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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무새 님의 서재입니다.

왕의 어사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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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상상무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1
최근연재일 :
2024.05.31 17:30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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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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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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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27

작성
24.05.3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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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0화. 돌아가자

DUMMY

“내가 봤을 때, 병아리는 아직 멀었어. 내 정체를 짐작도 못하고 있을 걸?”


“폐하시잖습니까.”


?


“조슈아, 폐하는 왕에게만 붙일 수 있는 호칭이야.”


“아하하하! 뭐야, 정말 알고 있었네?!”


“예?! 아니, 정말 폐, 폐하라고요? 정말...? 아니죠? 장난치는 거죠? 왕의 기사라면서요...?”


테오가 얼빠진 내 표정을 보며 ‘푸핫-!’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아, ‘선왕의 기사’라는 의미였지.”


“또 저를 속이셨습니까?! 아니, 이 사람이 정말...! 입만 열면 아주 구ㄹ...! 거짓말을 하시네요?! 안 되겠습니다! 지금이라도 위증죄를 적용하겠습니다! 제가 내리는 태형 10대를 받으십시오!”


쇠망치를 잡은 손에 힘을 주자, 테오가 “으아아~! 미친 재판장이다!”하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를 내뱉더니 조슈아의 등 뒤에 숨어버렸다.


“당장 나와요!”


“형. 왕에게는 모든 범죄에 대한 면책권이 있어. 죄를 저질러도 처벌할 수는 없지.”


“뭐?!”


“법전 공부를 꽤 많이 한 것 같던데. 재판장은 당연히 알겠지? 국왕만이 가지는 ‘면책특권’말이야.”


분명 대한민국에서 살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어디선가 본 적 있긴 한데...!


“으으... 이건 사기야!!!”


“아하하하하! 잠깐, 병아리는 내 정체를 확실히 알았는데 어째서 나를 범죄자로 취급했지?”


“그야, 피고인은 ‘여행자 테오’였으니까요. 끝까지 스스로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으니, 도망친 농노 혹은 자유민의 신분으로 당신을 취급했을 뿐입니다. 억울하면 재판에서 밝히지 그러셨어요? 내 이름은 ‘테오도시우스 12세’였다고. 내 검에 혈흔과 살점이 묻어 있었던 이유는 왕실에서 보낸 자객들을 처리하느라 생긴 흔적이었다고요. 그렇다면 위증을 하신 죄가 생기겠지만, 왕이 가진 ‘면책특권’으로 형벌의 집행은 면하실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 선택지가 있었지만 당신은 끝끝내 공식적인 재판에서 스스로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어요. 그건 당신이 하대를 당하길 원하셨다는 이야기가 되죠. 스스로 원했으면서 저에게 왜 반말을 했냐고 따지시면, 제가 참 곤란합니다.”


“하대를 당하길 원했다니?! 아주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는군! ...하지만, 어떻게 보면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긴 해. 쯧, 재판 내내 느꼈지만, 정말 잘 삐약거려.”


테오는 끄응 소리를 내더니, 자신의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겼다.


“하대를 당하길 원하세요? 그런 취향이시라면 저도 반말 해드릴까요...?”


어쩌면 매타작을 당하는 것을 즐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슬그머니 쇠망치를 내려놓았다.


“그런 취향이라니! 무슨 소리야?! 형제가 쌍으로 사람을 놀리는 재주가 있어! 응?!”


테오를 이상한 눈초리로 훑어보며 말하자, 그가 황당한 웃음을 터트리며 태클을 걸었다.


“그보다, 폐하께서 왜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라인베르크까지 오신 겁니까?”


“으응? 아~ ‘순수(巡狩)’중이었어.”


“순수라면, 왕이 통치하는 지역을 돌아보는 일을 말하는 거죠?”


“그래. 난 즉위하자마자 선왕이 시작하신 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전장에 뛰어들어야만 했어. 2년 동안 나와 병사들이 피를 흘려가며 땅을 넓히고 전쟁을 끝냈지. 그로부터 3년이 흘렀으니까 전쟁의 피해가 많이 회복되었나 확인하고 싶어서 순수를 하게 됐어. 그리고 나의 통치 아래에서 백성들이 잘 살아가고 있는지도 궁금했고 말이야~ 내가 순수를 하러 나타나면 영주와 백성들이 모두 환영해주지 않을까 기대를 품었었지. 뭐, 상상과 달라서 크게 실망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환영해주지 않았나요?”


“아니, 환영이야 해줬지. 근데 공식적인 순수대열이 들어가기 전에 지금처럼 혼자서 영지에 몰래 들어가서 비밀사찰을 했었거든? 그런데, 하나같이 형편없었어. 내가 전쟁터에서 잠도 줄여가면서 법전을 써서 반포해놨는데, 그걸 지키는 영주가 단 한 명도 없는 거야! 그러니, 백성들의 삶도 전쟁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었지. 그런 상황에서 자객에게 습격까지 당하고 일행들과 떨어지게 된 거야. 어제 밤에 앨리 숲에서 노숙을 하며 달을 보는데, 정말... 마음이 공허해지더라. 어째서 나는 왕궁에서 아등바등 열심히 일하고 공부했을까? 전쟁에서 죽음의 공포를 마주하며 싸웠는데, 대체 무엇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걸까? 나는 왜 궁정의 대신들과 이게 더 백성들을 위한 정책일거라고 주장하며 논쟁을 벌였을까? 왜 내가 타지에서 이렇게 목숨을 위협 받으며 고생을 하고 있지?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아무도 내가 만든 법을 지키지 않고, 그 어떤 영주도 내 명령을 행하며 백성들을 위하려고 하지 않았고, 백성들조차도 내가 펼친 정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야! 정말, 후회가 밀려오더라. ...그래서 라인베르크에서 흩어진 인원들이 모두 모이게 된다면, 왕궁으로 돌아가려고 했어. 눈을 뜨자마자 관문으로 갔더니, 저 병아리에게 살인범이라고 오해를 당하고 체포당했지! 절망스러웠어. 내가 인생을 이렇게 잘못 살았구나...! 신께서 나를 저버리려나보다...! 그렇게 체념하고 있었지. 그런데, 그때! 그대를 만나게 된 거야! 그리고 순식간에 내 눈은 강렬한 빛에 멀어버리고 말았지! 오오, 트로이안. 나의 빛! 나의 희망!”


“에? 네?! 저요?!!!!!”


테오가 감격했다는 듯 나에게 또다시 몸을 들이밀었다. 부담스러워하며 뒷걸음질을 치다가 천막에 가로막히게 되었더니, 테오가 그대로 양 팔로 나를 가두려고 했다.


다행히도 더 위험해지기 전에 조슈아가 테오를 붙잡고 떨어뜨려주었다.


“떨어지세요.”


“제, 제가 왜 당신의 빛과 희망이 된 겁니까?!!”


“그대가 유일했어! 수도에서 이렇게나 먼, 라인베르크에서 오직 그대만이 내가 펼친 법전의 내용을 알고 있고, 실제로 그 법을 지키려고 노력했지! 심지어 내가 결백할지도 모른다고 나서주었고, 내 말을 믿어준다고까지 했어! 그 순간, 그대의 등 뒤에 천사의 날개가 솟아오르고 후광이 비쳤다고!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던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지. 그리고 희망이 솟아올랐어! 아, 이렇게나 먼 곳에서 나의 뜻을 받들어주는 사람이 있구나...! 내가 했던 그 모든 노력들이 헛된 일이 아니었구나...! 그런데, 실제로 중립의 입장에 서서 내 무죄를 증명해주기까지 하다니...! 내가... 내가 그대를 빛과 희망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무엇이라고 여겨야 한단 말이야?! 그대는 신이 보내준 나의 수호천사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응?!”


테오는 정말 감격한 듯, 마지막에는 목소리까지 떨리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아니! 네가 부정해도 소용없어. 테오도시우스 12세인 내가 그렇게 정했으니까!! 오늘부터 그대는 내 수호천사야!”


“무슨 소리세요!!!”


“부담스러워 하지 말라고 수호천-”


“경비병!!! 빨리 저 사람이 제게 접근하지 못하게 해주세요!”


나의 비명 소리에 천막 밖에 있던 경비병이 우르르 달려와 테오를 나에게서 멀리 떨어트려놓았다.


“부끄러워 하지 말라고! 나의 수호천사!”


“네?”

“이, 이 사람 왜 이런답니까?!”


경비병들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감격하다 못해 미쳐버린 모양인데, 어떡하지? 형.”


“모르겠어...! 미친 왕이 폭주하는 것도 무서운데, 하필이면 왕에게 찍혀버린 탓에 평화로운 재벌 4세 라이프를 즐기지도 못하게 될 것 같아서 눈앞이 캄캄해진다...!”


“재벌 4세 라이프...?”


조슈아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단 폭주하는 테오를 간신히 진정시키고, 그를 다시 피고인석에 앉혔다. 경비병들에게는 고마움의 인사를 또 전했다.


“그럼 일행 분들이 라인베르크에 모일 때까지 기다리실 건가요?”


“그래. 라인베르크에 대부분 모일 거야. 어쩌면 이미 라인베르크에 들어와 있을 수도 있지. 협조를 구하고 싶은데, 도와주겠어?”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떠나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그대, 어째서 그렇게 매정하게 말하나?”


“당신과 더 엮이면 위험해질 것 같다고 제 촉이 경고를 보내는 중이거든요. 거리를 좀 두려고요.”


“왕인 나와 거리를 두겠다고? 남들은 나와 거리를 좁히고 싶어서 안달인데?”


“저는 아닙니다. 최대한 멀어지고 싶네요.”


“어째서? 혹시... 라인베르크는 나를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싶은가? 그래서 내가 다가가는 것이 부담스러운가?”


“무,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당신의 ‘빛과 수호천사’의 위치를 거절했다고 해서 모반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하시다뇨...!”


“그걸 말하는 게 아니야. 밀고장을 받고 관문을 닫아버린 건을 지적하는 거야.”


!


“흉악한 범죄자가 영지에 들어가려고 하니, 관문을 닫으라는 내용의 밀고장을 받았다고 했지. 노란 병아리조차도 밀고장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왕실’에서 보내진 것이라고 알아차렸어. 심지어 밀고장이 말한 ‘흉악한 범죄자’는 ‘왕’인 나를 가리켰지. 즉, 반역을 꾀하는 자가 보냈다는 거야. 그리고 백작이 그 지시에 따르면서 반역자의 편을 들어주는 모습을 보였지. 내가 이걸 그냥 흘려보내야겠나?”


“백작님은 몰랐을 겁니다. 단호하게 말할 수 있어요. 제가 본 백작님은 호탕하시지만 단순한 구석이 있으셨거든요. 다만 조슈아는 백작님을 닮지 않아서 정말 똑똑한 녀석이에요. 남들이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도 척척 알아내고, 무엇이든 해내거든요.”


내가 치켜세우자, 조슈아가 민망했는지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백작은 아들들에게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는 건가? 아니지, 다른 의미로 인정을 받고 있는 건가...?”


“폐하, 믿어주세요. 백작님은 정말 흉악한 범죄자라고 믿으셨을 지도 모릅니다. 재판에서도 말했지만, 백작님은 제게 폐하의 이야기를 해주실 때 매우... ...무례하게 들릴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흡족해 하시는 느낌이었습니다.”


“...”


“저를 노려보셔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필시 오해가 있을 거라고 단언하고 싶어요. 그리고 오해가 있다면, 한 시라도 빠르게 직접 만나서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한스가 대화를 나누어 오해를 풀었던 것처럼 말이죠. 재판도 끝났으니 저희들과 함께 성으로 가시는 건 어떠세요? 분명 오해가 풀릴 겁니다. 백작님이 절대 폐하를 돌아설 분이 아니세요.”


내가 강하게 말하자, 테오는 잠깐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으로 가자. 백작을 직접 만나야겠어.”


우리들은 경비병들을 도와 재판소를 빠르게 없애는 일을 도와주었다. 누가 왕과 백작가 둘째 아들 아니랄까봐, 테오와 조슈아는 팔짱만 끼고 경비병들이 재판소의 물건들을 다시 경비창고에 넣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난 그렇게 팔짱 끼고 구경만 하지 말고 빨리 경비병들을 도우라고 잔소리를 했다. 두 사람은 눈치를 보면서 슬그머니 쉬다가, 내가 잔소리를 하면 그제야 느릿느릿 움직이며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재판에 참여해주신 경비병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오늘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면서 함께 의자와 책상을 옮기고, 화롯불을 끄고, 천막을 접었다. 임시 재판소의 흔적을 치우는 사람의 숫자가 많으니 순식간에 관문 앞이 깔끔하게 변했다.


그래! 이렇게 다 같이 도와야 일이 빠르게 해결되지.


하늘의 절반이 주황빛으로 물들었고 나머지 절반은 아직 파란 하늘을 선보이고 있었다. 이러면 저녁 시간 즈음에는 성에 도착할 수 있겠지?


관문을 향해서 한스 이올트의 명복을 빌어주는 짧은 기도를 한 뒤에 피오니에 조슈아를 태우고 귀가했다. 혹시나 피오니가 날뛰어서 주인공이 다치면 곤란하니까 피오니의 고삐는 내가 꽉 쥐고 걸었다.


테오는 왕인 자신이 아니라 어째서 조슈아를 말에 태우냐며 투덜거렸지만, 내게 있어서는 조슈아의 안위가 왕보다 더 중요했다.


어딜 소설 속 주인공이 옆에 있는데 조연이 말을 타려고 그래?


심지어 소설 속 왕 캐릭터는 언제든지 교체될 수도 있고, 언제든지 죽을 수 있잖아. 하지만 주인공이 죽으면 이 소설 속 세상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시간이 그대로 멈춰버릴 수도 있고, 세계가 멸망하게 될 수도 있다.


백작가 장남으로서 호화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이 세상이 평화로워야만 하고, 그러려면 주인공의 안위가 가장 중요하지 않겠어? 그런 판단 하에 조슈아를 말에 태워버렸다.


그리고 난 어차피 말을 탈 줄 모르고, 테오는 법정에서 스스로의 신분을 숨겼던 만큼 라인베르크 공자들을 걷게 내버려둔 채 혼자 말을 타고 가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를 원하지 않을 터였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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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어사로 살아가는 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 21화. 평화로운 하루 24.05.31 4 1 13쪽
» 20화. 돌아가자 24.05.30 6 0 13쪽
19 19화. 폐정 24.05.29 6 0 13쪽
18 18화. 조각상 24.05.28 8 0 13쪽
17 17화. 원점? +1 24.05.27 7 1 13쪽
16 16화. 관문에 대해서 24.05.24 5 0 14쪽
15 15화. 그 사건? 24.05.23 7 0 13쪽
14 14화. 흉기 24.05.22 8 0 12쪽
13 13화. 조사 결과 24.05.21 8 0 13쪽
12 12화. 체포한 근거 24.05.20 5 0 12쪽
11 11화. 개정! 24.05.17 6 0 13쪽
10 10화. 의심과 단서 24.05.16 5 0 13쪽
9 9화. 조사 시작 24.05.15 8 0 12쪽
8 8화. 이방인의 정체 24.05.14 9 0 13쪽
7 7화. 진실을 밝혀봅시다. 24.05.13 11 0 13쪽
6 6화. 억울한 사람 24.05.10 9 0 14쪽
5 5화. 마중을 나가다 24.05.10 10 0 15쪽
4 4화. 소설 속 세상에 적응하기 24.05.09 13 0 13쪽
3 3화. 왜 그랬을까요? 24.05.09 11 0 11쪽
2 2화. 후회와 의문 24.05.08 14 0 12쪽
1 1화. 후회와 빙의 24.05.08 3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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