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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무새 님의 서재입니다.

왕의 어사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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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상상무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1
최근연재일 :
2024.05.31 17:30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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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수 :
122,627

작성
24.05.16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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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10화. 의심과 단서

DUMMY

“테오 씨, 이 피 얼룩은 어떻게 생겼죠?”


“이건, 그게... ...”


테오는 굉장히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하며 자신의 상의를 내려다보았다.


“조슈아. 테오씨의 칼은 확인해봤어? 피가 묻어있다거나, 검집에 피가 튀어 있는 흔적이 있을 지도 몰라.”


“아니. 아직 확인하지는 못했어. 지금 당장 확인해보자.”


조슈아가 손짓을 하자, 경비병이 후다닥 사라지더니 곧 검 한 자루를 가지고 왔다.


“이방인의 검을 가지고 왔습니다!”


“내 검...!”


테오가 반응을 보였다. 겉을 살펴보았지만, 피를 묻은 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겉에는 피가 묻어있지 않네.”


“당연하지! 나는 저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니까! 당연히 피가 튈 일도 없다고!”


“잠깐 실례하지.”


조슈아는 테오에게 양해를 구한 뒤, 검 자루를 쥐고 힘을 주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검이 빠져나오다가 무언가에 걸린 것처럼, 조슈아가 멈칫거렸다.


“왜 그래?”


조슈아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고, 동시에 테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내, 내가 설명을ㅡ”


테오가 말을 하기도 전에, 조슈아가 힘을 더 주어 검을 거칠게 빼냈다.


그 순간, 검붉은 무언가가 파편처럼 흩날렸다가 바닥에 후드득 떨어졌다.


!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테오의 검에는 검붉은 피가 말라붙어있었다.


“흉기가 나온 모양이네.”


“잠깐만...! 오해야. 이건, 그러니까, 내가, 내가, 그러니까, 설명을 할게!”


테오가 더듬거리며 다급하게 말했다.


“설명해보세요! 어째서 피가 칼에 묻어있는 겁니까?”


“그게, 여기 오다가 맹수를 만났어! 그래서 검으로 베어버렸지. 정말이야. 그때 묻은 피라고. 여, 여기 옷에 묻은 것도 맹수의 피야!”


“이 검, 딱 봐도 평범한 검이 아니로군?”


조슈아가 검을 햇빛에 비춰보며 말했다.


“평범하지 않은 검이라고?”


“도망친 농노 따위가 가질 검이 아니야. 심지어 여행자가 가질 물건도 아니고. 이런 검을 가지고 있는 건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지.”


“그 칼이 엄청 비싸고 좋은 검이란 말이야?”


“그래. 꽤 좋은 검이야.”


조슈아가 검을 살짝 휘둘러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음, 잘못 생각했네.”


“왜?”


“보통 좋은 검이 아니야. 이렇게 좋은 검이라면, 분명 이름이 있을 거야. 이름만 대면 어지간한 검사들은 모두 알아보겠는데? 이 정도의 명검이라면, 소유주가 누구인지 특정이 되겠어.”


“귀족이신가요?”


“그, 그게... 나는... 저기...”


“귀족이라고 당당히 밝힐 수 없다면, 도둑이겠지.”


“아...! 장물이란 말이야?”


“누굴 도둑놈 취급 하는 거야?! 이 병아리가...! 사람을 살인범으로 몰아가더니 이젠 도둑취급까지 해?!”


“그러면 네가 신분을 숨긴 기사라고 주장하는 건가?”


“그... 그게... 기사... 같은... 느낌이긴 한데...”


“그래서 기사라는 겁니까? 아니라는 겁니까? 테오 씨! 신분을 거짓으로 꾸며 사칭을 할 경우 귀족능멸죄가 적용되어 사형에 처해집니다. 솔직하게 말하세요!”


“아, 진짜 미치겠네...!”


“형. 지금 신분이 중요한 게 아니야. 저 놈이 기사라고 해도 이상한 상황이야. 피를 닦지도 않고 검 집에 쑤셔 넣는 검사가 대체 어디 있단 말야? 심지어 이런 명검을 가지고 말이야. 이건 기사로서 기본을 갖추지 않은 놈이라고!”


“윽...!”


“심지어 네가 기사가 아니라 여행자라고 해도 이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는 건 마찬가지야! 네 생명처럼 아껴야 할 검을 피를 닦지도 않고 검집에 쑤셔 넣으면 칼날에 피가 굳어버려서 날카롭게 베어버릴 수가 없어. 맹수가 나타났을 때, 강도가 나타났을 때 스스로의 몸을 지킬 수도 없다는 거지! 그 위험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 텐데, 그런데도 피가 묻은 상태로 칼을 검집에 쑤셔 넣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밖에 없어! 당장 혈흔을 숨겨야만 했기 때문이야! 왜? 바로 네가 살인을 저지를 때 쓴 흉기이기 때문이지!”


일리 있어!


“테오님! 반박을...!”


“크윽...! 으으으으...!”


테오는 이를 바득 갈면서 신음소리만 낼 뿐, 어떠한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에게 시간을 더 주었지만, 그는 끙끙거리는 소리만 내고 어떠한 말도 덧붙이지 못했다.


결백을 주장해서 혹시나 했는데, 이 사람이 범인이었던 건가?


“혈액 검사는 해보셨어요?”


“예? 무슨...”


아. 여기에 DNA 감정 같은 기술은 없겠지?


“동물의 피인지, 사람의 피인지는 구분할 수 없나요?”


“아! 알 수 있습니다. 시약을 준비해오겠습니다.”


경비병이 동료들에게 시약을 준비해줄 것을 부탁했다. 당장 지금 할 수 있는 건 아닌 모양이라,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혈액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잠시 이 건은 넘어가겠습니다. 재판에서 명백하게 밝히도록하죠.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굉장히 의심스러워지셨습니다. 테오 씨. 더 적극적으로 변호하시길 바랍니다. 살인자는 사형에 처해진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정말 믿어줘...! 난 결백하다고.”


테오가 간절한 표정으로 나에게 호소했다.


다른 증거라도 찾아볼까?


시신이 있단 장소. 그리고 열려 있는 관문을 따라 시선을 쭉 올렸다. 고드름이 관문에 매달려서 반짝 거리고 있었다.


흐음...


시간을 들여서 이런저런 곳을 살펴보았지만 딱히 이상한 점은 없는 것 같다.


“뭐라도 찾고 있어?”


조슈아가 말을 걸었다.


“혹시 사건과 관련된 흔적이 없을까 찾아보는 중이었어. 그런데... 딱히 뭔가는 없네.”


조슈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혈액 검사 결과도 나왔대. 검시관이 종합해서 보고서를 올리겠다고 했으니 천막으로 돌아가자. 빨리 개정하고, 판결 내리자고. 오늘은 햇빛이 유독 강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늘에서는 좀 춥네. 슬슬 돌아가야 주방장에게 저녁으로 따뜻한 스프를 준비해달라고 말할 수 있겠어.”


조슈아가 팔짱을 낀 상태로 닦달을 했다. 찬 바람을 많이 맞아서 녀석도 많이 추운 모양이다.


“알겠어.”


“조슈아님, 명령하신 검시에 관해 잠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


어느 경비병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나에게 양해를 구한 뒤, 조슈아를 데리고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저 사람이 검시관인가?


조슈아를 보내고는 테오를 힐끗 쳐다보았더니, 그는 어느 샌가 관문을 등지고 서 있었다.


하늘에서 빛나는 해가 겨울답지 않게 강렬해서 눈부셨다. 뒷짐을 진 채 묵묵히 햇살을 받고 있는 테오는 이상하게 여유로워보였다.


방금 전까지 조슈아의 말에 어떠한 반박도 하지 못한 피고인 같지 않은 여유다.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니 무슨 생각이지? 아, 어쩌면 본인이 범인이라서 모든 것을 체념해버린 채 마지막으로 하늘을 눈에 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테오 씨.”


“아, 으응.”


“뭘 보고 계셨습니까?”


“아아... 저기 있는 독수리를 보고 있었어. 라인베르크는 독수리를 숭배하는 풍습이 있다고 들었는데, 정말이었군.”


독수리를 숭배한다고? 토테미즘 같은 건가?


소설책 1권에서는 전혀 언급된 바가 없었다. 심지어 독수리가 어디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의아함이 표정에도 그대로 드러난 것인지, 테오가 고개를 까닥하며 어느 곳을 가리켰다. 그 시선을 따라갔더니, 저 멀리 얼음으로 된 독수리 동상이 햇빛을 투과하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다만, 독수리의 한 쪽 날개는 없는 상태였다. 아무래도 햇볕이 강해서 그랬는지, 날개 한 쪽은 녹아서 떨어져버린 것 같다. 독수리의 부리도 녹아내려서 뭉툭했으니까.


투명한 얼음 동상을 통과하여 오로라 색으로 빛나는 햇빛이 관문과 우리들을 비추고 있었다. 어쩐지, 시신을 조사할 때 뒤통수가 뜨끈하다 했지.


“대설이 내렸을 때, 영지에서 축제라도 열렸던 모양이지?”


“네?”


“저기 가본 적 없나? 독수리 얼음상 옆에는 눈사람들이 수십 개나 있었거든. 하나같이 모양과 크기가 다양하기에 마을 축제라도 열렸구나했어.”


“아...”


그랬구나. 하지만 내가 빙의하기 전의 일이다. 아는 바가 전혀 없으니 뭐라고 대꾸할 수가 없어서 애매한 탄성을 뱉으며 얼버무렸다.


“그대는 뭘 느꼈나?”


“네?”


“축제를 즐기는 영지민들을 보면서 뭘 느꼈냐고.”


축제를 즐기는 영지민을 본 적 없는데.


“아쉽게도 저는 축제를 즐기지 못했습니다.”


“어째서?”


“여기에 없었거든요. 일주일 전에 왔죠.”


“흠... 그랬군. 그렇다면 다 녹아서 없어져버리기 전에 꼭 저기를 구경해봐. 차기 영주라면 무언가 얻어갈 수 있을 테니.”


“현자님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아 이런, 가르칠 생각은 아니었네. 나도 영지로 오는 길에 동상과 눈사람을 봤지. 거기서 좋은 걸 배웠거든. 여행자의 재미란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나? 그저 좋다고 느낀 걸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어.”


“그랬군요. 꼭 보겠습니다. 그 전에, 저와 다른 걸 먼저 나누시죠.”


“뭔데?”


“자백하고 싶으시다면, 지금 저에게만 살짝 말해주세요.”


“...뭐?! 날 의심하는 거야?!”


“조슈아의 추리에 반박하지 못하셨습니다. 피가 묻은 검을 그대로 검집에 쑤셔 넣은 이유와 상의에 묻은 피 얼룩까지 말입니다.”


“...”


“묵비권을 행사하실 겁니까?”


“묵비권?”


“스스로에게 불리할 수 있는 증언을 거부하는 권한 말입니다.”


“여기 관습법은 참 특이한 것도 있군.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분명 억울했는데 생각해보니 증명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단념해버렸어. 내가 변명해도 뒷받침 해주는 증거가 하나도 없으니까 강하게 밀고 나가질 못했던 거야. 이방인인 내 말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테니...”


“제가 믿어드린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러네. 그대가 믿어준다고 했는데, 내가 그대의 말을 믿지 못했어. 아까전에는 나를 믿어주는 사람도 없고, 증거도 없으니 그저 단순한 외침이 될 뿐인데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었어. ...자포자기 해버렸지.”


“그럼 지금이라도 말씀해보시겠어요?”


“...”


“저를 못 믿으시겠습니까?”


“...어렵군. 평생 누군가를 믿어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그렇군요.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망설이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많이 불리해지셨습니다. 무죄를 주장하신다면 저에게 뭐라도 고함이라도 치셔야 하는데요.”


“그대 입장에서는 충분히 의심할 만 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난 결백해. 그게 진실이니까.”


“끝까지 아니라고 주장하시는 겁니까? 이제 정식으로 재판을 열겁니다. 제 의혹을 지우지 못하셨으니 판결이 많이 불리하실 거예요. ...만약 범인이시라면, 지금이라도 자수하세요. 재판이 시작되면 자수하셔도 감형을 받으실 수 없을 겁니다. 자수하고 광명을 찾을 마지막 기회입니다.”


“억울하네. 난, 억울해.”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대, 한 가지만 약속해주겠나?”


“무엇입니까?”


“나를 의심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재판이 진행되면 증거들을 조금 더 자세히 봐주었으면 좋겠어. 증거는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단서니까 말이지.”


“증거를 자세히 보면 테오 씨에게 더 불리할 수도 있습니다만.”


“무슨 소리야?! 난 범인이 아니야! 그러니, 설사 병아리가 내미는 증거들이라 해도 반드시 내가 범인이 아니라고 말해줄 거라고 믿어.”


테오의 눈빛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그것도 그러네. 증거를 따라가다보면, 반드시 진실이 밝혀질 거다. 나도 재판에 진지하게 임해야지. 최선을 다해서 증거들을 검토하고, 최대한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테오도 마음을 열고 더 많은 것을 이야기 해줄 것이다.


“알겠습니다. 자세히 볼게요.”


테오가 나를 빤히 보다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왜 웃으세요?”


“얼굴은 마음 속 감정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을 들어봤나?”


“아뇨. 처음 들어보는데요.”


“난 그게 세상을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지은 말인 줄 알았거든. 바보 눈에는 바보만 보일 테니까 말이야. ...그런데, 그대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란 생각이 드네.”


“지금 저보고 바보라고- 앗, 차거!”


그때, 머리위로 차가운 무언가가 톡 하고 떨어졌다. 정확하게 정수리에서 느껴지는 냉기에 화들짝 놀란 나는 거북이처럼 목을 움츠리며 놀랐다가, 손바닥으로 정수리를 문지르며 위를 바라보았다.


관문에 매달린 고드름이 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톡-!


이마에 차가운 무언가가 또 떨어져서 손을 옮겼더니, 차가운 액체가 손끝에 묻어나왔다.


물이잖아?


“고드름인가? 운이 나빴구먼! 하하핫!”


테오는 장난을 가득 머금은 웃음을 터트렸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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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화. 평화로운 하루 24.05.31 4 1 13쪽
20 20화. 돌아가자 24.05.30 6 0 13쪽
19 19화. 폐정 24.05.29 6 0 13쪽
18 18화. 조각상 24.05.28 8 0 13쪽
17 17화. 원점? +1 24.05.27 8 1 13쪽
16 16화. 관문에 대해서 24.05.24 5 0 14쪽
15 15화. 그 사건? 24.05.23 7 0 13쪽
14 14화. 흉기 24.05.22 8 0 12쪽
13 13화. 조사 결과 24.05.21 8 0 13쪽
12 12화. 체포한 근거 24.05.20 6 0 12쪽
11 11화. 개정! 24.05.17 7 0 13쪽
» 10화. 의심과 단서 24.05.16 6 0 13쪽
9 9화. 조사 시작 24.05.15 8 0 12쪽
8 8화. 이방인의 정체 24.05.14 9 0 13쪽
7 7화. 진실을 밝혀봅시다. 24.05.13 11 0 13쪽
6 6화. 억울한 사람 24.05.10 9 0 14쪽
5 5화. 마중을 나가다 24.05.10 10 0 15쪽
4 4화. 소설 속 세상에 적응하기 24.05.09 13 0 13쪽
3 3화. 왜 그랬을까요? 24.05.09 11 0 11쪽
2 2화. 후회와 의문 24.05.08 15 0 12쪽
1 1화. 후회와 빙의 24.05.08 33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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