든. 라인베르크는 꽤 유명하니까 말이야. 꼭 와보고 싶었어.”


“아무리 그래도 단신으로 여행하기엔 너무 멀어. 혹시 도망친 농노인 거 아냐?”


“아니야! 내 얼굴을 보라고! 농노처럼 보여?”


테오가 기막혀 하면서 조슈아를 노려보았다.


“그렇군. 경비병, 기록해. 추노라고.”


그 말에 테오가 발끈해서 윈 지역의 말로 뭐라고 소리쳤지만,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조슈아는 상큼하게 테오를 무시한 다음 고개를 돌려 한 경비병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양피지에다가 깃펜을 움직여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라인베르크에는 왜 왔지? 용맹한 여행자여.”


“음? 흐흠...! 용맹...? 아아, 하핫, 농담을 잘하는 친구구만?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미지의 세상을 탐험하기 위해서 왔어.”


와.


조슈아가 ‘용맹한 여행자’라고 한 마디 해주자마자, 씩씩 거리면서 분노하던 테오의 기운이 순식간에 가라앉더니 얌전하게 변했다.


이 녀석, 조련사를 해도 되겠어.


“이렇게 추운 겨울에 탐험을 하는 여행자라고? 심지어 혼자서? 낯선 객지에서 동사해 죽을 작정이야?”


“맞아요. 어째서 이 추운 겨울에 움직인 겁니까? 봄에 움직이지 않으시고.”


“그냥 여행하고 싶었어. 그리고 너희들 뭔가 착각 하는 것 같은데, ‘윈’에서는 저번 달부터 엄청 따뜻한 '봄' 날씨였어. 꽃이 만개했단 말이야. 그런데 라인베르크에 다가올수록 날씨가 많이 추워지더라. 저번에는 눈까지 내리더라고! 3월 중순에 폭설이라니, 정말 충격 받았어.”


“그건 우리도 충격이었어.”


“맞아요. 이런 날씨는 70년 만에 처음이라고 저희 할머니께서 말해주셨어요.”


기록을 하던 경비병이 조슈아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랬구나.


“신상 정보는 그 정도면 될 것 같은데. 그러면... 테오 씨, 밖에 나가서 사건 당시를 재연해주시겠어요?”


“알겠어.”


테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천막 밖으로 나갔다. “으흐으으으! 춥다!” 하고 혼잣말을 하는 테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너무 수상하지 않아? 혈혈단신으로 윈에서 라인베르크까지 왔대. 심지어 출발할 때는 봄이었다고 했고. ...윈에서 라인베르크까지 걸어오려면 적어도 세 달은 걸릴 텐데.”


“거짓말 같아. 어떻게 세 달 거리를 계절이 바뀌기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던 걸까?”


“말을 타고 오면 한 달 정도 안에 올 수는 있지. 하지만 체포했을 당시에는 못 봤어.”


“말을 타고 왔다는 걸 숨겨야 하는 상황이었을까?”


“그런 것 같아. 이렇게 살인범으로 잡혀 있는데도 미주알고주알 말하지 않는 건,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야.”


“조슈아, 넌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조슈아는 미간을 좁혔다.


“사실... 여행자는 거짓말 같아. 저 사람, 묶여 있긴 하지만 손가락이 계속 움직였거든. 습관처럼. 그래서 저 사람의 직업이 뭔지 짐작 가는 바가 있긴 한데...”


“뭔데?”


“...아니야. 아직은 확신할 수 없는 것 같아. 조금 더 관찰해보고 알려줄게.”


조슈아는 그렇게 말하더니 천막 밖으로 나갔다.


손가락이 계속 움직였다고? 전혀 몰랐는데. 호기심이 일었지만, 곧 물어보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


때가 되면 알려주겠지.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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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화. 평화로운 하루 24.05.31 4 1 13쪽
20 20화. 돌아가자 24.05.30 5 0 13쪽
19 19화. 폐정 24.05.29 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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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화. 원점? +1 24.05.27 7 1 13쪽
16 16화. 관문에 대해서 24.05.24 5 0 14쪽
15 15화. 그 사건? 24.05.23 6 0 13쪽
14 14화. 흉기 24.05.22 8 0 12쪽
13 13화. 조사 결과 24.05.21 8 0 13쪽
12 12화. 체포한 근거 24.05.20 5 0 12쪽
11 11화. 개정! 24.05.17 6 0 13쪽
10 10화. 의심과 단서 24.05.16 5 0 13쪽
9 9화. 조사 시작 24.05.15 8 0 12쪽
» 8화. 이방인의 정체 24.05.14 9 0 13쪽
7 7화. 진실을 밝혀봅시다. 24.05.13 10 0 13쪽
6 6화. 억울한 사람 24.05.10 8 0 14쪽
5 5화. 마중을 나가다 24.05.10 10 0 15쪽
4 4화. 소설 속 세상에 적응하기 24.05.09 12 0 13쪽
3 3화. 왜 그랬을까요? 24.05.09 11 0 11쪽
2 2화. 후회와 의문 24.05.08 14 0 12쪽
1 1화. 후회와 빙의 24.05.08 3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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