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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무새 님의 서재입니다.

왕의 어사로 살아가는 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추리

공모전참가작

상상무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1
최근연재일 :
2024.05.31 17:30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200
추천수 :
2
글자수 :
122,627

작성
24.05.0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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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화. 왜 그랬을까요?

DUMMY

“혹시, 최근에 제가 억울할 일이 있었을까요?”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홍차를 마시고 있던 라인베르크 백작부부의 의아한 시선이 내게 닿았다. 그리고는 조금은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모르시나요?”


“여보. 혹시, 들은 바가 있어요?”


“아뇨... 전혀요.”


트로이안의 부모님도 앨리스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가 어째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했는지 모르는 것 같다.


“그럼, 혹시 제가 누군가에게 원한을 샀거나, 협박을 당한 적 있었나요?”


“원한이라니, 전혀 없었어.”


“감히 우리 가문의 후계자를 협박할 만큼 간이 부운 녀석이 있었다면 내가 살려두지 않았을 게다.”


“그러면, 제가 평소와 많이 달랐던 날이 있었나요?”


“어제였지.”

“어제였어.”


두 분이 동시에 입을 여셨다.


“어제요?”


“하루 종일 기운이 없어보였어.”


“음? 평소보다 오히려 기운이 넘쳐 보였는데.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백작과 백작부인은 처음으로 서로 다른 의견을 내뱉으며 서로를 의아한 시선으로 보셨다. 어제 트로이안은 평소와 다르게 감정 기복이 꽤 컸었던 모양이다. 조울증이라도 앓았었나?


“그것 말고는 더 이상한 점이 없었나요?”


“그리고는 밤에 이상했지.”


백작님이 조금 장난스럽게 말하자, 백작부인이 그 뉘앙스를 알아차리고는 아까보다 조금 더 목소리를 높여서 말했다.


“‘제 피는 더럽고 탁하니까, 그걸로 샤워해도 젊어지지 않을 거예요!’라는 말은 엄마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어.”


“내 검을 뺏어들고는 다가오지 말라고도 소리쳤었지. 휘청휘청 하면서 ‘나는 사실 검도 유단자다!’라고 외쳤던 말은 아직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구나. ‘검무’의 시작을 알리는 구호였어?”


두 분은 장난이 가득한 목소리로 음흉하게 웃으셨다.


어제 일이 떠올라서 민망함에 얼굴이 화륵 달아올랐다. 그랬더니, 두 사람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놀리지 마세요...! 너무 민망하니까요. ...어쨌든 어제 말고는 이상한 점이 없었단 거죠? 혹시 최근에 제가 누굴 만난 적도 있었나요?”


“글쎄... 손님은 없었죠?”


“없었어요.”


백작부부의 문답이 이어지고 여전히 의문을 담은 눈빛이 나에게 닿았다.


“누구와 싸웠다던가, 아니면 이상한 편지라도 받았다는 증거 같은 것도 없나요?”


두 분의 고개가 좌우로 움직였다.


아무런 단서가 없는 거야? 이러면 누가 나를 노리는지도 모르고, 억울한 일이 끝난 건지 아니면 계속되고 있는 건지 하나도 감을 잡을 수가 없잖아.


가슴이 답답해졌다. 뭐라도 알아야 앞으로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 정할 텐데...


“그럼...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걸까요...?”


답답한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들에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라인베르크 백작부부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지더니 두 사람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유를 몰라서 답답한 건 그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이안, 엄마는... 기억하지 못하는 일을 억지로 떠올릴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네?”


“어쩌면, 신께서는 너에게 경고와 자비를 동시에 주신 게 아닐까? 자살이란 금기를 시도한 너의 행동을 꾸짖으면서도 동시에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너를 가엾게 여긴 거야. 그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신 거지. 이전의 고통은 잊고 네가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살아가라는 의미로... 기억상실증이란 특이한 병을 내리신 걸지도 몰라.”


백작부인은 목소리를 떨면서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살폈다. 그녀의 손가락이 쉴 새 없이 꼼지락 거리는 것을 보니 엄청 불안해보였다.


아무래도, 궁금증을 해결 하기 위해서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던 나머지 내가 저 사람들을 배려해주지 못한 것 같다.


이 사람들은 아들을 잃었잖아. ‘어째서 아들이 자살하려고 했을까요?’ 라는 질문은 정신적인 충격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데, 심지어 아들이 어째서 괴로워했는지 대답 할 수 없는 입장이라면 죄책감이 실시간으로 무거워지는 중이실 거다. 심지어, 아들의 몸뚱이에는 전혀 모르는 영혼이 들어와 빙의하고 있으니······.


불쌍한 백작부부에게 더 이상 정신적인 타격을 주지 않기로 결심한 나는 분위기를 환기시킬 겸, 주제를 바꾸었다. 간단한 담소와 농담으로 두 사람에게서 다시 미소를 만들어준 뒤에야 겨우 방을 나설 수 있었다.


궁전처럼 넓은 공간이 드러나고, 수많은 고용인들이 나를 보고 허리를 숙였다. 드라마 속에 나오는 재벌 4세가 된 느낌이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된다.


내가 봤던 장르 소설 속 주인공들은 어떻게 행동했더라?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봤더니, 2가지 유형이 떠올랐다. 자신이 알고 있는 소설 속 내용을 이용해서 나만의 해피엔딩을 만들어 내거나, 자신이 알고 있는 소설 속 내용을 그대로 이행하도록 만들어서 주인공이 예정된 결말을 맞이할 수 있도록 행동하기.


...


하지만, 나에게는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네.


후자를 선택하면 나는 다시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주인공의 형인 내가 억울하게 사망해야, 소설이 시작될 거다. 시작이 있어야 결말도 있는 법. 하지만... 그건 싫다.


어떻게 죽어서 빙의한 건지 모르는 것도 억울한데, 빙의한 몸에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죽어야 한다고? 심지어 백작가 장남의 삶을 부여받은 거잖아. 비록 소설 속 세상이긴 해도, 신분제 사회에서 노예로 태어나지 않은 환경이 로또 당첨에 비견될 정도로 엄청난 행운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게다가 라인베르크 백작가는 제법 부유하고 군사도 강해보였다. 앨리스가 입고 있는 드레스, 내가 입고 있는 옷의 재질만 해도 그렇고, 방금 백작부부의 복식과 헤어스타일만 봐도 부티가 자르르 흐르고 있다. 이 성의 내부만 해도 으리으리하고, 고용인들의 숫자도 많고, 이 세상에 대해 잘 모르는 내 눈으로 봐도 그들 모두 교육과 훈련이 잘 되어 있다. 동작 하나하나가 아주 우아하고 절도 있단 말이지. 심지어 기사단들과 경비병들의 무장 상태도 매우 훌륭하다.


이런 삶을 내 손으로 포기할 수 있겠냐고? 절대 안하지.


그렇다면, 이미 알고 있는 소설의 내용을 바탕으로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말인데...?


큰일이다. 내가 알고 있는 소설의 내용은 거의 없다.


단행본 1권을 읽었지만, 시점이 1인칭 주인공 시점이었다. 주인공은 조슈아라서 트로이안에 대해서 아는 바가 많이 없다. 심지어 이 세상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많이 없다. 단행본 1권은 대부분 조슈아가 별장에서 한량처럼 놀던 묘사만 잔뜩 있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1인칭 주인공 시점이었기 때문에 조슈아의 사고방식과 그의 기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만 자세하게 적혀 있을 뿐이었다.


단행본 1권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트로이안의 유서와 죽음이 등장하고, 별장의 얼음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한량처럼 놀던 조슈아가 소식을 접하고 저택으로 돌아온다. 정신없는 장례식을 치르고, 조슈아가 트로이안의 유서를 발견하지. 앨리스가 유서 내용을 공감하지 못한 것처럼, 조슈아 역시 유서를 이해하지 못한다. 형의 죽음을 부정하던 그때 트로이안의 오명을 알게 되고, 분개해서 그의 명예를 되찾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내용이 전부다.


1권의 이야기는 조슈아의 결심, 그리고 노력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주인공은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캐릭터지만, 형제와의 불화를 피했기에 재능을 갈고 닦지 않은 설정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는 히로인으로 추정되는 어떤 여자 캐릭터와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뭔가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여기서 끝이다.


그게 1권의 내용이다. 책 막바지에 나오는 여자 캐릭터가 조슈아와 이어지는지 아니면 뒤통수를 칠 악역인지 전혀 정보가 없다. 앞으로 무슨 사건이 터지는 지도 모른다. 이래서야... 소설의 내용을 이용해서 잘 살아보자고 다짐하기도 어렵다.


트로이안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라면, 분명 누군가는 나를 다시 해치려고 들 거다. 아무런 증거도 없는 가설이지만, 사실 트로이안의 자살마저도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꾸며진 일일수도 있다. 흑막에 의해 '위장 자살'을 당한 억울한 캐릭터일지도 모르는 거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트로이안이 멀쩡히 살았다? 흑막이 그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아무리 기억상실증에 걸린 상태라고 해도 트로이안을 살려두지 않을 거다. 어쩌면, 지금 쯤 내가 생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지도 모른다. 나를 죽이려고 이미 계획을 세웠을 수도 있고, 당장 오늘이라도 나를 죽이려고 찾아올 수 있다....!


으으...!


낯선 땅에서 갑자기 생존 서바이벌을 찍어야 하는 거냐고?!


“오빠.”


“어?”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더니, 어느새 또 다른 드레스로 갈아입은 앨리스가 서 있었다.


“엄마 아빠하고는 이야기 잘 나눠봤어?”


“아, 응.”


“혹시 억울한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고 그랬던 건 아니지? 어제 엄마 아빠가 충격을 많이 받아서 힘들어 하셨거든.”


“어어...?”


“조금만 참아달라고. 물론 기억이 없어서 오빠가 가장 답답하겠지. 하지만... 조금만 기다렸다가 두 분이 어느 정도 안정을 취하고 나시면 물어보면 안 될까?”


방금 물어봤는데······.


어린 아이보다 생각이 짧았다는 사실이 썩 민망했다.


“표정이 왜 그래? 설마, 방금 물어봤어?!”


“아, 아... 그게... 나도 참, 부주의했지. 마지막에는 죄송해서 열심히 두 분을 웃겨드리고 나왔어...”


“나 참... 그래서 엄마하고 아빠는 뭔가 알고 있었어?”


“아니. 두 분도 모르시더라.”


“그렇구나... 그럼... 조슈아 오빠는 알고 있으려나?”


“걔는 지금 쯤 스케이트 타고 놀고 있을 텐데, 뭘 알겠어? 같은 저택에서 지내는 사람들도 이유를 몰랐는데...”


“하긴. ...음?!”


“왜? 뭔가 떠올랐어?”


“오빠, 조슈아 오빠가 스케이트를 타는 건 기억해?”


“어? 아, 어...”


“신기하다! 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잖아. 혹시, 조금씩 기억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건 아닐까?!”


“그, 그런가...?”


하지만 더 이상 기대하진 말아줬으면 좋겠다. 소설에서 본 정보는 정말 극소수니까. 알고 있는 정보는 벌써 바닥이 보일 지경이라고.


“기억이 잘 돌아오고 있나, 시험 해볼까? 문제를 하나 낼 테니까 맞춰봐!”


“어제 의사 선생님이 낸 문제 같은 건 피해줘. 단위로 장난을 치다니, 너무 치사하셨다고.”


“알았어. 논란의 여지가 없는 문제를 내줄게. 자자, 조슈아 오빠가 은팔찌를 10개 사왔어. 저택의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했을 때, 몇 명의 사람들이 쓸 수 있을까?”


“10명! 맞지? 이번엔 맞췄지?”


내 말에 앨리스의 어깨가 축 늘어지더니, 입술을 삐죽 내밀고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뭐야, 이 반응은...! 내가 틀린 것 같잖아?!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호작과 추천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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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화. 원점? +1 24.05.27 8 1 13쪽
16 16화. 관문에 대해서 24.05.24 5 0 14쪽
15 15화. 그 사건? 24.05.23 7 0 13쪽
14 14화. 흉기 24.05.22 8 0 12쪽
13 13화. 조사 결과 24.05.21 8 0 13쪽
12 12화. 체포한 근거 24.05.20 6 0 12쪽
11 11화. 개정! 24.05.17 7 0 13쪽
10 10화. 의심과 단서 24.05.16 6 0 13쪽
9 9화. 조사 시작 24.05.15 8 0 12쪽
8 8화. 이방인의 정체 24.05.14 9 0 13쪽
7 7화. 진실을 밝혀봅시다. 24.05.13 11 0 13쪽
6 6화. 억울한 사람 24.05.10 9 0 14쪽
5 5화. 마중을 나가다 24.05.10 11 0 15쪽
4 4화. 소설 속 세상에 적응하기 24.05.09 13 0 13쪽
» 3화. 왜 그랬을까요? 24.05.09 12 0 11쪽
2 2화. 후회와 의문 24.05.08 15 0 12쪽
1 1화. 후회와 빙의 24.05.08 3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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