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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무새 님의 서재입니다.

왕의 어사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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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상상무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1
최근연재일 :
2024.05.31 17:30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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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27

작성
24.05.2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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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3화. 조사 결과

DUMMY

“관문에 도착했을 때, 여행자는 허리를 숙여 무언가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손에 검을 들고 있었죠. 닫힌 관문 앞에서 무기를 손에 쥐고 있는 자가 있으니까 저는 조심스럽게 인기척을 죽이고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피해자의 시신이 보였죠. 제가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자 피 냄새가 났습니다. 그 냄새 때문인지 절로 그의 상의에 시선이 갔는데, 의미심장한 얼룩까지 묻어 있어서 더 의심스러웠죠. 저 이방인은 저를 보자마자 크게 놀라더니, 갑자기 무기를 휘둘렀습니다. 그래서 수상한 사람이라 판단하고 그 자리에서 체포했죠.”


“잠깐! 너를 공격했다고?! 왜 말하지 않았어?!”


내가 놀라서 목소리를 높였다.


“검집에서 칼을 뽑지는 않았어. 그리고 내가 피했거든. 제법 괜찮은 자세였지만, 그 실력으로는 내게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지.”


어쩐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조슈아가 테오를 향해 미묘한 미소를 보냈다. 그러자 테오가 살짝 자존심이 상한 표정으로 주먹을 쥐었다. 손 안에서 주사위들이 비벼지며 끼기긱 하는 소리가 들렸다.


“뭘 잘하셨다고 주먹을 쥐시는 겁니까?! 손에서 힘 빼세요!”


내가 외치자, 테오가 다급하게 손의 힘을 풀었다.


달그락-


손에 있던 조그마한 주사위가 떨어지며 책상을 굴렀다.


2, 2

...도합 4인가?


숫자를 본 테오가 크게 당황하더니, 그대로 주사위들을 손에 쥐고 흔들었다.


“잠깐만! 동생 일이라고 흥분하지 말고 내 이야기도 들어줘, 재판장님. 그땐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니까 놀라서 반사적으로 휘둘렀던 거야. 조사할 때도 말했지만, 나는 여행자야. 언제 어디서 강도와 맹수를 만날지 몰라서 항상 경계하면서 다닌다고! 인기척도 내지 않고 갑자기 등 뒤에서 나타나면 나더러 어쩌라고?! 절대 고의로 해치려던 것은 아니었어. 방청객 여러분들도 야산에 올라서 맹수를 만나본 적 있을 겁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스스로를 지킬 준비를 해야지요. 산 속에서 산짐승의 기척을 느끼고 무기를 휘둘렀는데 알고 봤더니 이웃 사람이라 놀라면서도 안도했던 경험은 다들 한 번 쯤은 있지 않나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테오는 어째서 나에게 반말을 하고 방청객들에게는 존대를 하는 거지? 진술의 내용에 집중하지 않고 이런 것에 신경 쓰고 있는 내가 꼰대인 걸까? 이런 고민을 입 밖으로 냈다간 정말 꼰대처럼 보일 것 같아서 조용히 있기로 했다.


“그건 그래.”


“나도 전에 석궁을 들고 갔다가 실수로 이웃사람을 쏠 뻔 했지 뭐야.”


“갑자기 등 뒤에서 나타나면 놀라서 그랬을 수도 있지.”


방청객들이 테오의 의견에 공감을 표현했다.


“하지만, 조슈아가 다쳤으면 어쩔 뻔 했습니까.”


내가 테오에게 목소리를 낮추어 꾸짖자, 테오가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형, 아니 재판장님. 난 괜찮아. 걱정하지 마.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저 자는 나를 '평생' 해칠 수 없을 테니까 말이야.”


까드득-!

“삐약이...!”


앗. 병아리에서 삐약이라고 호칭이 변했다.


테오의 얼굴이 분노에 시뻘겋게 변했다. 꽉 쥔 주먹은 반대로 새하얗게 변했다.


“형 다른 건 몰라도 방금 저 자의 주장은 믿을 만 해. 검집을 끼고 있는 채로 휘둘렀고, 살의가 없었어. 나를 죽이려고 했던 건 아니었단 말이지. 하지만 수상하니까 체포했어.”


조슈아는 내가 자기를 걱정해주는 게 기분이 좋았는지 어느새 미소를 띠고 의기양양하게 테오를 약올렸다.


까득-!


아무래도 테오는 본인의 검술에 자신감이 꽤 많은 모양이다.


“자자, 진술을 이어합시다.”


“알겠어. 관문이 닫혀 있었던 탓에 나를 제외하면 그 자리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자는 테오가 유일했어. 그래서 그가 범인이라 판단하고 체포했을 뿐이야. 무기는 압수했고, 무기를 조사한 결과 말라붙은 피가 나왔지. 범인은 테오 말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잠깐. 본인은 제외한다고? 하...! 난 그 논리대로 라면, 병아리, 너도 범인이 될 수 있어! 네가 피해자인 한스를 죽이고 내게 죄를 뒤집어씌운 것일지도 모르잖아?! 관문이 닫혀 있었고, 관문 밖에는 나와 피해자, 그리고 '너'가 있었어. 내 입장에선 오직 너 말고는 한스를 죽일 수 있는 범인이 없다고!”


테오의 말에 방청객들이 웅성웅성 거렸다.


“어떻게 둘째 공자님을 범인으로 몰아갈 수 있는 거야? 뻔뻔하긴!”


“이방인 주제에 둘째 공자님에 대해 뭘 안다고 살인자로 몰아가는 거야?!”


“헛소리 하지 마라! 조슈아님은 범죄를 저지를 분이 아니셔!”


“아까부터 대공자님에게 반말하고 둘째 공자님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불경한 이방인의 혀를 뽑읍시다!!”


“옳소! 옳소!!”


앗, 내 고민을 입 밖으로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니! 내가 꼰대가 아니었나봐.


“저, 정숙~! 여러분들~ 정숙하세요~!”


내가 그렇게 외치면서 망치를 탕탕 하고 두들겼다. 그랬더니 소란스러움이 줄어들었다.


“여러분, 저에게 반말을 하는 불경한 혀를 뽑고 싶어도 상대는 무지한 이방인이 아닙니까? 저희들이 자비를 베풀어줍시다~”


“대공자님은 도량도 넓으셔~”


“그릇이 큰 분이야. 우리 자식들이 커서도 현명한 영주님 아래에서 잘 살 수 있겠어.”


“하하하! 신의 축복입니다 여러분들! 그렇지 않습니까?”


“옳소~! 옳소!”


“여러분들~! 저를 그렇게나 많이 띄워주시면 어떡합니까? 어떻게 제가 혼자 현명할 수 있겠습니까? 이게 다 여러분들이 물심양면으로 저를 도와주시는 덕분이지요!”


“와하하하!”


내가 옳다구나 하며 답인사를 해줬더니 재판석과 방청석에서 연신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오직 조슈아와 테오가 굉장히 황당해하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형...?”


“하... 하하... 재판장은 믿었는데...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군.”


테오가 황당해 하면서도 식은땀을 손으로 훔치고 있었다.


“커흠. 잠시 딴 길로 샜네요. 자, 그럼 다시 재판 내용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조슈아는 당신을 체포한 이유를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첫 번째, 당신이 피를 묻은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점. 두 번째, 당신에게서 피 냄새가 났고 상의에 피 얼룩이 있었다는 점. 세 번째, 시신과 함께 있었던 유일한 생존자였다는 점입니다. 그럼, 피고인은 스스로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시길 바랍니다.”


“후... 이거 참, 어렵네요. 일단, 제가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던 이유는 앞에서 계속 말했듯이, 제가 여행자이기 때문입니다. 강도와 맹수가 득실거리는 낯선 땅을 혼자 여행하기엔 무기는 반드시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모두 이 점은 이해 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면 어째서 검의 상태가 이런 거지? 방청객들도 똑똑히 보길 바란다!”


조슈아는 경비병에게서 테오의 검을 받아, 그대로 칼을 뽑았다.칼날에 말라붙은 피가 드러나자 방청객들 사이에서 “피가 묻어 있잖아?!” 하고 경악하는 목소리와 함께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검을 쓰는 자가 어떻게 피를 닦지도 않고 검 집에 집어 넣어둔단 말인가? 심지어 네 입으로 맹수와 강도를 만났을 때 신체를 방어하기 위해서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하는 무기인데 말이다! 이렇게 피가 칼날에 묻어 굳어버리게 된다면 검이 무뎌지지. 이래서야, 정작 필요할 때 스스로의 몸을 지키지 못하게 되지 않나?!”


조슈아의 말에 테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해를 살까봐 그랬어. 검에 피가 묻어있는데, 관문 앞에서 죽은 사람을 발견했어. 그러면 충분히 내가 범인이라고 오해를 살 수 있잖아! 심지어 난 외부인인데, 누가 나를 믿어주겠냐고?! 그러니 피를 닦아내기도 전에 검집에 넣어 숨기려고 했던 거야. 어차피 라인베르크로 들어가면 맹수의 공격을 받을 일도 없고, 굳어버린 피는 물로 녹여내면 되니까 아주 잠깐 정도는 상관없다고 생각했어.”


“오해를 살 까봐 그랬다? 그럼 이 피는 어디서 묻은 거지?”


“앨리 숲에서. 맹수를 만났어. 그래서... 맹수를 벨 때 검에 피가 묻었다.”


테오가 조그마한 주사위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서 엄지로 이리저리 굴렸다.


“그럼 숲에 있을 때 바로 닦지 않은 이유는? 나뭇잎으로 닦아도 됐잖아.”


“...그 생각은 못했네. 난 상의에 닦았어.”


“뭐?”


“상의에 닦았다고요?”


“앨리 숲에서 나를 공격하려는 맹수를 여러 번 만났어. 그때마다 살기 위해서 맹수를 베어냈는데, 깨끗한 면포를 다 써버려서 말이야. 어쩔 수 없이 피를 상의에 닦았어. 내게 피 냄새가 났던 건 맹수들의 피 때문이고, 검에 말라붙은 피도 맹수의 피야.”


“피해자의 피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흐음······.


“그 말, 책임질 수 있나?”


“...”


테오가 손에서 주사위를 굴리는 걸 멈추었다.


“재판장님?”


“아, 네. 검사측 발언하세요.”


“위증을 하면 어떤 처벌이 있다고 했었죠?”


“벌금 100실버 혹은 태형 10대를 맞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방금 피고인이 거짓을 말했거든요.”


“거짓말이라고요?”


“검에 묻은 혈액을 조금 긁어내서 시약에 넣고 검사했습니다. 이 혈액이 과연 사람의 피인지 동물의 피인지를 판단하고, 만약 사람의 피라면 과연 어떤 축복을 담고 있는 피인지를 판별해낼 수 있는 검사죠.”


“아아, 그리고 보니 결과가 나왔다고 했지? 말해줘.”


“내가 결과를 말하기 전에, 피고인의 입으로 먼저 들어볼까? 피고인, 네가 가장 마지막에 베어버린 맹수가 뭐였지?”


조슈아의 말에 테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쾅-!


조슈아가 책상을 소리나게 내리쳤다.


“얼른 말 해! 널 위협한 맹수가 뭐였냐고 물었다!”


“그, 그게, 그, 고, 곰...이었나?”


테오가 주사위를 책상에 후두둑 떨어트리며 손을 떨었다.


“피고인, 어째서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하시는 겁니까?”


착-!


잘그락-


“어두웠어. 밤에 습격을 당했거든. 게다가 날 습격한 맹수는 한두 마리가 아니었어. 그래서 잘 모르겠네...? 호랑이었나? 곰이었나? 멧돼지였나? 아니면 사슴? 토끼?”


“토끼가 맹수인가요?”


“그들이 똥을 얼마나 자주 싸는지, 얼마나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지를 알면 맹수라고 취급하게 될 거야. 하루만에 똥으로 동산을 만들 수 있거든.”


“토끼가 그렇게나 똥을 많이 싸나요?”


“아유, 산처럼 쌓이지. 그게 얼마나 공포스럽다고? 그런 동물을 맹수라고 부르지 않으면 국가적인 손실이ㅡ”


쿵-!


책상을 울리는 타격 음에 시선을 돌리자 조슈아가 우리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재판장님, 지금 피고인의 헛소리에 정신이 팔릴 때가 아닙니다. 예?!”


“미안해.”


“피고인, 재판장을 세치 혀로 현혹시키지 마라!”


“흥.”


“피고인은 자신이 베어버린 맹수가 무엇인지 기억하지 못해. 그 이유는 이 혈액검사의 결과를 보면 간단하지.”


“그래서, 검사 결과는...?”


“그가 칼로 베어버린 맹수는 다름 아닌, ‘사람’이었어.”


!


내가 눈을 휘둥그레 뜨자, 테오의 안색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사, 사, 사람의 피였다고...?!”


“심지어 피해자인 한스는 '따스한 봄의 축복'을 담은 피를 가진 사람이었지. 한스의 피와 피고인이 베어버린 ‘사람의 혈액’을 각각 시약에 섞어서 조사했어. 그 결과, 아주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지. 그건 바로...! 검에 묻은 혈액도 피고인과 같은 ‘따스한 봄의 축복을 담은 피’였다는 거다!”


“뭐, 뭐라고오오오?!!!!”


테오가 큰 소리를 내며 놀랐다. 주사위가 그대로 책상에 후두둑 하고 떨어졌다. 각각의 주사위가 1을 표시했다.


“마, 맙소사... 말도 안 돼!!”


테오가 책상을 주먹으로 쾅 하고 내리쳤다. 조그마한 주사위들이 충격에 위로 붕 떠올랐다가 다시 떨어졌다. 분명 주사위들이 책상을 짧게 굴렀는데, 신기하게도 두 개의 주사위가 또다시 1을 가리키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내 검에 묻은 혈액이 따스한 봄의 축복을 담은 피였다고? 하필이면 한스도 같은 축복을 담고 있었다고?!”


“그래! 그대는 이 칼로 피고인을 등 뒤에서 찔렀다는 말이 된다! 이 검이야 말로 그대가 범인이란 걸 입증하는 흉기지! 위증죄와 함께 살인죄까지 달게 받아라, 이방인!”


“말도 안 돼!!!”


테오의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고함이 터져 나왔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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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화. 평화로운 하루 24.05.31 4 1 13쪽
20 20화. 돌아가자 24.05.30 6 0 13쪽
19 19화. 폐정 24.05.29 6 0 13쪽
18 18화. 조각상 24.05.28 8 0 13쪽
17 17화. 원점? +1 24.05.27 8 1 13쪽
16 16화. 관문에 대해서 24.05.24 6 0 14쪽
15 15화. 그 사건? 24.05.23 7 0 13쪽
14 14화. 흉기 24.05.22 8 0 12쪽
» 13화. 조사 결과 24.05.21 9 0 13쪽
12 12화. 체포한 근거 24.05.20 6 0 12쪽
11 11화. 개정! 24.05.17 7 0 13쪽
10 10화. 의심과 단서 24.05.16 6 0 13쪽
9 9화. 조사 시작 24.05.15 8 0 12쪽
8 8화. 이방인의 정체 24.05.14 9 0 13쪽
7 7화. 진실을 밝혀봅시다. 24.05.13 11 0 13쪽
6 6화. 억울한 사람 24.05.10 9 0 14쪽
5 5화. 마중을 나가다 24.05.10 11 0 15쪽
4 4화. 소설 속 세상에 적응하기 24.05.09 13 0 13쪽
3 3화. 왜 그랬을까요? 24.05.09 12 0 11쪽
2 2화. 후회와 의문 24.05.08 15 0 12쪽
1 1화. 후회와 빙의 24.05.08 3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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