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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무새 님의 서재입니다.

왕의 어사로 살아가는 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추리

공모전참가작

상상무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1
최근연재일 :
2024.05.31 17:30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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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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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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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27

작성
24.05.2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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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9화. 폐정

DUMMY

경비병 몇 명에게 관문에 매달린 고드름을 전부 다 제거해달라고 부탁했다. 아까 고드름이 떨어지는 광경을 보고 난 뒤라 그런 건지 모두들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순순히 사다리를 가지고 가서 고드름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일단 우리들은 다시 천막 안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방청객들은 상황을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어찌된 일인지를 자초지종 설명해주었다.


방청객들은 저마다 다양한 반응을 내놓았다. 한스가 평소에 인정을 베풀고 살지 않았기에 신이 내린 천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고, 단순히 재수가 없었다며 안타깝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모욕했기에 천벌을 받은 것이라고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재능이 재앙을 불러와 죽은 것이라고도 말하며 웅성거렸다.


“조슈아, 내 추리에 궁금한 점이 있거나 혹은 반박할 수 있는 증거가 있는지 말해줘. 테오 씨도 부탁드립니다. 사건의 진상을 명확하게 밝히기 위해서 말입니다.”


“흐음... 그렇다면 나에게도 보고서를 보여주겠어?”


테오의 요청에 내가 가진 보고서를 보여주었다. 조슈아와 테오는 조용히 보고서를 뒤적거리고, 저마다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각종 검사 결과서와 보고서, 필요하다면 검시관과 경비병들을 불러서 질문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조슈아는 미리 섭외해둔 증인들을 소환해서 한스에 관한 정보가 있다면 전부 이야기해줄 것을 요청했다. 증언들은 대부분 한스의 평소 성품과 최근에 그가 하던 일(축제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얼음 독수리 조각상을 만들려고 관문 밖으로 나가던 일)에 대한 것들을 진술했다. 대부분 보리스의 진술과 유사했기 때문에 새롭게 알아낸 정보는 많지 않았다.


다만, 어째서 한스가 거대한 독수리 조각상을 만들었는지 이유를 아는 증인이 있었다.


“여관을 운영하고 있는 리라고 합니다. 한스는 우리 가게에서 외상을 자주 하고는 했었죠. 스승님과 싸운 이후로는 외상을 갚지 못하고 있었는데, 눈 축제에서 조슈아님에게 얻어맞은 다음 날 이었나... 다다음날 이었던가...? 날짜가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축제가 끝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스가 돈주머니를 들고 오더니 외상값을 갚았습니다. 갑자기 거금이 어디서 생겼냐고 물어봤더니, 한스가 머뭇거리며 말했습니다. ‘첫째 공자님에게 받았다’고요.”


테오가 힐끗 나를 바라보았다. 그가 왜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지 이해가 된다. 피해자와 사망하기 전에 만났으면서 어째서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았냐는 의미겠지.


어쩐지 내심 찔렸지만, 그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애써 모르는 척 무시했다. 내가 빙의하기 전의 일이므로 나는 한스와 트로이안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잠자코 리의 진술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독수리 조각 때문에 조슈아님에게 얻어맞은 타박상이 심해서 한스는 약을 받으려고 의원에 갔었답니다. 그때, 재판장님과 마주쳤다고 했어요. 재판장님이 먼저 한스에게 말을 걸었고, 그때 얼음조각상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한스의 말로는, 대화를 나눈 끝에 자신이 도련님을 오해 했다는 걸 깨달았대요. 그래서 모든 일을 털어놓고 무릎을 꿇고 사과를 했답니다. 다시는 조각칼을 잡지 않겠다면서 말이죠.”


“어떤 오해였지?”


테오가 끼어들어서 물었지만, 리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건 저도 이야기를 못 들었습니다. 한스가 술주정으로 제게 한탄을 했지만 자세하게 어떤 오해를 했는 지는 이야기 해주지 않았거든요.”


“계속 이야기 해주세요.”


테오의 질문이 나오기 전에, 리에게 진술을 재촉했다.


“모든 사정을 들으신 재판장님은 한스를 꾸짖지 않았답니다. 제가 들은 바에 따르면, 재판장님께서 한스에게 ‘사람은 누구나 용서를 받을 수 있고, 의지만 있다면 다시 태어난 것처럼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말하셨다고 합니다. 한스는 그 이야기를 제게 하며 눈물을 보이더군요. 이렇게나 자비로운 분이셨는데, 자신이 이름도 모르는 자에게 이간질을 당해 첫째 공자님을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고 말입니다. 후회를 하며 술을 마시기에, 그 모습이 딱해서 저도 쓴 소리를 내뱉었습니다. ‘이 사람아, 후회한다면서 술을 마시고만 있으면 뭐가 바뀌겠나? 자네는 운이 참 좋아. 누구는 사과할 기회를 영영 놓쳐버려서 후회만 가슴에 안고 살아가거든. 괴롭겠지만 지금이라도 자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속죄하게.’ 그렇게 이야기 했더니, 한스가 제 말이 옳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더군요. 그 다음 날, 한스는 라인베르크에서 가장 거대한 얼음 덩어리를 사왔습니다. 그리고 가장 찬란하고 거대한 독수리를 조각했죠. 그가 정말 대견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서 목숨을 잃게 되다니... 전부 다 제 잘못인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속죄를 하라고 말하지 않고, 술이나 마시게 두었더라면... 적어도... 관문 밖을 나가다가 이리 허망하게 목숨은 잃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데······.”


리는 말을 흐리며 울먹거렸다.


“자책하지 마라. 만약 한스가 당신의 말을 듣고 속죄하러 나가지 않았더라면, 다시 영지로 돌아온 내가 혀를 뽑고 양손을 잘라내 죽는 것만도 못한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었을 테니.”


“조슈아...!”

“미치겠군. 누가 그런 식으로 위로를 하나?!”


나와 테오가 동시에 기막혀 하며 조슈아에게 한마디씩 얹었다.


“증인, 한스 이올트가 속죄를 하기 위해 독수리 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독수리상은 더할 나위 없이 크고 아름답고 찬란했다. 이 말에 거짓은 없겠지?”


“예. 맹세합니다. 지나가는 음유시인들이 아름다움을 찬양했고, 화가들은 영혼이라도 뺏긴 것처럼 조각상을 그렸지요. 분명, 화가들을 찾아가보면 얼음 독수리 그림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조슈아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팔짱을 풀었다.


“죽은 사람은 돌아올 수 없지. ...한스 이올트가 진심으로 속죄했다고 하니, 다행이군. 그의 장례는 내가 치러주겠다. 그의 가족이 있나?”


“예. 있습니다.”


“가족에게도 충분한 위로금을 내리도록 하지. 그리고 녹아버린 한스 이올트의 얼음 독수리를 소재만 바꿔 복원해서 세워두겠다. 한스 이올트의 이름은 조각가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도록 해주지.”


조슈아의 말에 리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한스도... 신의 곁에서 이 소식을 들으면 기뻐할 겁니다.”


“그렇게 좋아할 필요 없어. 사람들이 그의 조각상을 보고 감탄하며 내력을 묻는다면, 그때마다 그의 죄가 계속해서 상기될 테니. 그가 한 잘못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거다.”


“조슈아.”


“...속죄하고자 했던 그의 마음도 계속 남을 것이고, 후대인에게 귀감이 되겠지.”


“너도 참...”


“재판장님, 얼음 조각에서 따뜻한 봄의 축복이 검출되었습니다.”


“그러면, 다시 증거를 검토해봅시다. 이번엔 제가 가설을 제시했으니, 두 사람의 의견을 들려주십시오.”


“...”


“...”


“모두 제 추리에 대한 의문이 없다고 봐도 되겠습니까? 고드름으로 피해자가 사망했다. 이건 단순하게, 그럴듯하게 보이는 가능성일지도 모릅니다.”


내 질문에 조슈아는 가만히 있었고, 테오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증거로 도출할 수 있는 가설은 전부 제시해봤고, 솔직히 우리들의 주장을 지금 생각해보면 억지스러운 감도 있었어. 시신의 상처와 검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상처는 어긋나있었고, 내가 제시한 조슈아 범인설도 스키스톡이 발견되지 않으면서 무산되었지. 지금으로서는 그나마... 재판장이 말한 추리에는 증거들이 서로 가리키고 있는 진리에 어긋나지 않고 있어.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말해도 될 거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나? 병아리.”


“동의한다.”


이대로 끝내도 되는 걸까?


고민이 되었지만, 테오와 조슈아의 시선이 나에게 닿았다. 마치 판결을 내리라고 부추기는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의 태도가 변하자, 방청객들의 분위기도 변했다. 그들의 시선도 곧 나를 향했다.


모두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대로 폐정을 하자는 분위기가 천막 내부에 가득차게 되었다. 소수의 방청객들은 기지개를 피며 지인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런 행위들이 끝날 것 같은 분위기에 마침표를 찍어버렸다.


“그렇다면, 한스 이올트 사건의 피고인 테오에게 씌워진 살인 혐의에 대한 판결을 내리겠습니다. ...무죄!”


쿵쿵쿵-!


쇠망치로 책상을 3번 살살 두들겼다. 그러자 테오의 안색이 밝아지고, 조슈아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방청객들은 재판이 끝났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그리고, 잠깐 조슈아 가까이 와 봐.”


“응?”


조슈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내가 그에게 손짓을 하자, 그가 허리를 살짝 굽혀서 내 입과 자신의 귀의 위치를 엇비슷하게 맞추었다.


“혹시... 가지고 있는 돈이 있어?”


“있지. 왜?”


“방청인들 말이야. 오늘 재판 때문에 강제로 붙잡혀서 돈을 거나 장작을 패러 갈 시간이 사라졌잖아. 그러니까... 그들에게 일당을 나눠주었으면 좋겠어. 아, 돈은 저택으로 돌아가서 내가 줄 게. 잠깐만 빌려줘.”


“형의 사비로 저들에게 일당을 주겠다는 거야?”


“응. 그런데 지금 당장은 가지고 나온 돈이 없어서 말이야. 집에 가자마자 바로 갚을게...!”


내 말에, 조슈아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돈 주머니를 꺼내 나에게 주었다.


됐다!


꽤 묵직하네.


어디보자, 둘, 넷, 여섯, 여덟, 열, 열 둘...


쾅쾅-!


“자자, 여러분들 잠시만 정숙해주세요. 오늘 재판이 이렇게 끝난 것은 피고인과 원고의 노력도 있었으나, 여러분들에게도 공이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재판에도 시간을 내주시고, 성실하게 재판에 참여해주시고, 갑작스러운 증언 요청에도 흔쾌히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이 자리에 있었기에 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제가 오늘 일당을 지급해드리겠습니다. 재판 덕분에 일을 하지 못하셨으니, 오늘 일당을 받으시고 자택으로 돌아가실 바랍니다. 자자, 바로 돌아가지 마시고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서 일당을 받아 가시길 바랍니다!”


내 말에 방청객들의 눈빛에 큰 생기가 돌았다.


“와아아아!! 재판장님 만세!!”

“일당을 챙겨주신다고?! 살았다!”

“오늘은 따뜻하게 잘 수 있겠어...!”

“끝나고 한 잔 하러 가지! 어떤가?!”


여기저기서 기쁨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비대장이 자신이 나눠주는 일을 하겠다고 하기에, 조슈아의 돈주머니를 넘겨주었다. 일당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몰라서 1인당 은화 1개씩 지급해주라고 했다. 경비대장과 조슈아가 그렇게 많이 주냐고 놀라는 걸 보면, 아무래도 일당을 넘는 수준으로 후하게 쳐준 모양이었다. 어쨌든 부족한 것 보단 낫겠지. 그래서 그냥 진행시켜버렸다.


“이야~ 수당을 챙겨주는 재판이라니 난생 처음 들어봐. 그런데, 피고인인 나에게도 일당이 주어지나?”


테오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왕의 기사님이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설마... 폐하께서 넉넉한 여비를 챙겨주시지 않으셨어요? 에이, 설마, 폐하께서 짠돌이란 말씀을 돌려서 하시는 건 아니시죠?”


“어...? 아, 아하하...! 무슨소리야...?! 왕실만큼 돈 많은 곳이 어디 있겠어~ 당연히 챙겨주셨지~! ...이거, 순진한 줄 알았는데 고단수네?”


테오와 내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어느새 수많은 사람들이 수당을 받고 내게 인사를 건네며 군용 천막을 나섰다. 그들에게 고맙다고 말해준 뒤에, 보고서를 정리하며 테오와 사담을 나누었다. 순식간에 천막 내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빠져나가 한적하고, 조용해졌다.


조슈아는 증거물이었던 테오의 검을 집어 들더니, 그에게 다가와서 검을 건네주고 고개를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저 때문에 억울하게 체포되고 사형 당하실 뻔 했네요.”


“참나...! 아주 기를 쓰고 나를 유죄로 만들어버리려고 하던데?”


테오는 자신의 검을 소중하게 허리춤에 고정시키며 투덜거렸다.


“유죄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병아리... 어울리지 않게 왜 존대를 해? 무섭게 말이야. 설마... 또 다른 의심이 생겨서 나를 다시 체포 하려는 건 아니겠지?”


테오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말했지 않습니까? 당신의 정체를 알았다고요. 재판 중에는 당신의 정체가 어떻든 간에 범죄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존중을 해주지 않은 것일 뿐입니다.”


“허허..! 이 놈 보게...? 내 정체를 알았는데도 범죄자 취급을 했다고?”


“네.”


“아니. 내가 봤을 때, 병아리는 아직 멀었어. 내 정체를 짐작도 못하고 있을 걸?”


“폐하시잖습니까.”


?


“조슈아, 폐하는 왕에게만 붙일 수 있는 호칭이야.”


내가 부드럽게 타이르자, 테오의 입에서 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하하하!!”


"..."


"..."


"..."


...테오 씨. 왜 부정을 안하세요?


어쩐지 등에서 축축한 느낌이 드는 것 같았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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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화. 평화로운 하루 24.05.31 4 1 13쪽
20 20화. 돌아가자 24.05.30 5 0 13쪽
» 19화. 폐정 24.05.29 6 0 13쪽
18 18화. 조각상 24.05.28 7 0 13쪽
17 17화. 원점? +1 24.05.27 7 1 13쪽
16 16화. 관문에 대해서 24.05.24 5 0 14쪽
15 15화. 그 사건? 24.05.23 6 0 13쪽
14 14화. 흉기 24.05.22 8 0 12쪽
13 13화. 조사 결과 24.05.21 8 0 13쪽
12 12화. 체포한 근거 24.05.20 5 0 12쪽
11 11화. 개정! 24.05.17 6 0 13쪽
10 10화. 의심과 단서 24.05.16 5 0 13쪽
9 9화. 조사 시작 24.05.15 8 0 12쪽
8 8화. 이방인의 정체 24.05.14 9 0 13쪽
7 7화. 진실을 밝혀봅시다. 24.05.13 11 0 13쪽
6 6화. 억울한 사람 24.05.10 8 0 14쪽
5 5화. 마중을 나가다 24.05.10 10 0 15쪽
4 4화. 소설 속 세상에 적응하기 24.05.09 12 0 13쪽
3 3화. 왜 그랬을까요? 24.05.09 11 0 11쪽
2 2화. 후회와 의문 24.05.08 14 0 12쪽
1 1화. 후회와 빙의 24.05.08 3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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