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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무새 님의 서재입니다.

왕의 어사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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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상상무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1
최근연재일 :
2024.05.31 17:30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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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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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2,627

작성
24.05.1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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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9화. 조사 시작

DUMMY

천막 밖으로 나와서 테오를 따라갔다.


테오는 열심히 결박당한 손으로 시신이 있던 자리를 가리켰다. 조슈아의 말이 떠올라서 테오의 손을 조금 더 유심히 보게 됐는데, 조슈아의 질문을 받을 때 종종 엄지손가락으로 검지와 중지를 문지르다가 주먹을 한 번 씩 쥐고는 했다.


저 손동작이 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 저걸로 그의 신분이 무엇인지 짐작이 간다고?


으음... 돈이라도 세는 건가? 돈을 만지는 직업이 뭐가 있을까? 은행원? 도박사? 자영업자?


“검시하기 위해서 시신은 옮겼습니다. 다만 있는 자리를 표시해두었어요.”


경비대장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그가 가리키는 바닥을 바라보았더니, 대나무 발에 가려져 있던 시신은 사라지고 난 뒤였다. 대신 나뭇가지로 시신이 쓰러져 있었던 모양대로 표시해놓고 있었다.


“모양이 조금 특이하네?”


“시신은 무릎을 꿇은 상태로 상체가 앞으로 고꾸라져서 쓰러진 모양새였어. 그래서 저런 모양이 남았지.”


“아아... 그랬구나...”


처음에는 시신 위에 덮어둔 대나무 발 덕분에 피가 보이지 않았지만, 시신을 옮겨버린 지금에는 머리 주변에 남아 있는 새하얀 눈에 빨간 피가 스며들어 있어서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시체가 있었던 곳은 눈이 대부분 녹아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 건지 땅이 젖어서 색이 짙은 갈색을 보이고 있었다. 조그마한 얼음 조각도 보였고.


“어떻게 사망한 거야? 시신을 직접... 본 거지?”


“등 뒤에서 습격을 당했어. 흉기로 등을 찔린 것 같은데, 가슴까지 관통했을 거라고 생각해.”


조슈아의 손짓에 경비대장이 부하를 한 명 끌고 나왔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정황 상 이런 일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경비병이 서 있고, 경비대장이 그의 뒤에 섰다. 검집만 빼어들어 부하의 등을 살짝 쿡 찌르자, 경비병이 풀썩- 하고 무릎을 꿇었고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쓰러지는 흉내를 내었다.


아아. 그러니까 나뭇가지로 표시한 시신의 모양새와 비슷하네. 바로 이해가 됐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바닥에서 일어나는 경비병을 팔을 잡아 일어나기 수월하도록 부축해주었다. 경비병이 황송해했다.


“잔인한 일이네. ...그보다, 조슈아. 넌 괜찮아? 죽은 사람을 봤으니 충격이 컸을 텐데.”


“별로. 죽은 사람을 한 두 번 본 것도 아니니까.”


“많이 봤었다고?”


억울함 트랩이라 그런가? 이런 사건에 많이 엮이는 모양이다.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내가 두르고 있는 망토를 벗어서 조슈아에게 둘러주었다.


“뭐, 뭐하는 거야?”


“원래 사건을 목격한 사람은 담요를 두르고 있어야 해.”


“춥잖아, 형이 입어.”


“난 괜찮아. 옷에 솜이 빵빵하게 들어차있으니까. 차가운 시신을 보고 네 마음이 충격에 얼어붙었을 테니, 따뜻하게 녹이고 있으라고.”


등을 잠깐 토닥여주었더니, 그가 미묘한 표정이 되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대. 나도 차가운 시신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는데, 내가 쓸 따뜻한 담요는 없나?”


어느덧 찬바람에 콧물이 얼어서 조그마한 고드름을 만들고 있는 테오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경비병들에게 일러서 가져오라고 할게요.”


테오가 묶인 손등으로 콧가를 문질렀다. 고드름이 뚝 하고 사라졌다.


“정말 고마워. 그대는 참 인정이 많구만...!”


감격한 목소리였다.


“담요를 기다리는 동안, 사건에 대해서 더 정확하게 말해주세요”


“뭐, 어려울 일도 없지. 내가 저기서 걸어왔어.”


“그대로 재연해.”


조슈아의 강압적인 발언에 테오가 입술을 삐죽였다.


“부탁드려요.”


내가 어색하게 미소 짓자, 테오가 마지못해 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경비병과 함께 잠깐 관문 밖으로 나가서 천천히 사건 현장을 향해 걸었다.


“내가 이 정도 걸어 왔을 때, 저기에 무언가 쓰러져 있다는 걸 알았어. 처음엔 누가 기도라도 드리는 건가 했지. 계속 걸어갔어.”


“그 다음은?”


“라인베르크는 문을 숭상하는 문화가 있는 건가 싶었어. 신기해서 기도하는 자를 살펴보았는데, 분명 내 발소리가 났을 텐데도 불구하고 미동도 하지 않지 않더라고. 그 때, 그의 옷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걸 발견했지. 심지어 옷이 축축하게 젖어 있는데, 느낌이 쎄하더라고.”


“그 다음엔 어떻게 됐나요?”


“크게 당황했지.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하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새빨간 피로 물든 눈이 보이는 거야! 깜짝 놀라서 그대로 주저앉았지. 저기 봐. 이 눈 자국, 내가 주저앉아서 생긴 거야.”


테오는 그렇게 말하며 시신 근처에 또 다른 눈 자국을 가리켰다.


“승마자세 해봐. 완전히 앉지는 말고.”


“나 참! 내가 이런 짓까지...!”


테오는 투덜거리면서 눈 자국 위에 조심스럽게 승마자세를 했다. 자국과 엉덩이의 폭이 일치하는 것 같고, 이제 와서 보니 그의 바지는 뒷부분이 젖어있었다.


“됐습니다. 수고하셨어요, 테오님.”


비틀거리는 그의 팔을 붙잡아 일으켜주었다.


“여기에 주저앉은 후엔 어떻게 하셨나요?”


“그 뒤에는 이 사실을 알릴 경비병을 찾으려고 했어. 그런데 아무도 없더라고.”


“어째서요?”


“그걸 왜 이방인인 나에게 물어보나? 난 몰라. 라인베르크로 가려면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문도 닫혀있었고 말이야! 경비병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고, 눈앞에는 시신이 있고...! 얼마나 난감했다고!”


테오가 불평이 가득 담긴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러게요. 정말 난감하셨겠어요. 그 다음 엔요?”


“그 다음에는... 저기, 노란 병아리가 내 뒤에서 나타났어. 병아리에게라도 도움을 청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그 자리에서 내 팔을 확 꺾어버리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트렸다고! 저 병아리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더니, 그제야 경비병들이 허겁지겁 나타나서 관문을 열었어. 그리고 나는 현행범이란 이유로 체포당했지.”


테오가 조슈아를 노려보았다.


“조슈아, 왜 그랬어?”


“왜 그랬냐고? 형, 방금 저자가 자백을 했잖아.”


“자백이라고?”


“사건 당시 관문은 닫혀 있었고, 경비병도 아무도 없었고. 그런데 피해자는 관문 밖에서 죽었어.”


“그랬지.”


“그 당시에 관문 밖에 있었던 사람은 피해자와 테오 저 인간들뿐이야. 그리고 한 명은 죽었지. 한 명은 살았고. 그럼 범인이 저 사람 밖에 없잖아?”


그렇긴 해. 조슈아가 범인이 아니라고 한다면 말이야.


“이봐 노란 병아리! 그런 논리라면, 너도 살인자가 될 수 있어! 너도 관문 밖에서 등장한 사람이잖아! 네가 피해자를 죽여 놓고, 시체 처리를 하러 잠깐 준비를 한 사이에 내가 발견을 해버린 거야! 나를 또 죽이기엔 대낮이라 부담스러웠을 테니, 나를 범인을 몰아가서 처형시키려고 했던 거지! 내 추리가 틀려?!”


“뭐라고?!”


조슈아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따졌다.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이긴 하네요.”


하필 조슈아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라서 매우 가능성이 낮은 추리지만.


“형?! 나를 의심하는 거야?!”


조슈아가 화들짝 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조슈아에게는 저 사람을 죽일 동기가 없었어요.”


“그래! 내가 저 사람을 죽여서 뭘 해?”


“그럼 뭐, 나한테는 있는 줄 알어?! 형제라고 싸고 돌기만 하고 말야! 그대! 이성적으로 생각하게! 네 동생이 어째서 살인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이유가 존재할 수도 있잖아? 단순히 네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어. 아무리 동생이라고 해도 속내를 완전히 알 수는 없는 법이야! 믿지 말라고. 뒤통수 맞기 싫으면 말이야.”


“동생에게 뒤통수를 꽤 거하게 맞은 경험이 있나봐?”


조슈아가 비아냥거렸다.


“흥. 제대로 된 반박은 안하고 다른 주제를 물고 늘어지다니...! 병아리, 내 입장에선 네가 점점 더 수상해져. 내 진술은 여기서 끝이야. 이젠 병아리도 진술을 할 차례지. 얼른 말 해. 왜 나를 체포했는지.”


내가 시선을 옮기자, 조슈아가 말했다.


“귀가하는 중이었어. 저 멀리서 걸어오는데 관문이 닫혀있더라고. 그래서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했는데, 저 사람이 허리를 숙여서 피해자를 보다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라고. 그래서 가까이 다가갔지. 가까이 갔더니, 싸늘하게 죽은 피해자가 있었고 저 자는 손에 검을 들고 있었어. 그래서 그자가 범인이라 생각하고 체포한 거야.”


!


“손에 검을 들고 있었다고?! 왜 그 말은 안하셨어요?”


테오를 바라보자, 그가 당황하더니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내, 내가 검을 들고 있었다고 말 안했나...?”


“안했어요!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니요?”


“하지만 우리 같은 여행자가 무기를 소지하고 다니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야. 너도 알겠지만 이방인들의 취급은 그리 좋지 않잖아. 내 몸과 재산을 지키려면 어떻게든 무장하고 있어야야 돼. 길을 가다가 강도나 맹수를 만날 수도 있다고. 당연히 무기가 있어야 하는 거야.”


“그렇다면 지금 무기는 어디에 있어요?”


“저 병아리가 강제로 뺏어갔어. 그 칼, 꼭 돌려줬으면 좋겠는데... 응? 트로이안, 당신이 어떻게 해주면 안 될까?”


“형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네가 무죄라면 다시 돌려줄 거다.”


“아이고, 그럼 고맙고~ 그대신에 칼은 좀 잘 보관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엄청 소중하게 여기는 칼이거든~”


테오가 조금은 비굴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방금 이방인의 변호가 스스로의 무죄를 주장하는 지는 잘 모르겠네. 백번 양보해서 무기를 소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쳐. 그런데 왜 검자루를 쥐고 있었냐는 거야.”


조슈아가 따졌다.


“검자루를 쥐고 있다고? 허리춤에 찬 것도 아니고, 왜 시신 옆에서 검을 쥐고 있으셨죠?!”


내가 추궁하자, 테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힘들어서 그랬어! 여기까지 오는 데 눈이 오죽 쌓여 있어야지! 여기는 그나마 사람이 다니는 길은 눈을 치워둔 모양이지만, 저기 있는 숲에는 하나도 치우지 않았거든. 햇빛도 잘 들지 않아서 아직도 눈 때문에 발이 푹푹 빠져.”


“저기 있는 숲이요?”


“앨리숲이구나.”


앨리 숲? 아. 여동생인 앨리스가 태어났을 때 기념하기 위해서 조성한 숲이라고 들었다. 앨리스의 이름을 따서 앨리 숲이다.


“아, 저기가 앨리 숲이었구나? 어쨌든 검 집으로 눈밭을 헤집으면서 걸어왔다고. 그리고 관문에 다다를 때 즈음엔 체력이 완전 바닥난 상태라 지팡이처럼 검으로 땅을 찍으면서 왔어. 그러다보니 검자루를 손에 쥐고 있었던 거지.”


“흐음...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를 현행범으로 체포한 이유가 또 있어. 이 자의 상의를 봐. 여기, 자세히 보면 얼룩이 튀어있지? 난 그게 핏자국이라고 생각했어. 가까이 다가갔을 때, 이 자에게서 피 냄새가 지독하게 났거든.”


“엑?!”


테오는 당황했다는 듯, 고개를 숙여 자신의 상의를 바라보았다. 실제로 그의 옷은 어두운 갈색이었지만, 아주 희미하게 얼룩덜룩한 느낌이 드는 곳이 있었다.


“아마도 검으로 피해자를 등 뒤에서 습격해 살해하고, 검을 뽑으면서 피가 튀지 않았을까? 검에 묻은 피를 상의에 닦았을 수도 있고. 이쪽에 난 흔적을 보면, 직선인 어떤 도구에 묻은 피를 닦긴 했어. 아주 인위적인 직선으로 얼룩이 묻어있지? 이거, 검에 묻은 피를 옷에 닦아서 생긴 흔적이 아닐까?”


“그러네...!”


내가 놀라서 테오의 상의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 자세히 바라보았다. 땀 냄새를 떠나서, 피 비린내와 얼룩이 존재감을 강렬하게 내뿜고 있었다.


“테오 씨, 이 피 얼룩은 어떻게 생겼죠?”


“이건, 그게...”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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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화. 원점? +1 24.05.27 8 1 13쪽
16 16화. 관문에 대해서 24.05.24 6 0 14쪽
15 15화. 그 사건? 24.05.23 7 0 13쪽
14 14화. 흉기 24.05.22 8 0 12쪽
13 13화. 조사 결과 24.05.21 9 0 13쪽
12 12화. 체포한 근거 24.05.20 6 0 12쪽
11 11화. 개정! 24.05.17 7 0 13쪽
10 10화. 의심과 단서 24.05.16 6 0 13쪽
» 9화. 조사 시작 24.05.15 9 0 12쪽
8 8화. 이방인의 정체 24.05.14 9 0 13쪽
7 7화. 진실을 밝혀봅시다. 24.05.13 11 0 13쪽
6 6화. 억울한 사람 24.05.10 9 0 14쪽
5 5화. 마중을 나가다 24.05.10 11 0 15쪽
4 4화. 소설 속 세상에 적응하기 24.05.09 13 0 13쪽
3 3화. 왜 그랬을까요? 24.05.09 12 0 11쪽
2 2화. 후회와 의문 24.05.08 15 0 12쪽
1 1화. 후회와 빙의 24.05.08 3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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